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책이라고 해서 사실 걱정이 많이 됐는데 내용이 강의형식처럼 짧게 구성이 되어 막상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부담이 덜했던 것 같아요.
제가 발제해야 할 2주차 분량 중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제일 흥미로웠습니다. 요즘 들어 참 많이 고민하고 있던 지점과 맞닿아 있기도 했고, 어렸을 때는 성선설을 믿었는데 지금은 인간의 본성은 본디 악하지 않을까 쪽으로 기운 것 같아서요. 그래서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을 잊지 말란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내용이 공감이 갔어요.
“모든 일을 함에 있어 스스로 선량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선량하지 않은 수많은 사람 속에서 파멸하고 말 것이다.”
“군주는 여우처럼 함정을 피하는 동시에, 사자가 돼 이리떼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어야 한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만한 강렬한 문장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같은 새로운 혼란의 시대에 어떤 리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속한 조직엔 리더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어요. 직함을 단 사람들은 있겠지만 그들이 존경할만한 리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바탕으로 어떤 리더가 좋은 리더일지, 앞으로의 시대는 어떤 리더가 필요한지 생각해 볼 시간을 갖는다면 좋지 않을까 해서 이런 발제를 던져 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책 증정(선착순)] 철학자 47인과의 대화 『하루 10분, 철학이 필요한 시간』
D-29
연형
CTL
마키아벨리의 리더쉽 이론은 1500년대 이탈리아 피렌체를 둘러싼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서 평가되어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각 도시국가들이 제대로 된 자체 군대만으로는 부족해서 용병을 사고, 유럽패권국가와 교회권력의 부침에 따라 시기적절하게 동맹을 맺고 끊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법이나 정치제도가 자리를 잡지않아서 무력봉기로 권력자들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일쑤였던 일반시민과 노동자 하층민을 제압하는 것이 중요했지요. 마치 중국의 전국시대에 아마 마키아벨리식의 리더쉽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마키아벨리가 리더쉽의 덕목으로 유연한 대처법을 강조하며 정치와 도덕을 분리시킨 점은 높이 사지만 오늘날 법치주의 정치가 어느정도 실현된 상황에서는 특히 우리나라같이 전통적인 유교가치관이 아직도 남아서 공적인 영역에 속하는 인물들에게 높은 도덕적인 가치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마키아벨리적인 리더는 하나의 전투는 이길지 몰라도 전체 전쟁을 이기는 인물은 못 될 것 같습니다.
siouxsie
저도 이제 한 조직에서 리더격으로 일한지 15년쯤 되어 가는데, 그 사이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건(저희 사장님에게 유일하게 배울점, 사실 놀러 다니시느라 바쁜 것 뿐일 수 있지만), '본인이 리더라는 생각을 버린 사람'이 가장 리더로 배척당하지 않고 그 사람을 따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근데 인간이 참 간사해서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이 제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는 순간 드는 생각이 참 천박하게도 '어디서 감히......'니까요. (이 말 쓰는 순간에도 부끄럽습니다.)터무니 없는 의견 같아도, 그 사람도 일을 배운 저에게 그 정도로 얘기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니었을 거고, 생각을 많이 했을 텐데 순간 드는 감정에 휘둘려 버립니다.
일한 경력과 노력을 전혀 고려하지 말자는 것이 아닌, 본인이 위치적으로 아무리 우위에 놓여 있더라도 '인간 대 인간'이란 생각을 갖고 존중하는 태도가 뜨거운 태양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듯 저절로 그 리더를 따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CTL
3주차 발제입니다.
----------------------
34장 이후의 내용에서 제게 인상적인 부분은 두 가지 대칭적인 관점들입니다. 첫째는 마르쿠제와 푸코가 말하는 것으로. 과학과 경제의 발달로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회가 되어갈수록 통제와 감시가 늘어나고 사람들은 현재에 누리고 있는 풍요를 잃기 두려워 지배 시스템에 더욱더 순종적으로 적응하려 애쓴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정, 비판, 상상의 능력이 결여된 ‘일차원적 인간’이 양산되고 사회는 자유를 잃어버린 전체주의로 흘러간다고 말합니다.
두번째는 마지막 장, 가다머의 해석학을 다루는 부분에서 말하는 ‘상대주의’의 위험성인데요, 상대주의는 유럽 역사에서 ‘역사주의’로 표현되었고 이는 모든 것이 역사 속에서 그럴 만한 이유로 인해 나타나고 형성된 것이므로 함부로 비난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관점하에서 사람들은 빠르게 허무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상반되는 두 현상이 현대사회에서 동시에 관찰되는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에는 다양성을 인정하려다보면 절대적으로 옳고 나쁜 건 없어져 버리니 혼란해져서 포기하게되고 차라리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인정받는 가치만 단순하게 수용하고 추종하게 되는게 아닌가 합니다.
질문 1. 함께 책을 읽으신 분들은 이 두 가지 관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셨는지요?
질문 2. 그리고 제게는 인간적이고 겸손한 면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에드문트 후설이 말한 ‘철학자들은 인류를 위한 공무원(p. 410)’이라는 말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정말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철학은 공무원이 되기위해서는 공부할 필요도 없어진 분야가 되어서 씁쓸할 뿐인데요, 여러분들은 이 말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위버m
1번 질문에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답변 1.
상대주의자 같은 입장이지만 ^^; 두 관점이 모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차원적 인간이 만들어지는 세상은 일견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의 욕구와 자유, 선택 모두 만들어진 허구의 개념일 수 있겠습니다. 상대주의가 끝까지 가면 CTL님이 적어주신 것처럼 혼란한 디스토피아가 될 것 같고요.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숙고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토론하며 이해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가다머가 말한 지평융합은 굉장히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지평융합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가능한 일로 생각됩니다.
답변 2.
굉장히 재미있는 비유였어요!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는 점, 비교적 괜찮은 명예, 낮은 경제적 수입 등 다양한 부분이 비슷합니다.
아마 후설은 철학자가 인간에게서 멀어지지 말라는 의미로 그런 표현을 한 것 같아요. 철학은 언제나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지만, 인간을 빼놓고 나아가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늘 현실 속에서 약동하며 시대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나가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입니다.
siouxsie
질문 1. 저도 한 때 다양성을 다 인정해 버리면 옳고 그름이 도대체 존재하기는 하는가에 대한 딜레마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얕은 지식과 사유로 결론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진리가 부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도 없이 철학적 고찰을 하고,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들어 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상상능력 결여=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자동적으로 떠오르고, 가능하면 모든 문제를 다각도로 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순종적이고, 일차적이지는 않되, 모든 건 제 선택의 문제이며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제가 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지금이야 안락한 시스템에 묻혀 조용히 살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게 항상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이건 기업 비밀 ㅎㅎ)
통제와 감시도 최대한 이용해 먹으려고 ‘평소에도’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 보고요.
질문2. 철학이 공무원이 되기엔 2023년엔 다른 공무원들이 너무나 많네요. ^^;;
‘철학’이란 단어가 사람들에게 철벽을 치게 만드는 것 같아, 단어 변경부터 요청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단어가 바뀌면 대상에 대한 생각도 바뀐다는 철학자들의 말이 희미하게 떠오릅니다.
그래서, 철학 이야기이지만 겉모습은 보송보송해 보이는, 얕을 수는 있으나 가볍고 재미있는 책이나 매체부터 주변인들에게 추천하고 물들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발부터 담가야 나중엔 몸이 들어가는 거니까요. ^^
(철학을 사랑하시는 분들 중 이런 걸 싫어하시는 분들도 많은 걸로 압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아이스
안녕하세요! 출판사 알레입니다. :)
여러분, 즐거운 금요일입니다.
독서 모임도 어느새 막바지에 다다랐는데요. 독서 모임을 통해 철학하는 즐거움, 사유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느끼 고 계신가요?
각자의 시선이 담긴 흥미로운 질문과, 질문에 대한 다채로운 의견을 보며 저도 철학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요. 많은 분들이 이번 모임에 적극적이고 활발히 참여해주었으나, 예정된 일정에 발제를 완료하지 못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래서,
모임을 한 주 연장하려고 합니다. :)
이대로 끝나는가 싶어 아쉬웠던 분들도 계시죠?
아직 발제에 참여하지 못한 분들은 다음 주까지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질문들을 꼭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나 깜박하신 분들을 위해 닉네임을 태그하겠습니다.
@맨손호랑이 @파숑루루 @꿀땅콩 @이불 @똑똑한녹용씨
여러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siouxsie
저도 종교인이지만, 종교 속에서 '신의 이름으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인간상들'에 환멸을 느껴 예술과 철학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1인입니다.
사실 저 3개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인간사에 존재하나 싶기도 하네요. 역으로, 예술과 철학이 광활한 만큼 -예를 들면, TV, 만화, 게임 등도 전 예술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벗어나지 않더라도 가볍고 재미있게 퐁당퐁당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종교, 예술, 철학 이 단어들이 본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희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
poiein
저는 종교가 인류의 집단지성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종교인이라고 하는 분들을 만나면 한편으로 부러워 합니다. 믿는 자들 특유의 신성이 제겐 없기 때문이죠. 말씀하신 것 중 만화를 좋아해요. 소장하고 있는 만화책들이 책장에서 직립해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구요. 가볍고 재미있게 퐁당퐁당 즐기는 것들이 있어야 광활한 것들이 더 또렷해 지겠어요. 일상이 있어야 여행이 여행일 수 있는 것처럼요. 이 공간에서 나누는 대화가 참 즐겁네요.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파숑루루
막상 철학 책을 ‘발제’한다는 게 부담이 되어 어떤 질문을 드릴까 고민‘만’하다가 시간을 넘겨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저에게 맡겨진 파트에서 저는 니체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고 평소에도 고민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니체의 표현처럼 고통이 정말 우리를 더 강하게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점이 고통을 겪을 때마다 고통에서 벗어날 때마다 위안이 되지만, 어느 순간 강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통을 내 안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 들었고요. 다른 분들은 니체가 말한 ‘고통’의 문제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나요?
작성
게시판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