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16. 하루키 읽는 밤 @수북강녕

D-29
열다섯번 째 생일이 찾아왔을 때, 나는 집을 나와 멀고 낯선 도시로 가서, 자그마한 도서관의 한쪽 구석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해변의 카프카 - 상 - 개정판 19p,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해변의 카프카 - 상 - 개정판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해변의 카프카>. 23년 하루키 문학을 집대성하는 소설이며, 하루키 스스로 "심혈을 기울여 완성했고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작품이며 지극히 만족스러운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개정판 반양장본.
무력감-아마도 이 무력감에서 피폐가 솟아나고 있을 것이다. 거기서는 출구가 입구이고 입구가 출구이다. 아무도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다. 그곳은 차갑고 희미한 어둠에 싸여 있다. 밤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밝고 낮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둡다. 그런 희미한 어둠에 휩싸일 때 나는 올바른 방향과 시간을 잃어버린다. 또한 나는 과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일인지를 알 수 없게 된다.
[그믐밤] <먼 북소리> p.35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야, 하고 그들은 내게 말한다. 아무리 멀리 가도 소용없어, 붕붕붕붕. 어디로 가든 우리는 끝까지 따라갈 거야. 그러니까 당신은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마흔을 맞이하게 될 거야. 그리고 그렇게 나이만 먹어갈 거야. 아무도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테고, 그건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질 거야. 아니, 그렇지 않아! 하고 나는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제대로 소설을 쓸 거야. 사라지는 것은 너희들이야.
[그믐밤] <먼 북소리> p.35
화제로 지정된 대화
☾ 두번째 게릴라 퀴즈~! 수북강녕이 자리한 은평한옥마을은 오늘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북한산 단풍이 울긋불긋, 가을이 깊어가는 느낌이 제대로였어요 괜히 마음이 들뜨고 책이 잘 읽히지 않는 날이었습니다 ^^ 그래서, 오늘은 음악을 들어 보기로 합니다 ♬ 하루키의 작품 속에는 클래식, 재즈, 올드 팝 등 다양한 음악이 등장하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은 하루키의 작품별, 장면별 등장 음악을 총정리해 주는 책이라 아주 재미있어요 작품 속에 해당 음악이 나오는 정황, 등장 인물의 주요 대사뿐 아니라 앞뒤 관계와 간단한 해석을 덧붙이고, 하루키뿐 아니라 음악가에 대한 사연도 소개하고 있답니다 이 책을 참고해서 두 개의 음악 퀴즈를 내보려고 하는데요 ^^ 정답을 둘 다 아시더라도 하나씩만 맞춰 주시면 어떨까요? 책의 장면을 떠올리며 문제의 곡을 들어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Q1. 무라카미 하루키는 비틀스, 비치 보이스, 도어스, 밥 딜런 등의 팝송을 작품에 많이 인용했는데요 마이클 잭슨에게는 인색했어요 딱 한 곡의 노래만 세 편의 대표 장편에 등장시켰다고 하거든요 『댄스 댄스 댄스』, 『태엽 감는 새』, 그리고 『1Q84』에 나오는 마이클 잭슨의 곡은 무엇일까요? ★ 『1Q84』에 나오는 음악?! 하면 대부분은 소설 첫 장면에 강렬하게 등장하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를 떠올리실 텐데요 주인공 아오마메가 '신포니에타'를 듣고 다른 세계로 건너갈 때 마이클 잭슨의 이 노래가 나오고, 아오마메는 비상계단을 통해 탈.출.하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옷가지를 벗으며, '스트립쇼 무대에 오른 것 같네'라고 생각합니다 『댄스 댄스 댄스』와 『태엽 감는 새』에서도 살짝 언급되는 곡, 마이클 잭슨이 전설적인 문워크를 선보인 이 곡의 제목을 맞춰 주세요~! ...... is not my lover / She's just a girl who claims that I am the one / But the kid is not my son ♬ Q2. 다음은 클래식입니다 하루키는 작품 제목과 연관 있는 곡을 등장시키는 것 같기도 해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는 「The end of the world」가 흐르고,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는 「Sound of the Border」가 나오는 것처럼요 『태엽 감는 새』는 제목에 '새'가 들어가는 만큼, 1권 1장부터 '새' 이야기로 시작하는데요 소설의 첫 단락에 등장하는 음악 제목부터 '새' 이름이 나옵니다 "부엌에서 스파게티를 삶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FM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로시니의 「○○ ○○」 서곡을 따라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스파게티를 삶기에 더없이 좋은 음악이었다."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가 하룻밤에 완성하였다는 이 곡은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아주 불편한 폭력 장면에도 배경음악으로 등장합니다 로시니의 오페라 속에서는 '은수저와 은포크를 훔쳐가는 까치'를 일컫는 매우 직관적인 제목인데요 『태엽 감는 새』에서는 첫 장면에 등장할 뿐 아니라, 아내가 가버린 다른 세계의 호텔 208호실 앞에서 커티샥 쟁반을 든 보이가 '주문처럼' 무한 반복해서 부는 휘파람으로도 다시 등장하며 소설의 마무리로 향해 가는 역할을 합니다 이 곡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 맞추시는 분은 수북강녕에 오시면 작은 선물을 드려요 ***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100곡의 음악을 록, 팝, 클래식, 재즈 등 장르별로 정리하고, 그 음악을 친절히 해설하면서 하루키 작품에서의 의미나 역할, 작가와의 연결고리를 알아보는 약간은 특이한 문학+음악 가이드북.
Q2 정답은 도둑까치 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을 읽어보고 싶은 뽐뿌가 느껴지는 퀴즈였습니다. 클래식에 한정되긴 했으나 전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가 출간되고 나온 아래 유투브 영상을 책 읽으면서 자주 틀어두곤 해요! https://youtu.be/zz2JRoNp0og?si=kIR64srWyKjq4OyK
@hongsul 정답입니다! 『태엽 감는 새』에서 문제의 호텔 208호실로 벽.을.통.과.해. 들어간 '나'는 호텔 보이가 휘파람으로 부는 「도둑 까치 서곡」의 무한 반복을 들으며 이 오페라의 내용이 무엇일까, 이곳에서 나가면 찾아 보리라 생각하는데요 저 역시 이번 퀴즈를 내면서 로시니의 오페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네요 ^^ 하루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음악들이 초기에는 올드 팝 중심이었다가 어느 순간 클래식으로 넘어갔다고들 하지요 오프모임 그믐밤에는 링크 걸어주신 유튜브를 틀어 두겠습니다 ^^
그렇다면 저는 첫 번째 질문에 답해보겠습니다. (왠지 이 질문 아니면 앞으로 맞출 가능성이 없을 듯 하여 얼른 손들어 봅니다.ㅎㅎ) Q1 정답은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 이 곡이 하루키 책에도 등장했었군요. https://www.youtube.com/watch?v=Zi_XLOBDo_Y
<먼 북소리>의 주된 배경은 이탈리아와 그리스지만 뒷 부분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음악제 이야기도 잠깐 나옵니다. 하루키가 부인과 함께 재즈 바를 운영한 것은 유명할 텐데요. 재즈와 함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조예도 깊고 애정이 큰 것 같네요. 저도 재즈를 좋아해서 집에 항상 틀어 놓는데요, (jazzradio 의 구독자) 얼마 전에 남편이 클래식 음악을 듣고 싶다며 클래식 라디오 채널을 틀어서 좀 들어보려 했는데 영 못 듣겠더라구요. 재즈는 틀어놓고 일도 하고 뭘 하든 신경이 거슬리지 않는데 클래식은 "제발 날 들어" 라고 소리치고 있는 느낌이라 저절로 귀가 쫑긋해지고 정말 "듣게" 되어서 플레이를 일부러 안 하고 있어요.
@김새섬 정답입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맞춰 주시는 걸로요 ^^ 로시니의 오페라 못지 않게,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에 대해서도 그 배경이나 가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에야 알았어요 "노래 속의 주인공은 매혹적인 빌리 진이라는 여성과 클럽에서 섬씽이 있었는데 얼마 뒤에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와서는 주인공에게 당신의 아들이니깐 그에게 책임지라고 외친다. 주인공은 '그녀랑 섬씽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녀가 아름다운 것도 맞지만 그녀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고 아이도 나의 아이가 아닙니다!'라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나무위키에서 이 노래에 대해 요약한 설명입니다 마이클 잭슨이 직접 작사, 작곡, 편곡을 맡은 이 곡 속 '빌리 진'의 실제 모델은 무려 브룩 실즈라는 설도 유력했다고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에서는 이 곡의 가사 중 "People always told me be careful of what you do / And don't go around breaking young girl's heart / And mother always told me be careful of who you love / And be careful of what you do 'cause the lie becomes the truth" 라는 부분을 언급하며,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을 조심하라는 의미심장한 가사가 『1Q84』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고 해석하였어요
오오 모르고 있던 책 하나 더 알아갑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하루키 책에 나오는 음악 중 찾아서 들어보고 여러번 듣는 건 ‘a summer place’ 가 유일합니다. 다른 음악들은 책을 읽다가 찾아서 들어보면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가 ’엘리베이터 음악‘ 을 좋아해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여기까지 쉬지 않고 계속 달려온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나 스스로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다음 나 자신의 내부에서 나올 소설이 어떤 것이 될지 기다리는 그것이 낙이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제4장 | 나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에서 배워왔다' p.127,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제4장 | 나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에서 배워왔다' p.128,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아직 책 찬찬히 읽는 중이긴 하지만, 예전에 조금 읽었을 때에 포스트잇으로 표시해둔 좋았던 문장들 중 두 개를 올려봅니다 :)
도서관 말고 내가 가야 할 장소는 없다. 이토록 간단한 사실을 왜 지금껏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믐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p.235
출판사에서 일을 하던 주인공이 새 직장을 구하면서 하는 말.
옛날 옛적에, 어느 곳에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열여덟 살이고, 소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다지 잘생긴 소년도 아니고, 그리 예쁜 소녀도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외롭고 평범한 소년과 소녀다. 하지만 그들은 이 세상 어딘가에는 100퍼센트 자신과 똑같은 소녀와 소년이 틀림없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믐밤]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그 가련한 젊은 샐러리맨이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던 이중의 심각한 폭력에 대해,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이건 이상한 세계에서 온 것' '저건 정상적인 세계에서 온 것'이라고 이론적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들 당사자에게 그것이 무슨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들에게는 그 두 종류의 폭력을 여기와 저기로 구별하여 생각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p.1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어떻게 쏠것인가 하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거의 비슷하다. 어떻게 여자를 꼬드길 것인가, 어떻게 싸움을 할 것인가. 초밥집에 가서 무엇을먹을 것인가, 그런 것들 말입니다.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 - 개정판 34p,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 - 개정판<일간 아르바이트 뉴스>에 연재한 90여 편의 에세이를 모은 작품집이다. ‘시티 워킹’이란 주제로, 학생 시절부터 작가가 된 지금까지 하루키가 겪어온 도쿄와 근교 생활에 대한 단상들을 담았다. 글의 내용을 재치 있게 살려낸 안자이 미즈마루의 삽화와 부록으로 실린 두 사람의 대담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 처럼
일인칭 단수 48p,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일인칭 단수한일 양국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여자 없는 남자들』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소설집. 작가 특유의 미스터리한 세계관과 감성적인 필치, 일인칭 주인공 '나'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작품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단편 여덟 편을 모았다.
기억이란 때때로 내게 가장 귀중한 감정적 자산 중 하나가 되었고, 살아가기 위한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 큼직한 외투 주머니에 가만히 잠재워둔 따뜻한 새끼 고양이처럼.
일인칭 단수 79p,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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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밤] 29. 소리 산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이번에는 극단 피악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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