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 철학의 주요 흐름은 훑어만 보기도 벅찬데 주제별로 소개하는 것이 좋습니다. 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여겨지는 1장, 2장, 3장부터 현실 속에서 숙고할 수 있게 하는 4장, 철학이 제시하고자 하는 목표를 스스로 생각해보게 만드는 5장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성을 따라 읽다 보면 이해도 빠르고 더 깊게 탐구할 수 있어요.
✔️ 더 알아보고 싶은 주제를 탐독할 수 있도록 관련서적을 소개해주는 것이 특히 좋습니다. 가독성 높은 책으로 골라주신 따뜻한 배려에 더 감사합니다.
✔️ ‘들어가며’ 부분에서 대중문화나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화두를 열어주는 부분이 정말 좋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숙고하며 철학하는 순간을 잡아 손을 끌어주는 느낌이에요. 자연스럽게 주제에 대한 흥미가 올라갑니다. 대머리지수도 재밌어요, 아이스 브레이크!
대머리 지수는 단순히 내용의 난해함 보다는 기존 철학의 명제를 얼마나 뒤집었느냐에 따라 잘 평가된 것 같습니다. 각자 느끼는 난이도는 다르겠지만, 철학사에서 줄기가 된 생각의 흐름을 따라 곁가지를 뻗거나 방법론을 심도 있게 연구한 내용은 대머리 지수가 낮은 편이고,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처럼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 칸트와 헤겔은 대머리 지수가 높네요. (아직 뒷부분은 못 읽었습니다. 발제를 위해 맡은 부분부터 서둘러 읽었어요 ^^) 저는 언어철학 부분이 가장 어렵게 느껴졌어요.
1장을 읽다보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주장이 보입니다. 조금씩 다른 단어를 사용하지만 겹치는 부분도 꽤 있는데요. 2장으로 넘어가면 전혀 반대되는 주장도 있고요. 저는 여기에 집중해서 질문을 드려볼까 합니다.
[질문 1.] 필연적이고 예정된 자신의 존재와 그에 따라 사는 자유는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요?
- 스피노자: 인간 자신을 포함한 세상 만물은 필연성에 따라 활동한다. 사물의 본성에는 그 무엇도 우연적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현자는 자신과 신과 사물을 영원한 필연성에 의해 인식하며, 존재하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고, 늘 영혼의 참다운 만족을 누린다. (p77-78)
- 라이프니츠: 인간의 자유는 ‘임의 선택’이라는 의지적 결정을 의미하지 않았다. 자신의 발전 방향에 순응하면서 방해 없이 자아를 실현하는 것, 자신에게 예정돼 있는 존재로 되는 능력이 곧 자유라고 보았다. (p87)
- 헤겔: 인간의 자기의식은 자기 외부의 대상을 통해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확립된다고 말한다. 자기의식의 확립에는 또 다른 중요한 단계가 있는데, 바로 또 다른 자기의식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승인은 종종 상호적이다. (P144)
[질문 2.]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절대적 도덕의 명제가 가능할까요?
(살인의 예를 든다면, 대부분 그것은 악이라고 판단하지만 a. 심각한 위협에서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 b. 전쟁터에서 적군을 향한 행동, c. 총기난사범을 제압하는 과정 등 수많은 예외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같은 행동이라도 의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의도’의 자리에 다른 단어를 넣어도 수없이 의미가 달라지겠습니다.)
- 흄: 흄은 도덕적 판단은 이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없으며 주관적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성의 역할은 참/거짓을 발견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감정과 의지는 참/거짓과 아무 관련이 없고, 다만 사실 문제에 부합하거나 부합하지 않을 수 있을 뿐이다. (p122)
- 프레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단어의 내포와 외연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프레게는 샛별과 개밥바라기가 동일한 대상을 지칭한다 해도, 둘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p163)
[책 증정(선착순)] 철학자 47인과의 대화 『하루 10분, 철학이 필요한 시간』
D-29
위버m
작가와책읽기
“ 철학자들은 언제나 깊이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흔들어 깨우고자 한다. 니체는 특히나 더욱더 격렬하게 그러했다. 그는 울부짖기라도 하듯 고함치며 거칠게 사람들을 흔들어댔다. 철학자들을 가수에 비유한다면 칸트는 속사포 래퍼, 니체는 헤비메탈 록커 같달까. 그런 그의 가장 유명한 하드록 작품이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
『하루 10분, 철학이 필요한 시간 - 삶에 대해 미치도록 성찰했던 철학자 47인과의 대화』 --- 「33강 프 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위저쥔 지음, 박주은 옮김, 안광복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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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철학이 필요한 시간 - 삶에 대해 미치도록 성찰했던 철학자 47인과의 대화위대한 철학자 47인이 철학 고전에서 다루었던 문제들을 그대로 주된 주제로 삼아 오늘날 우리의 삶을 꿰뚫는 중요한 질문 50가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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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ein
안녕하세요? 함께 나눠보고 싶은 것이 있어 발제로 제안합니다.
32강의 주인공은 쇼펜하우어입니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생명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이며, 삶은 욕망과 환상에 이끌려 굴러갈 뿐 다른 내재적 가치는 없다'(p.381)고 단언합니다. 이같은 비관적 세계에서 '종교인으로 존재하는 것'과 '예술과 철학에서 위로를 구하는 것'으로 인간의 탈출구도 제안하고 있습니다.
쇼펜하우어의 두 가지 탈출구에 모두 동의하십니까? 제 경우, 종교인이지만 비종교인보다 더 욕망에 종속된 사람을 본 적이 있고, 예술가의 엘리트주의와 허위의식도 목도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탈출구로서의 근본적인 의미는 알겠으나 이를 실천하는 인간의 행태는 그렇지 못한 경우겠지요.
쇼펜하우어的으로 얘기하자면 고통과 권태 뿐인 이 삶에서 종교, 예술, 철학 이외 다른 탈출구가 존재할까요? 존재한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같은 책을 읽고 나누는 책친구님들의 탈출구를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종교, 예술, 철학이 일개 필부인 저한텐 너무 크고 높고 광활해서요. 감사합니다.
공달복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정작 자신의 행복론에서는 사람들의 정신상태에 따라서 동일한 세계가 달리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달리 말해서 쇼펜하우어 자신도 삶 자체가 고통이라고 말한다기 보다는, 고통의 원인은 우리가 우리에게 존재하는 이성적 능력이 감각적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는 상태에 있고 이성적 능력을 이러한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고유한 능력을 전개하게 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행복해 질수 있다고 말합니다.
poiein
공달복님, 안녕하세요? 코멘트 감사합니다.
저는 타인의 욕망과 제 자신의 욕망을 구별하는 게 어렵고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직업을 구하고 직장을 선택할 때 , 학교와 학과를 선택할 때, 하다못해 아파트를 살 때 브랜드에 대한 부모님과 나이차 나는 형제의 조언에 흔들리지 않기가 무척 어려웠어요. '감각 적 욕망의 노예 상태'일 뿐 아니라 그 욕망의 주체가 타자에 의한 것일 때 한없이 작고 하찮아져서 울적하곤 했죠. 그래서 철학에 다가서고 싶었구요. 공달복님의 말씀을 접하고 오래 제쳐 두었던 라깡의 책을 어제부터 다시 펼쳤습니다. 고맙습니다.
CTL
쇼펜하우어를 다룬 장의 마지막에 '고독하지 않으면 저속해진다'라는 격언을 몸소 실천하면서 살았다니, 자아를 단념하고 종교나 예술에 진정으로 귀의하는 것이 홀로 살아가면서 욕망에의 집착에서 오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나 봅니다. 저는 두 분야에 대해서는 수긍이 가는데 예술과 철학을 같은 카테고리에 넣고 '위로'를 구할 수 있다고 본 게 흥미로왔어요. 저자 본인이 철학 공부에 일생을 바쳤으 니 그런 것일까요? 예술은 그래도 일종의 감각에 의지하여 정신적인 가치의 교감 내지 재현을 추구하는데 철학은 그러한 구체적인 도구가 없으니 좀 다른 분야가 아닌가 싶은데요...'철학'을 크게 보아서 '문학'에 포함시켜 본 것이라면 구태여 예술과 철학을 구분할 이유도 없었을 것 같고요.
poiein
그렇죠, 어떤 문학 작품은 웬만한 철학서보다 더 인생의 의미와 질문을 던지게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철학도 문학에 포함될 수 있을 테고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문학이 고향'이라는 발언이 나왔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제 짧은 생각에 종교, 철학, 예술 이 셋은 진선미를 향유케 하는 것들이라 쇼펜하우어가 인간의 탈출구로 제시한 것 같아요. 일상을 예찬케 하는 것들이구요. CTL님 덕분에 혼자 고요히 생각에 잠겨, 충만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위버m
종교인으로 존재하는 것은 “파도가 굽이치는 바다에서 홀로 배를 타고 나아갈(p.380)” 때 지표로 삼을 등대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등대를 보았다고 모두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종교인이지만 더 그릇되게 살아가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요.
쇼펜하우어는 이런 생각은 아닌 것 같고, 삶에의 의지에 나오는 생식을 ‘단념’하는 것으로 벗어난다고 본 것 같아요. 이게 진정한 탈출인지는 좀 의문이 들지만요.
저는 이 부분도 참 재미있었어요. 같은 욕망을 스피노자는 정념passion이라 하고 쇼펜하우어는 의지will라고 이름 붙이고 관점도 달랐던 것이요.
-
예술에 대한 부분은 제가 생각이 복잡해서 정리가 잘 안되는데요. 쇼펜하우어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감정이나 생각을 객관적인 대상으로 전이시킨 것을 예술이라 생각한 것 같아요. (object의 의미로 객체)
그래서 예술은 의지와 표상의 양면을 하나로 합일한 결과가 되고, 성취 이후에 오는 공허나 고통에서 벗어난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은 poiein님이 적어주신 것처럼 근본적인 의미는 제시했으나 실천하는 사람의 몫으로 남 겨졌다고 생각해요.
poiein
아.... 스피노자 챕터를 분명히 읽었는데 언급하신 부분은 제가 놓쳤네요.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이야~ 예 술의 정의가 정말 멋진데요. 의지와 표상의 양면을 하나로 합일한 결과, 바로 그런 예술 앞에서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경험을 갖는 것 같아요. 참! 닉네임 위버m은 위버멘쉬와 연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위버m님, 코멘트 감사합니다!
파숑루루
철학을 몰라 하나씩 읽기에도 좀 힘들어서 이름을 아는 사람들만 쏙쏙 뽑아 읽고 있어요. 아리스토텔레스 하나 읽고 니체와 푸코 편 읽었는데, 철알못에게 딱인 책인 것 같아요!!
파숑루루
당신이 심연을 응시할 때 심연도 당신을 응시하고 있다.
『하루 10분, 철학이 필요한 시간 - 삶에 대해 미치도록 성찰했던 철학자 47인과의 대화』 448p, 위저쥔 지음, 박주은 옮김, 안광복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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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형
철학책이라고 해서 사실 걱정이 많이 됐는데 내용이 강의형 식처럼 짧게 구성이 되어 막상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부담이 덜했던 것 같아요.
제가 발제해야 할 2주차 분량 중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제일 흥미로웠습니다. 요즘 들어 참 많이 고민하고 있던 지점과 맞닿아 있기도 했고, 어렸을 때는 성선설을 믿었는데 지금은 인간의 본성은 본디 악하지 않을까 쪽으로 기운 것 같아서요. 그래서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을 잊지 말란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내용이 공감이 갔어요.
“모든 일을 함에 있어 스스로 선량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선량하지 않은 수많은 사람 속에서 파멸하고 말 것이다.”
“군주는 여우처럼 함정을 피하는 동시에, 사자가 돼 이리떼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어야 한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만한 강렬한 문장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같은 새로운 혼란의 시대에 어떤 리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속한 조직엔 리더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어요. 직함을 단 사람들은 있겠지만 그들이 존경할만한 리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바탕으로 어떤 리더가 좋은 리더일지, 앞으로의 시대는 어떤 리더가 필요한지 생각해 볼 시간을 갖는다면 좋지 않을까 해서 이런 발제를 던져 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CTL
마키아벨리의 리더쉽 이론은 1500년대 이탈리아 피렌체를 둘러싼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서 평가되어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각 도시국가들이 제대로 된 자체 군대만으로는 부족해서 용병을 사고, 유럽패권국가와 교회권력의 부침에 따라 시기적절하게 동맹을 맺고 끊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법이나 정치제도가 자리를 잡지않아서 무력봉기로 권력자들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일쑤였던 일반시민과 노동자 하층민을 제압하는 것이 중요했지요. 마치 중국의 전국시대에 아마 마키아벨리식의 리더쉽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마키아벨리가 리더쉽의 덕목으로 유연한 대처법을 강조하며 정치와 도덕을 분리시킨 점은 높이 사지만 오늘날 법치주의 정치가 어느정도 실현된 상황에서는 특히 우리나라같이 전통적인 유교가치관이 아직도 남아서 공적인 영역에 속하는 인물들에게 높은 도덕적인 가치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마키아벨리적인 리더는 하나의 전투는 이길지 몰라도 전체 전쟁을 이기는 인물은 못 될 것 같습니다.
siouxsie
저도 이제 한 조직에서 리더격으로 일한지 15년쯤 되어 가는데, 그 사이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건(저희 사장님에게 유일하게 배울점, 사실 놀러 다니시느라 바쁜 것 뿐일 수 있지만), '본인이 리더라는 생각을 버린 사람'이 가장 리더로 배척당하지 않고 그 사람을 따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근데 인간이 참 간사해서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이 제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는 순간 드는 생각이 참 천박하게도 '어디서 감히......'니까요. (이 말 쓰는 순간에도 부끄럽습니다.)터무니 없는 의견 같아도, 그 사람도 일을 배운 저에게 그 정도로 얘기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니었을 거고, 생각을 많이 했을 텐데 순간 드는 감정에 휘둘려 버립니다.
일한 경력과 노력을 전혀 고려하지 말자는 것이 아닌, 본인이 위치적으로 아무리 우위에 놓여 있더라도 '인간 대 인간'이란 생 각을 갖고 존중하는 태도가 뜨거운 태양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듯 저절로 그 리더를 따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CTL
3주차 발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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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장 이후의 내용에서 제게 인상적인 부분은 두 가지 대칭적인 관점들입니다. 첫째는 마르쿠제와 푸코가 말하는 것으로. 과학과 경제의 발달로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회가 되어갈수록 통제와 감시가 늘어나고 사람들은 현재에 누리고 있는 풍요를 잃기 두려워 지배 시스템에 더욱더 순종적으로 적응하려 애쓴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정, 비판, 상상의 능력이 결여된 ‘일차원적 인간’이 양산되고 사회는 자유를 잃어버린 전체주의로 흘러간다고 말합니다.
두번째는 마지막 장, 가다머의 해석학을 다루는 부분에서 말하는 ‘상대주의’의 위험성인데요, 상대주의는 유럽 역사에서 ‘역사주의’로 표현되었고 이는 모든 것이 역사 속에서 그럴 만한 이유로 인해 나타나고 형성된 것이므로 함부로 비난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관점하에서 사람들은 빠르게 허무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상반되는 두 현상이 현대사회에서 동시에 관찰되는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에는 다양성을 인정하려다보면 절대적으로 옳고 나쁜 건 없어져 버리니 혼란해져서 포기하게되고 차라리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인정받는 가치만 단순하게 수용하고 추종하게 되는게 아닌가 합니다.
질문 1. 함께 책을 읽으신 분들은 이 두 가지 관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셨는지요?
질문 2. 그리고 제게는 인간적이고 겸손한 면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에드문트 후설이 말한 ‘철학자들은 인류를 위한 공무원(p. 410)’이라는 말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정말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철학은 공무원이 되기위해서는 공부할 필요도 없어진 분야가 되어서 씁쓸할 뿐인데요, 여러분들은 이 말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위버m
1번 질문에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답변 1.
상대주의자 같은 입장이지만 ^^; 두 관점이 모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차원적 인간이 만들어지는 세상은 일견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의 욕구와 자유, 선택 모두 만들어진 허구의 개념일 수 있겠습니다. 상대주의가 끝까지 가면 CTL님이 적어주신 것처럼 혼란한 디스토피아가 될 것 같고요.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숙고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토론하며 이해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가다머가 말한 지평융합은 굉장히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지평융합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가능한 일로 생각됩니다.
답변 2.
굉장히 재미있는 비유였어요!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는 점, 비교적 괜찮은 명예, 낮은 경제적 수입 등 다양한 부분이 비슷합니다.
아마 후설은 철학자가 인간에게서 멀어지지 말라는 의미로 그런 표현을 한 것 같아요. 철학은 언제나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지만, 인간을 빼놓고 나아가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늘 현실 속에서 약동하며 시대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나가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입니다.
siouxsie
질문 1. 저도 한 때 다양성을 다 인정해 버리면 옳고 그름이 도대체 존재하기는 하는가에 대한 딜레마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얕은 지식과 사유로 결론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진리가 부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도 없이 철학적 고찰을 하고,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들어 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상상능력 결여=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자동적으로 떠오르고, 가능하면 모든 문제를 다각도로 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순종적이고, 일차적이지는 않되, 모든 건 제 선택의 문제이며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제가 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지금이야 안락한 시스템에 묻혀 조용히 살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게 항상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이건 기업 비밀 ㅎㅎ)
통제와 감시도 최대한 이용해 먹으려고 ‘평소에도’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 보고요.
질문2. 철학이 공무원이 되기엔 2023년엔 다른 공무원들이 너무나 많네요. ^^;;
‘철학’이란 단어가 사람들에게 철벽을 치게 만드는 것 같아, 단어 변경부터 요청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단어가 바뀌면 대상에 대한 생각도 바뀐다는 철학자들의 말이 희미하게 떠오릅니다.
그래서, 철학 이야기이지만 겉모습은 보송보송해 보이는, 얕을 수는 있으나 가볍고 재미있는 책이나 매체부터 주변인들에게 추천하고 물들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발부터 담가야 나중엔 몸이 들어가는 거니까요. ^^
(철학을 사랑하시는 분들 중 이런 걸 싫어하시는 분들도 많은 걸로 압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아이스
안녕하세요! 출판사 알레입니다. :)
여러분, 즐거운 금요일입니다.
독서 모임도 어느새 막바지에 다다랐는데요. 독서 모임을 통해 철학하는 즐거움, 사유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느끼 고 계신가요?
각자의 시선이 담긴 흥미로운 질문과, 질문에 대한 다채로운 의견을 보며 저도 철학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요. 많은 분들이 이번 모임에 적극적이고 활발히 참여해주었으나, 예정된 일정에 발제를 완료하지 못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래서,
모임을 한 주 연장하려고 합니다. :)
이대로 끝나는가 싶어 아쉬웠던 분들도 계시죠?
아직 발제에 참여하지 못한 분들은 다음 주까지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질문들을 꼭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나 깜박하신 분들을 위해 닉네임을 태그하겠습니다.
@맨손호랑이 @파숑루루 @꿀땅콩 @이불 @똑똑한녹용씨
여러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siouxsie
저도 종교인이지만, 종교 속에서 '신의 이름으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인간상들'에 환멸을 느껴 예술과 철학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1인입니다.
사실 저 3개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인간사에 존재하나 싶기도 하네요. 역으로, 예술과 철학이 광활한 만큼 -예를 들면, TV, 만화, 게임 등도 전 예술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벗어나지 않더라도 가볍고 재미있게 퐁당퐁당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종교, 예술, 철학 이 단어들이 본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희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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