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교황들은 로마 시민들의 야심 때문에 항상 괴로워했다. 처음에 그들은 황제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황의 권위를 이용했다. 하지만 도시의 지배권을 차지하고 자신들의 의도대로 도시를 재편하자, 곧바로 교황의 적이 되었다. 교황들은 다른 어떤 기독교 군주들보다 로마 시민들의 손에서 더 큰 모욕을 견뎌야 했다. 교황의 불신임(파문)으로 서쪽 세계 전체가 벌벌 떨 때도, 로마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교황과 로마 시민들은 오직 상대의 명성과 권한을 빼앗 으려는 생각뿐이었다.” -59쪽
[그믐북클럽] 9.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함께 완독해요
D-29
지금
장맥주
그리고 비록 모든 공화국의 모든 사례가 다 교훈을 준다고 해도, 자신의 공화국에서 일어난 일을 읽을 때 우리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으로 교훈을 얻는다.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 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 서문,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하인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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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서문의 이 문장은 국사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인용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장맥주
“ 약소국의 군주는 명 성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더 부유하고 안전하게 살기 위해 군을 이끌었으며, 어린 시절부터 군사 훈련을 받고 자라 싸움 외에는 ᅟᅡᆯ 줄 아는 게 없던 자들은 군을 매개로 권력이나 부를 획득해 존경받고 싶어 했다. ”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 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 1권,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하인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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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 이들에게 전쟁은 무엇보다도 먹고살기 위해 택한 직업이었기에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일종의 결속을 맺었고, 상대를 죽이는 대신 시간을 질질 끌어 대부분 전쟁을 이를 벌이는 양측 모두 패자가 되게 만드는 형편없는 기술로 바꿔 놓았으며, 그리하여 마침내 전쟁을 옛 군인의 미덕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아주 평범한 지휘관조차 경멸했을 정도의 부끄러운 수준까지 타락시켜 버렸다. ”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 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 1권,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하인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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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그러므로 앞으로 이 글은 이런 게으른 군주들과 이런 비열한 군대들로 가득 찰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 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 1권,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하인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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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짜
그리고 비록 모든 공화국의 모든 사례가 다 교훈을 준다고 해도 자신의 공화국에서 일어난 일을 읽을 때 우리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으로 교훈을 얻는다.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 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 21,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하인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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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짜
“ 교황의 파문이 기독교도를 위해 행했던 것보다. 그 강이 이슬람교도를 위해 행한 호의가 훨씬 더 컸다. 파문은 프리드리히의 오만을 잠깐 억눌렀을 뿐이지만 그 강은 그의 오만을 영원히 잠재웠기 때문이다.
”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 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 71,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하인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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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닿늘
1-2.
어떤 이탈리아인은 교황을, 다른 이탈리아인은 하
인리히를 따랐다. 이 대립이 구엘프Guelph(교황
파)와 기벨린Ghibellin(황제파)의 시작이었고,
이로 인해 이탈리아는 야만족의 침입이 사라진 뒤
에도 내전으로 갈기갈기 찢기게 되었다. 아무튼
파문당한 하인리히는 그의 신민들에 의해 강제로
이탈리아로 내려와 교황 앞에 맨발로 엎드린 채
용서를 구했다. 이 일(카노사의 굴욕)은 1080년
(*실은 1077년)에 일어났다. 그러나 그 직후 교
황과 하인리히 사이에 고위 성직자의 임명을 둘러
싸고 새로운 불화가 생겼다. 그러자 교황은 다시
하인리히를 파문했고 1080년, 황제는 그의 아들
인 하인리히 5세를 군대와 함께 로마로 보냈다.
p. 60~61
신이나
이처럼 위험에 보이는 것은 가까이 있을 때보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 훨씬 더 무서운 법이다.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 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하인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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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나
“ 이탈리아 안에서 야만족들이 벌인 전쟁은 거의 다 교황들이 일으켰고, 이탈리아를 황폐화시킨 야만족들은 대개 교황들이 불러들였다. 이런 교황의 행동 방식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지금껏 이탈리아가 분열되어 무기력해진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 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 니콜로 마키 아벨리 지음, 하인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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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먼지밍
“ 주변의 어느 부족보다 우월한 자신들이 다른 부족들보다 오히려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것은 너무 부당하다며 부족 전체가 불만이 가득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이들을 계속 판노니아 경계 안에 붙잡아 두는 것은 솔직히 말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저는 부득이 이들이 군대를 일으켜 새로운 도시를 찾아 떠나는 걸 허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임박한 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부족이 머물러 살 조금 더 쾌적하고 안전한 땅을 황제께서 제게 미리 넘겨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 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 36페이지 중, 테오도리쿠스가 제노에게 쓴 편지 내용 중,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하인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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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먼지밍
“ 니콜라오 이전까지는 결코 교황의 조카나 친척들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제부터 역사는 그들의 이름으로 가득 찰 것이고 우리는 심지어 교황의 아들과도 만나게 될 것이다. 교황들이 자신들의 영광과 이익을 위해 하지 않은 일은 없다. 우리 시대에 이르러서도 교황들은 자신의 아들에게 군주의 자리를 마련해 줄 계획을 세었다. 앞으로 그들은 아들에게 교황의 지위를 세습해 줄 계획을 꾸밀지도 모른다. ”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 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 80페이지, 제1권 제23장 중,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하인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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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
주나 통치자가 바뀌는 것이 왕국이나 공화국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 숙고하고, 또 그런 몇 가지 변화만으로 어떻게 가장 위대하고 강력한 국가가 완전히 파괴되는지 주의 깊게 고찰해 본 사람이라면, 이탈리아와 제국의 다른 속주들이 그 시기에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겪었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니콜로 마키아벨리 / 하인후
로시나
“ 이 당시 교황들은 로마 시민들의 야심 때문에 항상 괴로워했다. 처음에 그들은 황제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황의 권위를 이용했다. 하지만 도시의 지배권을 차지하고 자신들의 의도대로 도시를 재편하자, 곧바로 교황의 적이 되었다. 교황들은 다른 어떤 기독교 군주들보다 로마 시민들의 손에서 더 큰 모욕을 견뎌야 했다. 교황의 불신임(파문)으로 서쪽 세계 전체가 벌벌 떨 때도, 로마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교황과 로마 시민들은 오직 상대의 명성과 권한을 빼앗으려는 생각분이었다. ”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 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 제1권 제14장,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하인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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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나
“ 교황들은 때로는 종교를 위해, 또 때로는 자신들의 야심을 위해 새로운 이방인들을 이탈리아로 끌어들여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는 짓을 결코 그만두지 못했다. 교황들은 어떤 군주든 그를 강력하게 만든 뒤에는 곧 이를 후회하고 그의 파멸을 추구했으며, 자신들이 약해서 계속 보유할 수 없는 지역을 다른 이들이 소유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반면 군주들은 교황을 두려워했다. 우정의 탈을 쓴 황제들의 거짓 책략에 속아 넘어간 보니파시오 8세나 그 밖의 몇몇 교황을 제외하면, 싸우든 도망가든 항상 교황이 이겼기 때문이었다. ”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 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 제1권 제23장,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하인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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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나
“ 아무튼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물 위에서 살았고 이용할 땅도 없었으므로, 어떻게 해야 제대로 살 수 있을까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배를 타고 전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 결과 도시는 전 세계의 다양한 상품들로 넘쳐났고, 이런 상품이 없던 다른 도시 사람들은 자주 그들의 시장을 찾았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베네치아 시민들은 영토의 확장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어떻게 하면 상품을 더 쉽게 운송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으며, 이를 위해 그리스와 시리아의 많은 항구를 인수했다. (중략) 그들이 이런 식으로 사는 동안 그들의 이름은 바다에서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었고, 이탈리아 안에서는 일어나는 분쟁마다 중재자의 역할을 맡을 만큼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 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 제1권 제29장,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하인 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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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롱이
“ 이들에게 전쟁은 먹고살기 위해 택한 직업이었기에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일종의 결속을 맺었고 상대를 죽이는 대신 시간을 질질 끌어 대부분 전쟁을 이를 벌이는 양측 모두 패자가 되게 만드는 형편없는 기술로 바꿔놓았으며 그리하여 마침내 전재을 옛 군인의 미덕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아주 평범한 지휘관 조차 경멸했을 정도의 부끄러운 수준까지 타락시켜 버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분별력이 없던 이탈리아는 모두가 그들을 찬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