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국의 우리들의 날개
전상국 - 우리들의 날개 읽기
D-29
주황506모임지기의 말
주황506
<우리들의 날개>는 그냥, 너무 좋은 작품이고. 내 인생소설인 거 같다. 이걸로 올해 초에 일기장에 감상문을 길게 써놨는데 11월에 이른 지금 다시 보니 느끼는 바가 있어 리뷰를 써보게 되었다.
주황506
당시 일기장 내용
주황506
이건 몇 번을 읽은 게 분명한데 (입시 준비를 위해서) 그때는 왜 아무것도 못 느꼈는지 모르겠다. 다시 읽으니까 진짜로 놀라운 소설이다. 전상국 소설가는 엄청 옛날 사람인데.. ‘ㅎㅎ’, ‘ㅋㅋ’ 이런 축약어를 최초로 글에 사용한 사람이라고 한다. 역시 보는 눈이 뭔가 앞서가 있는 거였다...!
이거는 건강한 사람만 태어나야 겨우겨우 유지되는 그런 가뭄 맞은 거 같은 집안에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태어났을 때에 어떻게 집안이 망가지는지에 대한 소설인데, 솔직히, 두호가 너무 귀엽다.
점쟁이 말대로 집안 대소사를 정하는 집안에서, 두호는 ‘자식이 아니라 사’라고 한다. 실제로 두호가 태어나고서 집안이 휘청휘청하기도 하고. 두소는 (병 때문이라지만) 깡말라서 두 눈이 부리부리하고 어린애다운 욕심이 많은 그런 애다. ‘악마의 씨’나 뭐 그런 옛날 공포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천진한 어린애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무속적인 불운? 뭐 그런 건데!! ( 이 뒤에 아버지가 트럭 운전하다가 어린애 형체 보고 사고 나기도 하고 두호가 불을 내서 세간을 다 태워먹기도 하고) 그런 파격적인 설정인데!! 이걸 한 문단만에 끝내버린다!!!!
(할머니가 두호를 싸고 돌다가 점쟁이를 만나고 와서는 피하고 무서워함)
“도대체 그 점쟁이가 뭐라고 했을까요?”
“그걸 누가 알겠나, 어머니밖에.”
그 비밀을 끝에 입밖에 내지 않은 채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의 마지막 숨을 거두는 모습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나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두호가 마당에 앉아 흙장난을 하고 있다가 내게 말했다.
“성아, 할무니 주겄나?” (내가 이 대사 보고 너무 감명받아서 일기장에 형광펜으로 ‘대박’이라고 써놨다.)
두호는 얼굴에 온통 흙을 묻힌 채 번들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더럭 무섬증이 났다. 할머니가 마지막 숨 거두는 순간의 무섬증과는 또 다른, 살아있는 사람의 교활한 눈에서 찾을 수 있는 그런 무서움이었던 것이다.
이건 진짜로 엄청난 문단이다. 이걸 보면 두호를 도저히 귀여워하지 않을 수가 없게 만드는, 그런 문단이다...!!!
“성아, 할무니 주겄나”, “흙이 온통 묻은 번들거리는 눈”, “살아있는 사람의 교활한 눈에서 찾을 수 있는 그런 무서움” 한줄 한줄 다 밑줄을 긋고 싶은 거야.
이 소설에서 재밌는 점은,
무속에 미친 여자 / 잡혀사는 남자
-> 이 구도가 대를 이어서 내려오고 있다는 거다.
1. 할머니 / 할아버지
이 둘은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손자를 봐서 집안의 대를 잇는다.” 이때에 한호가 태어나고 둘은 목표를 달성, 이후 할아버지는 동네 과부랑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 거리에서 죽는다. 이후에 할머니가 집안의 최고권력자가 된다. “두호는 집안의 액운이다” -> 이것도 할머니에 의해서 계시되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는 죽었지만 여전히 집안의 가장 큰 ‘과제’ 같은 걸로 자리잡는다.
할머니 -> 어머니: 무속 신앙과 각종 기행을 이어받음
할머니 -> 아버지: 집안의 기조를 완전히 깨고자 하는 과제를 받음
할머니 -> 한호: 할머니 죽음 + 흙장난 씬으로 ‘동생 두호 = 액운’이라는 암시를 받음. 이 암시를 깨는 게 이 소설의 제일 큰 줄거리.
2. 아버지 / 어머니
아버지 -> 전통을 깨고 가려고 함 -> ‘운전’
어머니 -> 전통을 이어가려고 함 <- ‘두호’
이런 건데 묘사가 무지 귀엽다.
“꿈자리가 너무 나빠요.” / “당신 꿈은 나빴을지 몰라두 내 꿈은 되게 좋았다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두호 엄마가 그렇게 집에서 빌어주니까 무사한 거 내가 다 안다구”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동받아서 눈물흘림ㅁ..
어머니는 팍삭 늙었는데 아버지는 ‘항상 신바람이 나’서 ‘몸도 보기 좋게 불고 얼굴도 피둥피둥 폈다’.
이런 묘사도 있다.
“야, 한호야, 느네 형 간다.” 내 친구들이 그렇게 놀려댈 정도로 아버지는 젊었다. -> 이게 너무 웃겨
아버지는 현대적으로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이고, 집안의 무속 st 분위기에 이골이 나있다. (이 부분 때문에 주인공 한호의 은근한 기대 / 존경 같은 걸 받음) 그 첫 번째 반항이 군대 가는 거였고, 군대에서 운전을 배운다. “운전대를 잡고 칸보이 지프를 따라 국도를 달려나갈 때 그는 어금니를 비집고 올라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커다란 괴물을 움직여 나가고 있는 자신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근데 군대에서 꿈자리가 안 좋다는, 곧 태어날 아기가 있는 선임을 태우고 운전을 하다가 두호 모양의 헛것을 보고 사망사고를 낸다. 이때부터 아버지는 운전 vs. 미신으로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하는데 번번이 진다....
웃긴 거는 어머니는 아버지가 하잔 대로 다 따라가고, 뒤에서 온갖 요상한 것 (부적 넣기 등등)만 하는 건데, 심지어 그것도 아버지를 위해서 하는 건데도 집안의 실제 권력은 어머니한테 기운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번번이 사고를 내서 (그때마다 자기는 하나도 안 다침) 결국에는 굴복을 한다. ㅠㅠ
어머니는.. 무속으로 할머니의 권력을 이어가면서 두호에 대한 오컬트스러운 분위기를 극대화시켜주는 그런 인물인데, 그냥... 엄청난 장면들이 많다. 내가 젤 좋아하는 장면들은 다음과 같다.
1) 병원 안데려감
“엄마, 두호 병원 좀 데리고 가봐요.” / “두호가 왜?”
2) 학교도 안 보내려고 함
“몸은 약해도 이놈은 공분 잘할 거야” / “공연히 애 고생시킬 것 없이 집에서 편히 놀게 하는 것 어때요?” / “당신 정말 미쳤군!”
3) 집주인이랑 싸움
“예수쟁이들 맘 좋다고 하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라구. 못 사는 사람 괄시하는 것들이 뭔 천당에 가겠다구.” / “그래, 나 미쳤다, 이 예수쟁이야.” / “나 미쳤어, 내 새끼가 죽는다는데 안 미칠 년 있어?”
4) 두호 죽은 줄 알고 기대하다가 틀리면 두호한테 화풀이함 (개인적으로 명장면이라고 생각함)
우리집 형편이 펴이면 펴일수록 두호에 대한 엄마의 편애는 심해갔다. 엄마는 아버지와는 달리 노골적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식으로부터 지레 정을 끊으려던 엄마의 통곡이었는지도 모른다. “애 죽은 뒤에 애통해해야 소용없어요” 두호는 엄마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았다. 엄마의 그러한 몰지각한 생각을 비웃는 듯 방구석이나 안집 마당에서 소리없이 혼자 놀았다. 어떤 때는 아침에 나간 애가 저녁 때가 되어 돌아오곤 했다. 두호가 그렇게 밖에 나가 돌아오지 않을 때마다 엄마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얼굴로 허둥거렸다. 그러나 두호는 제발로 집을 찾아 들어왔다. “이놈의 새끼야, 너 어디 갔었니?” 엄마는 자신의 예감을 부끄러워하면서 그 부끄러움을 오히려 두호에 대한 매질로 나타냈다. “엄마 속 이렇게 썩이려면 어서 칵 죽어버려!” 매를 맞은 뒤 두호는 허겁지겁 밥을 퍼먹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잠들곤 했다.
아니 글을 어떻게 이렇게 쓰셨지...? 진짜 멋있다....
한호가 마지막에 두호를 버리려고 할 때에 두호가 죽은 줄 알고 헤매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에 죄책감이 어머니를 매개로 떠오르는 것도 너무 좋았다..
나는 귀를 막았다 ...(중략)... 두호 혼자 산에 갔어요. 엄마는 내 말을 믿으리라. 걘 죽을 애였어요. 엄마가 사람들을 설득할 것이다.
엄마의 실신한 얼굴이 보였다. 네가 두홀 죽였지? 엄마가 내 목덜미를 낚아 채며 소리친다. 아득한 절망이 가슴 밑바닥에 피어오른다.
으악.... 너무좋아...
한호 -> 얘도 진짜진짜 귀엽다. 사실 오히려 두호보다 한호가 훨씬 귀여운 거 같다. 한호는 아버지처럼 미신적인 분위기에 이골이 난 사람이다. 동시에 미신으로부터 제일 안전할 수 있는 관찰자적인 입지에 있기도 하다. 할머니 죽고 아버지 vs. 어머니 구도로 직접 대결을 하고, 그 중심에 두호가 있으니까 두호는 어린 나이에 자아 형성에 엄청나게 안 좋은 영향을 직빵으로 받아야 한다. 근데 한호는 이 때문에 부모님 관심 밖으로 밀려나서 괜찮다...
한호의 가장 큰 특징
: 엄청 착하다.... ㅠㅠㅠㅠ
부모님한테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물론 이거는 한호 가족의 기행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내고자 하는 소설적인 장치인 느낌이 크긴 하지만 그래도 귀엽다.) 한호는 아버지한테 은근히 기대를 품고 있다. 아버지가 굴복했을 때에 딱 한번 직접 까는데 그것도 엄청 귀엽다..
벼엉신. 나는 입 속으로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두호가 죽은 뒤, 산 사람이나 마음 덜 괴로우려고 그렇게든 열심이군요?” 나는 뒤틀리는 심사대로 한 마디 쏘아붙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엄청 실망했을 텐데 기껏 하는 말이 이거다... 참 순한 거 같다 성정이.
한호는 무속을 싫어하면서도 할머니가 내린 암시 (내 동생이 주온이다) -> 여기서 벗어날 수도 없다. 이건 어쩔 수가 없는 건데 표면적으로는 실제로 두호와 관련해서 자꾸 괴이한 일들이 벌어지고, 두호는 잘못된 양육환경 때문에 귀염성 있고 싹싹한 애가 되질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근본적인 이유는, 한호도 아직 애기인데 관심을 충분히 못 받아서이다. ㅠㅠㅠㅠㅠㅠ 한호는 두호가 애기라는 걸 계속 못 받아들이고, 이건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관이랑의 충돌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일단 가족이니까) 엄청 괴로워한다. 이것도 참 귀엽다... 세들어 사는 집에서 굿한다고 부끄러워하다가 (그야 사춘기니까 ㅠㅠ) 혼자 산까지 들어가서 두호 생각 (두호한테 사과하는 생각, 두호 죽이는 생각, 기타 등등) 하다가 정신 왔다갔다 하고... 한호는 계속 두호가 약하다고 보는데 (퀭하다, 비쩍 말랐다 등의 묘사)
나는 그것을 (두호가 숨긴 빠나나) 뺏기 위해 두호의 목덜미를 잡았다. 너무 거뿐하게 잡혀 기분이 안 좋았다.
두호를 죽일 뻔한 후에 두호가 어린애인 걸 인정하고 나서는 생각보다 무겁다고 한다... 이것도 너무 좋은 소설적 장치인 거 같다!!! ㅠㅠㅠㅠ
두호를 버리려고 결심했던 것도 불쌍한데, 아버지는 감옥 가고 어머니는 집에 안 들어오고 그런 상태에서 라면 두개 끓였는데 두호가 순식간에 두 봉을 다 먹어버려서 그랬던 거다 ㅠㅠ 귀엽다. 동물적이고 되게 좋다, 장면이.
한호는 불쑥불쑥 충동적인데 (근데 배고파 죽겠는데 집안은 다 거덜나있고 밤이라서 무섭고 이러면 누구라도 정신이 와리가리하겠지) 자기 기준이 분명해서 혼자 숙고를 굉장히 많이 한다... 집안 어른들이 비이성적인 행동을 자꾸 해서 자기는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게 귀엽다.
그리고 산을 헤매는 씬은 너무너무 감동적이다... “무서움” -> “외로움”으로 바뀌염넛 드디어 한호는 두호를 동생으로 인정해주게 된다. 너무 감동적!!!!
느닷없이 덮쳐든 것은 두호의 작은 몸뚱이었다. 나는 겨우 주저앉는 것만은 면했다. 내 가슴에서 파닥이며 숨을 할딱이는 작은새 한마리. 두호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그 깡마른 두 손으로 내 몸을 다잡아쥐고 발발 떨었다. 마치 절벽 끝에 매달린 사람이 필사의 힘으로 바위를 그러쥐듯 그렇게 내 몸을 그러쥐고 있었다. 나는 두호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다. 어쩌면 그것은 내 심장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두호의 작은 손에서 다스한 체온이 내게 전해졌다.
“인마, 왜 대답 안한 거야?”
내 물음에 두호가 아직은 겁먹은 목소리로,
“형아가 나 내뻐리구 갈려구 그랬지?”
나는 더 견디지 못하고 그 작은 몸뚱이를 와락 껴안았다. 비로소 내 눈에서 뜨거운 것이 줄줄 쏟아졌다. 두호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나는 두호를 업고 어둠 속의 그 산길을 내려오면서 다시 보이기 시작한 산 아래 마을의 그 휘황한 불빛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불빛이 있는 산 아래 마을에 대한 적의 같은 것은 씻은 듯 가신 뒤였다. 나는 겅둥겅둥 뛰다시피 산길을 걸었다. 내 등에서 두호가 간지럼을 타는 듯 키득키득 웃었다.
“두호야!”
“으응, 혀엉!”
“우리는 지금 새처럼 날아서 내려가는 거야.”
우리는 사실 어둠의 산에서 그 아래 불빛을 향해 훨훨 날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제 눈물같은 건 흘리지 않았다. 뱃속 그 깊은 데서 위로 뿌듯하게 치밀어 오르는 어떤 힘 같은 걸 느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날개 꺾인 이 어린 새의 어깻죽지에 새살이 돋을 때까지 내가 그의 날개가 되어 퍼덕여주리라 - 그런 마음 다짐이 어금니에 씹힌 까닭이었다.
아.... 완벽한 엔딩.....
그저 완벽....
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한호가 그동안 무서워하고 징그러워했던 두호의 생명력 (매맞고 밥 퍼먹고, 퀭하게 말랐지만 끈질기게 살고, 라면 뺏어먹고 등등) 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뒤집혀 버리는 거다. 그렇게 무서워하더니 갑자기 “작은새 한마리”가 되어버렸다. 와!!!!!!!!!!!!!
부족함도 넘침도 없이 딱 완벽한 거 같다. 일단 어두운 산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그런 장면이 마치 독자의 눈앞에 그린 듯이 선명하게 펼쳐지게 해준다는 게 정말 놀랍고도 멋질 뿐이다.
무엇보다도.... 벅차오르잖아!!!!! 한호가 처음으로 두호를 받아들였다는 거, 어른들의 비이성에 대처할 중심을 잡았다는 거, 그리고 어쩌면 나중에 자기 아빠처럼 결국엔 고꾸라질 수도 있다 (한호는 젊으니까) 는 걸 포함해서 말이다...
주황506
내가 이 일기를 썼던 게 올해 (2023년) 초에 아직 겨울이었던 때였다. 근데 그 뒤로 진짜 이 소설 하나가 나를 너무너무 많이 바꾸어놓았다. 뭐랄까, 그냥... 뇌에 벼락맞아서 뇌가 재정렬된 수준이었다. 누구나 그런 작품이 있는 거다. 보는 순간 탄성을 지르면서 ‘아, 이런 거였구나. 내가 하고 싶은 게.’ 란 말밖에 할 수 없게 되는 그런 작품이. 나에게는 <우리들의 날개>가 그런 작품이었다. 그 배경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주황506
1) 호러에 대한 관심과 거부감
: 나는 원래 호러 장르에 관심이 많았다. 단지 잘 보지를 못했다. 너무 무서워서... (잔인한 거 / 무서운 거 잘 못봄) 호러가 좋은 이유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확실하게 뭔가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그건 정말 ‘겁’이라는 근본적인, 내면의 뭔가를 뒤흔들어놓을 수도 있는 강렬한 감정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끌리게 되었다. 근데 뭐랄까, 갑자기 무섭게 생긴 귀신이 툭 튀어나오고, 사람을 깜짝 놀래키고 잔인하게 죽이고 그런 게 거부감이 많이 들었다. 왜냐면 뭔가 볼 때마다 ‘어, 저렇게 상처를 내버리면 치료하기가 너무 힘들겠다.’ 이런 생각들이 들어서... 슬래셔, 호러 이런 장르들이 사람 목숨을 가볍게 생각하는 데에 그 기조를 두는 경우가 많고. 다시 말해 “사람의 목숨은 무겁고 중한 것이다”라는 불문율을 정면으로 뒤틀어서 제시하고 거기서 오는 공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게 별로라는 게 절대 아니고 이건 이거만의 예술적인 가치가 있고 매니아층도 있고!!! 정말 소중하고 좋은 거긴 한데... 다만 나와는 조금 맞지 않았을 뿐이다. 어쨌든 나는 “사람의 목숨은 무겁고 중한 것이다”라는 불문율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걸 어떻게든 보여주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자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타협이 잘 안되었다.
2) 동서양의 정서 차이
서양 호러 영화를 몇편 본 적이 있는데, 뭐랄까 핵심적인 정서가 너무 다르다고 느껴졌다. 아마 미국 영화였던 듯싶은데. 우선 제일 차이가 나는 점은, 우리는 무척이나 인구가 과밀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층간소음으로 싸움이 나고 더 나아가서는 살인이 나고 24시간 거리마다 환하게 빛이 켜져있는 그런 절대로 잠들지 않는 북적이는 나라이다. 근데 미국 호러는 사방에 아무도 없는데... 뭔가가 튀어나와서 이게 뭐지 싶어서 무섭고 이런 정서를 건드린 거 같은데! 토종 한국인인 나랑은 좀 맞지가 않았다. 뭐 이상한 게 있으면 그냥 “옆집에서 뭐 이상한 걸 내다버렸네. 왜 저런대.” 하고 가던 길 가는 게... 그런 게 한국인이잖아... 그거보다는 같이 팀플해야 되는 팀원이 갑자기 사라진다든가, 더 나아가서는 눈이 훼까닥 뒤집혀서 갑자기 나한테 “야, 너 나 알아?” 라고 묻는다든가. 이런 생활밀착형 어쩌구들이 훨씬 무섭게, 또 무겁게 다가온다.
3) 호러의 새로운 가능성
그러니까 그런 거다. 어떤 사람을 놀래킬 때에, 왁!!! 하고 놀래키는 대신에 나 너 어제 봤다? 이렇게 말하는 게 훨씬.... 조용하고 치명적으로 겁을 먹게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커다란 중장비로 건물을 때려부수고 불타는 건물을 보여주며 깔깔 웃는 것보다도, 그냥 휑한 건물 앞에 조용히 미소짓고 서서 “안전하니 들어가서 마음껏 구경하세요.”라고 말하는 게 훨씬!!!!! 와닿는다는 것!!! 정말 확실한 예시를 들어보자면, 당신의 집에 강도가 들었다고 쳐본다면? 집에 들어갔더니 발자국이 온 사방에 찍혀있고 물건은 다 깨져있고 아주 풍비박산이 되어 있다. 홈캠을 켜보니 검은 복면을 쓴 사람이 미친 듯이 집을 파괴하는 광기어린 장면이 다 찍혔다. 이러면 무섭지.... 당연히 무서운데. 근데 당신은 누군가에게 여기에 대해서 명확하게 도움을 구할 수도 있고, 경찰서에 갈 수도 있고, 공감을 받을 수도 있다. 근데 당신이 집에 딱 도착했는데 현관문 앞에서 모르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그 사람은 당신에게 “집에 손볼 데가 몇 군데 있더군요.”라고 하고 씨익 웃고 그대로 사라진다. 그러면....? 이건 정말 아득한 공포인 거다. 어떻게 경찰에 신고해도 뚜렷한 해결방법이 없고, 누군가에게 말한다면 “기분나쁘네, 그래도 집이 그대로면 다행인 거다, 꼼꼼히 살피고 앞으로 조심해라” 이 정도 (좀많이) 모호한 공감밖엔 얻을 수가 없다. 이 상태로 집에 들어가면? 지옥문이 열리는 거지. 그 지옥문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손으로 열고 들어가는 거고. 사람마다 취향은 다 갈리겠지만, 난 후자가 너무너무 압도적으로 끌린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유혈이 낭자하지 않아도 공포감을 심어줄 수가 있고!!! 무엇보다도.... 가성비가 있다!!!!!!!!!! 집 다 때려부수는 동안 드는 시간과 에너지와 노력과 장비와 감옥갈 위기에 처하는 위험부담 vs. 말 한마디. 와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것: 가성비)
4) 결국엔 희망을 노래한다는 것
이건 내가 <우리들의 날개>에서 본 특별함인데. 물론 이런 종류의 소설이나 무언가가 세상에 더 있을 수 있고, 내가 못 봤을 게 분명하긴 하지만 어쨌든 이게 기존의 다른 호러/미스테리와 다른 점은! 결국에는 희망을 노래하며 열려있지만 닫힌 결말, 즉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한호는 두호와 함께 훨훨 날아갈 거라는 확실한 해피엔딩을 준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가 설명한 특징은 사실 ‘미스테리’라는 장르에 가깝기도 한데, 미스테리와는 다른 지점이 있다는 거다. 미스테리라는 건 부조리한 상황 -> 왜 부조리한지 추리해나감 -> 그걸 근본적으로 해결하거나 굴복하거나 함 이라는 형식을 띄고 있는데, <우리들의 날개>는 뭔가 다르다는 거다. 부조리한 상황 -> 왜 부조리한지 추리해나감 -> 어 너는 부조리해라 나는 내 갈 길 간다 라는 그런 특이한 형식을 띄고 있다!!!!! 집안이 어떻든지 일단은 두호를 업어주는 한호의 줏대가 나는 너무 멋졌단 거고. 세상이 아무리 부조리해도, 그 부조리를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하며, 그 돌파구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라는 거다. 그런 내 인생관이랑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서 나는 진짜 너무너무 감동을 많이 받았다...
주황506
이런 배경에 대해서 생각해보니까 깨달은 거였는데. <우리들의 날개>는 진심 개쩌는 소설이다. 일단 내가 원하는 걸 너무... 너무 완벽하게 갖췄다. 그냥... 주제의식, 형식, 묘사, 결과 이런 거 다...!!! 일단 내가 작가로서 꼭 하고 싶은 건, 인간 사회라는 것 - 내가 느낀 인간 사회는 사람들이 다같이 펄펄 끓으며 절규하는 마그마와도 같은 형상이었는데, 이 소설은 그 마그마를 너무도 아름답게 전시해두고, 빛나고 아름답지만 괴롭도록 펄펄 끓는 그 온도까지 놓치지 않으면서. 그러면서도 그 마그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사랑이라는 멋진 메시지로 뒤통수까지 후려갈기고 간다.
형식? 말할 것도 없다. 진짜, 그냥 너무!!! 정교하다. 샤머니즘과 남아선호 유교사상, 동생을 향한 첫째의 거부감,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올 즈음의 낯선 분위기 이런 소재들을 버무린다. 대를 타고 이어지는 저주에 대항하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마냥 밝지도, 어둡지도 않다. 두호는 정말 액운인가? 라는 질문을 전면에 내세우고서 이 모든 조각들을 아주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독자 입장에서는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거다. 내가 뭔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애초에 딴생각이 들지를 않는다. 중간에 맥이 끊기지 않을 정도로, 그러나 긴장을 놓칠 수 없을 정도로 호흡 조절이 탁월하기도 하다. 그리고 ‘정교한 연출이 들어갔네’ 라고 피부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마치 승차감이 좋은 차는 자기가 차에 타고 있는지도 모르듯이, 그런 경지에 이른 소설처럼 느껴졌단 거다. 진짜 재밌는 요소들이 너무 많은데, 그 어떤 요소를 따라가더라도 다 재밌다.
묘사는.... 솔직히 정말 놀랐다. 나는 책을 진짜 잘 안 읽고 거의 영상이나 만화나 그림을 보는 편인데. 이미지 하나 없이 이토록 생생하고 음울한 느낌을 뇌에 때려박을 수 있는지 몰랐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싶어질 정도로 아, 정말 현실 어딘가에 이런 집이 있을 거다, 라고 무겁게 설득해오는 그런 문장력!!! 그리고 대사.... 대사가 진심 미친 거 같다. 캐릭터가 대사를 한마디 할 때마다 그게 독자의 심금을 그냥... 찌른다. 그리고 그 캐릭터성이란 게 갑자기 확 피어오르면서, 활자의 나열에 불과하지만 불굴의 생명력을 획득해 버리는 거다. 특히 그... “성아, 할무니 주겄나” 이 부분이. 솔직히 너무!!!! 감탄했다. 아니 어떻게 이런 대사를 쓰지?! 이게 사람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 싶어서. 전상국 선생님은 작가로서 이 대사 한줄로 승부수를 던져 소설의 어떤 중심을, 그 위에 무수한 디테일을 쌓아올릴 수 있는 중심을 잡고 간 것이고, 독자로서 나는 이미 여기에서 KO패 당하고 간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만화를 그리니까 아무래도 캐릭터성에 제일 집중을 하게 되는데. 우와, 이거 진짜 시대를 너~~~~무 앞섰는데? 이게 발표된 시기가 거의 80년대? 70년대? 그쯤 되지 않나?? 이런 펄펄 끓는 캐릭터성이란... 집요하게 무속만 파서 집안 실권을 장악한 어머니, 3대독자로 태어나서 군대까지 굳이 가서 거대한 지프를 몰며 해방감에 사로잡히는 젊은 아버지, 오컬트의 중심이 되면서도 어린아이다워 천진 + 오싹의 시너지가 폭발하는 동생, 그리고 여기에 질질 끌려다니면서도 총명함을 잃지 않는 줏대있는 소년인 형아까지..... 그냥 이건 솔직히.... 말이 안된다... 이 캐릭터성만으로 이미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가 확실하게 만들어져 버린다. 만화를 그리는 입장에서 이런 캐릭터성을 정립하는 방법론은 내가 어떻게든 연구해서 내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그런 중요한 숙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성비가 넘친다는 거다. 이게 EBS에서 무료로 풀리는 수능특강 이런 데 실린 거다 보니까 그냥!!!! 구글 켜가지고 ‘우리들의 날개’ 치면 전문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그냥 당신이 누구든지 지금 어디에 있든지 휴대폰으로 이거 검색해서 보면 한 15분~20분 안에 이런 놀라운 경험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너무너무 손쉽게! 그리고 빠르게!!!!! 나는 만화를 시작할 때쯤부터 ‘핑거스낵 컨텐츠’라는 거에 관심이 많았고, 이건 손가락으로 집어먹는 간식처럼 독자가 어렵게 소화해낼 필요 없이 가볍게 볼 수 있는. 출퇴근길 머리에 스파크 한번 튀겨주고 갈 수 있는... 그런 가성비 컨텐츠를 뜻하는 거고. (이거 때문에 초보 작가로서 내 창작론은 질보단 양, 주제의식보단 말초적 자극이다. ㅋㅋㅋㅋㅋ) 근데? 우리들의 날개는..... 그걸...... 이미.... 아주 오래전에...... 했다....... 우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건 내 뇌를 재정렬시키다 못해 실제로 내가 습작한 거의 모든 작품들에 다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것도 지대한 영향을. 너무 완벽하지 않은가. 그냥 이대로 따라하면 뭔가 자꾸 나온다!!!! 그래서 솔직히 화가 나기도 했다. 이리도 기념비적이며 이정표 같은 소설을.... 왜?! 주목을 하지 않는 건가? 물론 여기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도 분명히 많을 거고 이건 뭐 당시에 유명한 문학 잡지에도 실리고 했지만, 내가 말하는 건 요즘이다. 아니 수능특강에 실어놓으면 끝이야? 문화예술계에 투자하는 그런 돈많은 선배님들. 다 뭐하는 거지? 내가 막 경험이 많고 이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작품이 이토록 뭔가 후가공이 없다는 건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 정도면 누군가가 이걸로 흩어져 있는 매니아층도 끌어모으고 굿즈도 만들고 각색도 하고 뚝딱뚝딱 뭐가 생겼어야 하는데, 그게 맞는데...? 아니, 미국이 슈퍼히어로로, 일본이 미소녀로 세계를 평정하는 동안 왜 한국은... 한호 두호 형제 같은 미친 캐릭터성을 그대로 냅두고... 선배님, 혹시 돈냄새를 잘 못... 맡으세요...? 이토록 대단한 작품이... 원석도 아니고 그 자체로 다이아인 작품이 그 파격성에 걸맞는 조명을 받지 못한다는 건 너무나도 슬프고 또 슬픈 일이다....
결론은!!!!!!! 나에게 킹갓제너럴정석지름길이 되어준 이 작품을 위하여. 나는 어떻게든 후가공을 해낼 거란 말이다. <우리들의 날개>는 독학으로 창작을 공부한 나에게 있어서는 길을 닦아준 작품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걸 그냥 아예 새로운 장르로 명명하고 살려보려고 한다. 이름도 붙여놨다. ‘코리안 브릭 호러’라고. 아주 견고하고 규칙적인 벽돌 벽에서 벽돌 딱 하나만 빼내면. 벽은 지탱되겠지만 그래도 무섭잖아? 또한 누구라도 그 구멍에서 눈을 뗄 수 없을 테잖아? 코리아가 붙은 건... <우리들의 날개>는 시대상을 완벽하게 반영하여 한국에서만 딱 낼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있고. 그런 의미로 붙여본 이름이다. 습작 작품도 몇 개 써놨다. 웹소설 <카세트테이프>를 완결내면서 실험을 해보았고, <curiosity kills the cat>이라는 만화도 콘티를 짜두었고, 지금은 단편소설 두 편을 기획 중에 있다. (이 단편 두개를 통해서 장르적 특성을 확실히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내 목표는 분명하다. 이게 장르라는 걸 알아볼 수 있도록 정체성을 확립하고, 또한 누구라도 쉽게 만들어낼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포맷까지 짜놓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우리들의 날개>에 수식어를 붙일 거다. 코리안 브릭 호러의 시조새라고.
음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좀 많이) 말이 안되긴 한다... ^^;; 그래도 지금 나는 20대다!!! 20대는 원래 깨지는 거잖아. 어딜가도 그런 거잖아, 20대는 원래 어리석고 힘든 거잖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다. 그러니까 서른 살 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해봐야겠다. 내가 가진 모든 패를 다 까서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이게 반드시 돈이 된다는 걸 보여드리겠다. 내게 있어 어금니에 짓씹히는 벅차오르는 감정이란, “내가 돈 건 말은 이겨야 한다”는 것이니.
중간에 참여할 수 없는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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