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이즈 컬처』 혼자 읽기

D-29
폰트쿠베르타_ 최근에 카나리아 군도에 있는 천체물리학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한 가지 기이한 일을 겪었습니다. 연구소는 카나리아 군도의 한 섬인 테네리페 섬에 있는 테이데 화산 꼭대기에 자리 잡은 천문관측소였습니다. 유럽 최고의 천문관측 시설에 속하는 이곳에서 저는 전문가들이 쓰는 최고의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막상 들여다보니 아무것도 보이질 않더군요! 엄청나게 실망했죠. 그러니까 정보는 모두 컴퓨터 스크린상에 떠 있었고 모든 것이 숫자로 표시되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과학은 시적 가시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컴퓨터상의 추상적 정보는 매우 유용할 수도 있겠지만 과거에 과학이 갖고 있던 찬란한 아름다움이나 설레는 마음 같은 것은 없더라는 얘깁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5장 객관성과 이미지,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알타바_ 아까 말씀하신 것 중 사진의 진실성에 관해서는 저도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티안이라는 저의 형제는 진화생물학자입니다. 가끔 크리스티안과 나누는 이야기 중에 “박물관에 그림 대신 사진을 걸어놓는 데 문제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진을 보면 그 대상이 그 자리에 없어도 그것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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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바_ 예를 들어, 최근에 보르네오의 숲에서 여우원숭이를 닮은 동물이 발견되었다는 기사와 함께 이 동물의 사진이 신문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새로운’ 포유류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곤 플래시의 빛을 반사하는 두 눈과 크고 긴 꼬리가 달린 몸통의 윤곽뿐이었습니다. 사진은 이 동물의 존재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진 캡션을 보니 멸종위기의 동물이더군요. 이 사진이 전하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5장 객관성과 이미지,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알타바_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상황은 디지털 이미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결국 인간은 가상 세계에 살기 시작했고, 여기서는 사물의 이미지를 볼 수만 있으면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따지지 않습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5장 객관성과 이미지,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로리 데이비드_ 뻔한 질문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진실이 중요한가요? 과학자들이 기후과학에 대해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대중을 어떻게 교육할 수 있을까요?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6장 기후의 정치학,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스티븐 슈나이더_ 제 학생들이 항상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정말 답답하지 않으세요? 무슨 말씀을 하셔도 당장 달라지는 게 없잖아요.” 그럴 때마다 저는 항상 학생들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진실은 중요하지. 하지만 시간 단위가 한 세대라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6장 기후의 정치학,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슈나이더 _ 단기적으로 볼 때 모든 것은 정치적인 색채를 띱니다. 미디어, 교묘한 속임수, 누가 방송 시간대를 사는가의 문제죠.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올바른 일을 하고 동시에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일이 일어나도록 하면 어떤 현상이 발생하고 그 현상이 방아쇠 역할을 합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6장 기후의 정치학,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슈나이더_ 끊임없이 하는 얘기이지만 지금 현재만으로도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 그러니까 과장할 필요는 없어요. <투모로우> 같은 영화도 필요 없죠. 그리고 과장을 하면 신뢰감을 잃고 그저 “그렇다더라” 하는 논쟁으로 되돌아가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미디어의 게으름뱅이들이 논의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고, 곧 마이클 크라이튼이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 것 같은 과학적 사기의 모양새가 될 겁니다. <사이언스 프라이데이>에 출연하려고 저는 별짓을 다해야 했으며, 카트리나가 덮치고 나서야 <리얼 타임 위드 빌 마허>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6장 기후의 정치학,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슈나이더_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과학에서는 절대적 확신이 없으면 ‘이론에 불과하다’는 개념이 있죠? 지구기후연합과 부시 행정부는 이 개념을 끝까지 밀고 갔습니다. 그런데요, 이라크에 대량 살상무기가 있다고 99퍼센트 확신하지 못했는데도 잠재적인 안보 위협에 대한 예방 차원의 보험 신봉자인 미국 정부는 이라크를 공격했습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6장 기후의 정치학,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오늘까지 읽은 부분에서 인상적인 내용을 알려 주세요.
로버트 트리버스_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동물의 경우 두 가지 상황에서 자기기만이 진화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연구해볼 수도 있겠죠. 연구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아직 아무도 손을 대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두 마리의 동물이 싸우는 상황을 생각해봅시다. 수컷끼리의 대결이라고 가정하죠. 여기서 한쪽 수컷은 상대 수컷이 얼마나 자신감이 있는지를 살핍니다. 노암 촘스키_ 자신감은 행동에서 드러나죠. 트리버스_ 바로 그겁니다. 두려움을 억누르고 어떤 것도 드러내지 않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 개체가 자기과신을 선택하는 상황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7장 전쟁과 기만,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트리버스_ 이는 짝짓기를 하기 전에 암컷이 수컷을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컷의 자신감이 중요하죠. 자신감이 없으면 매력이 없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언어에 의한 소통 없이도 왜곡된 형태의 정보를 흘려보내는 쪽을 선택해서 가면을 쓰는 겁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7장 전쟁과 기만,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촘스키_ 그리고 가면을 쓰는 동물은 그것이 가면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겠죠? 트리버스_ 그렇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도 모르는 편이 더 이롭죠. 촘스키_ 더 쉬우니까요. 트리버스_ 쉽기도 하고 더 그럴싸하기도 합니다. 증거를 드러내지 않으니까요.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7장 전쟁과 기만,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트리버스_ 선생님이 흥미로워하실 만한 연구에 대해 알려드리죠. 말벌, 새, 원숭이 등을 관찰한 결과 속았다는 사실을 알면 이들이 화를 낸다는 사실을 거듭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만자를 공격합니다. 특히 기만자가 허풍을 떨 경우에 더욱 그렇습니다. 반대로 실제보다 덜 강한 모습을 드러내면 공격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공격자들은 기만자가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도용하거나 흉내낸다고 판단했을 때 공격합니다. 흥미로운 연구 결과죠. 그리고 이런 결과를 보면 기만의 과정에서 탄로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2차 신호의 역할을 하는 과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걸리면 얻어맞거나 쫓겨나기 때문이죠.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7장 전쟁과 기만,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촘스키_ 여기서 펙은 어떤 판단의 기준을 만들어내려는 목적으로 쓰이는 정교한 자기기만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새로운 목표가 있기 때문에 과테말라를 침공해서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은 정당하다고 믿게 만드는 기준 같은 거죠. 이렇게 하는 방법은 그저 모든 것을 단순화하는 것입니다. 진실보다도 훨씬 더 분명하게 그려내야 한다는 거죠.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7장 전쟁과 기만,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촘스키_ 이러한 시스템이 내부적으로 생성되고 국가안전보장회의 담당자들 사이에서 확장되면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원리주의 종교 같은 모습이 되어 극단적 자기기만을 드러냅니다. 그러다 보면 체니나 럼스펠드 같은 사람이 나오는 거고요.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7장 전쟁과 기만,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미셸 공드리_ 꿈속에 등장하는 대상을 해석해놓은 것은 다 쓰레기라고 봐요. 얼빠진 짓이죠. 그러나 사람들은 기댈 데가 필요하죠. “당신은 이러이러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겁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8장 꿈에 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로버트 스틱골드_ 그런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데 꿈을 이용하려 한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과학자로서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어떤 과정으로서의 꿈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는 지극히 원시적이고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들 이런단 말이죠. 꿈 자체가 불확실한 요소로 가득 찬 데다 분명하지도 않고, 잠에서 깨어 생각나는 꿈의 내용도 마찬가지로 불확실하고 불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꿈 자체가 원래 불확실하고, 하나의 특정한 꿈을 들여다보는 것이나 꿈 일반을 들여다보는 것도 모두 불확실합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8장 꿈에 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스틱골드_ 잠들어 있을 때 사람의 뇌는 몇 가지 기억에 접속할 수가 있고, 이러한 기억들을 끌어다가 여러 방식으로 결합한 뒤 여기서 몇 가지 요소를 뽑아 꿈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다 아침에 깨면 사람은 꿈을 기억해내고는 내용을 풀어낸 뒤 이 꿈의 재료를 제공한 기억과 연결하려고 하죠. 그러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사람의 뇌 상태는 꿈을 꾸었을 때의 뇌 상태와는 매우 다릅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8장 꿈에 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스틱골드_ 그러니까 과학적 관점에서의 문제는 이렇습니다. ‘잠에서 깬 뒤 재구성해내는 꿈의 내용이 실제로 꿈을 만들 때 들어간 재료인 기억과 같은가?’ 하는 거죠.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8장 꿈에 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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