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이름 붙이기> 그믐에서 함께 읽고 수다 나눠요

D-29
정말 놀라웠던 건 우리가 교과서에서 이명법과 분류법에 대해서 배운 린네도, 진화론으로 유명한 다윈도 허점투성이의 분류학을 했다는 것이었어요. 심지어 진화론이 나왔을 땐 마치 모든 게 다 정리될 것만 같은 분위기(물론 책 속에서)였는데 실상은 여전히 다른 두 개체간 경계를 긋는 것이 어렵다는 것에 대한 설명을 읽으니 한편으로는 수긍도 되었구요.
숲속을 누비며 다니는 아이라면 누구나 아는 어떤 사실, 자기가 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아는 그 사실을 내가 처음으로 알게 된 것도 바로 그 숲에서였다. 그건 바로 생명의 세계란 아무렇게나 뒤죽박죽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비슷한 것들끼리 무리를 이루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p23, 프롤로그, 캐럴 계숙 윤
제가 그리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이라고 믿고 싶습니다ㅋㅋ), 제가 어릴 땐 pc방이 없었던 때라 모래 놀이터가 꽤 많았었어요. 놀이터와 아파트 주변, 산길 초입에서 참 많이 뛰어 놀았었는데요.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시각이 생긴건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정확하게 그것들의 이름을 알거나 하진 못했지만, 비슷한 것들을 모아보이고 하고 다른 건 왜 다른지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하기도 해보구요.
“움벨트(umwelt)는 글자 그대로 ‘환경’ 또는 ‘주변 세계’를 뜻하는 독일어 단어지만,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그 단어를 더 구체적인 무언가를 가리켰다. 이 생물학자들에게 움벨트란 지각된 세계, 즉 한 동물이 감각으로 인지한 세계를 의미한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때』 35p 또 움벨트란 “각 종이 지닌 특수한 감각 및 인지 능력에 의해 키워지고, 그 종에게 결핍된 부분에 의해 제한된 결과 그 종이 특유하게 지니게 된 시각”(35)이다. "움벨트는 개와 벌뿐 아니라 모든 동물에게, 심지어 인간에게도 있다. 우리는 그걸 ‘실제’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사실 그건 우리를 둘러싼 생명의 세계에 대해 우리 특유의 감각이 그려낸 그림이다. 그런 게 바로 움벨트다. 그리고 거기에 답이 있었다.“(36)
자연에 이름 붙이기 35-36p, 캐럴 계숙 윤
움벨트의 정의에 따르면, 남녀가 끊임없이 싸우면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각자의 움벨트가 결이 맞지 않기때문인가 봐요. 개인적으론 사람이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타인의 ’움벨트‘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단 생각이 드네요. 생물학자들은 부부싸움을 하면 ’당신은 나의 움벨트를 아직 이해하지 못했어‘라고 생각할까 싶네요. ㅋㅋ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느껴져서,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 나선 게 1900년대가 지나서였음에 놀랄 일이었지요. 심지어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면서 분류학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는데도, 스멀스멀 움벨트가 분류학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을 보며 인간의 움벨트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 되었어요.
물론 움벨트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라고 봐요. 작은 지역이 삶의 터전의 전부일 땐 움벨트는 분명 생존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지각되는 것들을 분류하는 것은 그 당시엔 생존에 직결되었을 거니까요. 문제는 세상이 확장되면서 더이상 좁은 세계의 움벨트만으로는 분류를 할 수 없을 때가 왔을 때지요.
일부 과학자들은 생명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에 특화된 뇌 영역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까지 제시했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p.33, 캐럴 계숙 윤
의식하지 못할 뿐이지, 사실 우리는 아기들을 포함해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명의 분류에 관한 한 석학처럼 막힘없는 능력을 보여줄 거라고 기대한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p.34, 캐럴 계숙 윤
이 부분과 그 아래 예시를 읽으며 감탄했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자연스럽게 몇 가지 개체만 보고도 특정 개체군을 모두 묶어 부를 수 있게 되잖아요. 어떤 것을 다른 어떤 것과 분리하는 것이 정말로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심겨 있었던 것이었어요. 저는 그것을 유전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뇌의 특정 영역에서 이 부분을 담당하는 게 있다는 것에서 또 놀랐었습니다. ps. 뇌의 특정 부분이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유전적 진화의 일환일까요
‘분류’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우선 어떤 기준이 있어서 이를 잣대로 비슷한 것과 차이 나는 것들을 묶는 행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것이 모든 유기체라면(어쩌면 무기체도?) 지니고 있는 특성일 것 같습니다. 미시적인 수준에서 거시적인 수준까지요. 그리고 인류의 지성사애서 중요한 화두 하나는 ‘같음’과 ‘다름’을 판별하는 일인 것 같은데, 이것이 결국 ’분류하기‘의 전통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심지어 단세포 생물이든 다세포 생물이든, 혹은 개체든, 집단이든 ‘나와 너’의 구분,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문제는 생존을 위해서도 아주아주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뒤에 가서 나오지만, 생존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것에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분류를 한다고 하더라구요. 음식에 든 독의 유무나 위험한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 등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것도 분류해왔지만, 새의 모양만 가지고 분류를 한다든지, 관목과 교목을 나눈다던지 하는 건 사실 생존과 크게 직결되지 않음에도 분류를 한다는 것에서 정말로 '본능적 분류 욕망'같은 게 있나 했어요.
뒤에 또 어떤 내용들이 나올지 기대가 되네요~^^
우선 나는 내 물고기들을 되찾고 싶다. 알고 보니 나는 뱀들과 새들과 물방울을 튀기는 매혹적인 물고기들로 가득한 세계를 내게 보여줬던 유년기의 숲에서 마음껏 활개 치는 움벨트와 함께하던 그 시절, 처음부터 올바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 비록 과학을 대단히 존경하는 사람이기는 해도 나는 물고기가 존재한다고 주장해야겠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p.44, 캐럴 계숙 윤
이미 분기학자들로 인해 '어류'가 존재하지 않음이 증명되었고, 또 그렇게 분류하여 사용중에 있는데 과연 작가님은 어떻게 과학을 신뢰하면서 '어류'를 부활시킬지 기대가 되더군요. 저는 이부분을 읽으며 가슴이 뭉클해지기까지 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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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캐럴 계숙 윤이 책(20p)에서 이 책을 썼던 2009년까지 무려 20년간 <뉴욕 타임즈>에 글을 기고했다고 되어 있어서, 혿시나 하고 <뉴욕타임스 과학>(열린과학, 2018)을 찾아 봤더니 저자가 쓴 글 한 꼭지가 있네요. (제목: 최초로 새로운 종의 탄생을 재현하다)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진화 기작에 관한 실험 같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잡종 해바라기를 가지고 한 실험에서, “진화가 과학자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반복과 예측이 가능함을 입증”했다고 나옵니다. 진화가 철저히 모종의 ‘우연’에 따른 결과라고 여겨져왔는데, 반대로 진화가 결정적이어서 예측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와서 놀란 것이겠지요. 하지만 또 뒤에서는 ‘진화의 예측 불가능성 개념이 흔들린 것은아니고, 변화무쌍한 대규모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는 문제가 완전히 달라진다.’라고 정리하고도 있습니다. 실험의 의미에 대해서는 명확히 이해가 안가서 다시 살펴봐야 겠네요. 아무튼 저자가 기고한 이 글은 1996년 5월 8일자 <뉴욕 타임스>기사로 나옵니다.
뉴욕타임스 과학 - 질문, 발견, 탐구에 관한 150년간의 이야기13년 동안 《뉴욕타임스》의 과학 섹션 <사이언스타임스>의 편집장으로 일한 데이비드 코코런이 천문학, 수학, 물리학, 지구과학, 생물학, 의학 등 13개의 분야로 나눠 신중하게 고른 기사들로, 지난 한 세기 동안 과학계에서 주목받은 발견, 실패, 수수께끼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진화가 예측가능한 부분이라고 하셔서 모든 게 정말로 다 결정되어있는 것인가 했다가, 자연에서의 진화와 실험실에서의 진화는 예측의 규모가 다르다는 것에서 안심했네요ㅎㅎ 자연에서의 진화 방향의 예측은 날씨의 예측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큰 가능성의 방향은 알 수 있지만 너무나도 많은 변수로 확답을 내릴 수는 없는... 그런거요ㅎ
아이스나인님(아님 빙구님?... 기분 나쁘실 수도 있으나..ㅜㅜ)의 관련 글 요약을 흥미롭게 읽다가.. 막상 좀 무서웠는데.. 저도 안온님처럼 결론적으로는 안심이고요...ㅎ.. '결정'이라는 말이 때론 너무나도 섬뜩한 나머지.. 그리고 좋은 책 하나 또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연계스러운 책을 언젠가는 많이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결정론은 늘 섬뜩한거 같습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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