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16. 하루키 읽는 밤 @수북강녕

D-29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도 '우물' 이 두 번이나 등장해요. 반가운 마음에 보고합니다. 2부에서 주인공이 그 도시에서 현실로 돌아오는데요, 새로 살게 된 집의 정원에 지금은 쓰지 않는 우물 등장 (270쪽) 일하게 된 도서관 건물 뒤에도 커다란 옛 우물이 있고요. (299쪽) 흠...하루키는 '우물'을 작품에 상당히 자주 등장시키는군요.
이따금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강 너머 펼쳐진 나무숲 안쪽에서 보다 가혹한 계절의 도래를 예고하는 날카롭고 통절한 소리를 냈다. 그런 자연의 풍경은 애가 탈 정도의 그리움과 옅은 슬픔으로 내 가슴을 태웠다.
[그믐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p.330
@김새섬 정답입니다! 맞춰 주셔서 우선 박수 드려요 ^^ '우물'에 대한 두려움(『상실의 시대』 나오코), 극복하는 과정(『상실의 시대』 오카다 토오루) 등을 여러 작품에서 다룬 것 같아요 오프라인 그믐밤에서 이 이야기를 해봐도 좋겠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 내가 애정하는 하루키 작품 속 주인공은~! ★ 오래 만난 커플이 언제 가장 많이 헤어지는지 아시나요? 정답은, '멀리 여행 갔다 왔을 때'라고 합니다 너무 오래 만나서 이제 다 할 걸 다 해보았는데, 특별한 데 가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함께 여행을 갔지만, 그 좋은 데를 갔는데도 전혀 좋지가 않은 것을 느끼며,,, 결국, 헤어진다는 것인데요... ☆ 오래 좋아한 작가에 대해 시들해질 때 역시, (작품 활동을 쉬고 있을 때가 아니라) '신간을 냈을 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문득 듭니다 ^^;;; 이번 하루키의 신간, 『도.불.벽.』이 예전만큼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큰 감흥을 받지 못하셨다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서요... 자자, 그런 의미에서, "우리 그때 좋았잖아!!!"를 외치며, 추억에 잠기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 하루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중 내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겼던 캐릭터를 소개해 주세요 어느 작품에 등장한 어떤 인물인지, 어떤 점이 좋았는지 나눠 보고 싶어요! 색채가 없는 순례자 '다자키 쓰쿠루'일 수도 있고, 스푸트니크의 성숙한 연인 '뮤'일 수도 있고, 1Q84년을 살아가는 고독한 문장가 '덴고'여도 좋겠습니다 성실한 마라토너 하루키 자신도 괜찮을 듯요 저 같은 경우는 「빵가게 재습격」의 과감한 아내와, 『1Q84』의 명품 킬러 아오마메가 떠오르는데요 좀더 생각해 봐야겠어요~ *** 멋진 인물을 소개해 주시는 분께는 수북강녕 그믐밤에서 작은 선물을 드립니다 ***
우와 새로운 퀴즈(!) 네요 :) 제가 하루키 소설을 그동안 읽은 게 있다면 바로 답을 쓸텐데,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안 읽은 지 너무나 오래 되어... ㅠㅠ 읽고 있던 달리기 책을 좀 읽으면서 가장 멋진 인물로 하루키에 대해 써봐야겠어요 :)
@구수박 꾸준히, 그리고 멋지게 달리기를 해내는 하루키 본인의 모습에 매력을 느끼고 존경을 표하시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참여하는 독서모임에서 1년 가량의 기간 동안 매월 하루키 소설 1권, 에세이 1권을 읽는 모임을 했었어요 그때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다시 살펴보니 아직도 못 읽은 작품들이 있네요 오랜 기간 꾸준히 집필 활동을 해온 작가예요 역시...
와~ 1년이면 소설 12권, 에세이 12권이네요. 대단하셔요. 하루키의 근면하고 성실한 작품 활동도 참 존경스러운 부분이지요. 금전적인 부분만 생각하면 사실 더 안 해도 되잖아요. 유유자적 신비로운 예술가로 남아도 될 텐데 이렇게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는 것이 멋져 보여요.
그리고 수북강녕님은 정말 정말 하루키 책을 많이 읽으셨구나, 감탄했어요. 그 내공이 이 질문에서도 확 느껴져요+_+
<렉싱턴의 유령>에 수록된 단편의 주인공 토니 다키타니가 생각납니다. “토니 다키타니의 진짜 이름은, 정말로 토니 다키타니였다” 라는 단편의 첫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하루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그러하듯이, 토니 다키타니도 고독한 인물인데요. 그의 이질적인 이름이 그가 감내할 고독함을 예고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깊게 사랑하고 그 사람이 떠나가자 남겨진 인물의 이야기라는 하루키 소설에서 반복되는 스토리라인도 가지고 있는 소설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모습을 이미지화 해서 기억하는 편은 아닌데, 토니 다키타니의 경우엔 다르더라구요. 토니 다키타니를 떠올리면 죽은 아내의 드레스룸 방바닥에 주저앉아 그녀가 남긴 옷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한 중년남성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동키돈키 토니 다키타니의 독.특.한. 이름에 대한 설명이 작품 앞부분에 나오는데, 그게 '그가 감내할 고독을 예고'하고 있었던 거군요... 뭔가, 채워지지 않는 갈망을 옷 쇼핑으로 갈구하던 어린 아내와, 같은 사이즈 옷을 입도록 고용되었던 젊은 여자와, 아내의 옷뿐 아니라 아버지의 레코드까지 모두 처분해 버린 후 '진짜 외톨이'가 되어버린 토니 다키타니까지, 서로 이해하기도 어렵고 외로움을 해소하기도 어려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키 책 모임이 또 있었네요~ 뒤늦게나마 슬쩍 끼어봅니다ㅎㅎ 저는 사실 하루키 책을 신작을 제외하면 읽은지 너무 오래되어서... 이제 기억이 다 가물가물해요ㅠㅠ 그럼에도 인상깊은 캐릭터가 한명 있는데요. 바로 이전 작품 <기사단장 죽이기>의 백발 남자 입니다. 이름을 까먹었어요. 혹은 이름이 없고 그저 '남자'로 소개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루키 소설 속 캐릭터들은 분명히 특출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도 머릿속에 오래 각인되는 느낌입니다. 그 캐릭터의 행동이나 말이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그 자체가 기억에 남아요. 참으로 신기합니다.
@북카페안온 독서모임에서 닉네임을 정할 수 있다면 대문호 하루키의 이름으로 ^^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안온님, 안녕하세요~? 혹시, 돈많고 화통한? 멘시키를 말씀하시는 걸까요 ^^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떠난 아내, 연상의 불륜녀, 이상한 말투를 쓰는 기사단장, 조숙한 소녀 등이 떠오르지만, 가장 중요?한 조연 중 하나가 멘시키이지요 예전 작품 가운데 『댄스 댄스 댄스』의 고탄다를 혹시 아시는지요 저는 멘시키의 호탕한 경제력? 등등이 어쩐지 고탄다와 조금 닿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루키가 주로 '장인'이나 '손윗 처남'으로 등장시키는, 전후 사회에서 기회를 잡아 (군수 사업 따위로) 재력을 쥐게 된 중년 남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는 편인데, 돈많고 성공한 사람 중에서도 이해심이 많고 화통한 스타일로는 멘시키와 고탄다가 떠오릅니다 어떤 점이 인상깊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
아! 멘시키!!! 이름 들으니까 번쩍 떠오르네요ㅎㅎ 사실 읽은 지 오래되어 인상 깊었던 거라곤 강렬한 백발이라는 것 말고는 없어요. 주인공이 그 백발에 홀리듯 쳐다봤다는 것 정도랄까요. 백발 그게 뭐라고... 싶은데 하루키가 쓰면 참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멘시키의 말투나 행동도 강렬했지만 역시나 그 백발! 백발이 이상하게도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어요ㅎ
맞네요. 백발! 그 머리와 어울리는 은색 재규어를 타고 다녔죠. 소설 초반에 임팩트가 엄청났던 인물로 기억합니다. 돈도 많고 뭔가 독특했던, 매력적인 인물이었어요.
@김새섬 재규어 E-타입, 재규어 XK,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구형 미니 쿠퍼, 대형 인피니티 세단... 헉헉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멘시키가 갖고 있는 차가 이렇게 나온다고 합니다~! (반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낡은 빨강 푸조 205를 타다가 중고 토요타 코롤라 왜건으로 갈아타는 걸로 나오는 ㅎㅎ)
역시나 저는 와타나베가 인상적이네요. <상실의 시대>를 제일 먼저 읽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다른 소설의 주인공들이 전부 비슷비슷하게 느껴져서 와타나베2, 와타나베3 같기도 하거든요. 일례로 지금 읽고 있는 <도시의 그 불확실한 벽> 의 주인공도 와타나베가 조금 나이든 버전 같고요.
소설보단 <먼 북소리>의 하루키가 제 마음에는 많이 다가옵니다. 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데뷔하고 81년에 전업작가로 돌아선 하루키는 점차 이름을 얻어가면서 소설 이외의 다른 요청들로도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시작했나 봅니다. 광고와 강연 요청이 들어오고 잡지에 싣기 위한 나만의 요리를 선보여야 하고 무슨 대회의 심사위원이 되어달라고 하고요. 대담 자리에도 초대를 많이 받는데 “성 차별이며 환경오염이며 죽은 음악가며 미니스커트의 부활이며 담배 끊는 법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라고 한다” 이게 80년대 초중반이라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데 그 때 아젠다로도 페미니즘과 ESG가 제일 먼저 등장해서 살짝 놀랬네요. 세상이 많이 바뀐 것 같으면서도 그대로인 것 같아서요. 요즘 한국이라면 저기에 인공지능과 마약 문제 정도가 들어갈 것 같습니다.
아무튼 하루키는 이런 상황에서 무력감과 초조함을 느끼고 과감히 유럽으로 떠납니다. <먼 북소리>에서는 당시 서른일곱 살이었던 하루키의 불안함과 자괴감들이 직접적인 표현 없이도 고스란히 잘 전달이 되어요. 본국과의 연락을 끊고 그리스 외딴섬에 본인을 유폐하다시피 쓴 책이 바로 <노르웨이의 숲> 그 뒤는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아는 스타 작가의 탄생이지만 왠지 저는 이렇게 유명 작가가 되기 전, 고뇌하고 불안해하는 한 젊은 소설가의 쓸쓸한 이국 체류기에서 많은 위로를 받게 되네요.
나는 “남은 음식”이라고 해야 할 그 팬케이크를 작게 잘라 먹으면서 문득 나폴레옹의 군대가 러시아에서 철수할 때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너무나도 힘들고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철수전. 눈 덮인 벌판을 이리저리 날뛰는 코사크 병사. 눈보라, 포성.
[그믐밤] <먼 북소리> p.167
@김새섬 와타나베, 그렇죠 소년 와타나베, 청년 와타나베, 그리고 이제 장년의 와타나베까지요 ^^ 때로는 그 이름을 '카프카(『해변의 카프카』)'라고도 하고, '오카다 토오루(『태엽 감는 새』)'라고도 하고, 조금 다른 듯한 느낌으로 '덴고(『1Q84』)'라고도 하지만 결국 같은 인물이지요 내성적이고, 책을 많이 읽고, 음악을 많이 들으며, 혼자 요리하여 간단한 술과 함께 먹는 것을 즐기는 생각이 깊은 남자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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