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외인종 잔혹사

D-29
읽으면서 영감이 떠오른 걸 기입하고 또 읽으면서 자신의 신념이 들어간 글을 적으시기 바랍니다. 독서와 글쓰기의 실력이 배가 되는 게 최종 목적입니다.
내가 글에 관심을 갖는 이유 주류에서 나름 열심히 사는 인간들에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은 현 체제의 굳건한 수호자들이고, 그걸 지키려는 기득권층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그들은 그 체제에서 무난히 살아갈 것이다. 아주 무색무취하게, 아주 편히. 그들은 전혀 내 도움이 필요가 없을 것이고 도우려고 해도 “너 같은 것에겐 굳이 그러지 싶지 않다.”라고 면박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을 반기는 후대는 없을 것이로다. 사회체제나 주류가 아닌 소수에서 허덕이는 인간들에게 관심이 가고, 그들의 소리를 외부에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들으려고도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게 내가 글에 관심을 갖는 최대 이유다.
태극기 부대들, 왜 이러나? “굳이 비교하자면 장영달이 마이너리그라면 이대왕은 메이저리그로 보면 되지 않을까. 이런 비교에서 비롯된 장영달의 질투심으로 뒤엉킨 옹졸한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제갈 소령은 주책스러운 말을 계속 늘어놓았다.” * 강자에게 그렇게 당했으면서도, (내가 보기엔 어리석게도) 미국이나 박정희, 전두환, 심지어 지금은 하마스의 씨를 말리겠다는 이스라엘 국기까지 흔들어댄다. 솔직히 이들 중에 강자는 없다. 다 먹고살기도 바쁜 인간들이다. 이들은 약자끼리 뭉치고 강자에게 표를 안 주고 약자를 대변한다는 진보에 표를 몰아줘야 하지만, (실제론 몰라도, 겉으로라도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편다고 하는, 하지만 또 지금은 진영과 상관없이 계층 구조에서 상과 하의 투쟁이다. 그래도 진보는 겉으로라도 하(下)를 위한 정책을 편다고 하기에, 주장과 실제 행동의 유리(遊離)로 인한 인지부조화를 견디지 못하는 것도 있기에) 약자는 연대와 단결 투쟁만이 살길이지만 실제는 자기가 그렇게 (그래야 그나마 강자가 조금이라도 약자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당했으면서 강자에게만, (단순히 한창 젊어서의 향수에 젖어 그럴 수도 있지만) 죽어도 강자 편이라며 수구(守舊) 꼴통에게 표를 몰아준다. (다 놓고 보면, 인간 자체는 믿을 게 못 된다. 알아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에게 착하게 하고, 악한 사람에게 악하게 해야 하는데 거꾸로 한다. 인간의 불결한 속성 때문이다. 기후 위기를 보면 안다. 알아서 못 한다. 그냥 죽으려고 불로 뛰어드는 부나방 같다. 그래,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이 일깨워줘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그냥 두면 몰살밖에 없다. 스스로 알아서 제어를 못 하니, 아예 제도적으로 인간을 감시하는 걸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법을 만든 것인데도, 그것을 살살 빠져나가려는 인간들이 있다. 권력의 개, 법의 창녀, 법꾸라지를 비롯한 기득권층들이다. 이런 인간들이니 항상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놔두면, 나라로 치면 독재(獨裁)가 되는 것이고, 재벌로 치면 독점(獨占)이 되어, 국민과 소비자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한다. 그래, 그냥 두면 안 된다. 실제에 가서는, 또 약자들끼리 이런다. 헌법에 집회(集會)와 결사(結社)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만, 강자들이 하위법으로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제대로 행사 못 하게 막아 놨다. 서서히-알지 못하게-약자의 목을 조르고 있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 당시 나만 쏙 빠져나가면 물론 빠져나갈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게 곧 나와 내 가족에게도 닥친다. 그들이 나만 특별 대접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맹점 중 하나가, 모든 안 좋은 일은 자기는 그게 피해 갈 거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는 거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태극기 부대를 비롯해 약자들은 서로 물어뜯고 증오한다. 인간의 오점 중 하나가 또 서로 비슷해야 싸운다는 것이다. 엄두가 안 나면 싸울 생각을 못 한다. 그러니 자신의 적이 누군지 제대로 모른다. 약자들끼리 아귀다툼이다. 강자들이 바라는 바를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 그들은 위에서 약자들의 그런 모습을 팔짱을 낀 채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다. 인간들에겐 힘의 균형만이 만병통치약이다. 한쪽으로 치우친다 싶으면 약한 쪽에 힘을 실어줘 균형을 잡아야 약한 사람들도 그들이 함부로 못 한다. 그냥 놔두면 겸손하지 못하고 건방져진다. 인간이, 본래 그렇게 생겨 먹었다. 그 수가 적고 소리가 작아도 그 방향이 맞으면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이게 진정한 정답이다. 다수가 같은 소릴 한다고 다 옳은 게 아니다. 너무 우상(偶像)만 우러르고 가기에 매몰되면 진짜 자기 자리가 어딘지 모른다. ‘현타’는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거기에 맞게 행동하는 게 가장 잘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지금 자신의 위상이 조금이라도 올라간다. 내가 아이돌의 열렬한 팬이고, 구국 영웅의 신봉자이기에 나도 마치 그들인 것처럼 착각하지만 그 위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그럴수록 그들이 우릴 이용해 각자의 자리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 뿐이다. MB도 서울시와 지하철의 조무래기들이 그야말로 몸으로 때우며 희생해서 대통령 만들어 줬더니, 어디 고맙다고 와서 인사라도 하던가. 다 자기가 잘나서 그렇다고 한다. 그 모습은 지금도 한치의 흔들림없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중이다.) 솔직히 이들은 돈도 없고, 대기업의 횡포와 독재가 들어서는 것엔 별로 (사회나 미래가 어떻게 되든 그런 건 이들의 관심 밖이다. 알고 보면 이들은 자기가 제일 우선이다.) 관심도 없고, 강자들이 말로만이라도 자기 편이라는 말에 솔깃해 그들에게 무조건 충성을 다한다. 없는 사람들은 이제 돈으론 승부에서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서 대접받는 것을 이미 접어버렸다. 이제 지하철 노인석에서도 큰소리치는 노인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자기들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는, 미국이나 박정희처럼 힘으로 밀어붙이는 쪽을 (그걸 지금, 어쭙잖게 흉내 내는 자를 포함해) 한없이 밀어주고 동경하게 되었다. 이들에겐 솔직히 ‘자존심’밖에 남은 게 없다. 그들이 지킬 건 이것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목숨 걸고 지키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사실 자존심밖에 남는 게 없는 법이다. 돈 많은 자들은 돈이 우선이지 자존심은 개나 줘버리라고 한다. 그걸 지켜준다니까 그들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까지 바친다고 하지 않나. 자신이 지금 있는 자리를 정확히 알고 거기서 뭘 할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걸 잘하지 못하니까 뭔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 소릴 내야지 왜 남의 소릴 대신 떠들어주나? 자신이 약자인데 왜 강자 편을 드나? 그들은 우리가 편을 안 들어줘도 우리보다 더 잘 산다. *주원규의「열외인종 잔혹사」중에서
신인이라 투박한 건 그런대로 참을만하지만 글이 너무 말장난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아무리 심각한 내용이라도 글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어느 걸 택해야 하나 겉으로 선을 주장하는 위선자(僞善者)가 나은가, 겉으로 악을 주장하는 위악자(僞惡者)가 나은가. 나는 전자(前者)가 더 낫다고 본다. 인간은 자기가 말한 거 특히, 여러 사람 앞에서 주장하는 걸 지키려 하고,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그 주장과 실행이 일치하지 않으면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Cognitive Dissonance)라고 그걸 고통스러워한다. 그래, 실은 진보주의자가 결과적으로 재산이 더 적다. 그들은 속은 어떨지 몰라도, 살면서 결과적으로 부정 축재(不正 蓄財)를 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과 실제가 안 맞을 때 그 괴리(乖離)를 지적하고 벌을 내리려고 하면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는 자가 진보주의자 중엔 더 많다. 인지부조화라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림으로써 마지막 양심을 지킨다. 보다 인간적인 모습이다. 그러니 결국 진보(進步)가 보수(保守)보단 그래도 낯이 두꺼운 철면피가 더 적어 인간이 사는 세상에선 더 낫다고 볼 수 있다. 더 인간에 가깝다. 우리가 인간인 이상, 가장 인간적인 게 더 나은 거 아닌가. 동물보다는. 여긴 동물이 사는 곳이 아니지 않는가. 인간인데 더 동물에 가까우면 그는 인간 사회에서 해로운 존재다. 인간이라면 가장 인간적이어야 한다. 위선자들은 적어도 자기의 주장대로 살려고 노력은 한다는 것이고(그래야 계속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려고 하기 때문에). 위악자들은 자기주장대로 “나는 겉과 속이 적어도 같은 사람”이라며 (이 말은 자기는 인간도 아니란 거다, 솔직히 겉과 속이 같은 인간이 어디 있겠나? 속에 있는 걸 그대로 하면 그게 동물이지 사람이냐?) 그래서 자기주장대로 악을 저지르는 것을, 무슨 떳떳한 일인 양 떠벌리기도 한다. 그래서 죄를 저질러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뻔뻔하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속은 짐승이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이다. 수치심으로 스스로 단죄하지도 않는다. 죄를 짓고도 뭐가 그렇게 당당한지 고개를 빳빳이 든다. 이들은 인간에 대해 몰라 그러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속과 겉이 같으면 제대로 살지 못한다. 다 장소와 때에 따라 자기 페르소나를 쓰고 그 역할에 충실하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상(理想)으로 둔 것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며 살 뿐이다. 이게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이다. 속에 있는 것을 어느 정도 감추기 때문에 인간 세상이 그런대로 굴러가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를 보고 자기 자식도 그 시간에 거기에 갔으나 참변을 모면해 참 다행이라고 겉으로 어떻게 표현하나? 희생자와 유족을 생각해서 인간으로서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것이다. 동물처럼 하면 너무 많이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래 서로 보복하고 나중엔 증오가 증오를 부른다. 피의 악순환이다. 자기 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발설하거나 행동했다간 세상이 무법천지가 되고 쑥대밭이 될 것이다. 그래 대부분은 속에 있는 것을 참으며,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절제하며 사는 것이다. 속은 그게 아니더라도. 이게 정상적인 인간들이 사는 모습이다. 어찌 보면 다분히 위선적이다. 어느 정도의 위선이 인간 세계를 지탱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위악자들은 인간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다. (누가 정해 준 것도 아닌데, 양심도 없이 스스로 칭한 ‘인간은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며 인간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돌아오는 건 큰 상처뿐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속았다며, 자신은 배신당했다며 그 잘못을 남한테 뒤집어씌운다.) 인간도 일종의 동물이란 걸 모른다. 확실히 동물인데, 아슬아슬한 이성으로 살짝만 가린 껍데기를 벗기면 그대로 동물인 것이다. 평화 시에만 이성(理性)이지, 위급 시엔 동물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성으로 살짝 가려진 동물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한다. 오히려 인간에 대한 걸 내려놔야 인간 세상에서 더 잘 살 수 있고, 남에게 적어도 해코지는 안 한다. 모든 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개방적이고 포용적으로 살게 된다. 반듯한 인간의 고정 틀을 만들어 거기에 남까지 욱여넣으려고 되지도 않는 용을 써선 안 된다. 각자 자기 틀은 자기가 만들어 살게 둬야 한다. 너무 희망을 품고 기대만 잔뜩 하니까 여기저기서 사달이 나는 것이다. 그냥 덤덤하고 약간 어둡고 냉소적으로(Cynical) 사는 사람이 타인에게 덜 해롭다. 그들은 다 사람에겐 자기 몫의 삶이 있고, 그것에 내가 이러쿵저러쿵 관여할 자격도 없다며 열린 상태에서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산다. 한 사람 한 사람, 그의 인생 모두 알고 보면 나름대로 소중하고 가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인생은 우주적으로 봐서 찰나이고 한 때의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동시에 보는 것이다. 알고 보면 인생은 참 덧없다고 보는 것이다. 가치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허무하다고 보는 것이다. 디테일하게 보면 가치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의 하나로 보면 부질없다고 보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모순덩어리라고 보는 것이다. 20세기 천재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그런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남의 인생에 자기가 간여한다고 해서 그렇게 큰 의미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어차피 인생은 찰나(刹那)에 불과하기에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사람과 그 삶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나온 결론 같다. 대신 뭔가 해보겠다며 설레발치며 사는 인간이 오히려 “왜 너는 나처럼 안 하냐고, 내가 이렇게 모두를 위해 노력하는데 넌 뭐 하는 거냐?”며 그를 자기처럼 만들려고 닦달하고 개조하려 덤비니까 결국 남에게 크나큰 위해를 가하게 되는 것이다. 감히 각자 생각이 다른 남을 획일화시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만들려고 한다. 그런 자들이 힘이라도 가지게 되면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그들에 의해 몰살될 수도 있다.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폴 포트 등이 사람을 얼마나 죽였나? 흥분해서 사람들을 자기 앞으로 헤쳐모이게 한다.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열심히 하려면 혼자 해라. 왜 남까지 자기 대열에 끌어들이려고 하냐? 어떻게 보면 위악자들이 더 인간에 대해 몰라 순진한 것이고, 사람에 대한 공부를 덜 한 결과다. 한마디로 무식한 것이다. 무식하면 쓸데없이 용감하고 그래서 위험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것이고, 책을 한 권만 읽은 자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경우를 모른다. 자기 생각만 최고일 줄 안다.
작가는 글에 자기주장을 확실히 펴라 작가는 이제 몸을 그만 좀 사리고 자기주장을 과감히 펴야 한다고 본다. 솔직하고, 꼬지 말고 직설적으로 일반인이 “네가 뭔데, 마치 세상 다 아는 것처럼 말하냐!”라며 욕을 먹는 것에 대한 상처 때문에 조심하고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는 것 같은데, 그게 무서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흐릿하게 하거나 작게 해, 도대체 이 작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그래서 “아, 이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닌가 보다.” 하고 독자가 오해하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솔직히 책도 그동안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쓴 (일반적인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서) 작가가 더 많이 알지 일반 독자가 더 많이 알겠나? 우선, 작가라고 하면,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가 뭔가 많이 아는 사람으로 떠오르기에 하는 소리다. 실제 일반인보다 작가가 사람과 그의 삶에 대해 대체로 많이 아는 것도 사실 아닌가. 그것에 대해 늘 오래 생각해 오고 정리된 생각을 자기 글에다 담으니 하는 소리다. 작가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까놓고 해야 독자도 “이게 중요하고 절박한 것이구나.”라고 여겨 행동에 나서지 않겠나. 실제로는 대개 보면, 현재의 문제 거리만 나열하는데 글의 한 80% 이상 할애하는 것 같고 그것의 해결은 그중 20%가 아니라 “그걸 해봐야 이런 문제들이 있다.”라며 힘들다는 투로 엄살만 부리는 게 그 20% 중 대부분을 차지한다. 나머지 한 5% 정도만 작가의 주장이고 해결법인데 그것도 마치 자기가 하는 소리가 아닌 것처럼 희미하게 말해 버린다. 그러니 약간 무책임하다는 생각도 든다. 현재의 문제점 나열도 그렇다. 마치 준비도 안 된 순진한 독자에게 “한번 충격 좀 받아 봐라!” 하며 충격적인 현실적 문제를 나열한다. 자기는 이미 반만의 준비를 다 끝내놓고 그러면서도 그 글을 쓴 후에도 그 충격으로 힘들어하면서도. 이미 각오하고 당하는 사람하고, 전혀 준비가 안 된 사람하고 받는 충격이 어디가 더 세겠나? (책을 안 읽는 시대인데도 아직까진 남아 있는 그래서 고맙고 아끼는, 충성적인 독자는 가능하면 남에겐 피해를 안 주고 싫은 소리를 못 하는 내성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대부분인데도) 이런 것도 보면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사회적 검열을 모두 의식하며 쓰면 제대로 글이 안 나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너무 독자를 의식 안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도 “나는 그런 것보다 내 작품 세계와 내 시도가 더 중요하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인정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독자 보다 내 작품이 먼저다.”라고 주장하는 작가도 이해 못 하는 바도 물론 아니란 얘기다. 그러니까 작가도 살고 독자도 다 같이 사는 윈윈이었으면 좋겠다. 둘 다 값진 존재들이니까.) 동시에 또, 해결책을 직접적으로 언급을 안 하는 게, 글을 난해하게 만들어 뭔가 세련되어 보이게 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고 일반인에게 욕을 먹어 상처를 덜 받기 위한 몸사림 같기도 해 정직하지 않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흐리멍덩한 표현을 써서 일반 독자가 따지고 들면 “나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봐라, 글의 맥락(Context) 어디에 그런 소리가 있느냐?” 하며 따지는 사람에게 오히려 무식하다는 시선을 갖고 면박을 준다. 혹시 그런 걸 대비해 그렇게 애매하게 표현한 건 아닌지 의심까지 든다.) 정면 승부를 피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물론 문학은 문제를 그냥 나열하는 것이고, 그 해결책까진 제시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해결책이란 게 사실 유치원만 다녀도 아는 것이고, 인간들이 알지만, 실천을 안 하는 게 대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아는 게 별로라 긴가민가하는 것도 있으니 영향력 있고 믿을 만한 작가가 하는 말을 듣고 확신하는 것도 없다고도 할 수 없으니) 세상 사람들보단 더 많이 아는 작가가 확실하고 용기 있게 제시해야 할 것 아닌가? “나는 글을 이래서 쓴다.”라고 아예 선언하고 글을 쓰는, 조지 오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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