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함께 읽기] #번외. <변화의 세기>

D-29
문해력은 13세기 교육 혁명의 한 측면에 불과했다. 또 다른 측면은 지난 세기의 지적 발전을 토대로 대학들이 설립된 것이었다. 가령 볼로냐 대학교의 기원은 이르네리우스의 법학 학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18,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교육은 표준화되어 유럽의 모든 궁정에 도입되었으며, 수많은 교사들이 다음 세대의 서기와 학자들을 교육할 권한을 얻었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19,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한마디로 기록을 남기는 주된 이유는 주의와 불신, 확실성에 대한 욕구였다. 사람들이 기록을 남긴 이유는 서로에게 법적 책임을 묻고자 함이었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20,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1190년, 존엄왕 필리프는 전통적인 작위였던 '프랑크인의 왕' 대신 자신을 '프랑스 왕'이라 칭했다. 같은 시기, 이와 유사하게 리처드 1세 역시 자신을 '잉글랜드인의 왕' 대신 '잉글랜드 왕'이라 칭했다. 이 미묘한 변화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왕이 외국인을 포함한 왕국의 모든 사람을 다스린다는 점과 왕이 자신의 추종자들만이 아니라 영토 안의 모든 사람을 위해 법을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또한 왕에게는 침입자로부터 왕국의 국경을 지킬 의무가 있으며, 왕이 왕국 안에 있는 교회와 외국인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21,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대헌장은 군주권을 강제하는 데 그친 사건이 아니라, 백성들 사이에서 왕국 운영에 관한 발언권을 갖고자 하는 열망이 커졌음을 시사하는 사건이다. ...... 왕들은 대개 군사 행동을 벌이여 할 때 특별세를 부과하려 했는데, 이때 이들 '평민'들의 대표가 왕과 직접 대면해 특별세의 조건을 협상했다. ...... 1297년 에드워드 1세가 이후로는 '반드시' 의회의 동의가 있어야만 이러한 특별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한 것은 입헌 분야에서 이루어진 엄청나게 중요한 발전이었다. 이는 의회가 전쟁에 필요한 재정 승인을 거부함으로써 사실상 국왕이 전쟁을 벌이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25,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탁발 수도사의 등장이 왜 중요한 것일까? 탁발 수도회는 종교와 세속으로 엄격학 나누던 사회를 뛰어넘어 종교적 덕목과 세속적 유연성을 모두 갖춘 단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수도사와 똑같이 교육받았기에 읽고 쓸 줄 알았고, 국제어인 라틴어에 정통했다. ...... 이들은 도시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았고, 십일조나 봉급을 받지 않고도 기도를 해주고 성사를 주었다. ...... 탁발 수도사들은 세속적인 통치자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외교관이 되었다. ...... 또한 이들은 훌륭한 이단 심문관이기도 했다. 교황과 주교들은 점차 도미니코회에 의존하여 이단자들을 심문했으며, 심지어 1252년 이후에는 이단자를 고문하기까지 했다. 탁발 수도사들은 교회가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 마지막으로 우리는 탁발 수도사 개개인이 지적 영향을 주었음을 유념해야 한다. 탁발 수도회는 사적인 부는 도외시했으나 학문을 소중히 여겼으므로, 그 시대의 중요한 논쟁에 지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하는 수많은 비세속적인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30-131,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13세기는 여행이 대다수 사람들에게 보편화한 세기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 여행자들이 여태껏 고대의 전설로만 전해지던 장소에 실제로 도달한 시대였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36,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앞에서 예고한 대로 오늘(7일)과 내일(8일)은 14장을 읽습니다. 14장은 저자가 "우리(유럽) 역사의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고, "이 시기와 견줄 만한 시기는 틀림없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뿐일 것"이라고 말한 1347~1352년의 흑사병 대유행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팬데믹에도 인류 문명은 지속되었죠. 후반부에는 민족주의의 원형이라고 할 만한 것의 태동과 지역어의 등장이 다뤄집니다. 저는 모조리 관심 있는 주제라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답니다.
1347년에서 1352년까지의 기간은 아마도 우리(유럽) 역사의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을 것이다. 이 시기와 견줄 만한 시기는 틀림없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뿐일 것이다. 두 세계 대전 모두 급격한 사회 변화와 기술 변화를 동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분 매초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불시에 고통스럽게 죽어 나가고 누구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던 시대를 떠올려 보면, 심지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라 한들 그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157쪽,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우리는 대부분 민족주의를 현대 세계와 연관 짓는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도 마찬가지다. 흔히 중세 군주들은 민족이 아닌 왕국을 다스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민족주의란 개념의 뿌리는 중세 시대에 있으며, 이는 14세기에 가장 강력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165쪽,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1400년경에는 (라틴어의 발상지였던) 이탈리아에서도 민중의 언어인 지역어가 가장 선호되는 언어가 되었다. 이제 유럽에서는 부유한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글을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모두가 지역어를 썼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177쪽,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14세기의 핵심 이벤트인 흑사병 대유행을 놓고서 현재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책은 노르웨이의 역사학자 Ole Jørgen Benedictow가 2004년에 내놓은 『The Black Death, 1346-1353: The Complete History』입니다. 특히 이 책에서 Ole Jørgen Benedictow는 유럽 전역에서 흑사병으로 인구의 60%가 사망했다고 주장했는데요. 역사학계는 통상적으로 3분의 1 정도가 희생되었다고 봤던 터라서 논란 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언 모티머는 Benedictow의 책을 흑사병 부분에서 중요하게 인용하고 있어요. 저자의 전공 분야가 유럽 중세사이고, 특히 의학사 연구에도 관심을 쏟고 있었던 것을 염두에 두면 Benedictow 연구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사실, 흑사병에 대해서 국내에는 책이 몇 권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책 가운데 필립 지글러가 1969년에 펴낸 『흑사병』(한길사)이 있습니다. 지글러는 역사학자가 아닌 작가지만, 이 책은 1969년에 나왔지만 지금까지도 흑사병 시대를 재구성하는 책으로 읽히고 있어요. 역시, 역사학자(유럽사 석사)가 아닌 작가의 시선으로 흑사병 시대를 정리한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존 켈리가 2005년에 펴낸 『흑사병 시대의 재구성』(소소)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한테 국내에 나온 흑사병 책 중에서 읽을 만한 걸 권하면 저는 지글러 책을 언급하고 나서 최근에 나온 켈리 책을 언급하는 편입니다.
흑사병지은이는 중국에서 시작된 재앙의 조짐이 어떻게 유럽 대륙에 이르렀는가에 대해 가장 먼저 서술한다. 뒤이어 이 병의 이름이 왜 흑사병이 되었는지 등을 설명하며 프랑스와 독일, 영국, 스코틀랜드 등 흑사병이 휩쓸고 간 나라와 도시를 따라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객관적 시각으로 풀어낸다.
흑사병시대의 재구성 -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시대의 내밀한 이야기통계숫자만으로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흑사병 시대의 다양한 풍경을 소설 같은 문체로 생생하게 들춰낸다. 의학과 인문학의 지식을 결합하여 현재의 우리가 수백년 전의 전지구적 전염병 사태에 품을 수 있는 의문들에도 충실히 답을 내놓는다. 페스트의 전지구적 전염 경로, 당시 자연환경·산업과 페스트와의 관계, 현세에 와서 이뤄진 페스트 연구결과 등을 볼 수 있다.
영국의 SF 작가 코니 월리스의 대표작 가운데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가 있습니다. 시간 여행이 가능해진 21세기 중반에 역사학도가 직접 자신이 연구하는 연대기로 들어가서 답사(?)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연작 작품이에요. 이 가운데 14세기를 무대로 한 『둠즈데이 북』(아작)이 있어요. 코니 월리스는 아주 팬이 많은 SF 작가이고,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와 『둠즈데이 북』은 가운데에서도 최고로 꼽히니 이참에 한번 살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특히 『둠즈데이 북』은 흑사병이 유행하는 영국 마을이 무대입니다. 앞에서 @소피아 님도 언급했듯이 이 소설의 제목은 11세기 편에서 나온 1086년 영국의 왕 윌리엄 1세가 작성한 토지 조사부이자 유럽사 연구의 귀중한 사료인 『Doomsday Book』에서 따온 것이죠.
둠즈데이 북1990년대 SF계를 대표하는 소설가 코니 윌리스의 <둠즈데이 북>이 출간됐다. 경계소설 시리즈의 네 번째 책으로, '옥스퍼드 시간여행 연작 (단편 '화재 감시원', <둠즈데이 북>, <개는 말할 것도 없고>)'의 두 번째 이야기이다.
14세기는 공포가 휩쓸고 간 세기였다. 사람들은 매일 밤마다 오늘이 이 세상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152,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14세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페스트가 맹위를 떨친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죽었음에도 사람들은 재산 소유권을 내던지지도, 파종과 수확을 멈추지도 않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법과 질서가 붕괴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152-153,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코로나 시기를 건너 오면서 인류의 회복탄력성에 대해 깊이 감명받았던터라, 위에 인용한 문구에 동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1차 세계대전 전사자의 200배 많은 사람이 이 시기 흑사병으로 죽었다는 부분에선 많이 놀랐구요. 심지어 원자폭탄을 ‘2발씩 매일매일 7개월간 터트린 것’과 같았다고 하니, 14세기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공포와 싸운 건지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한 세기씩 읽으면서 훗날 있을 잘 알려진 사건의 시작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인데, 14세기를 읽으면서 그 점이 두드러졌습니다. 이후 헨리 8세가 로마가톨릭과 갈라서는 것도 (물론 결혼 문제도 있겠지만) 갑툭튀가 아니라, 에드워드 3세때부터 프랑스인 교황과 긴장 관계였다던가, 혹은 루터의 종교개혁은 지역어가 민족주의와 결합하고 지방 군주들의 후원을 얻는 분위기가 퍼진 14세기부터 시작된게 아닐까, 하는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덧붙여, 이제껏 저는 단테의 <신곡>이 라틴어로 쓰인 줄 알았답니다?!
흑사병은 7개월 넘게 계속되면서 온 나라를 파도처럼 휩쓸었고 잉글랜드 인구의 약 45퍼센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연간으로 따지면 사망률이 77퍼센트에 달한 셈이다. 즉 1348~1349년의 사망률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보다 200배나 높았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47 ch. 14세기,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흑사병으로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교황청 관료들은 기독교인 2,400만 명이 사망했다고 계산했는데, 이 숫자가 전체 기독교인의 3분의 1에 해당한다고 여겼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사망률은 이보다 훨씬 높게 나온다. 프랑스 대부분의 지역에서 인구 60퍼센트가 사망했고, 잉글랜드에서는 사망률이 60퍼센트를 살짝 넘겼을 가능성이 있으며, 카탈루냐와 나바라에서는 60퍼센트, 이탈리아에서는 50에서 60퍼센트가 사망했다. ...... 그러나 1347년 이후로 유럽 사람들은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실 유럽인들은 계속해서 죽을 준비를 해야했다. 흑사병은 이 범유행 전염병의 첫 번째 파동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 전염병은 1361~1362년, 1369년, 1374~1375년에 돌아왔으며, 이후 3세기 동안 평균 8년에서 12년마다 돌아왔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52,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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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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