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의 [벌레 이야기]

D-29
전자책 읽는 편입니다만 한국 방문 때마다 중고 서점에서 종이책을 몇 권씩 구입해 가져오곤 합니다. 지난 여름에 구입해서 책꽂이에 머물던 책입니다. 내용을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믿음이 생기는 이청준 작가의 소설입니다. 시작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싱글챌린지는 자신이 직접 정한 책으로 29일간 완독에 도전하는 과정입니다. 그믐의 안내자인 제가 앞으로 29일 동안 10개의 질문을 던질게요. 책을 성실히 읽고 모든 질문에 답하면 싱글챌린지 성공이에요. 29일간의 독서 마라톤, 저 도우리가 페이스메이커로 같이 뛰면서 함께 합니다. 그믐의 모든 회원들도 완독을 응원할거에요. 계속 미뤄 두기만 했던 책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싱글챌린지! 자신만의 싱글챌린지를 시작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로 접속해 주세요. https://www.gmeum.com/gather/create/solo/template
싱글챌린지로 왜 이 책을 왜 선택했나요?
책을 읽는 기준은 없습니다. 책이 손에 잡히거나 눈에 보이거나 기회가 닿으면 작가 먼저 확인하고 읽는 편입니다. 외국 생활이 오래라 구입이 쉽지 않지만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의 바삭거림을 좋아합니다. 인생의 부분부분을 과한 포장 없이 간결하게 풀어내는 이청준 작가의 모든 작품들을 참 좋아합니다. 그의 모든 작품은 별처럼 빛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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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수씨의 마지막 심술]을 시작으로 1980년대 한국의 의료보험 서비스 정책의 소외계층에 속하는 가족의 안타까움과 우리가 일상 속에 느끼고 사는 부끄러움을 드러낸 [젖은 속옷]과 이중섭 화가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소설 [나들이하는 그림]까지 읽었습니다. 이중섭 화가의 은박지 그림을 새로운 구성으로 풀어낸 것이 저는 좋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시에는 이중섭 미술관과 거주지가 있습니다. 초가집 한 켠의 작은 방, 성인 한 명이 누워도 좁을 그곳에서 네 식구가 살았다는 사실이 매번 믿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게와 물고기와 복숭아를 담뱃갑 은종이에 그릴 수 밖에 없던 그의 가난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애태우던 그의 모습이 이 소설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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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화밀교]를 읽고 있습니다. J읍에서 태어나 자란 화자가 역시 J읍에서 나고 자란 선배이자 민속학자인 조승호 선생의 반강제 + 권유로 J읍에서 행해지는 새해맞이 풍습에 참석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감정적 깨달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한 해를 마치는 날 저녁이 시작되면 J읍의 주민들이 읍을 둘러싼 제왕산에 올라 새해를 맞이하는 풍습이 있다는 걸 화자는 조승호선생과의 동행을 통해 알게 됩니다. 산 꼭대기 분지에서 벌어지는 횃불 행사는 산 아래에서는 절대 알아챌 수 없습니다. 과연 그들을 모이게 하고 또 긴 세월 동안 행사를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화자는 궁금해 합니다. 또한 행사가 품은 의미는 무엇인지 조승호 선생께 묻습니다. J읍에 지금 살고 있든 외지에 나가 살다가 행사에 참석하든 상관치 않고 그들은 횃불을 들고 분지 위를 걸으며 마주치는 모든 이웃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그저 안부를 묻고 인사를 하고 다시 걷기를 반복합니다. 잊고 살던 먼 친척을 만난 화자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그간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새해를 앞두고 이웃들에게 묻는 안부와 인사를 떠올리며 저는 새해 첫날 해맞이를 위해 정성을 쏟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릇을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그릇을 비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산에 올라, 바다를 보며, 언덕 위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한 해의 기원을 쏟아내는 그들의 모습.... 어쩌면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기 전, 지난 한 해 동안 미안한 일, 안타까운 일, 서러운 일에 대해 마음을 정리하고 또 우리 이웃들의 안부를 물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혹시 나로 인해 한 해 동안 서운한 일은 없었는지 불쾌한 적은 없는지 사과해야 할 일은 없었는지 묻고 만약 엉킨 실타래가 있다면 새해가 오기 전에 그걸 먼저 풀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화밀교]는 76쪽이나 되는 소설입니다. 단편으로는 제법 긴 분량입니다. 저도 아직 읽는 중이라 이야기가 어떻게 맺어질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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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4 '눈에 보이는 세상사의 뒤엔 가시적 현상 세계의 질서로서는 한 번도 떠올라본 적이 없는 어떤 숨은 힘, 어쩌면 전혀 질서나 의미가 없는 혼돈의 상태처럼 보이면서도, 그러나 나름대로의 엄연한 질서를 지니고 그것을 행사해 나가고 있는 힘의 지하 세계가 따로 있다는 말일세.....' p116 '뭣보다도 우리 삶이나 이 세계는 논리와 논리 아닌 것, 혹은 일상의 삶의 덕목으로 선택된 질서와 그것이 아닌 것,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다시 말해서 실체와 그림자 그런 두 겹의 힘의 질서로 이루어져 나간다는 게 나의 인식이니까. 현상의 세계와 소망의 세계의 관계라고 할까.' p119 '수맥을 숨겨 간직하지 못한 샘터는 더 이상 샘물이 괴어 흐를 수가 없거든. 우리한텐 그래 가뭄에 상관없이 언제나 수맥이 끊기지 않고 땅속을 적셔 흐르는 숨겨진 샘 같은 게 소용되고 있는 게지.' 세상으로 감춰진 J읍 주민들만이 알고 그들끼리만 행하는 새해맞이 횃불모임에서 빠져나와 화자에게 설명하는 민속학자 조승호 선생의 말입니다. 올해의 행사에는 행사 특유의 은밀함을 거스르고 폭발하려는 성향을 가진 젊은이들과 그들의 기대에 호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는, 이 풍속이 과연 이대로 숨겨진 채 지속되어야 하는지 혹은 세상에 드러내야 하는지 그 당위성에 대해 화자에게 묻습니다. 세상의 흐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오래된 주택을 부수고 건물을 새로 짓는 일, 전봇대를 넘어뜨리고 전깃줄을 땅 속에 매립하는 일, 골목을 넓히는 일..... 더이상 인구가 늘지 않아도 세상의 낡은 것들은 신기술을 토대로 시시각각 바뀌고 있습니다. 의사를 만나거나 영화를 보려면 앱을 통해 예약을 하고 주차권도 핸드폰으로 발급 받는 시대입니다. 변화가 두려워 머뭇거리다가는 더 높아진 계단을 기어 올라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게 무엇이든 아무리 숨기고 감추고 덮고 가려봐도 사회를 이루고 사는 한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 아닐까 싶습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나 기대를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지키고픈 마음으로 아낌없이 노력을 기울이다가도 세상의 흐름에 어쩔 수 없이 놓아야 할 때는 분노가 일고 안타깝더라도 그 순간을 받아들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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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책표지에는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고 있었어요. 나는 새삼스레 그를 용서할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지요.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라고 적혀 있습니다만 (이것은 영화 <밀양>을 본 사람이면 누구나 또한 저도 기억하는 내용입니다) 사실 저는 설마 영화 <밀양>의 원작이 이청준 작가의 [벌레 이야기]라는 걸 몰랐습니다.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영화를 보기 전에 소설을 먼저 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웠습니다. 영화는 주인공이 느끼는 분노와 배신감을 처절히 밖으로 표출했고 소설의 그녀는 꾸욱꾸욱 누르며 하얗게 타버릴 한을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영화는 소설과는 그 배경이 많이 다르지만 깊이 인상에 남은 탓인지 소설을 읽으며 자꾸 영화가 오버랩되는 바람에 집중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 우리 구세주 예수님 앞으로 나오세요. 그래서 그분의 사랑에 의지하도록 하세요. 주님께선 모든 힘든 이들의 무거운 짐을 함께 져주십니다. 그리고 모든 상처 받은 영혼들의 아픔을 함께해 주시며, 그것을 사랑으로 치유해 주십니다. 알암이 엄마는 지금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해 갈 수 없는 크나큰 영혼의 상처를 입고 있어요. 애엄마 혼자서는 그 짐을 절대로 감내해 나갈 수가 없어요........ > 알암이가 유괴되기 전부터 알암이 엄마를 교회로 전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온 이웃 김 집사가 알암이가 유괴되어 살해된 채 발견된 후에 알암이 엄마에게 한 말입니다. - 두고 보세요. 내 언제고 알암이 엄마를 우리 주님께로 인도하고 말 테니까. 알암이 엄마라고 어렵고 마음 아픈 일이 안 생길 수 있겠어요. 애 엄마한테도 언젠가는 반드시 주님의 손길이 필요한 때가 찾아오게 될 거예요. 내 그땐 반드시..... > 알암이 엄마에게 전도를 시작하며 김 집사가 끈질기게 반복하던 말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전도를 일삼는 종교인들에게 저는 약간의 환멸을 느낍니다. '어렵고 마음 아픈 일이 안 생길 수 있겠어요?' 라니요. 전도를 이유로 이웃에게 저주를 하는 건가 싶을 만큼 김 집사의 행위 그리고 신앙은 값 없어 보입니다. - 김 집사는 마치 그거 보라는 듯, 혹은 기다리던 때라도 찾아온 듯 아이의 실종 사고가 생기자 금세 다시 아내에게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이런 저런 걱정의 말끝에 다시 아내의 믿음을 권해 왔다. > 먹이를 노리던 하이에나처럼 김 집사는 알암이 엄마의 괴로움과 아픔을 파고 듭니다. 걱정의 말을 한다고는 하지만 과연 김 집사가 아이를 잃어버린 알암이 엄마의 숨이 넘어가는 안타까움과 괴로움을 100분의 1이라도 느꼈을지 의혹이 생깁니다.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이웃의 아픔에 함께 공감해 위로하지 않고 '거 봐라. 내가 뭐랬어. 딱 걸렸지.'라는 마음으로 알암이 엄마의 마음을 후벼파는 신앙이라니. 예전에 읽은, 어느 전도사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사로 중국의 작은 마을들을 찾아다니며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돌산을 넘어가다가 비를 만난 그는 저녁 늦게라도 예정된 다음 마을에 도착하기 위해 걸음을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주오는 어느 주민을 만났습니다. "어디 가는 길이십니까?" "저는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마을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복음을 전하시나요?" "죄송하지만 제가 좀 바쁩니다. 말씀을 나눌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다음 마을로 가야하거든요." 그의 말을 듣던 주민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내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복음이 궁금해 듣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다음 마을에 가야 해서 내게 복음 전할 기회를 저버리겠다는 겁니까?" 전도사는 아차하는 마음에 자세를 고치고 그와 길에 앉아 복음을 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려울 때 매달리는 것만이 신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청준 작가는 어쩌면 신의 손길보다 이웃의 손길이 더욱 가깝고 따뜻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김 집사의 말에는 사람의 체온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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