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이름 붙이기> 그믐에서 함께 읽고 수다 나눠요

D-29
수리분류학에는 근본적인 단점이 몇 가지 있었다. 가장 큰 단점 중에는 수리분류학이 만들어낸 분류 체계가, 정확히 그들이 혹보했던 대로, 대체적인 전반적 유사성을 근거로 한 분류라는 사실이었다.(중략) 아무리 수치화되었다고 해도 형질의 선택은 연구자의 눈에 가장 명백히 들어오는 것에 의해 상당히 편향된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p.293~294, 캐럴 계숙 윤
맞습니다. 이게 바로 수리분류학의 가장 근본적 단점이더라고요. 통계의 대상이 되는 형질의 선택 자체가 주관적이라는 한계는 벗어날 수 없으니까요. 거기서 더욱 객관화, 정량화를 향해서 나아간 것이 분자생물학인데.. 음... 여기서부터 저 같은 낭만파들은 과학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게 아닌가 싶어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블랙박스 같은 세계.. ㅎㅎㅎ 구차한 변명일까요?
분자 단위로 넘어간 순간부터는 완전히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렸죠. 그것이 옳든 그르든 간에요. 하지만 신기한 건 점점 움벨트를 밀어내고 과학적 객관화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데도 그 결과물을 비교하면 진화분류학자의 계통 나무와 큰 그림이 비슷하는 것이려나요. 움벨트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날카롭고 깊은 정보였을까요 ㅎ
200년 전 분류의 거장 린나이우스의 손에서 분류의 과학이 탄생한 이래 소칼과 스니스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내내 분류학은 눈에 분명히 보이는 것에 의지해왔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8장. 화학을 통한 더 나은 분류학. p312, 캐럴 계숙 윤
분자생물학자들의 성공으로 과학자들은 사실상 분류학자들에게 생물의 외양은 무시해도 되며 오히려 무시하는 게 좋겠다고, 이제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단백질과 DNA뿐이라고 제안하고 있었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8장. 화학을 통한 더 나은 분류학. p312, 캐럴 계숙 윤
우리 인간 종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를 입히고 먹이고 우리를 먹었던 생명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애써왔던 기나긴 세월 중 처음으로, 우리 자신의 제한된 시각이 아니라, 우리와는 완전히 별개인 무엇, 바로 지구의 생명의 역사를 통해 생명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9장. 물고기의 죽음. p366, 캐럴 계숙 윤
분기학자들의 커다란 업적은 바로 저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만 9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공통의 진화상 새로움'이란 핵심 문구가 확실히 이해되지는 않아요. 구글 북스에서 원문을 찾아보니 'shared evolutionary novelties'인데, 그 'novelties' 또한 과학자들이 생물의 외양 등을 보고 주관으로 판단하는 것이라면... 물론 분기학의 철학과 시각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그렇게 큰 차이를 가져오는지는 쉽게 와닿지는 않네요. 워낙 반과학적 체질이라서인가요? ㅎㅎㅎ 여전히 "수리분류학자들에게는 공통의 진화상 새로움이라는 특별한 것을 해독하는 일은 주관성을 다시 들여놓는 또 다른 방식(p358)"이라는 문구에서 생각이 자꾸 맴돕니다. 뭐 그래도 계속 읽으면서 이해해 보렵니다. 재미있으니까요. ㅎ
하지만 움벨트를 밀어낸 그런 업적들의 폐해는 훨씬 더 어마무시합니다. 9장 마지막은 '물고기의 죽음'이라는 제목처럼 비장하네요. "과학계가 모든 생명에 대한 지배권(p368)", 즉 분류와 명명 등을 독점하고 나머지 인류 모두를 배제했으니, "우리가 생명의 세계에 대해 그렇게 눈을 감아버린 것, 그리고 그 세계가 사라져간다는 사실에 그렇게 철저히 무관심하게 된 것(p369)"으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세계가 생물다양성 위기에 봉착했다고 처음으로 발표한 것이 분기학자들이 부상한 격동의 1980년대(p367)"란 게 결코 우연이 아니란 거죠. 아, 이제 어찌 헤쳐나갈지 궁금하네요. 4부로 들어갑니다.
4부의 '되찾은 비전'이라는 제목만 봐도 하... 가슴이 웅장해집니다ㅋㅋ 우리의 움벨트를 되찾으면서 분류학의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것인가! 기대되네요
저 또한 가슴과 그리고 머리가 웅장(?)해지면서도 대체 어떤 결말이 나올까.. 어떻게 수리분류학, 분기학과 우리의 움벨트 사이의 접점을 찾을까.. ㅎ 일단 완독은 지금 막 달성했고요. 지은이의 감사의 말과 옮긴이의 말까지 죽 읽었습니다! 자 어쩌면 매우 주관적인 시점으로 돌아간 결론이 아닐까 싶어요. 408~409쪽에서는 이렇게 각자 나름의 시각과 논리대로 너무도 멋진 분류학들을 하나씩 호명합니다. 전 4부를 기한 안에 다시 복습하면서 정리할까 싶습니다!!! ㅎㅎ 다들 얼른들 오세요 홧팅...
저도 4장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과학에서 낭만(?)이 없어지니 확실히 객관적이어 가면서도 재미는 줄어드네요. 분자분류학은 오로지 DNA 또는 RNA를 통해서 생명의 나무를 구분하려다보니 당연히 실험 위주가 되고, 반복 위주가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곳 지루함으로 이어지네요. 3부의 중간을 넘어가면서 수리분류학과 분자분류학이 등장했을 때만해도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가 솟았는데, 이쯤되니 진화분류학이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이네요 ㅋㅋ
DNA에 일어난 변이, 그러니까 염기서열에 일어난 변화는 조상에게서 후손에게로 전해지며 오랜 세월 서서히 축적되므로, 한 유기체의 DNA에서 나타나는 유사성과 차이점은 지금까지 알려진 그 어떤 것보다 실제로 가깝거나 먼 진화적 관계에 잘 부합할 것이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p.313, 캐럴 계숙 윤
균류와 동물이 진화의 가지가 더 가깝고, 식물은 먼저 떨어져나간 더 먼 이웃이라는 부분도 넘어섰네요. 고등학교 때 생물 선생님이 "나는 버섯이 싫어. 버섯은 식물처럼보이지만 실제론 균 덩어리야!"라고 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서 버섯은 식물이 아니라는 걸 일찍이 깨달았어요. 그래서 균류과 동물과 더 가깝다고 했을 땐 그다지 놀랍게 다가오진 않았네요 ㅎㅎ 그 다음 소제목인 <물고기의 죽음>, 제목이 너무 웅장(?)해서 빨리 읽고 싶은데 도통 시간이 나질 않네요ㅠㅠ 오늘 중으로 최대한 읽고 4부 넘어가보겠습니다! 모임이 마감되기 전까지 다 읽는 게 목표네요!
이 다양한 분류학들은 찬란하게 반짝거리는 우리 인간 비전의 무한히 다양한 색조들이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11장. 과학을 넘어서. p409, 캐럴 계숙 윤
결국 다양한 분류학 방법 모두를 인정하자는 마무리가 참 좋았습니다. 정통적인 과학이라고 부르기엔 분류학은 어딘가 살짝 부족한 부분이 있었는데 결국 선을 그은 분기학과 움벨트에 맡기는 분류학 모두가 인정받는 게 너무 따듯한 결말이어서 좋았어요ㅎ
결국 ‘물고기는 없다’라던가 ‘새는 생존하는 공룡’이라는 관점이 현대분기학자들의 견해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생물관련 책을 볼 때 이런 내용이 나오면 맥락을 알기가 어려웠거든요. 좋은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가장 마지막 '쥬라기 월드' 시리즈에서 이런 견해를 받아들여 깃털이 있는 공룡이 실제로 등장하기도 했다고 합니다.(하필 마지막 편만 못챙겨 봐서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검색하니 나오네요) 분기학자들의 노력이 조금씩 세상에 녹아들고 있는 것이 좋고 나쁘고로 나눌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과학계에서는 공식적으로 이쪽을 객관적 견해로 받아들인다, 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인간의 움벨트가 작용하는 기존의 진화분류학 또한 우리의 좁은 삶과 지구의 생태계 보호 입장에선 여전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함께 부딪히며 멍들지만 혼돈과는 다르네 이 세상이 그러하듯 조화로운 혼란이지 우리가 다양성에 질서를 보는 곳 모든 게 다른데도 모두 서로 어우러지는 곳 알렉산더 포프, <작품선>
자연에 이름 붙이기 11장. 과학을 넘어서. p394, 캐럴 계숙 윤
그동안 열심히 읽고 이야기 나누고 계셨네요~! 책은 급하게 다 읽었는데 그뭄에 들어올 겨를이 없었네요. 저도 끝나기전에 문장수집도 더하고 해야겠어요~!
주관성(움벨트의 심장이자 영혼)은 서서히, 점점 더 많은 영역에서 금지의 대상이 되어갔다. 분류학자들은 사적으로는 생명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 비전을 계속 믿고 있었지만, 그 비전을 현대 과학의 일부로서 공개적이고 합리적으로 옹호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을 알았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297p, 7장, 캐럴 계숙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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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그믐,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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