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함께 읽기] #번외. <변화의 세기>

D-29
이 책을 읽으면서, 글리제 667Cc를 알게 됬는데, 역사를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냉소주의를 버리고 “글리제 667Cc로 가게나, 젊은이”와 같은 비유를 들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새로 배우고, 천 년의 시간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좋은 독서였습니다. 막판에 내적으로 이언 모티머 씨를 까는(?) 일도 나름 즐거웠구요. 532페이지 -“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감염병이 범유행하지 않는 한,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 아저씨도 몰랐겠지, 곧 팬데믹이 닥친 다는 것을.. 그러니 이렇게 호기롭게 주장하는 거겠지….’ 하고 까고, 535페이지- “ 전 세계적 위기를 두려워해야 할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회적 안일함이다.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인류가 갑작스럽게 재앙을 맞이하는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 세대나 자녀 세대에서 '정상적인'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념이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와 꼰대 역사학자 양반일세..“하고 까고, 기타 등등 여러 부분에서 까다가 책을 덮으니, 나름 즐거운 독서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 특히, 중세 부분은 너무 좋아서, ’괜히 전공 분야가 있는 게 아니다’라고 느꼈습니다. 이 책 전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문장을 남겨 봅니다.
커다란 사회적 변화가 한 사람의 머리 덕분에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일도 절대 없다. 과거의 위대한 발전 대부분은 한 사람의 천재가 아니라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기회를 맞은 수많은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59,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소피아 @모시모시 님께서 좋은 후기를 남겨주셨네요. 저는 모티머가 결말 부분에서 주장한 대로, 앞으로 인류의 중요한 과제가 '자기 억제'가 되어야 하고,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계속 여운이 남더라고요. (제 관심사가 그쪽이라서 더욱더 그랬습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저는 이렇게 1,000년의 역사를 조망해보는 경험을 해보는 일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상대화하는 감각을 가지는 데에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여러분도 저마다 즐겁고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이었기를 바랍니다.
이언 모티머가 결론 부분에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로 '전기화'를 언급하고 있지요. 그 20세기 전기화를 미국 중심으로 인류학자(?)가 정리한 흥미로운 책이 있습니다. 『그리드』(동아시아). 이 책도 벽돌(?) 책이라고 할것까지는 아니지만, 여러분이 쉽게 손에 들 만한 책은 아니니 내년(2024년)에 함께 읽기를 계속하면 같이 읽어도 좋을 듯해요.
그리드 - 기후 위기 시대, 제2의 전기 인프라 혁명이 온다재생에너지 발전량 및 전력 수요의 증가, 분산형 전원의 확대, 전력 산업의 탈중앙화를 둘러싸고 오늘날의 그리드가 지닌 문제가 무엇인지 보여주며, 21세기 전기 인프라 혁명과 그에 따른 기술 및 산업의 지각변동이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예측한다.
도널드 서순, 기억 나시나요? 홉스봄의 한 세대 후배 역사학자로서 『유럽 문화사』(뿌리와이파리) 같은 대작을 써낸 역사학자라고 소개했었죠? 그 서순이 21세기 초반의 세계사를 동시대를 살아가는 역사학자의 시선으로 정리한 책이 있어요.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뿌리와이파리). 서유럽 현대 정치에 대한 시사 교양이 장벽이긴 합니다만, 지금 우리 시대에 무슨 일이 진행 중인지를 스케치하기에는 아주 좋은 책이랍니다. 서순은 벨 에포크 시대의 전문가예요. 서순은 벨 에포크-전쟁-혁명-전쟁으로 이어진 20세기 초반의 암울한 역사와 지금을 겹쳐보는 것 같아요; 권하고 싶은 또 다른 좋은 책은 유럽 중부와 동부 역사 특히 홀로코스트 연구자로 유명한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의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부키)입니다. 역시 역사학자의 시선으로 21세기 초반 동시대를 바라보고 있는 좋은 책이랍니다.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위기에 빠진 21세기 세계의 해부21세기에 다시 증폭된 외국인 혐오와 불평등, 정치적 불확실성, 극우 포퓰리즘을 추적하는 우리 시대 최고의 역사학자 도널드 서순의 지적이고도 도발적인 오늘날의 세계사. 오늘날 죽어가는 낡은 것은 2차대전 이후 생겨나 ‘영광의 30년’을 거치며 모습을 갖추고 냉전 종식 이후 세계를 지배하게 된 현대 자본주의다.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 도둑 정치, 거짓 위기, 권위주의는 어떻게 권력을 잡는가전체주의 사상의 귀환, 러시아 민주 정치의 붕괴, 러시아의 유럽 연합 맹공격, 우크라이나 혁명과 뒤이은 러시아의 침공, 러시아, 유럽, 미국에서 정치적 허구의 확산, 도널드 트럼프 당선 등을 치밀하게 들여다봄으로써 동구에서 서구로 확산되고 있는 권위주의에 대해 설명한다.
12월에는 예고한 대로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책읽는수요일, 2012)를 함께 읽습니다. 같이 하실 분은 아래 링크 모임으로 오세요! https://www.gmeum.com/gather/detail/1017 8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사이언스북스), 9월 『권력과 진보』(생각의힘), 10월 『위어드』(21세기북스), 11월 『변화의 세기』(현암사). 지난 8월부터 매월 한 권씩 벽돌 책을 정해서 함께 읽는 모임이 2023년 12월에도 진행됩니다. 12월에는 사라 베이크웰의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책읽는수요일, 2012)입니다. '에세이'의 어원이 되는 『에세』의 저자 몽테뉴(1533~1592)의 삶을 통해서 책 제목대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반추하는 책입니다. 이 책을 함께 읽기로 한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몽테뉴는 근대의 여명이 희미하게 빛나던 16세기 한복판을 살아간 인물이죠. 앞서 11월에 1001년부터 2000년까지 1,000년의 역사를 『변화의 세기』로 정리하면서 16세기를 대표하는 인간, 좀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최초의 근대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할 만한 한 상징적 개인으로서 몽테뉴를 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몽테뉴는 16세기 세계 곳곳에서 전해져 오는 새로운 발견과 지식의 축적에 민감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놓고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곱씹어 보는 인물이었죠. 또 그가 살았던 16세기는 종교 전쟁과 그것이 초래한 집단 학살의 광기가 여전하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그 중심에서 그가 체득한 삶의 감각과 지혜가 지금 여전히 증오와 광기가 만연한 우리 시대에 주는 메시지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연말에 조금 내면에 천착할 수 있는 책을 함께 읽고서 대화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12월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를 천천히 함께 읽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현재 절판 상태입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는 아직 쉽게 구할 수 있고, 헌책 구매도 어렵지 않아요. 숨은 걸작이니, 이참에 소장 권해드립니다. 다들, 몽테뉴와 함께 2023년을 보내봐요.
참, 앞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좋은 책 한 권이 생각나서 덧붙입니다. 『그해 역사가 바뀌다』(21세기북스). 역사학자 주경철 서울대학교 교수가 1492년, 1820년, 1914년, 1945년 이 네 해를 기준으로 인류사가 바뀌었다는 주장을 자신의 시각에서 서술한 책입니다. 『세기의 역사』에서 살펴본 1,000년을 또 다른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라서 권합니다. 여러분도 주경철 교수가 1492년, 1820년, 1914년, 1945년을 왜 역사의 분기점으로 삼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해, 역사가 바뀌다 - 세계사에 새겨진 인류의 결정적 변곡점역사학자 주경철 교수의 정복과 반전의 세계사.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에서 근대 유럽 문명의 동인을, 1820년 '대분기'에서 동양과 서양의 전복적 운명을, 1914년 생물의 멸종에서 인류세의 시작을, 1945년 섬멸의 전쟁에서 문명과 야만의 의미를 탐사해본다.
20세기까지는 저자와 저의 심리적 거리가 넓은 강당에서 연단과 중간 좌석까지 공적 거리였다면, 결론 부분에서 작가와의 심리적 거리는 카페에서 마주보고 커피를 마시고 싶을 정도로 확 가까워짐을 느끼며 읽었습니다. 그래서인지 504쪽 ‘역사의 종말?’부터 끝까지 빠져들어 읽었습니다. 20세기까지는 한 세기씩 착착 정리하는 듯 차분한 분위기였는데요. 결론에서 급발진하듯 결이 달라져 사람으로 치면 “갑자기? 이 사람이 왜 이러지?”란 느낌에 당황하긴 했지만, 필사까지 하고 싶을 정도로 강하게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습니다. 결론 부분은 극사실주의/판타지적 느낌까지 들어 내용이나 분위기가 호불호가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맘에 드는 결론이었습니다. 작가가 “극도로 우울한 이야기”라고 할 정도로 어둡지만 그래도 다행히 저자는 “두 가지 이유에서 우리가 재앙을 피하고 결국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536p) 확신한다며 희망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환경문제를 “수요와 공급”이란 경제원리로 설명하는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설득력이 강해서 다른 사람을 설득할 때 써먹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인류와 지구 사이의 교환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일치한다.~과거의 정치사상가들은 인류와 지구 사이의 교환에서 공급 측면의 중요성을 완전히 간과했다.”(508p) 기술발전이나 다른 행성의 발견으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의견에 비판적인 점, “이제 도전은 확장이 아니라 자기억제다.”(512p)라는 구절이 기억에 남습니다. 오래 전에 환경 생태 책을 한창 빠져들어 읽다가 ->불평등->정치로 관심사가 옮겨 가면서 점점 안 읽게 되었는데요. 이런 책들을 열정적으로 읽던 때도 기억이 나고, 너무 동의하는 내용이라 흥분할 정도로 흡족해하며 읽었습니다. 이언 모티머님의 신념과 휙휙 잘 읽히게 쓰는 작가로서의 필력도 존경합니다. 책 읽으며 심장이 뛰는 책을 만나기 쉽지 않은데, 좋은 책을 추천해주신 YG님께도 심심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지구돋이 ~이 사진은 지구의 한정된 크기와 인류의 부족한 예산은 물론이고 자유나 보편적 안녕, 기회의 평등 같은 인류의 꿈들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잘 보여주었다.”(532p) “한정된 크기의 행성에서 제조 산업과 식량 생산 산업이 한없이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은 마땅히 누구에게나 당연한 이야기여야 한다.”(506p)
“한쪽 극단에는 지속가능한 미래가 있다. ~ 다른 쪽 극단에는 전 세계적 위기가 있다. ~ 내 견해로는 양쪽 극단 모두에서 사회는 더 계급화 되고 덜 자유로워질 것이다.(520p) “사회에 계급구조가 생기는 것은 단순히 지속 불가능한 경기순환이 종말을 맞이했기 때문이 아니라, 부유한 사회 계층이 배타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고 이 배타성이 부에 비례하여 늘어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20세기의 경제 성장이 사회 불평등을 평준화하는 지점까지밖에 나아가지 못한 이유다.”(525p)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이 지닌 정치적 의미는 명백하다. 부와 정치권력은 함께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부자들은 다시 한 번 사회를 통제하게 될 것이다.“(528p)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 굶어 죽는 모습을 보느니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음식과 피난처로 바꾸고자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얼굴은 점차 변해갈 것이다. 경제 성장이 곧 ‘성장’상태라고 자신만만해하던 정치인들의 미소에서, 환멸과 실망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이다."(532p)
자유 민주주의와 사회복지를 실은 거대한 방주가 불평등과 고난의 물결 앞에서 서서히 가라앉다가 끝내 침몰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선체에 구멍을 뚫어 그 최종 결과를 앞당겨서는 안 된다. 방주가 최대한 오래 떠 있을 수 있도록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우리는 개인적 필요를 줄이고 기대치를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역사회는 더 자급자족적이고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향해 희망적인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537p,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2024년에 읽었으면 좋겠다고 꼽아주신 7권의 책은 같이 읽고 싶습니다! 두껍책은 독서모임에서 같이 읽자고 하기에 미안하고 조심스러운데, 이렇게 벽돌책을 같이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좋습니다. 더우기 꼽아주신 책들이 (목차만 보았지만) 관심 있고 읽고 싶은 내용이라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꼽아주신 책들을 살펴 보노라니, 하루키의 "100퍼센트 여자아이"란 소설이 떠오를 정도로 100% 취향의 책들인 것 같아 2024년이 기대가 됩니다. 때로는 어렵고 두꺼워서 읽기 힘들겠지만요. 좋은 책들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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