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D-29
난 그래도 글을 쓸 때 이것으로 향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선 주류에 반기를 들고 그 밑에서 소리를 지루지만 못 듣는 소리를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획일화를 경멸하고 다양성을 부르짖는다.
작가들이 잘 뭉치지 못하는 것은 기질이 그렇고 주로 혼자 하는 일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음악이나 드라마, 영화 등 K-콘텐츠가 세계으로 유명한데 문학만 빛을 못 보는 것은 작가들의 이런 기질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노벨문학상이 하나 나와 한국의 K-소설이 히트를 치면 작가들도 힘이 날 것 같은데, 과연 어느 작가가 스타트를 끊을지 자못 기대가 큽니다.
작가가 사회에 참여하려면 길거리에서 외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의 본거지인 글로 참여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길거리에 나가서 싸우면 그는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할 것 같다. 에너지가 고갈되어 그럴 것 같다. 투쟁방식도 자기에게 맞는 게 있다. 길거리 투쟁은 그것을 잘하는 사람게 맡기고 자기의 본업인 글로다만 사회에 참여하는 게 훨씬 사회 참여 효과가 클 것 같다.
이 책은 소설가에 대한 전부가 나온다. 내가 왜 이 책에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글을 좀 써서 그런 것 같은데 나는 소설을 안 쓴다. 감히 엄두가 안 나 못 쓴다. 그런데도 그들의 세계를 알려주어 너무나 호기심이 발동한다.
대통령실에 있는 인간도 자기가 권력의 핵에 있으면서 자기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라는 말을 한다. 이건 작가들이 마찬가지고 모든 사람이 같은 것 같다. 피해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외롭고 자기가 외톨이로 중심에서 벗어난 것 같은 불안감을 늘 지니고 살아 그 주류에서 벗어나는 것을 엄청나게 불안해 하는 것 같다. 이래서 그런지 작가들은 거기서 벗어난 소외자나 앗싸를 늘 감싸는 글을 쓴다. 그나마 다행이다. 약자를 언제나 지키는 작가가 있어.
가까우면 더 질투하고 원수가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일본과 멀면 원수가 안 되었다. 우리는 페루를 질투하거나 원수로 삼지 않는다. 나는 손흥민을 질투하거나 원수로 삼지 않는다. 소설가들에게 난 질투하지 않고 그냥 그들의 글을 동경하고 한가지라도 더 배우려고 하는데 자기들끼린 서로 원수로 삼기도 하는 것 같다. 이게 다 너무 가까이 있고 비슷해서 그런 것 같다.
이 책은 돌려 말 안 해 좋다. 어느 작가들 보면 결국 이런 말에 불과한데 뭔가 있어 보이게 하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그렇게 말하는 것도 참 어렵겠는데, 왜 그렇게 어렵게 말하지? 하면서 놀란다) 하여간 배배 꽈서 말한다. 전엔 안 그러던 작가가 그러면 그 다음부턴 그가 내 놓는 책은 안 읽게 된다. 쉽게 뭔가 독특한 개념을 지닌 책을 읽어야 나한테도 남는 게 많고, 그런 책은 손에서 절대 놓지 않는다. 알고 보면 별 것도 아닌데 괜히 그냥 어렵게 쓴 것 같은 책은 이제 안 읽는다. 시간 낭비이고 솔직히 그렇게 시간을 들였어도 남는 게 없다. 다른 얻을 게 많은 책도 많은데 서로 씨름하는 것도 아닌데 뭐하러 붙잡고 있나?
저는 그런 것 같습니다. 내 글을 남이 읽어주길 바라는 것보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을 그대로 적고 그냥 만족으로 끝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유명인도 아니고 글을 절대 뛰어난 것도 아닌 것을 아는 분수를 아는 사람이라 그냥 글에다 나에게 하고 싶고 세상을 향해 내뱉고 싶은 것을 독자를 먼저 의식하기 전에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만족하면서 큰 기대를 애초에 하지 않아 실망도 안 하는 것 같습니다.
재수사를 그래도 독자 중에는 손가락에 들 정도로 빨리 구입해 읽은 사람 중 하나일 겁니다. 저는 단편집보단 장편소설을 더 좋아합니다. 상대적으로 내용이 쉽기 때문입니다. 압축을 안 한 거지요. 단편은 뭔가 내용보단 의미나 주제에 더 닿은 것 같고 시는 거기서 더 압축을 해 그 속 뜻을 알려면 더 힘듭니다. 그래서 두꺼울수록 더 내용이 쉽다는 것을 알고 구입해 단번에 읽은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자동차가 자기 역할을 망각해 마치 컴퓨터처럼 수동이 아니라 너무 자동화되니까 급발진이 일어나는 거고 핸드폰에 여러가지 기능을 너무 많이 집어넣으니까 고장이 잦아 본래 기능인 통화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습니다. 휴대폰을 분실하는 경우엔 거기에 너무 많은 게 들어 있어 그때부터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겁니다. 신문 칼럼에도 저는 사회학자나 문학평론가, 소설가 이렇게 하나로 나와야 읽지 수필가 겸 시인, 소설가 이렇게 나오면 안 읽습니다. 뭐야 이거 "그럼 제대로 하는 게 뭐야?" 하고 의심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작가님 만나고 싶어서 입장권을 사려고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나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내 강연이 과연 그렇게까지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회의와 나는 본래 소설가로서 글로서 열렬한 독자와 대화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되는 상황에 대한 자괴감, 그렇게 어렵게 살고 또 내 책을 좋아하는 독자에겐 그냥 진지한 작가와 독자로서 진솔하게 만나야 하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안 되는 것에 대한 부조리 같은 복합적이고 괴로운 생각이 교차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런 독자를 이렇게 대하면 안 되는데 대한 작가의 부끄러움이 작용했으리라.
작가가 강연가서 지자체의 들러리나 생색내기의 모양새 맞추기로 이용될 수도 있는 것 같다. 하여간 책이나 글쓰기 작가의 강연은 어디서나 가장 깨끗하고 누구나 권장할 만한 지자체장 이미지 세탁으로 가장 안성맞춤이기도 하니까. 세상에 아직은 책보다 더 깨끗하고 모범적인 것은 없는 것 같다. 지하철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으면 내 근처에 사람들이 앉지를 않는다. 바로 책 읽는 나에게 방해가 될까 조심하는 것 같은데 하여간 책을 읽는 행위 자체는 어디서나 환영받는 것 같다. 특히 20대 젊은 여자의 책읽는 모습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이다.
글 쓰는 업계가 돈에 관심이 없고 일부러 멀리해 전산화가 늦고 작가에게 빨리 제때 돈 주는 관행이 없어 그런 것 같은데 그것을 악용해 그들도 사람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들의 그런 기질을 이용하면 나쁜 사람인 것이다. 원래 인간은 착한 사람한테는 더 야박하게 구는데 그 중에서 된 사람이라면 작가같은 착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잘 대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비싸기만 하고 고료나 인세를 안 주는 출판사와는 손절할 것 같다. 개중에 싸고 정직한 출판사와만 거래할 것 같다. 그런 출판사는 일부러 방문해 수고하신다고 음료수라도 들고 멀지만 찾아가서 고맙다고 할 것 같다. 그리고 실제 그러겠다. 나쁜 인간에겐 더 나쁘게, 착한 사람에겐 더 착하게. 그게 제대로 된 사람이지.
나는 이 책으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얻는다. 많은 영감을 얻는다. 주는 사람이 아무리 가치 있는 것을 줘도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으면 쓰잘데기 없는 것이다. 이 책은 감히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내게 준다.
사실 독자로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사를 써줘서 사는 책도 있는데, 대부분은 읽고 실망한다. 그러면서 안 팔릴 것 같으니까 유명 작가 추천사를 이용한 거고 나는 그 수법에 말려든 거고. 그렇게 되면 그 실망한 책과 더불어 이 책이 좋다고 추천사에서 칭찬한 그 유명 작가의 이미지도 내 속에서 추락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추천사 쓴 작가와 이 책 내용이 서로 안 맞는 것 같은데 왜 이런 책을 추천했지?" 하는 생각. 그래서 이젠 차라리 추천사가 없는 책 내용의 일부만 날개에 실은 책만 읽는다. 추천사 책은 이젠 "아, 이 책 뭔가 부족한 게 있구나"라고 먼저 느끼면서 서점에서 제외시킨다. 고르려고 했다가 추천사가 우르르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내려놓은 책도 있다.
사실 나는 책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아마 기질이 그래서 그런 것 같다. 지금 읽고 있는 책 다음으로 읽고 싶은 책이 항상 옆에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뭔가 불안하다. "이 책을 다 읽은 다음에 이제 읽을 게 없어 멍하니 그냥 시간을 보내면 어떡 하지?" 하는 불안이다. 그러니까 계속 좋아하는 책을, 내용이 마음에 쏙 드는 책을 지금 읽고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약간 독서에 대한 중독 같기도 하고 활자 맹신자 같기도 하다. 그리고 매일 지금 읽고 있는 책을 책상 위에 올려 놓고 절을 세번한다. 술을 먹은 날 까먹었을 때는 그 다음날 곱배기로 여섯번을 책에 "고맙습니다"를 외치며 절을 올린다, 책에.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말보단 글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 그 특성을 그대로 살려 그냥 그것만 하게 해야 한다. (딴짓 안 해도 되게) 현실은 글로는 밥벌이가 안 되니까 방송이나 강연으로 밥벌이를 대신한다. 말을 하는 사람들도 글은 별로 잘 쓰지 못하지만 글을 써서 더 권위를 집어넣어 말을 더 빛나게 하려는 것도 있다. 정치인이 정치만 잘하면 됐지, 되지도 않는 회고록을 내는 것하고 비슷하다. 우선, 글만이라도 전념하게 나라 전체에서 육성해 그것만 하게 해야 한다. 꼭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것만 잘해야 하는데 온갖 잡무나 학생 지도 같은 것에 시달려 잘 가르치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하고 비슷하다. 글쟁이들은 그저 방송이나 강연, 칼럼 없이도 글로만 승부를 걸게 만들어야 경쟁력이 생겨 나라의 진짜 위상을 높이는 노벨문학상도 나올 것이다.
한국어에서 제일 어려운 게 띄어쓰기인 것 같다. 심지어는 분명히 띄어 쓰던 말이 어느 순간부터 붙여쓰기 시작한다. 그 용어가 잘 안 쓰이다가 자주 쓰이기 시작하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하도 많이 말하다 보니 입에 착 붙기 시작해서 그런가. ‘기후 위기’도 잘 안 쓰던 말인데 자주 쓰이게 되면 아마 어느 순간부터 ‘기후위기’가 맞는 띄어쓰기로 될 것 같다.
내가 보니까 처음엔 아주 날카롭게 작가가 글을 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이건 그냥 평범한 사람, 일반인이 쓰는 것하고 별로 차이가 안 나는 글 같은데,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작가도 자기 글이 날카롭지 않은 걸 아는지 표절 뉴스가 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건 영화 배우도 같은 것 같고, 모든 예술인은 날카롭게 자기 변신에 성공하지 못하면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 마약에 의존하고. 그러니 그냥 꾸준히 자식 식대로 자기를 갈고닦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마음을 비우며 쓰든지.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인간으로서 그러나 약간 책에 맛이 간 독자로서 적자면, 일단은 너무 어릴 때 사람들의 주목올 받아 신동이다 천재다 하면 그것이 부담으로 다가와 함부로 다음 작품을 못 쓰는 것 같다. 잘못하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는 공포 때문에. 그 작품이 천재에 부응해야 해서 부담이 엄청 드는 것이다. 그래 차라리 대기만성이라고, 그냥 평범함에서 서서히 그 분야에서 성장하는 게 좋은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자식 식대로 쓰는 것이다. 계속 자기 세계를 구축하면서 남이 알아주기도 하고 거들떠도 안 볼 때도 있는, 하여간 나는 그냥 내 작품을 쓸 뿐 외부에 대해 크게 신경을 안 쓰는 것이다. 그런 식으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지금 자기가 쓰고 싶은 것과 관심 있는 것만 쓰는 것이다.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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