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뼈 화석과 석기에서 끌어낼 가능성이 있는 것도 있다.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 기술, 먹은 음식, 심지어 사회구조도 도출할 수 있다. 하지만 뼈나 석기가 결코 말해주지 않는 정보도 있다. 인접한 사피엔스 무리 간의 동맹이라든가, 그런 동맹을 축복하는 망자의 정령이라든가, 정령들의 축복을 얻기 위해 마을의 주술사에게 은밀히 건네는 상아 구슬이 그렇다. 이런 침묵의 커튼은 수만 년에 걸친 역사를 감추고 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전쟁과 혁명, 열광적인 종교 운동, 심원한 철학이론, 빼어난 예술작품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수렵채집인들에게는 온 세상을 정복한 그들만의 나플레옹이 있어서 룩셈부르크 절반 크기의 제국을 통치했을지 모른다. 교향악단은 없지만 대나무 피리 소리로 청중을 눈물 흘리게 만들었던 재능 있는 베토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주를 창조한 신의 이야기 대신 동네 떡갈나무가 하는 이야기를 전했던 카리스마 넘치는 예언자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침묵의 커튼은 너무 두꺼워서, 이런 사건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고사하고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학자들은 합리적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 가능한 질문만 하는 경향이 있다. 전에 없던 새로운 조사도구가 발견되지 않는 한, 아마도 우리는 고대 수렵채집인들이 무엇을 믿었는지 어떤 정치적 드라마를 겪었는지를 결코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을 하는 거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인류 역사의 6만~7만 년을 “그 시기에 살았던 인류는 중요한 일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일축하고 싶어질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중요한 일을 많이 행했다. 특히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주변 세계를 크게 바꿔놓았다.
시베리아 툰드라나 호주 중부, 아마존 열대우림을 찾는 도보 여행자들은 자신이 인간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풍경에 들어섰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것은 환상이다. 그곳에는 우리에 앞서서 수렵채집인들이 살았으며, 이들은 가장 빽빽한 밀림부터 가장 척박한 황무지에 이르기까지 극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최초의 농촌마을이 생기기 훨씬 전에 수렵채집인이 우리 행성의 생태계를 얼마나 철저히 바꿔놓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야기를 지어내 말할 줄 아는 사피엔스의 방랑하는 무리들은 동물계가 이제껏 만들어낸 것 중 가장 중요하고 가장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
『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P. 100-101 <사피엔스> 제 1부 인지혁명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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