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이름 붙이기> 그믐에서 함께 읽고 수다 나눠요

D-29
이 부분이 정말 놀라웠던 게, 한글의 경우엔 소리를 내는 모양에 맞게 했다고 하지만, 알파벳이나 다른 문자는 그렇지 않음에도 실험결과가 아주 유사하게 나온다는 게 놀랍지요. 이 책의 말루마, 타케테도 미국에서 실험을 했을텐데 95%가 동일하게 답변을 했다는 것은 언어와 대상 간의 어떤 더 깊고 심오한 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균류(버섯 등)를 다루는 도서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에서 흥미로운 대목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숲 속의 구성원들이 맺는 네트워크를 통칭 우드와이드웹(Wood Wide Webs)라고 이름붙이고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균근 네트워크와 뇌의 신경 네트워크와의 유사성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293p에 이르면 이런 대목이 나오거든요. "우리는 식물과 상호작용을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균근 네트워크와도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은유로부터 벗어나, 지금까지의 닳고 닳은 인간 토템에 기대지 않으면서 우드와이드웹에 대해서 말하고, 스스로의 고정관념 밖에서 생각할 수 이을까? 공유 균근 네트워크를 앞서 나가는 답이 아니라 그저 의문으로 계속 둘 수 있을까? '나는 이제야 그 시스템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지의류를 지의류로 두려고 하고 있다.'"(293p) 여기서 '이런 은유' 혹은 '닳고 닳은 인간 토템', '스스로의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캐럴 제숙 윤이 이야기하는 인간의 '움벨트'를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비전문가의 언어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시선, 인간중심적인 시각을 이야기하고 이를 벗어나 네트워크 전체를 파악해 보려는 노력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저자는 이런 인간중심적인 시각을 벗어날 수 있을까를 질문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정말 쉽지 않아 보이거든요. 움벨트라는 것이 단순한 분류 도구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자연을 식별하며 생존하는데 근본적으로 중요한 '장치'임을 이해한다면, 이를 벗어나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울까 싶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AI의 도움을 받아 인간중심적인 시각을 벗어나 파악해보려는 시도도 이해가 되는 듯 합니다. 예를 들어 AI를 이용하여 사람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시도가 떠오릅니다.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시적인 문체와 과학적 사실들, 그리고 일러스트를 한데 엮어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곰팡이의 놀라운 세계를 들여다본다. 곰팡이, 즉 균이 만들어내는 우리 자연의 경이로움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생태계의 긴밀한 네트워크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약간 겉도는 얘기지만, 저는 고등학교 때 버섯이 균류인 줄 처음 알았는데요. 그 당시 생물 선생님이 자신은 버섯을 싫어하는데 그 이유는 균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라고 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원래 버섯을 안좋아했지만 균을 먹는다고?! 라는 생각에 지금도 여전히 입에 안대고 있어요ㅋㅋ 개인적으로는 균이라서 안먹는다기보다 버섯 특유의 향과 식감이 싫달까요 ㅎㅎ
아주 재밌는 책을 또 소개해주시네요. 아이스님이 앞에 서술하신 "균근 네트워크와 뇌의 신경 네트워크와의 유사성"이라는 부분에 눈길이 자꾸 갑니다. 일이 좀 바빠져서 책을 놓고 있다가... 이제는 뇌의 어떤 부분이 생물 세계의 인지, 분류, 명명을 담당하는지를 설명하는 부분(p.227-28)을 읽고 있거든요.
"이름을 불러도 벌레들이 대답을 안 한다면 이름이 있어 봐야 무슨 쓸모가 있니?" 각다귀가 말했다. "걔들한텐 쓸모가 없지. 그렇지만 걔들한테 이름을 붙인 사람들한테는 쓸모가 있을 것 같아. 아니면 애초에 왜 걔들한테 이름이 생겼겠어?" 앨리스가 말했다. 루이스 캐럴, 『거울 나라의 앨리스』
자연에 이름 붙이기 p.19, 캐럴 계숙 윤
내막을 들여다보니 생명의 분류와 명명은 오히려 훨씬 민주적인 일이며 심지어 과학의 지배력을 뒤집어엎는 일이고, 과학보다 훨씬 흥미로운 일이며 언제나 그래왔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됐다. 급기야는 과학이 완벽하게 해내려고 애쓰고 있던 것, 바로 생명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과학 자체가 훼손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더욱더 예상하지 못했던 깨달음은, 완전히 현대적이며 철저하게 진화론적인 새로운 분류의 과학이 사실상 전 세계의 보통 사람들을 생명의 세계와 점점 더 단절되도록 몰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거의 아무도 눈치채거나 크게 염려하지 않는 사이 세계 곳곳에서 여러 생물 종이 차례로 사라져가는 현 상황을 초래한 비극이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p.20-21, 캐럴 계숙 윤
어쩌면 우리가 오랜 옛날부터 행해왔던 '이름 붙이기'가 그 나름대로 삶의 윤곽을 만들고 자연을 가까이 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진화론과 유전적 분류법은 일반인이 그것을 납득하기에 어려운 것들이 너무 많지요. 전혀 외형이 같지 않은 두 종의 유연관계가 비슷하게 생긴 두 종보다 훨씬 더 가깝다고 할 때, 우리는 큰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이게?!"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죠. 인간의 직관에 의해 분류했던 것이 오랜 기간 이어져오고, 그것이 잘못된 분류법임이 밝혀진 후에도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건 역시 우리의 친숙함, 편리함 때문이라고 봅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도 아마 비슷할 거예요. 전문 분류학자가 아니라면 외관을 보고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하죠.
5장을 읽고 있는데 성인이 되어 어느 시기에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게 된 플로라D와 J.B.R.의 사례는 충격적이네요. 어떻게 이렇게 급변할 수가 있을까 싶은 이야기입니다. 생명을 지닌 존재를 알아보고 체계화하는 기본적인 능력이 우리 존재의 생존에도 얼마나 중요할 지 실감이 가는 사례였어요.
저도 그부분 읽으면서 꽤 충격이었어요. 움벨트를 잃는다는 것은 직관이 배제된 질서의 객관화가 아니라 무질서화일 줄은 몰랐거든요ㄷㄷ
아이들이 공룡에 관심을 갖는 시기를 이야기하는 대목도 흥미롭네요. 책에 나오는 모든 공룡의 이름과 생김새를 외우고 구분하던 조카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아이들에게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활짝 열린 움벨트가 작동하고 있는 광경이다.”(235) 이 부분은 심지어 감동스러울 정도네요~!^^
저는 이 부분은 살짝 이해를 못했어요. 저도 남자고, 제 동생도 남자였지만 공룡에 관심만 있었을 뿐 그것들의 이름과 생김새를 외운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공룡에 관심이 많더라구요. 공룡의 이름이 쉽거나 짧은 게 아님에도 세세한 특징을 통해 이름을 딱딱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 진짜 신기하기까지 했어요
5장의 뒤로 넘어갈수록 골상학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요. 이 부분도 상당히 흥미롭네요. 어느 유튜버를 통해 과거에 흑인은 노예를 담당하는 뇌의 부분이 있다는 것을 골상학을 통해 증명되었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요. 와... 말이 골상학이지, 실제로는 우생학의 하위 학문이나 다를 게 없더라구요. 백인 우월과 흑인 노예를 합리화 하기 위한 두개골의 구조 파악이 하나의 목적이 되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되는가 싶었습니다.
어제 하루는 쉬어갔네요ㅎㅎ 저는 2부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병행하는 책이 많아 조금 더딘 감이 있네요.
노엄 촘스키가 '플라톤의 딜레마'라고 부른 것으로,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 본 것이 아주 적은 데도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또는 버트런드 러셀의 표현으로는 "인간은 세상과 접촉이 짧고 사적이며 제한적인데도 어째서 그렇게 많은 걸 알 수 있는가?하는 질문이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p. 241, 캐럴 계숙 윤
작가가 초반 프롤로그에서도 어급했던 내용이네요. 지금 저희는 이게 움벨트라는 것이 작용해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과연 움벨트라는 것이 소수의 샘플만으로 보통명사를 가려내는 것이 가능한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예로 든 개의 경우에도 다리가 없거나 귀가 잘리거나 혈통이 다른 종의 개를 보더라도 우리는 '개'라고 인식하지요. 어째서일까요. 움벨트는 소수의 예시를 통해 하나의 보통명사로 묶어서 위험을 회피하는 식으로 작동하는 것일까요.
문득 플라톤이 얘기했던 '이데아'가 정말로 존재하면 우리는 그렇게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움벨트이거나 움벨트의 한 속성 같기도 해요.
저는 이 '플라톤의 딜레마'라는 단어 자체가 궁금해요.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관련된 한겨레 기사가 검색되길래 읽어봤더니... 노엄 촘스키, <언어에 대한 지식>에 따르면 "플라톤 테제는 버트런드 러셀이 말한 ‘세상과의 접촉이 짧고, 개인적이며, 제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지식을 알 수 있을까?'"로 집약된다면, 반대로 오웰 테제는 "이렇게 많은 자료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인간은 이다지도 조금밖에 알 수 없는가?"로 요약된다고 하네요. 결국 "러셀은 ‘인간 이성의 가능성’에 주목했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을 고양시키는 계몽에 주력했고, 오웰은 전체주의 사회의 ‘인간 의식의 조작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다."라고 한다니.. 움벨트가 인간 이성(?) 또는 인지의 가능성이면서도... 우리 인식의 한계, 조작이나 왜곡의 가능성도 품고 있는 양면성을 말하는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지.. 하여튼 어렵네요. ㅜㅜ 왜 딜레마라고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고요.
사실 이 대목도 그냥 지나쳤는데 다시 점검해보게 되네요. 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오웰 태제에 대해 이렇게 또 알게 되네요!
<이끼와 함께>라는 책을 펼쳐보다가 이런 문장이 니왔습니다. 요새 움벨트에 꽂혀서 이런 대목만 나오면 옆길로 샙니다. ㅋㅋㅋ 30-31p "이끼를 알려면 학명을 외워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붙인 라틴어 단어는 임의적일 뿐이다. 나는 새로운 이끼 종을 발견 했지만 정해진 이름이 떠오르지 않으면 ‘초록 융단’, ‘곱슬곱슬한 꼭대기’, ‘빨간 줄기’처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이름을 붙인다. 단어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내게 중요한 건 이끼를 인식하고 그 개성을 파악하는 일이다. 원주민에게 앎이란 인간 외에도 모든 개체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고, 모든 존재는 이름을 지녔다. 어떠한 존재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존경의 표시고 이름을 무시하는 것은 무례함의 표시다. 단어와 이름은 우리 인간이 서로뿐 아니라 식물과도 관계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이 대목을 읽고서 인간에게 (혹은 모든 생물?) 세계를 인식하는 나름의 방식이 있고, <자연에이름 붙이기>에서는 이 역량 혹은 매커니즘을 ’움벨트‘라고 한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움벨트는 우리가 세상과 관계를 맺도록 해주는, 혹은 우리를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인간의 본능이라고요. 그리고 인간만 특별한게 아니므로 이건 모든 생물들에게 나름의 움벨트가 있을 것이란 추측도 해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궁금해지는 것은 인간의 경우, 움벨트라는 것이 과연 인간이 세상과 유대를 맺게 해주는 생명 고유의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왜냐면 <이끼와 함께>의 저자인 아메리카 원주민인 경우, 세계 인식 방법이 현대과학의 방법론으로 교육받은 사람들과 상당히 다르기 때문인데요. 철학전공이 아니라 용어 선택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유물론적/환원론적(서양 과학) 시각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것과, 원주민의 물활론적(비서구/혹은 근대 이전) 인식의 차이를 본다면 이런 관점에서 인간의 움벨트도 그저 본능이라고만 할 수 있을지.... 아직 움벨트에 대한 이해가 명확하지 않아서 양립이 가능한데도 충돌하는 모습만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끼와 함께 - 작지만 우아한 식물, 이끼가 전하는 지혜이끼의 생태를 국내에 소개하는 첫 교양서이자, 이끼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생명인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자연에세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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