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이즈 컬처』 혼자 읽기

D-29
윌슨_ 인문사회학자들은 배 묶는 것을 협력의 과정으로 생각해야 하며, 공동구역의 상당 부분을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해야 합니다. 문예이론을 전공하는 다수의 젊은 학자들, 심지어 시각예술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가능성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노장 학자들과는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배를 붙이는 일을 진정으로 새로운 일에 착수할 좋은 기회로 보고 있기도 합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1장 진화철학,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데넷_ 그런데 이 점에서 약간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기는 합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 당장의 가장 큰 문제는 여기에 열광한 나머지 너무 멀리 가버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나서서 이건 너무 성급하니 잠시 기다리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안 그래도 인문학 쪽에서는 배 묶기의 과정이 정직하고 온당한 과학적 탐구라기보다는 학문적 인수합병이라고 생각하는 회의론자들이 있는데,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이런 사람들의 생각이 옳다고 확인해주는 꼴밖에 안 됩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1장 진화철학,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오늘까지 읽은 부분에서 인상적인 내용을 알려 주세요.
데넷_ 그렇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의문을 이런 식으로 제시하면 ‘자연스럽다’라는 말이 사회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문제에 부딪칩니다. 자연스러운 것들의 목록을 작성해봅시다. 근시는 자연스럽습니다. 고혈압은 자연스럽죠. 너무 많이 먹으면 비만도 자연스럽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중 진화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문명사회를 이루어가면서 인간은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 것들에 적응하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다는 것도 두 가지 측면에서 보아야 합니다. 합성섬유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좋습니다. 그리고 자연식품은 어떤 면에서 가공식품보다 더 나을 것도 없습니다. 나체주의자들은 옷을 입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하지만 그냥 이들이 틀렸다는 생각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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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슨_ 자연스러움의 여부가 윤리적 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뜻은 아니었는데요. 물론 종족간의 전쟁은 자연스럽죠……. 데넷_ 바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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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넷_ 이 책의 요점은(코믹한 방식으로 철학적이기까지 한데)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에서처럼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우리가 종교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도구를 갖고 종교를 연구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죠. 그러니까 종교를 자연현상으로 연구하는 데 대한 금기부터 먼저 깨자는 겁니다. 지구온난화나 엘니뇨 같은 현상을 연구하는 것과 똑같은 자세로 종교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의 현상으로서의 종교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현상에 속하는데도 인간은 부끄러울 정도로 여기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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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넷 _ 그러면 계몽시대의 지식인들이 몰랐던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종교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중요할까요? 종교는 어떤 발전 과정을 거쳐왔을까요? 여기에도 진화론적인 답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답이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여기저기 탐색하다 보면 ‘종교의 진화생물학’이라고 부를 만한 지점이 여기저기 나오는데, 저는 지금 이런 지점들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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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슨_종교의 중요한 이점 중 하나는 어떤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의 신념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결속을 위해 쓸 수 있다는 뜻이죠. 또한 사회 구성원들이 용감하게 일어서서 끈질기게 고난을 견디도록 하는 데도 쓰입니다. 이는 가족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적 신념의 생존력은 대단합니다. 그래서 이런 식의 결속과 이에 따르는 강력한 감정을 일단 학습하면 그 결과가 뇌에 아로새겨지도록 설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1장 진화철학,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레베카 골드스타인_ 방금 3차원 물체로 이루어진 가시적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리얼리즘을 말씀하셨는데 이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 한 가지 있죠. 그러니까 객관적 세계에 대한 믿음은 인간 정신에 아로새겨져 있어서 이것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생각 말입니다. 이를 부정하면 인간은 자기모순에 빠지죠. 그리고 이를 부정하면 일관성 있는 회의를 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물리적 대상이든 도덕적 가치든 리얼리즘에 대한 인간의 깊은 본능은 이런 대상이 현실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진화해왔으리라 생각되고, 따라서 이들이 실체라고 믿는 것은 유용한 일이죠.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2장 의식의 문제,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스티븐 핑커_ 생물학을 근거로 문화적 상대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문화가 각 사회마다 다른 일련의 사회적 관습, 예를 들어 차가 오른쪽으로 다니느냐 왼쪽으로 다니느냐 같은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주장이 옳을 경우 도덕성은 인간의 뇌에 들어 있는 전선쯤으로 전락해서 결국은 허위가 되어버리리라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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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스타인_ 어떤 사람을 하나의 복잡한 개체로서 완전히 파악하는 일에는 뭔가가 있습니다. 이 작업에는 권리와 의무라는 또 다른 영역의 사실이 필요합니다. 경험의 대상을 도덕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데, 이는 그 대상이 인간일 경우 더욱 두드러집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 대해 리얼리스트가 된다는 것은 아마 도덕적 리얼리스트가 될 것을 강요당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칸트의 주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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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커_ 본질적으로 도덕성은 자신의 시각이 특권을 받은 시각이 아니라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따라서 유일하게 일관성 있는 행동규범은 나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고르게 적용되는, 중립적인 이해관계의 시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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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스타인_ 저도 어느 정도까지는 도덕적 추론을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데 공감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도덕적 사고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도 없고, 인간은 왜 모두 어느 정도는 저절로 도덕적 사고를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풀 수가 없습니다. 사실 저절로 도덕적 사고가 되기 때문에 도덕적 상대주의자인 제 학생들이 자신도 모르게 도덕적 리얼리즘으로 빠져드는 것이니까요. 스스로를 남의 입장에 세워보는 능력은 매우 복잡하지만 즉각적인 반응을 미리 일으키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이런 측면은 게임이론에 관한 계산 같은 걸로 설명할 수 없죠. 도덕성에서 이렇게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을 채워주는 것은 사고의 또 다른 측면, 그러니까 서사적 사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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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커_ 이렇게 되면 픽션으로 넘어가네요. 변하지 않는 도덕 감정을 비롯하여 인간의 본성은 불변이라고 믿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 드는 한 가지 의문은 인간의 행동이 수백 년, 아니면 수천 년에 불과한 사이에 어떻게 이토록 크게 변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계 여기저기에서 노예제도, 인종 청소, 흔한 형벌의 형태로서의 고문, 절도범에 대한 사형,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 당연한 전리품으로 여겨지던 강간, 여성을 재산으로 소유하는 것 등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인간은 더 나은 종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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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커_ 나와는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살며 인종도 다른 이들의 삶 속에 스스로를 투사해보는 일이 저절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픽션은 나와는 다른 사람, 그러니까 스토리의 힘을 빌리지 않았으면 그저 인간 이하라고 생각했을 사람들의 시각에도 설 수 있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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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스타인_ 인간의 도덕적 삶에서 스토리텔링은 항상 무언가 기본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하는 것, 사실 이러한 태도는 도덕성의 일부이기도 한데,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고, 그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방식대로 그들의 삶을 말해보려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생활에서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고 이들을 도덕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행위 자체가 벌써 스토리텔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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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스타인_ 일반적으로 스토리텔링은 도덕적으로 유용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끔찍한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읽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어떤 감정을 일으키거나 하는 것은 윤리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윤리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죠. 인간은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이렇게 해서 남의 삶을 느껴보라는 것인데, 이것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죠. 인간에게 이런 능력이 없다면 희망이라고는 없을 것입니다. 그저 처벌이 두려워서 규칙을 따르는 삶만이 남을 것이고, 이런 상황은 도덕과는 무관하죠. 그리고 스토리텔링은 인간이 저지르는 또 다른 도덕적 실수, 그러니까 내가 선택한 영역 밖에 존재하는 집단의 근본적 인간성을 무시하는 행위를 교정해줍니다. 방금 윤리적 지평을 확장하는 것과 여기서 픽션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바로 이런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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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커_ 우리가 픽션을 즐기는 것은 도덕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죠. 저의 또 한 가지 의문은 왜 온 인류가 보편적으로 픽션의 내러티브narrative를 그토록 즐기는가 하는 것입니다. 스토리텔링은 어떤 사회, 어떤 문화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인간은 일찍부터 픽션에 대한 기호를 갖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인간은 현실이 아닌 이야기를 지어내고 또 이것을 즐기는 데 그토록 많은 노력을 들일까요? 문학은 결국 거짓말 모음 아닙니까? 햄릿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일라이자 두리틀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허구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또한 인간은 스토리텔링이 근본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좋은 픽션을 즐기느라 소비한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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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스타인_ 선생님의 저서를 읽으면서 떠올랐던 의문이 하나 있어요. 환경에 적응한다는 점에서 스토리텔링은 어떤 도움을 주나요? 함께 둘러앉아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에 빠져드는 인간이라는 종에게 어떤 좋은 일을 하나요? 픽션은 정말로 사람을 마법처럼 빠져들게 만듭니다. 저술가도 이런 마법의 힘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저술가가 걸리는 마법이 독자가 걸리는 마법보다 더욱 강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은 이를 일종의 광기라고 생각했고, 이 때문에 플라톤은 저술가들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플라톤 학파가 그려낸 유토피아에서 저술가는 빠져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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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커_ 픽션은 왜 그렇게 사람을 잡아끌까요? 인간은 기쁨을 얻기 위해 이런저런 버튼을 누르면서 사는데 아마 픽션이 그중 하나인 것 같다고 답할 수 있겠죠. 사람들이 가십을 즐기는 데는 적응이라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달리 말해 가십 속에 들어 있는 남의 험담을 통해 인간은 상거래에서의 내부자 거래 같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어떤 의미에서 픽션은 가십의 시뮬레이션입니다. 남의 비밀을 엿본 증인이 되는 거니까요. 그저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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