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르 카레, 카를라 3부작 읽기 첫번째 -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D-29
소설 내내, 바람 피우는 아내 앤에 대한 스마일리에 대한 사랑이 절절하게 나옵니다. 앤을 ‘영국’의 비유라고 하는 해설도 있나 봅니다만, 저는 앤이 어떤 ‘이데올로기’의 상징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어떤 이즘을 사랑할 수 밖에 없지 않나요? 그 이즘이 나에게 내가 아끼는 사람을 배반하라고 요구하여도 나는 그 이즘에 봉사하기 위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이데올로기는 정말로 잔혹하고 냉정한 애인 같습니다. 내셔널리즘에서 커뮤니즘으로 이동하는 빌런(?)의 사고의 귀결 역시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되고 매우 공감이 됩니다. (NL보다 언제나 PD인 저의 개인적 철학도 있겠지만요.) 국가란 한 인간을 담기에 너무 작은 그릇입니다. 내거는 기치가 인민 해방 정도 되어야 가슴이 뜨거워지는 법이지요.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낭만적이고 쓸쓸합니다. 1974년에 나왔으니 이제 곧 50년이 되어갑니다만 낡은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50년 동안 힙함을 유지한다는 건 어떤 걸까요?) 처음 등장했을 때 굉장히 센세이셔널하게 다가가지 않았을까 싶네요.
제목이 좀 낯설어서 책을 읽기 전에는 입에 안 붙었는데, 그건 제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뭔가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고 영국의 전래 동요에서 아이들의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면서 이런 저런 직업들을 나열하는 거라네요. 센스있게 원래 노래 구절에는 없는 ‘스파이’라는 직업을 마지막에 끼워 넣은 것이지요. 유래를 알고 보니 아주 위트 있고 괜찮은 소설 제목으로 느껴집니다.
책을 읽고 스파이들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서 이런 저런 검색을 하다가 발견한 칼럼인데 재미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아주 유명한 이중 간첩 킴 필비 사건이라고 합니다.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4358 일본의 아사마 산장 사건도 조금 생각나고 하네요. 이 시절의 이야기들이 재미있긴 하지요.
킴 필비는 『나의 케임브리지 동지들』이라는 책에도 나오지요. 한번 읽어보시기를 바랄게요. 스파이를 둘러싼 서사적 통념이나 고정관념을 많이 깰 수 있는 현실의 엘리트 스파이들의 회고록입니다. 예전에 존 르카레에 푹 빠졌을 때 사이드 텍스트로 함께 곁들여서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첩보가 붙었다고 판단될 때 가던 길을 멈추고 첩보원과 정면으로 눈맞춤을 하는 등, 과감하게 꼬리를 떼는(?) 구체적인 방법론도 나와서 무척 흥미진진하더군요.
'케임브리지 5인방’에 관련된 책이군요. 이들이 조국을 배신한 이유가 금전적인 대가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이상과 이념에의 헌신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이들을 오히려 이해하는 분위기도 꽤 있나 봅니다. '케임브리지 5인방’ 은 정말 이야기거리로도 굉장히 매력적인 소재임은 분명하네요.
주위에 재미있는 스파이물을 더 알려 달라고 하고 추천 받은 목록입니다. 소설 : 르윈터의 망명 영화 : 노웨이 아웃 저도 둘 다 안 봤는데요, 언제 시간 날 때 즐겨볼 생각이에요.
약 20일간 팅테솔스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읽고 난 뒤에도 잔상과 여운에 빠져있던 며칠이었어요. 너무 유명해서 그 언제인가 그 책 읽은 거 같은데 라고 생각하던 저의 '나그책읽은듯' 목록에 있던 책인데 이번 모임을 계기로 완독했습니다. 추리소설, 스파이물, 브로맨스, 추운 유럽이 배경으로 나오는 책들을 좋아하시는 분께 추천합니다. 앞 부분 읽으실 때 약간의 물음표가 생기긴 할텐데 조금만 참고 계속 읽다 보면 곧 푹 빠져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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