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읽기] 조지수 장편소설 <마지막 외출> 함께 읽어요!

D-29
삶은 살아지는 것이지 소유되는 것은 아니야. 언어도 예술도 마찬가지야. 그것은 말해지고 감상되고 사유되는 것이지 소유되는 것은 아니야. 소유는 모든 것을 망쳐. 소유하는 순간 우리 의식은 그것을 깊은 무의식 속에 밀어 넣고는 더 이상 살펴주지 않아. 사실은 소유하지도 못하지. 단지 그것들을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느낄 뿐이지. 한때 관심을 가졌지만, 곧 의식에서 사라지고 말지. 사랑을 결혼으로 물화시키듯이 모든 것들을 물질화하는 거야. 사랑을 소유하게 된 거지. 소유는 고착이야. 생명을 위장하는 시체야.
마지막 외출 p.203, 조지수 지음
나스타샤의 흡입력에 조지수라는 작가의 소설에 매력을 느꼈었는데 새로운 작품을 만나게되서 너무 반갑습니다. 아직 세빌리아의 이발사 까지 밖에 못 읽었지만, 나스타샤와는 다른 빠른 전개와 속도감으로 두근두근하며 읽고 있습니다. 매 장면 덤덤하게 말하면서 그림처럼 그려지는 문체가 너무나 매력적이고, 결말이 궁금해서 빨리 읽고싶다가도 끝나면 아쉬울것 같아서 아끼면서 읽게 되네요.
여주인공의 시점에서 소설이 진행되어서 주인공의 심적 상태나 심리 변화를 좀 더 가깝게 느끼게 되는 거 같아요. 서사에서 특별한 서스펜스가 없음에도 긴장감 있게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저는 아직 더 초입인데(공적지원에 대하여), 아직까지의 느낌은, 작가가 소설의 형식을 빌어 대중에게 하고싶었던 철학얘기들, 학계 전반의 ‘그사세’ 이야기, 작가가 지향하는 바…를 표현하고싶었던게 아닌가 할 정도로 철학의 비중이 크게 느껴집니다. 이를 기반으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계속 기대하며 읽고 있습니다.
앞쪽은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쌓아가는 부분인데, 말씀처럼 철학과 예술, 학문 등과 관련한 내용의 비중이 적지 않은 편이죠. 술술 읽기는 쉬운데 이해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K교수가 어떠한 사람인지, 그의 성격과 취향, 삶의 가치관은 어딜 향해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죠.
99페이지까지 읽은 느낌은.. 프롤로그에서의 궁금함이 약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긴 하네요. 예측하지 못한 느낌. 화자를 통해 작가의 철학적 지식을 표현하는데, 일반인의 기준으로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고 봅니다. 또한 작가의 편협한 시선도 눈에 들어옵니다. 76페이지에 "경제적으로 충분히 성공한 일련의 인사들이 사회주의적이라고 한다면 그들의 열등감은 경제적 동기를 갖지 않는다. 그들 역시도 질투심과 열등감에 물든 불쌍한 영혼들이다. 그것은 아마도 학벌의 상대적인 처짐 혹은 고시 낙방과 같은 것일 터이다. 이 열등감과 병든 자존감과 사회적 명예욕과 허영이 역겨운 그룹을 만든 것이다." 상당히 극단적인 가치관이네요. 그에 반해 자유주의자에 대한 비판은 약한 편입니다. 물론 소설 속 화자의 생각뿐일수도 있지만 소설의 전반적인 흐름이 화자나 K교수를 통한 철학적 주장에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다채로운 문장과 흡입력있는 스토리로 독자에게 매혹적인 소설입니다 "빛나는 그의 입술이 내 이마에 금빛의 봄 햇살을 뿌려줬다. 팅커벨의 금 조각을." "이 최초의 입맞춤은 들어가지 말아야 할 세계를 예고하고 있다. 생명이 설렘. 그러나 나를 한없이 눈물짓게 할 그 설렘. 평온을 위해서는 겪지 말아야 할, 그러나 생명의 개화와 쇠락을 위해서는 겪어야 할 그 입맞춤."
프롤로그에서의 궁금함이 궁금함으로 남은 채 예측 못한 방향에서 시작되는 거 맞죠. :) 독서 중 아쉽게 느껴지신 부분은 충분히 공감합니다. 말씀처럼 소설의 전반적인 흐름이 K교수의 철학 강의에 상당부분 맞춰져 있으니까요. 소설의 큰 주제인 '사랑'에 관해 펼쳐질 앞으로의 이야기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과 대화가 이어질 거예요. 서사보다 표현에서 매력을 발견하는 안목이 있으셔요. 이어지는 독서에서도 그런 즐거움을 계속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지수 장편소설 <마지막 외출> 함께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1주차(11/14~23): 프롤로그~288쪽(‘이별’ 챕터 끝) 입니다. 발제자를 지정해서 이야기를 나누진 않으려 해요. 누구나 편하게 발제를 하셔도 좋습니다. 서로의 생각과 감상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체가 깔끔해서인지 빠르게 읽힙니다. 소설 첫 부분의 시대적 배경이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인듯 하네요. 앞으로 20여년의 작중 인물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런지 궁금해서 책장이 빠르게 넘어갑니다. 술술 읽히긴 하는데, 철학사와 예술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으면 작중 인물인 K교수와 화자인 주인공의 성격과 심성, 생각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저는 앞쪽을 이해되면 되는대로 아니면 아닌대로 빠르게 넘어가면서 읽어가다가 다시 앞쪽을 돌아와서 읽었는데, 조금 어렵게 느껴졌던 K교수의 철학 수업에서의 말들이 정말 깊이있고 대단한 말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철학 사상과 예술 흐름을 엮어서 설명하는 게 가능한 일인건지. 머리 똑똑한 여주인공이 K교수를 천재라고 바로 느낄만한 부분이었어요. 애매하게 어물쩡 넘어가고 비판이나 평가가 두려워 눈치만 보는 아카데미 집단과 달리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은 이렇다고 말하는 부분들도 개인적으론 호감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앞으로 진행될 얘기들이 왠지 조금 두렵기도 하네요. 소설이 아니라 거울을 들고보는 느낌이랄까요.
시대적 배경은 말씀하신 시기가 맞습니다. 거울을 들고 보는 느낌이란 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는 말씀이실까요? 조지수 작가님 문체가 간결하다보니 종종 어떤 문장에선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는 거 같아요. 속마음이란 보통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회적 관계 속에선 보이고 싶지 않은 날것일 때가 많죠. 어떤 것은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방어기제처럼 스스로 눈을 감기도 하고요. 그런 이야기들이 진행될 거 같아서 두렵다고 하신 듯 합니다.
쓰담님 정말 날카롭고 지적이시네요. 리뷰에서 배울 것이 많네요. 고맙게도.
전 오늘부터 차근차근 읽어 나가려고 합니다. 일단 인증샷 공유드립니다. ^^ https://www.instagram.com/p/Czh_JDOLRgr/
천천히 즐거운 독서되시길 바라요. 시간 되실 때 종종 감상도 들려주시면서요~ :)
왠지 이승우 작가님의 [사랑의 생애]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교수와 여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속에서 작가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게 되네요. 사랑을 하지만 서로 다른 층위의 사랑을 하는 이들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궁금해 하며 읽고 있습니다. 문장수집을 좋아하는 저는 인덱스를 엄청 많이 붙였어요.
존재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순간을 사랑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 같아요. 하지만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또한 차이가 매우 크죠. 실존주의자에게 사랑이란 매일 갱신하는 삶 그 자체와 다를 게 없어야 하니까요.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많이 만나시길 바라요~ :)
때때로 떠오른다. 아름다운 아가씨. 첫사랑의 아가씨. 열에 들뜬 아가씨. 수줍어하던 분홍 뺨의 아가씨. 가냘프고 아름다웠던 아가씨. 눈을 피했던 아가씨. 망사를 두른 듯. 베일 뒤의 아가씨. 듣기 어려웠던 그녀의 희망. 젊음을 견뎠을까? 어느 겨울바람에 날아가지 않았을까? 깃털같은 영혼이 전부였으니...
네 감사합니다 😊
'이별' 챕터까지 읽었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소설이네요. 사랑에 관한 선배의 생각이나 태도는 오히려 이해가 됩니다. 저도 평소에 유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사랑을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사랑이 더 유지될 수 있고, 사랑이 깊어질 수 있다는 것. 모든 남녀의 사랑은 왜 이별이거나 결혼이어야 하는가? 라는 의문. 주인공의 이중성과 현실에 기반한 사랑의 변천사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철학과 예술에 대한 지식의 과도한 열람이 서사의 흥미를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선배는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철학을 비판하지만, 그 또한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지식의 향연을 끝없이 늘어놓고 있죠. 주인공과 선배의 철학과 예술에 대한 대화가 좀 더 일목요연한 흐름이라면 오히려 배움의 측면에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운동권이라 지칭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비판을 하는데, 그 시기 그는 과연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네요. 시대에 의해 사람의 행동을 규정해야 하니까요. 만약 지금과 같은 시절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엄혹한 시기에 먹고 살 걱정 없는 부유층의 자녀로서 현실의 수 많은 문제를 외면하고 학문에 집착하고 연애만 한 그 사람을요. 그 시대 운동권이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민주화된 세상이 가능했을지 의문이 듭니다. 사회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각자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존중해야 하지만,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깊이 없는 비판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내용을 끝까지 읽어볼 생각입니다. 제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있거나 앞으로 그려질 서사에 대한 기대를 가지면서요.
흥미롭게 읽어 나가고 있으시군요~ :) 무소유의 삶을 산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거 같아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조차도 매우 어려운 일일테고요. 결혼이 사랑의 종착지라는 인식은 현시대엔 많이 달라진 거 같아요. 그러고보면 문득 사랑보다도 결혼이 더 우선시되었던 시대를 지나온 지가 얼마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당한 나이되면 빨리 결혼해서 애 낳고 살면 된다, 사랑이 밥 먹여주냐, 결혼해서 살다보면 정이 든다 등등 개인의 사랑보다 결혼이라는 사회 제도가 더 앞서 있었던 시절도 있었네요. 요즘은 그런 얘기 했다간 인간 관계가 다 끊어질 거 같아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보기 드물 거 같고요. :) 10년 뒤, 30년 뒤, 50년 뒤, 100년 뒤의 사람들은 지금 시대의 사랑을 어떻게 평가하고 기억할까요.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을 사람끼리 했었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완독하고 감상을 남기고 싶었는데 너무 늦어져서 짧은 단상을 남깁니다. (여행까지 읽었습니다.) 프롤로그에 잠깐 등장한 베르그송에 대한 언급이 의미심장해요. 더 읽어봐야 알겠지만 ‘이미 없는 그와 아직 없는 그녀의’라는 표지 문구 때문인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요. 교수와의 시간이 사라진 주인공의 현재에 어떤 지속을 만들었을까요. 서사와 사상이 교차하며 흘러가는 이야기가 현학적인 느낌도 들고, 흔한 구성은 아니라 재미있어요. 철학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이 호불호가 갈릴 부분으로 생각됩니다. 주인공이 교수를 정말 우러르고 숭배하는 것이 잘 느껴져요. 전형적인 교수자의 말투와 사상이라 저는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소피스트 같은 느낌도 있고요. 문체가 좀 특이하게 느껴지는데 외국에서 오래 공부해서 우리말이 다소 미숙한 책 속의 교수가 직접 쓴듯한 느낌이 들어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신선하게 다가온 문장도 많았어요. 인상 깊었던 문장 몇 개를 남기고 다시 읽으러 갑니다! ^^ - 나는 이 침묵조차도 녹음할 것이다. (p. 41) - 이 자유로운 질문이 나중에 우리의 친밀성을 위해 봉사하게 된다. (p. 49) - 간절히 알고자 하나 아직 모르는 문제에 대해 지성은 쉼 없이 작동한다. (p. 63) - 스스로가 지니지 않았고 또 지녀본 적조차 없는 것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줄 수 있겠는가? (p.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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