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이즈 컬처』 혼자 읽기

D-29
라이트먼 _ 좀전에 시간을 공간처럼 쓰는 조각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소설은 시간의 경과를 통해 향수하는 예술 형식이죠. 소설은 시간입니다. 읽는 데 몇 시간 또는 그 이상이 걸리고,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시간을 떠난 상태가 되죠.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3장 시간,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라이트먼_예술가들은 과학으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예술가들은 세상을 거꾸로 보고 싶은데 과학이 그 수단을 제공하거든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및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의 양자론은 직관적으로 지극히 터무니없고, 따라서 예술가들에게는 풍부한 소재를 제공합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3장 시간,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라이트먼 _ 예술이 과학자에게 도움이 되는 측면 중 하나는 비유나 이미지 등 언어에 관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이용해서 과학자들이 이해하려 몸부림치는 대상을 표현할 수 있죠. 실험 장치를 보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틀림없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직관적으로 이를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언어와 이미지를 찾아 헤매고, 이 과정에서 예술이 일부 도움을 줍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3장 시간,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라이트먼 _ 어떤 젊은 시인이 “저에게 시인의 소질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했다는 유명한 대답이 있죠. “문제 자체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문이 잠긴 방, 전혀 모르는 외국어로 쓰인 책 같은 문제를 말이죠.” 예술이란 대부분 이처럼 문제 자체에 관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답보다 의문이 더 중요하죠. 그래서 예술가들이 불확실성과 함께 사는 데 더 익숙한가 봅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3장 시간,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라이트먼 _ 모호함도 예술의 중요한 부분이죠. 여기서도 저는 부분적으로는 예술가로, 부분적으로는 과학자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소설을 쓸 때 저는 제 인물을 완전히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제가 좋은 인물을 만들어냈다면 그 인물을 결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 옳죠. 일단 소설 속의 인물을 완전히 이해하고 나면 적어도 저 자신에게 있어서는 이 소설이 죽은 작품이 되어버리니까요.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3장 시간,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슈테판 자크마이스터_ 제가 보기에는 방금 말씀하신 대로 모든 것이 관점과 맥락에 달려 있는 것 같네요. 예를 들어, 그래픽 쪽에서 보면 많은 문화권에서 수백 년간 잘 쓰여온 만자[卍字]무늬는 훌륭한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히틀러가 이를 나치의 상징으로 사용하면서 맥락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경우입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4장 설계/디자인에 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드루 엔디_ 그러니까 자연 속의 생명체들은 항상 아름다운가요? 그리고 자연이 설계한 것들을 평가해야 한다면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까? 우리 생물학자들은 어떤 생명체나 그 생명체의 한 부분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알아내는 어려운 작업은 할 수 있지만 가치 체계가 없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합니다. 달리 말해 “우아, 이거 설계 정말 잘했다”라고 말할 기준이 없다는 뜻이죠.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4장 설계/디자인에 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가령 유기체 안에서 놀랍도록 뛰어나 분자 차원의 모터 같은 것을 찾아낼 수도 있지만, 그 모터의 설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이것은 미학의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능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모양이 나오도록 정보를 부호화하는 과정이 얼마나 효율적인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하겠죠. 그러니까 대상의 성질을 창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4장 설계/디자인에 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자크마이스터_ 그래픽 디자인 작품을 평가하는 시스템과 유기체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 같은 시스템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래픽 작품을 제가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설명해드릴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4장 설계/디자인에 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자크마이스터_ 아닙니다. 어쨌든 저희 쪽에서는 강은 하나뿐이고 다들 거기서 낚시질을 합니다. 놀랍게도 고객의 의뢰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실험적인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이 강에서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다국적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디자인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디자인을 카라카스에서 하든 오슬로에서 하든 큰 차이는 없겠죠.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4장 설계/디자인에 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그런데 실험적인 책을 보아도 스칸디나비아에서 만든 책이나 남아메리카에서 나온 책이나 오늘날은 다 똑같아 보입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4장 설계/디자인에 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엔디_ 그러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까요? 또는 디자인을 선택하고 평가하는 환경이 너무 비슷해서 그럴까요? 그것도 아니면 디자인을 할 때 동원되는 여러 가지 기술, 표준, 심미적 시스템, 기타 등등이 어떤 공통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일까요?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4장 설계/디자인에 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자크마이스터_ 지금 말씀하신 세 가지가 다 이유가 된다고 봅니다. 제 아버지가 오스트리아에서 성장하실 때만 해도 아버지는 세 마을 건너에 있는 마을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셨습니다. 왜냐하면 산이 가로막혀 거의 가보지 못하셨으니까요. 그러나 오늘날 저는 실험적 디자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디자이너 두 명 수준까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워낙 연결들이 잘되어 있어서 말씀하신 대로 모노컬처가 되어버렸기 때문인가 봅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4장 설계/디자인에 관하여,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아리엘 루이스 이 알타바_ 그러면 과학도 시적인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시나요? 호안 폰트쿠베르타_ 아닐 이유가 없죠. 과학의 원천에 이러한 시적 측면이 있는데도 과학이 이를 거부한다는 사실이 저는 좀 언짢았습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5장 객관성과 이미지,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폰트쿠베르타_ 최근에 카나리아 군도에 있는 천체물리학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한 가지 기이한 일을 겪었습니다. 연구소는 카나리아 군도의 한 섬인 테네리페 섬에 있는 테이데 화산 꼭대기에 자리 잡은 천문관측소였습니다. 유럽 최고의 천문관측 시설에 속하는 이곳에서 저는 전문가들이 쓰는 최고의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막상 들여다보니 아무것도 보이질 않더군요! 엄청나게 실망했죠. 그러니까 정보는 모두 컴퓨터 스크린상에 떠 있었고 모든 것이 숫자로 표시되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과학은 시적 가시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컴퓨터상의 추상적 정보는 매우 유용할 수도 있겠지만 과거에 과학이 갖고 있던 찬란한 아름다움이나 설레는 마음 같은 것은 없더라는 얘깁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5장 객관성과 이미지,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알타바_ 아까 말씀하신 것 중 사진의 진실성에 관해서는 저도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티안이라는 저의 형제는 진화생물학자입니다. 가끔 크리스티안과 나누는 이야기 중에 “박물관에 그림 대신 사진을 걸어놓는 데 문제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진을 보면 그 대상이 그 자리에 없어도 그것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죠.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5장 객관성과 이미지,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알타바_ 예를 들어, 최근에 보르네오의 숲에서 여우원숭이를 닮은 동물이 발견되었다는 기사와 함께 이 동물의 사진이 신문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새로운’ 포유류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곤 플래시의 빛을 반사하는 두 눈과 크고 긴 꼬리가 달린 몸통의 윤곽뿐이었습니다. 사진은 이 동물의 존재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진 캡션을 보니 멸종위기의 동물이더군요. 이 사진이 전하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5장 객관성과 이미지,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알타바_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상황은 디지털 이미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결국 인간은 가상 세계에 살기 시작했고, 여기서는 사물의 이미지를 볼 수만 있으면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따지지 않습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5장 객관성과 이미지,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로리 데이비드_ 뻔한 질문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진실이 중요한가요? 과학자들이 기후과학에 대해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대중을 어떻게 교육할 수 있을까요?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6장 기후의 정치학,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스티븐 슈나이더_ 제 학생들이 항상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정말 답답하지 않으세요? 무슨 말씀을 하셔도 당장 달라지는 게 없잖아요.” 그럴 때마다 저는 항상 학생들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진실은 중요하지. 하지만 시간 단위가 한 세대라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6장 기후의 정치학,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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