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 두번째 계절 #2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마주>

D-29
지난달 대화에서 정용준 작가님께서 하루키가 최근 젊은 독자들에게 외면받는 현실에 대해서도 언급해주셨지만, 오랜만에 하루키 작품을 직접 읽어가다 보니 그런 독자분들의 시각도 납득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어요. 누군가는 지엽적이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남성 주인공의 시선에서 여체(女體)가 언급되고 그려지는 방식이 어쩔 수 없이 거슬림의 요소로 다가오더라고요. 남성 청소년 인물의 내면을 핍진하게 그려낸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나 싶기도 했는데, 그런 묘사의 빈도가 너무 잦아서 자꾸 몰입에 방해가 됐습니다. 또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인공이 남성 인물을 볼 때와 달리 여성 인물의 외모를 묘사할 때 신체 부위나 얼굴 생김새 하나하나를 유달리 뜯어보는 듯한 시선이 엿보였는데, 이 또한 극중 인물이 이성애자 남성이다 보니 납득할 만한 서술로 봐야 할지 확신이 안 들더라고요. 아무튼 작가가 칠순을 넘었는데 이런 부분에서 참 일관적이시라... 다소... 징그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영감님... 또 마흔이 돼서까지 열일곱 짝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썩 아름답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책 귀퉁이에 적은 메모1: 잊어 제발 좀), 이는 아무래도 하루키가 작품마다 비슷한 설정의 남자 주인공을 내세우다 보니 이들 인물에게서 하루키 본인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해요. 비슷한 소재를 다뤘음에도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를 읽을 때는 전혀 이런 느낌이 없었는데도요!
ㅋㅋㅋㅋ아 지운 편집자님 잊어 제발 좀에 너무 빵 터졌어요. 완전 공감합니다.. 저도 비슷하게 약간 지겨워져서 FT아일랜드의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라는 노래를... 듣고야 말았네요....
지금껏 말씀드린 이유로 저는 이번 독서를 통해 그간 제가 하루키를 멀리한 이유를 재확인한 것 같습니다. 물론 하루키의 감수성이 한 시대를 일신하고 풍미했으며 이것이 여전히 하마구치 류스케나 신카이 마코토 같은 후대 작가에 의해 부분적으로 계승되고 있음은 십분 인정하지만, 신작에서도 기존 작풍으로부터의 확장이나 변화는 거의 엿보기 힘들었어요. 또 지금 시대에마저 이런 형이상학적 존재론에 천착하는 작품을 거듭 창작하(고 읽)는 데 얼마나 큰 의의가 있는지 공감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차라리 작중 세계와 사건의 전모가 결말부에서 정교하게 드러났으면 서사적/구조적 완결성이라도 높이 샀을 것 같은데, 전작들이 그랬듯 이런 부분에서도 불명확한 채로 이야기가 끝나버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한 문장들이 아무리 등장해도, 정서적 감화로 이어지지 않을 때가 많았구요.(역시나 사소한 일부에 불과하지만, 귓불 깨물기를 통해 합일에 이른다는 종반부 설정에는 왠지 쓴웃음이 나오더라고요ㅠㅠ) 물론 한 소설에 판타지/미스터리 요소가 존재한다고 해서 설정의 떡밥을 필히 회수하고 해명해야만 하는 건 아닐 테고, 이 작품을 쓴 하루키 본인의 의도나 관심사도 이야기 속 세계관을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제시하는 데 있진 않은 것 같지만요ㅎㅎ
김지운 선생님의 촌철살인 영감님 비판 ㅎㅎㅎ 즐겁게 읽었습니다. 확실히 하루키는 여전히 ‘그’ 하루키인데, 하루키를 둘러싼 세상은 계속 바뀌었고, 그에 따라 하루키를 받아들이는 독자(저)의 태도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급하신 것처럼 남성 주인공의 시선에서 여체를 묘사하는 대목은 확실히 이전과 달리 껄끄럽게 느껴졌고, 판타지/미스터리 요소 역시 ‘굳이’ 하루키 작품을 고집하지 않아도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한 많은 선택지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저도 마침 스코세이지 감독의 ‘플라워킬링문’을 극장에서 탄복하며 본터라 반가운 마음에 덧붙이자면,, ‘거장’의 행보로 볼때 하루키와 스코세이지는 비교해볼 점이 확실히 많은 거 같아요. 이탈리아 이민자에서 아일랜드 이민자로,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계속해서 자신으로부터 먼 이야기를 탐구하고, 평생 자신이 구축한 백인 남자 캐릭터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원주민 여성을 세우는 스코세이지의 시도를 보면서 답습과 갱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진정한 거장은 매번 새롭게 태어나는 시대와 공명하는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진정한 거장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을 선생님들께서 모두 해주셔서 덧붙일 말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도 비슷한 감상이었어요. 소범 기자님 말씀처럼 '하루키적인 것'이 하루키를 좋아하고, 싫어하게도 만드는 요소라는 점에 적극 동의해요. 저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으면서 몇 번 혼자 조용히 웃곤 했는데 그게 바로 그 '하루키적인 것'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너무나 큰 기시감...달리 말하자면 '아...이 영감 여전하네...' 싶은 것들이요. 근데 참 양가적이게도 그게 좋으면서 싫었어요. 좋았던 건 제가 하루키를 처음 읽었던, 이제 막 문학이라는 세계를 기웃거리던 때가 생각이 나서였어요. 그때는 하루키의 섬세한 문장들에 매료되었었고, 시니컬하면서도 사랑 앞에서는 낭만있던 남성 인물을 좋아했었지요. 전작들에서도,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자신과 분리되어 있는, 또 다른 '나'와 마주하고 대화하는 장면들도 좋아했었어요. 여성 인물을 에로스적으로 탐색하는 시선도 10대의 호기심과 상통하는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그때로부터 너무 많이 멀어진 것인지...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는 지난 소설들을 떠올리면서도 불쑥 심술맞은 생각이 치밀더라고요. 아무리 1980년대에 썼던 작품이라도 '43년 만에 마침내' '새로 다듬어 완성'했다면, 무언가 다른 점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하고요. 세월이 지나 저라는 독자도 그때와 지금의 읽기 감각이 다른데, 어쩌면 하루키는 이렇게 한결같이 10대에 만난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중년 남성을 그리는가...싶고요. 이런 한결같음이 저도 약간 징그러웠어요 ㅠ_ㅠ....
이 책을 읽고 좋아할 독자는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면 1980~90년대에 발표되었던 하루키의 소설들의 팬이었던 이들은 여전히 좋아할 수도 있겠다 싶긴 했어요. 소범 기자님이 궁금해하신 것처럼 3번에 해당하는... 이 소설로 하루키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일단 완독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작들을 궁금해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앞으로 어떨까? 싶었는데요. 동시에 선생님들도요! 앞으로 하루키의 신작이 발표가 된다면, 또 읽을까를 생각해보면, 저는 어쨌거나 읽을 것 같아요. 다른 소설일 거란 기대도 없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번 읽게되는 것이 하루키의 소설이 가진 묘한 힘인 것 같기도 해요. 잘 알고 있는 익숙한 세계이니까 없던 기대만큼 큰 실망도 없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요..? !
아무리 단단히 갇혀 있어도 존재 자체가 위협이니까요. 그것들이 어떤 계기로 힘을 얻어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그게 아 도시의 잠재적 공포가 아닐까요. 만약 그런 사태가 빚어지면 도시는 순식간에 와해될 테죠. 그렇기에 더더욱 그들의 힘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고 소멸시키고 싶은 겁니다. 누군가가 오래된 꿈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들의 꿈을 같이 꿔줌으로써 잠재된 열량이 달래진다-그들은 아마 그런 걸 원하는 거겠죠. 그리고 그럴 수 있는 건 지금으로선 당신 한 사람뿐이에요.
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두번째 계절 #2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저도 유정 평론가님과 같은 의견이에요. 어떤 작품을 썼을지 궁금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단 '그가' 이번엔 어떤 작품을 어떻게 썼을까 하는 궁금증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그건 하루키가 한 시대를 팬으로 가졌던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작가의 행로에 '참여'하는 건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기도 한 것 같아요. "편안하고 설레면서", "이젠 제발 좀 잊어", "오래된 현대", "아는 맛"에 대한 정리 등 한 달 동안 하루키 소설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 보면서 공감하고 감탄하기도 했어요. 그런 동시에, 유정 평론가님 의견처럼 보다 '하루키 세대'의 평가와 감상이 어떨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오프라인 북토크에서 좀 더 이야기 나눠 볼 수 있기를요! ^^ 여기 들어오면, 빠르고 정신없이 스치는 뉴스들과 무관한 속도로 하나둘 쌓여 있는 생각을 보는 것이 참 좋더라고요. 사실 문학에 대한 이론 공부를 하면서도 그걸 바탕으로 구체적인 작품을 평가하는 데에는 언제나 좀 한계를 느꼈어요. 고려해야 할 상황이나 변수들도 워낙 많고 실증적인 차원으로 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럴 때 기댈 수 있는 것이 다른 사람의 독서일 텐데, 그런 점에서 <마주>나 <도시...>를 읽으며 비슷한 것을 느끼고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을 나눴던 경험이 앞으로의 독서에 영향을 많이 줄 것 같아요.
맞아요! 이곳에서의 독해는 함께 대화하는 다섯 분의 생각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고, 조금 더 편안하게 작품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어요. 이런 읽기도 참 필요한데,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이 익숙해지니 혼자서는 다소 고립적으로 읽게되는 것 같아요^ㅇ^;; 아마 오프라인 북토크에서도 이야기를 나눌 테지만, <마주>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 대한 고전의 가능성이 궁금해지네요! 지난 계절의 텍스트(<취미는 사생활>, <나의 친구, 스미스>)는 신인 작가의 책이었던 데 비해 이번에 읽은 두 소설은 이미 자신의 작품 세계를 단단히 다져둔 작가의 책이었으니까요. 게다가 하루키는 40년 만에 비로소 완성한 작품이고, 최은미도 이전에 발표한 작품을 장편 분량으로 개작했으니 두 소설 다 작가에게 있어서는 작지 않은 의미를 지닐 것 같아요. 이런저런 점들을 고려해서 고전의 가능성을 판단해야 할 것 같아 지난 번보다 더 생각이 많아지네요 @.@ 하루밖에 대화 시간이 남지 않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못다 한 이야기는 북토크에서 살펴 주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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