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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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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에게 사랑은 선언을 의미했다. 그게 핵심이 아닐까? 세라에게 사랑은 둘만의 비밀을 의미했다. 그게 핵심이 아닐까?
신뢰 연습 수잔 최 지음, 공경희 옮김
여기 10대의 연인이 있다. 데이비드는 학우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물을 주며 사랑을 표현하지만 세라는 거부한다. 이것은 이들의 최초의 어긋나는 지점이고 아픔과 갈등과 후회를 촉발한다. 소설은 이들의 어긋남을 주축으로 킹슬리 선생의 개입, 예술과의 개연성, 꿈의 좌절과 박탈감 등을 그리고 있다. 데이비드와 세라는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그것을 유지하고자 하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데이비드는 사랑이란 선언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모두에게 서로의 사랑을 공표하고 모종의 암묵적인 승인을 받아야 그들의 사랑이 단단함과 명료함을 갖추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러니까 데이비드는 사랑이란 비밀이어선 안된다고, 선언과 승인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존재다. 그럼으로써 사랑이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반면 세라에게 사랑이란 고요함과 은밀함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개념이다. 그녀는 그들의 사랑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적막한 빈집에서, 버려진 스낵바에서, 텅 빈 복도에서 펼쳐지길 바란다. 그러니 이들의 어긋남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을 지도......
자아회복의 기반은 자아 해체입니다.
신뢰 연습 수잔 최 지음, 공경희 옮김
킹슬리 선생은 학생들에게 자아회복의 기반이 무엇인지 묻는다. 한 학생이 그것은 겸손이라고 답한다. 자아가 많은 사람은 거만하고 오만하며 그에 비해 겸손은 강한 자부심의 반대니까.거기에 킹슬리는 우리가 통제하는 한, 자아가 많을 수는 없다고 대꾸한다. 그러면서 자아회복의 기반은 자아 해체라고 단언하며 수업을 끝낸다. 자아가 많은 사람은 거만하고 오만하던가? 모르겠다. 나의 경우를 비춰보면 , 우선 나는 잘 따라하는 사람이었다. 동경하거나 선망하는 대상이 생기면 어느 순간 그의 행동이나 말투까지도 비슷해져 갔고 그런 나를 보며 수치심을 느꼈다. 그런 무의식적인 행동이 누군가에게 포착된 것이 감지될 때면 평소의 나에게 속해있던 말투나 표정으로 돌아와 그 뒤로 숨곤 했다. 어설프고 섣부른 모방을 감추기 위해 남들이 본연의 '나'로 믿는 웃음소리와 특정한 자극을 만났을 때 짓는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과장하기를 반복했다. 상대를 따라하고 그것을 수습하는 일련의 행동들은 열등감과 비굴함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거만과 오만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성질이었다. 오만함은 많이 가진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가진것이 희박한 사람은 그 공허함을 무엇으로든 채워넣어야 한다. 상대의 외모, 지위, 돈 같은 것을 소유할 수 없다면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사람의 행태를 모방하는 것이 아닐까? 뭔가가 넘쳐흐를때 동반되는 건 여유와 느긋함이다. 그 풍요에서 비롯된 여유가 오만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결핍에서 파생되는 건 조급함인 것 같다. 뭔가를 증명하고 입증해내야 한다는 압박. 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려는 그 성급함. 그래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를 따라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자 없는 사람이라는 것, 나도 인정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의미와 가치를 증명해내려는 갈급함으로. 그러니까 본연의 자아가 타인들의 자아로 잠식당하는 것은 결핍 때문이라는 것. 젊은 시절의 나는 그런 식으로 줄기차게 자아를 오염시켰다. 그런 순간들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나를 한심하고 무능한 존재로 인식할 거란 사실을 깨달은 것은 나중이었다. 자아가 많은 사람은 내면에 틈새와 구멍이 많은 사람이고 그로 인해 기반이 흔들리는 사람이다. 굳건한 중심과 기준을 상실한 사람이다. 그러니 '겸손'이 해법이 될 리가 없다. 애초에 '오만'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나 같은 사람에게 요구되는 건 킹슬리가 말한 '통제'였다. 자아가 많은 사람에겐 '통제'가 해법이다. 비집고 들어오는 타인의 자아를 나의 단단한 자아를 방패 삼아 막아내야 한다. 나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특성들에 일관성을 부여해야 한다. 그런 개성과 색채는 쉽게 변형되는 것이어선 안된다. 그래서 본연의 나를 회복하려면 자아해체가 요구된다는 킹슬리의 선언적 해법에 동의한다.. '나'로 인식해왔던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기. 불순물처럼 섞여들어온 타인의 것들을 분리해기. 내면에 자리잡은 것들을 분석적으로 바라보기.
솔직함은 과정이지. 자기감정을 주장하는 것은 과정이야.
신뢰 연습 수잔 최 지음, 공경희 옮김
누군가가 직설이 곧 솔직함이라고 말했다. 직설의 기반은 솔직함이라고. 숙고와 신중함이 결여된 날것의 말들로 상대에게 상처와 수치를 남기면서 그것은 솔직함이라고 합리화하는 걸 봤다. 그러나 솔직함이란 용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망설임과 주저가 동반되는 것이라고. 솔직함이란 아무 곳에서나, 누구 앞에서나 때와 장소에 대한 고려 없이 남발되지 않는 것. 솔직함이 이토록 조심스러운 것이라면 직설과 짝을 이룰 수 없다. 직설이란 용기나 신중함 없이 뱉어내는 말이니까. 애초에 상처와 수치를 전제로 내뱉는 말이니까. 직설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솔직함을 더럽히지 않았으면. 조엘에게 질려버린 세라가 조엘이 여전히 친구라고 거짓을 말한 것에 대해 자책하고 있을때 킹슬리는 솔직함은 과정이라고 말한다. 솔직함은 느리게 진행되는 것이어야 한다. 내면에 들어온 것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자기만의 답을 얻고 실행을 위한 용기를 끌어모을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비장하기까지 한 결연함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 '내가 하는 말에 상처받지 않았으면 해' 내지는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오해 말고 들어' 처럼 어떤 머뭇거림과 지연이 수반되는 것이 아닐까.
자기 감정에 접근하는 것=순간에 존재하는 것.
신뢰 연습 수잔 최 지음, 공경희 옮김
순간 속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생각과 감정을 붙잡아야 한다. 생각에 깃든 감정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은 순간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 그렇게 구체화된 순간들의 집합이 나의 세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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