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애트우드 신간 단편소설집 읽기

D-29
저는 기혼이라 그런지 많이 찡했습니다. 곳곳에 애트우드식의 날카로운 유머도 좋았구요. 편지라는 형식이 잘 맞는 글이라고 생각했어요. 티그가 죽은 후 (우리가 지레 짐작하듯이) 애도의 단계를 밟거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이아니라, 시간이 더이상 linear하지 않은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이 인상적이었고 애트우드의 진정한 고백처럼 느껴졌어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런 느낌이 있을 수 있을것같다 공감이 느껴졌습니다.
Time has ceased to be linear, with life events and memories in a chronological row, like beads on a string. It's the strangest feeling, or experience, or rearrangement. I'm not sure I can explain it to you.
You will understand it later, perhaps, this warping or folding of time. In some parts of this refolded time Tig still exists, as much as he ever did.
제가 읽으면서 줄 그은 문장과 어쩜 이렇게 똑같을까요. 과부들을 읽으며 든 느낌이 @모시모시 님과 비슷한가봐요. 가끔은 물리법칙이 가까운 사람을 잃었을 때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죽은 사람들의 원자는 사라지지 않고 우주 어디엔가 흩어져 나무도 되고 고양이도 되고 어떤 다른 사람도 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이 글 다 읽고도 스티비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죽은 사람인 거지요? 편지를 쓰는 사람은 넬인 듯 한데.. 넬은 그럼 스티비란 사람의 죽음을 인정하려하지 않는건가요? 이 글은 '망자와의 인터뷰'가 아니라 '망자에게 쓰는 편지'인 셈인데 ....음...아무래도 제가 상황이 잘 이해가 안 가네요..
스티비는 넬이 과부가 된 후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해주는 훨씬 더 젊은 지인인 듯합니다. 첫 번째 편지에서는 넬의 솔직한 심정을 구구절절이 적습니다. 그런 후 이 대목이 나옵니다. Needless to say, dear Stevie, I will not be sending you this letter....... 그런 다음 훨씬 간결하고 표피적인, 진짜 감정은 감추고 사회적 격식만 갖춘 두 번째 편지, 넬이 실제로 보낼 편지가 나오지요. 그 두 편지 사이의 간극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보입니다. 겉으로 다 드러내지 못하는 슬픔. 넬이 말하듯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 현존하는 스티비는 넬의 슬픔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요. 저는 You are on the other side of the river. Over where you are, your beloved is still in tangible form. On this side, the widows. Between us flows the uncrossable. 이라는 대목을 읽으며 왈칵 눈물이 솟았습니다. 애트우드가 영국에서 북토크를 했을 때 맥신 피크라는 배우가 낭독한 거 한 번 들어보세요. 저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GPxUizuzVog
우와....정말 제가 원어로 책을 읽어도 되는지 이제 자신이 없네요. Britor님께서 구성을 딱 집어주시니 이제 눈에 들어오네요. 두번째 짧은 편지 끝에 맨 마지막에 붙은 'Thus:!' 이 한 단어로, 앞에 썼던 모든 내용은 부칠 수 없는 속마음이고 이 세번째가 실제 보내는 내용이라는 걸 정리해주는군요. 저는 두번쨰 편지에 스티비 너는 강 저 편에 있고 우리는 손을 흔들어 인사할 수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나와서 '뭐야...그럼 스티비도 죽은 거야?'하고 생각했거든요. 넬이 과부'라는 정체성을 마치 죽은 자와 산 자를 나누듯이 이토록 견고하게 스스로에게 붙이는 거가 납득하기 힘들었나봐요. 뒷 부분으로 갈수록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후루룩 읽은 걸 반성합니다. Britor님께서 올려주신 링크로 들으면 정말 넬의 감정이 더 생생하게 전해질 것 같아요. 아..그럼 너무 가슴아픈데.. 제가 제대로 이해못하고 지나칠뻔 했던 이 짧은 보석같은 글의 묘미를 깨우쳐주셔서 감사드려요, @Britor 님~
이 읽기 모임을 시작해주신 것에 제가 더 감사하죠.
올려주신 링크에서 낭독하는 거 들었어요. 목소리도 좋고 한글판으로 이미 내용을 읽은 뒤라서 그런지 마음을 막 흔드네요. @Britor 님의 정보력 덕분에 책읽기가 훨씬 풍부해졌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저도 기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14. 나무상자 이 글을 읽은 후 떠오르는 질문이나 감상을 나눠주세요.
There are portals in space-time, opening and closing like little frog mouths. Things disappear into them, just vanish; but then they might appear again without warning. Things and people, here and then gone and then maybe here. You can't predict it.
숲속의 늙은 아이들 Wooden box,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Now here's the jam in the refrigerator, the last jar ever. The last half-jar. Should she eat it or not it it? Either one seems like a violation.
숲속의 늙은 아이들 Wooden box,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아마 소중한 사람과 이별하고나면, 남아있는 물건들 그리고 거기에 담긴 추억들이 나를 힘들게도 하고 위로하기도 할것 같아요. ㅜㅠ 티그와 마지막으로 함께만든 잼이 냉장고에 반쯤 남아있는것을 보며 넬이 느끼는 감정이 와닿았어요.
이 글은 마지막 글, '숲속의 늙은 아이들'과 잘 연결되는 글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같이 엮어서 하나로 다시 구성할 수도 있는 글 같고요. 저는 이 두 글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한 사람과 평생을 같이 한다는 것이 어쩌면 축복이기만 한 건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사람과의 인연이 너무나도 내가 세상을 사는 방식에 너무 깊숙히 들어와버려서 일상 생활 하나하나가 그 사람을 떼내어서 생각할 수 없을만큼 밀착되어버리면 그 사람과의 인연이 끝났을 때 너무 아플 것 같다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해 줬거든요. 만든 사람조차도 잊어버리고 별로 소중한 게 아니었던 것 같은 나무 상자에 너무나 많은 의미를 주고야 마는 넬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적당히 정리하고 버리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15. 숲속의 늙은 아이들 이 글을 읽은 후 떠오르는 질문이나 감상을 나눠주세요.
책 배송도 늦고, 저자 목소리로 녹음된 오디오 파일도 있고, 책 전체의 제목과도 일치해서 제일 마지막 글을 먼저 읽게 되었네요. '늙은 아이들'을 저자는 'old babes'라는 단어를 선택했는데요, 이 '베이브'라는 단어는 흔히 연인들이 서로를 다정하게 부를 때 쓰는 말 또는 남자들이 성적으로 호감이 가는 여자를 낮춰부르는 말로 쓰인다네요. 이 글에서는 아마 노인이 된 두 자매 스스로를 약간 유머스럽게 부르고 싶어서 칭한 말이 아닐까 싶어요. 전체적인 분위기는 많이 서글프죠? 가족들과 그 가족들의 가족들이 쉬어가는 곳으로 손수 지은 휴식처가 세월이 흘러가면서 변하지 않은 집과 변해버린 사람들의 난처함을 곳곳이 되짚어가게 하는 작가의 글솜씨가 일품이지요. 집도 사람도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을수록 의미가 있는 거지만 저는 이 글을 읽다보니 오래 함께 했던 대상과 어쩔 수 없는 끝을 마주했을 때의 아픔이 너무나 크게 느껴지네요. 티그가 남긴 메모를 버리지 못하는 넬이나 쥐가 둥지를 틀어놓은 신발봉지를 꼭 본인이 확인하고 건질 건 건져보겠다는 오빠를 보며 뭐든지 너무 늦지않을때 내 손에서 떠나보내는 유효기간을 스스로 정하는 결단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Babes in the wood"는 원래 영국 전래 동화인데, 숲속에 버려진 두 아이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 내용입니다. 그 동화의 내용에 기반해서 babes in the wood라고 하면 위험한 상황 속에 내버려진 순진한 존재들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Old babes in the wood"라고 제목을 지음으로써 애트우드는 일차적으로는 유년 시절의 집으로 돌아간 넬과 여동생의 문자 그대로의 상황, 즉 숲속에 있는 두 늙은이들을 지칭하고, 상징적으로는 티그와 마찬가지로 결국 제각각의 죽음을 맞이할 필멸의 존재로서의 두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의 제목과 목차의 형식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
바로 이런 글들을 대할 때, 혼자만의 안일한 독서에 빠져있지 않고 그믐과 같은 함께 읽는 모임을 찾길 참 잘했구나 하며 감사함에 고개 숙입니다. 사실, 혼자서 'old babes'라고 이름붙인 이유가 무얼까 생각을 많이 하며 찾아보기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babes in the wood'를 찾아볼 생각은 못했지요. @Britor 님의 설명을 들으니 이제 실마리가 풀리며 아귀가 딱 들어맞는군요. 아마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랑 비슷한 류의 영국판 전래동화일까요? 어쩌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숲속에 버려진 어린이들이 느끼는 것과 같은 불안감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세상이라는 큰 숲에서 아직도 길을 못 찾고 헤매는 미약한 존재라는 두려움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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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무라카미 하루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앨리슨 벡델 - 펀 홈시무라 타카코 - 방랑소년 1저메이카 킨케이드 - 루시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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