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함께 읽기] #45.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D-29
저는 제가 철들고부터는 아버지가 자영업을 하셔서 월급봉투를 구경한 적이 없긴 합니다. 책 표지 색깔이 예전에 종종 보던 주황색봉투 색깔처럼 느껴지신 분들 안 계신가요? 일부러 의도하신 거려나요?
예전엔 봉투가 주황색이었어요? 제가 기억하는 봉투는 그 서류색깔 똥색봉투요.
제가 기억하는 봉투는 이거인데 꽤 얇고, 약간 불그스레 해서 주황색이라고 생각했어요. 검색해보니 '황봉투'라고 나오네요.
아아...이 봉투도 알죠. 저는 이것보단 좀 두툼한 서류봉투 재질 생각했어요.
’간장에 독‘은 읽기 전에 제목만 보고는 (먹는) 간장에 들어있는 독인 줄 알았습니다. ‘간장독’이 아니네…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다들 직장 다니시면서 ‘간장에 독’이 쌓이는 기분 느껴보신 적 있지 않으신가요? ㅎㅎ
ㅎㅎ 저도 처음엔 읭? 제목이 무슨 의미일까- 했어요. 직장인들 대부분은 독이 어느정도 쌓여있지 않을까 싶어요..ㅋ 고씨투어 직원 중 "p.189 맨날 사측 인사들이랑 어울려 다니더니 물들었나봐. 회사가 돈을 벌든 말든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저는 이런 스타일의 사람들을 보면 좀 화가 나고 한심스럽더라구요. 저같은 경우는 회사 자체의 문제보다는 그런 이해 안되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독이 쌓이는 쪽이었습니다; ㅋㅋ
저도 방송 들으며 서유미 작가님 책걸상이랑 너무 잘 어울리신다 생각했어요. 편안하고 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많이 들더라구요. :) <밤의 벤치>를 읽고나서는 (작품의 분위기는 너무 다른것 같지만) <19호실로 가다>가 연상되기도 했어요. 비밀스러운 휴식처라는 공통점 때문일까요.. 그리고 코로나 시기에 버티다 버티다 끝내 폐업하는 소규모 카페 사장님들 사정을 많이 알고있어서인지 <순간접착제>를 보면서는 아르바이트생 친구들보다 마카롱카페 사장님 입장에서 책을 읽고있더라구요.. (그렇게 그만둬버리는 친구들 너무 많이 봤어요 T_T)
방송에서도 서유미 작가님과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그 이야기를 조금 길게 정리해 봤어요. <기획회의> 596호(2023년 11월 20일)에 실린 글의 일부를 공개합니다. (길어서 나눠서 올릴게요.)
『음향과 분노』(1929), 『압살롬, 압살롬!』(1936) 등으로 유명한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1897~1962)가 있습니다. 1949년 노벨 문학상을 받기 전에는 『위대한 개츠비』의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 『노인과 바다』의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만큼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고, 인기도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미국 문학 작가로 꼽힙니다. 이 윌리엄 포크너가 1956년 봄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었죠. "작가에게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관찰력, 상상력, 경험." 물론, 이 세 가지를 완벽하게 갖춘 작가가 누가 있겠습니까? 포크너도 그건 무리다 싶었는지 슬쩍 위안을 줍니다. "그중에서 어느 한 가지만 갖고 있어도 다른 두 가지의 결핍을 벌충할 수 있다." 최근에 소설 한 편을 읽다가 이 포크너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혹시, 미국의 미스터리 작가 가운데 피터 스완슨을 들어본 적 있을까요? 2014년 『아낌없이 뺏는 사랑』(푸른숲, 2017)으로 데뷔한 스완슨은 2015년 두 번째 작품 『죽여 마땅한 사람들』(푸른숲, 2016)에서 미워할 수 없는 악인 ‘릴리’를 등장시켰죠. (네, 릴리는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처단하는 악인입니다.) 스완슨은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마지막에서 릴리를 위기로 몰아넣으며 소설을 끝내서, 그녀에게 감정 이입했던 독자를 궁금하게 했었죠. 그 릴리가 7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스완슨이 최근에 『살려 마땅한 사람들』(푸른숲, 2023)을 발표하면서 릴리를 다시 등장시켰거든요. 릴리의 ‘소심한’ 팬이었던지라, 책이 나오자마자 읽었죠. 전작(『죽여 마땅한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심심한 전개에 실망하면서 독서를 마무리할 무렵에 저자가 소설 속에서 인용해 놓은 포크너의 말을 오랜만에 접했습니다. 스완슨은 작품 속 세계에서 유명한 작가로 나오는 릴리의 아버지의 말을 빌려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저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포크너의 말 가운데) "뒷부분은 사실이야. 하지만 경험은 과대평가했구나. 우리는 살아만 있으면 경험을 얻을 수 있으니까.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빌어먹을 아프리카 사파리에 갈 필요는 없어. ("가장 저평가된 20세기 작가" 소리를 들었던 영국 소설가) 바버라 핌은 평생 어디에도 가지 않았지. (핌을 재평가한 영국 시인, 소설가) 필립 라킨 역시 평생 어디에도 가지 않았고." 어쩌면, 스완슨은 프랑스 작가 피에르 바야르의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여름언덕, 2012)을 읽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은 제목만 보고서 가벼운 에세이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바야르는 이 책에서 예술에서 경험의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아주 통렬하고 근사하게 비판하거든요.
여기까지 읽고서,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러나,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가 있겠습니다. 사실, 근사한 한국 문학 앤솔러지 한 편을 소개한다면서 앞말이 길었습니다. 바로 최근에 나온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문학동네)입니다. 개인적으로 2023년 한국 문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하나만 꼽으라면 이 앤솔러지의 기획과 출간입니다. 먼저, '월급 사실주의' 동인 얘기부터 해야겠군요. 작년(2022년) 이즈음에 지금, 여기의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을 가진 작가 몇몇이 모여서 동인을 결성하고, 동인지도 펴낸다는 계획을 접했습니다. 정말로 근사한 계획이라고 마음속으로 응원했어요. 한국 소설이 갈수록 소수의 마니아만 챙겨 읽으며 초라해지는 데에는 단지 문자에서 영상으로 권력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소설이 삶의 현실에 밀착해서 당대 사람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 것도 이유죠. 그 자리를 웹툰, 영화, 드라마가 파고들고 있고요. '월급 사실주의' 동인의 결성에 앞장선 장강명 작가도 비슷하게 고민했었나 봅니다. "나는 2000년 들어서 그렇게 비정규직이 늘어나던 시기, 한국 노동 시장이 둘로 쪼개지던 때에, 그 실태나 증가세를 사실적으로 알리고 비판한 작품으로 한국 소설보다는 드라마나 웹툰이 먼저 떠오른다." 이런 고민의 연장선상에 열한 명의 작가가 '월급 사실주의' 동인으로 참여해서 지금 여기의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을 두고서 열한 편의 작품을 써서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로 묶었습니다. 올해 나온 첫 동인지에 이어서 매년 활동을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최근에 '월급 사실주의 2024'의 출간도 확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이렇게 열한 편을 읽고서 욕심도 생겼습니다. 글머리에서 포크너의 말을 빌려서 작가에게 필요한 관찰력, 상상력, 경험을 이야기했었죠. 그렇다면, 지금 여기의 먹고사는 문제를 소설로 형상화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어쭙잖게 생각을 말하자면, 우선 경험은 뒤로 밀어둬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글감을 위한 꼼꼼한 취재는 필수이고 필요하면 직접 경험해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경험을 고스란히 옮겨 놓으며 폭로하는 일은 저널리스트가 해야 할 일이죠. 그나마 폭로에만 치중하다 보면, <그것이 알고 싶다>의 위태로운 행보에서 볼 수 있듯이, 악취 나는 사회를 선정적으로 보여주는 포르노가 되기 십상이고요. 관찰력과 상상력 가운데는 어떤 곳이 더 중요할까요? 여기서는 저도 포크너와 생각이 같습니다. 둘 다 있으면 좋겠지만, 하나라도 뛰어나면 좋은 작품을 쓰는 데에 충분합니다. 관찰력이 뛰어난 작가는 먹고사는 모습의 이면에 똬리를 튼 세상이 돌아가는 비밀을 폭로하죠. 상상력이 뛰어난 작가는 먹고사는 모습으로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이야기와 이미지를 만들 테고요. 벌써, 남다른 관찰력과 상상력으로 빚어낸 작품으로 꽉 찬 '월급 사실주의' 2024년 동인지가 기대됩니다. 개인적인 욕심도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 『월급 사실주의 2024』는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만큼이나 인기를 끌길 바랍니다. 둘, 2024년에는 『일의 기쁨과 슬픔』의 장류진 작가나 『중급 한국어』의 문지혁 작가의 작품도 동인지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면, 피에르 바야르는 정말 꼭 추천하고 싶은 작가입니다. 국내에 여러 책이 소개되어 있는데, 아래 네 권을 추천하고 싶어요. 읽어보시면 팬 되실 듯.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독서문화와 이에 대한 금기를 되짚어가며 독서의 목적과 방법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책. 소위 지식인 또는 교양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책을 읽지 않고도 그 내용을 능히 파악하는지 아닌지로 구분된다는 대담무쌍한 주장까지 포함해, 책과 책읽기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준다.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프랑스는 물론 영미권 평단의 열렬한 찬사를 받고 전 세계 25개 국에서 번역 출간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의 논리적 속편으로, 이번에는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해야 하는 다양한 상황을 고찰해 본다. 피에르 바야르는 전작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상황들에 관해 풍부한 예를 제시하며 논리를 이끌어나간다.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1926년에 애거서 크리스티가 발표한 책을 들추어내서‘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라고 뻔히 알고 있는 질문을 던지는 책.‘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를 밝혀가는 이 책은 또 한 권의 추리소설의 성격을 지니는데, 피에르 바야르의 추리와 논리 전개의 바탕에는 ‘망상 妄想’ 이론이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예상 표절 - 문학과 예술의 전통적 연대기를 전복하여 무한히 확장된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다<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으로 독서의 근간을 뒤흔든 피에르 바야르가 이번에는 문학과 예술의 가장 민감한 이슈인 ‘표절’의 개념을 전복시키는 주장을 펼친다. 이 책에서 문제 삼는 표절은 과거의 것을 후대에서 도용하는 전통적인 표절이 아니라, 미래의 작품이나 아이디어를 앞선 세대에서 도용하는 이른바 ‘예상 표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른 소설들은 등장인물 모두가 어딘가에 실제로 살고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는데, 주원규 작가님의 <카스트 에이지>는 그런 사람들이 제발 어디에도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어요. 마지막 문장에선 헉- 하는 소리가 저도 모르게 나왔어요. 태양이가 스무살밖에 안된 청년이었다니... <운수 좋은 날>과 <무한궤도>를 오마주한 작품이라는 설명이 있는데, <무한궤도>는 어떤 작품인지 혹시 아시는 분이 계실까요? 제가 검색해서 얻은건 '세상의 모든 가해자에 대한 분노' 라는 문구가 전부예요.
저도 「무한궤도」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소을석 작가의 199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라는 것 빼놓고는 정보가 없네요. 소 작가도 그 이후에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지는 않은 것 같고요;
그런가봐요.. 어떤 작품인지 궁금하면서도 1993년에 그려진 가해자는 또 어떤 인물들일까 상상하다보면 자세히 알기가 두렵기도 합니다. ㅡ.ㅜ
「카스트 에이지」는 이 앤솔러지에에 실린 작품 가운데 제일 슬픈 현실을, 독특하게 다룬 작품이라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런데 현실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요즘 베스트 셀러 상위에 오르는 자기 계발서가 대부분 유튜브 인플루언서들이 추천하는 통에 그렇게 많이 팔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던데, 그런 인플루언서들과 소설 속의 유튜버와 거리가 얼마나 될지, 또 그런 인플루언서들 말 듣고서 그런 책을 읽으면서 자기 계발하려고 노~력하는 MZ 세대와 소설 속 주인공의 거리는 얼마나 될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완독했습니다. 전반적으로 녹녹치 않은 현실을 얘기하는 작품이 많아서 즐거웠다고 할수는 없지만 이런 소설 많이 쓰이고,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양한 직업군의 이야기들이 생동감 있기도 했고, 숨바꼭질(정진영) 읽으면서는 전세사기 당할까봐 어찌나 조마조마 하던지요. 코로나, 코인투자 등 시의 적절한 작품도 있어서 좋았습니다. 책을 덮고 생각해보니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김의경 작가님의 <순간접착제> 같아요. 하얀 운동화와 순간접착제의 이미지가 은근하게 강렬하고, 인물들의 처지또한 순간접착제 같은 운명들이라 제목도 잘 지으신것 같고요. 월급사실 주의 2024도 출간되길 기원하며...또 찾아 읽겠습니다~
너무 늦게 이 모임을 알았네요. 저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주원규 작가의 <카스트 에이지>를 읽으면서 어, 이거 현대판 운수 좋은 날인데 라고 생각했었는데 마지막의 작가 해제(?)에 그런 문장이 쓰여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유튜브 보면서 자기 계발하는 요즘 세대, 그렇지만 내 몸 하나 쉴 곳 없어 지하철을 집처럼 이용하는 설정에서 지금의 한국사회를 잘 보여준다고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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