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 두번째 계절 #2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마주>

D-29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다 읽었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언급한 보르헤스의 의견 '한 작가가 일생 동안 진지하게 쓸 수 있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그 수가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그 제한된 수의 모티프를 갖은 수단을 사용해 여러 가지 형태로 바꿔나갈 뿐이다.' 를 확인한 독서였습니다. 그동안 늘 좋게 느껴졌던 하루키적인 재미와 좋음은 여전했습니다. 제게 있어 '하루키적인 좋음'은 소위 스타일, 뉘앙스, 분위기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소설을 음악이라고 가정해볼 때 스토리가 멜로디라면 사운드에 해당하는 것이 있을텐데 저는 하루키의 사운드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단어와 단어들. 그것들이 모인 문단들이 보여주는 어떤 화음이나 코드가 하루키에게는 자신만의 느낌으로 분명히 있고 그것은 어떤 소설을 읽더라도 이야기보다 먼저 감각됩니다(윤상의 신곡을 들으면 앞부분에서 바로 윤상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특정 소재들을 반복해서 사용한 것과 어떤 특수한 명사나 상표나 브랜드를 디테일하게 언급하며 도시적이고 기계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굉장히 감상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들을 조합해서 의외성과 불확실한 모호함을 갖고 가는 것도 제게는 하루키적으로 인식됩니다. 그래서 하루키 소설을 기억할 때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상황과 이야기로 인식되지 않고 미쟝센과 흐름, 연출, 특정한 색감, 인물의 표정과 목소리, 같은 것들로 인지되는 것 같아요. 이 소설에서도 그런 하루키적인 것들은 여전했고 그것을 좋게 느끼는 제 감각도 여전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갖고 있는 소재와 형식, 인물들의 캐릭터와 장면을 이루는 구성 요소들이 하루키가 그동안 보였던 많은 소설과 많이 겹쳐 보였습니다. 이 부분은 소위 하루키적이라는 특색의 일종으로 마냥 이해되지는 않더군요. 환상적인 느낌의 도서관 장면과 독특한 도서관장의 등장. 이야기의 큰 축을 이루는 환상적인 혹은 우화적인 이야기의 결합. 무엇보다 중심인물의 캐릭터가 이전 소설을 조금씩 샘플링 했다고 느꼈을 정도로 기시감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하루키도 그 부분을 알고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보르헤스의 말을 빌어 작가의 말에 남겨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지점은 이제 막 하루키를 읽은 독자와 그동안 쭉 읽어왔던 독자에게 다르게 감각될 것임으로 이 자체로 문제다, 라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보르헤스의 말을 빌어 말했던 하루키의 말을 저 역시 어느 정도는 실감하고 어떤 한계를 느끼고 있으니까요.
이전과 다르게 느낀 지점은 캐릭터였습니다. 하루키는 늘 비슷한 인물을 소설속에 등장시켰기에 이건 하루키가 달라졌다기 보다 소설을 읽어가는 제 감각이 달라진것이겠죠.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 특히 소년 혹은 청년의 시절을 통과하는 인물은 대체로 이런 특성을 갖더군요. 욕망을 감추지 않고 때로는 훨씬 더 크게 표현하면서도 그것을 스스로 절제해야 한다는 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느낌을 죄책감이나 금욕적인 느낌으로 바꾸지는 않죠. 그래서 인물의 캐릭터는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으면서 표면적으로는 미지근한 톤과 약간의 회의감을 갖고 있는, 한때 유행했던 차도남의 이미지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여성들은 그에게 관심을 갖고(육체성보다는 그 내면에 이끌립니다) 그에게 자신을 털어놓거나 고해하듯이 인생사를 말해주는 쪽으로 많이 전개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거나 연인 관계로 발전하거나 아니면 육체적 관계만 주고받는(하지만 끊임없이 대화는 주고받는) 단계로 진행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에게는 그런 대화와 만남이 그의 공허함과 문제의식을 전혀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근원적 외로움을 발견한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결국 자신의 취향과 기호의 세계(음악, 특정 오브제, 책, 어떤 철학적 명제)에 기대게 됩니다. 지금까지 하루키의 캐릭터는 이런 인물의 모습이 캐주얼하고 모던하고 약간 세련된 이미지로 보여줬고 그것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그런데 지금의 하루키의 나이와 그간의 이력들을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이 소설 속 인물의 내면과 고민이 감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오래된 현대'의 느낌이랄까요. 그것이 제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시대 감각이 달라져서 제 인식이 달라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의 하루키 독서와 다르게 느꼈던 지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루키가 이렇게까지 긴 시간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놀랍고 대단한 것 같아요. 많이 좋아해서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고 베스트셀러라서 많이 좋아할 수도 있지만 하루키는 언제나 그 경계에서 몇 십년동안 흔들림 없이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이 새삼 신비하기까지 합니다. 아무튼 덕분에 하루키에 대해 많이 생각해볼 수 있었고 선생님들의 의견과 감상에도 보이지 않는 밑줄을 수도 없이 그었습니다
저는 이번 신작 초반부부터 하루키 특유의 리듬감에 올라타는 데 매우 애를 먹었습니다. 전체 분량 760쪽 가운데 240여 쪽에 이르러서야 인명/지명이 구체화되는데, 그전까지 고유명사 없이 모호한 분위기로 일관되는 전반부가 굉장히 갑갑하게 느껴졌어요. 물론 주인공이 도서관장으로 부임하는 전후를 기점으로 여러 문화적 레퍼런스를 비롯한 구체적 이름들이 등장하지만요. 모호한 1부에 비해 대조가 극명한 2부의 서술은 물론 다분히 의도된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톤의 흐름과 변화가 너무 급작스러워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루키는 『다자키 쓰쿠루』를 끝으로 『기사단장 죽이기』는 건너뛴 상태였는데요. 여러 선생님께서 지적해주셨듯 유사한 주제와 분위기가 수차례 반복되다 보니 더 이상 감흥과 기대감을 갖기 어려워 지난 작품은 굳이 찾아 읽지 않았었어요. 한 작가가 천착하는 거대한 테마는 물론 있을 수 있으나 그 변주의 폭이 제게는 너무 협소하게 느껴졌달까요. 이런 맥락에서 장르는 다르지만 최근 신작을 발표한 영화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의 행보와도 대비가 느껴지더라고요. 스코세이지도 영화 인생을 통틀어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대주제를 탐구해왔지만, 그것을 백인 남성 일반의 시각에서 통념적으로 그리는 데 그치기보다 반성적 시각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며 최근에는 백인 남성들이 미국사 곳곳에서 자행해온 추악한 면을 다루는 데 집중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하루키 자체가 현실에 존재할 법한 사회적 갈등을 반영적으로 다루는 작가가 아니기에 두 사람을 동등한 지평에서 견주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비슷한 연배의 두 현역 노장의 말년이 꽤 상이하다는 점이 저로선 자못 흥미롭더라고요.
지난달 대화에서 정용준 작가님께서 하루키가 최근 젊은 독자들에게 외면받는 현실에 대해서도 언급해주셨지만, 오랜만에 하루키 작품을 직접 읽어가다 보니 그런 독자분들의 시각도 납득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어요. 누군가는 지엽적이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남성 주인공의 시선에서 여체(女體)가 언급되고 그려지는 방식이 어쩔 수 없이 거슬림의 요소로 다가오더라고요. 남성 청소년 인물의 내면을 핍진하게 그려낸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나 싶기도 했는데, 그런 묘사의 빈도가 너무 잦아서 자꾸 몰입에 방해가 됐습니다. 또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인공이 남성 인물을 볼 때와 달리 여성 인물의 외모를 묘사할 때 신체 부위나 얼굴 생김새 하나하나를 유달리 뜯어보는 듯한 시선이 엿보였는데, 이 또한 극중 인물이 이성애자 남성이다 보니 납득할 만한 서술로 봐야 할지 확신이 안 들더라고요. 아무튼 작가가 칠순을 넘었는데 이런 부분에서 참 일관적이시라... 다소... 징그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영감님... 또 마흔이 돼서까지 열일곱 짝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썩 아름답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책 귀퉁이에 적은 메모1: 잊어 제발 좀), 이는 아무래도 하루키가 작품마다 비슷한 설정의 남자 주인공을 내세우다 보니 이들 인물에게서 하루키 본인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해요. 비슷한 소재를 다뤘음에도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를 읽을 때는 전혀 이런 느낌이 없었는데도요!
ㅋㅋㅋㅋ아 지운 편집자님 잊어 제발 좀에 너무 빵 터졌어요. 완전 공감합니다.. 저도 비슷하게 약간 지겨워져서 FT아일랜드의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라는 노래를... 듣고야 말았네요....
지금껏 말씀드린 이유로 저는 이번 독서를 통해 그간 제가 하루키를 멀리한 이유를 재확인한 것 같습니다. 물론 하루키의 감수성이 한 시대를 일신하고 풍미했으며 이것이 여전히 하마구치 류스케나 신카이 마코토 같은 후대 작가에 의해 부분적으로 계승되고 있음은 십분 인정하지만, 신작에서도 기존 작풍으로부터의 확장이나 변화는 거의 엿보기 힘들었어요. 또 지금 시대에마저 이런 형이상학적 존재론에 천착하는 작품을 거듭 창작하(고 읽)는 데 얼마나 큰 의의가 있는지 공감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차라리 작중 세계와 사건의 전모가 결말부에서 정교하게 드러났으면 서사적/구조적 완결성이라도 높이 샀을 것 같은데, 전작들이 그랬듯 이런 부분에서도 불명확한 채로 이야기가 끝나버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한 문장들이 아무리 등장해도, 정서적 감화로 이어지지 않을 때가 많았구요.(역시나 사소한 일부에 불과하지만, 귓불 깨물기를 통해 합일에 이른다는 종반부 설정에는 왠지 쓴웃음이 나오더라고요ㅠㅠ) 물론 한 소설에 판타지/미스터리 요소가 존재한다고 해서 설정의 떡밥을 필히 회수하고 해명해야만 하는 건 아닐 테고, 이 작품을 쓴 하루키 본인의 의도나 관심사도 이야기 속 세계관을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제시하는 데 있진 않은 것 같지만요ㅎㅎ
김지운 선생님의 촌철살인 영감님 비판 ㅎㅎㅎ 즐겁게 읽었습니다. 확실히 하루키는 여전히 ‘그’ 하루키인데, 하루키를 둘러싼 세상은 계속 바뀌었고, 그에 따라 하루키를 받아들이는 독자(저)의 태도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급하신 것처럼 남성 주인공의 시선에서 여체를 묘사하는 대목은 확실히 이전과 달리 껄끄럽게 느껴졌고, 판타지/미스터리 요소 역시 ‘굳이’ 하루키 작품을 고집하지 않아도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한 많은 선택지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저도 마침 스코세이지 감독의 ‘플라워킬링문’을 극장에서 탄복하며 본터라 반가운 마음에 덧붙이자면,, ‘거장’의 행보로 볼때 하루키와 스코세이지는 비교해볼 점이 확실히 많은 거 같아요. 이탈리아 이민자에서 아일랜드 이민자로,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계속해서 자신으로부터 먼 이야기를 탐구하고, 평생 자신이 구축한 백인 남자 캐릭터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원주민 여성을 세우는 스코세이지의 시도를 보면서 답습과 갱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진정한 거장은 매번 새롭게 태어나는 시대와 공명하는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진정한 거장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을 선생님들께서 모두 해주셔서 덧붙일 말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도 비슷한 감상이었어요. 소범 기자님 말씀처럼 '하루키적인 것'이 하루키를 좋아하고, 싫어하게도 만드는 요소라는 점에 적극 동의해요. 저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으면서 몇 번 혼자 조용히 웃곤 했는데 그게 바로 그 '하루키적인 것'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너무나 큰 기시감...달리 말하자면 '아...이 영감 여전하네...' 싶은 것들이요. 근데 참 양가적이게도 그게 좋으면서 싫었어요. 좋았던 건 제가 하루키를 처음 읽었던, 이제 막 문학이라는 세계를 기웃거리던 때가 생각이 나서였어요. 그때는 하루키의 섬세한 문장들에 매료되었었고, 시니컬하면서도 사랑 앞에서는 낭만있던 남성 인물을 좋아했었지요. 전작들에서도,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자신과 분리되어 있는, 또 다른 '나'와 마주하고 대화하는 장면들도 좋아했었어요. 여성 인물을 에로스적으로 탐색하는 시선도 10대의 호기심과 상통하는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그때로부터 너무 많이 멀어진 것인지...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는 지난 소설들을 떠올리면서도 불쑥 심술맞은 생각이 치밀더라고요. 아무리 1980년대에 썼던 작품이라도 '43년 만에 마침내' '새로 다듬어 완성'했다면, 무언가 다른 점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하고요. 세월이 지나 저라는 독자도 그때와 지금의 읽기 감각이 다른데, 어쩌면 하루키는 이렇게 한결같이 10대에 만난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중년 남성을 그리는가...싶고요. 이런 한결같음이 저도 약간 징그러웠어요 ㅠ_ㅠ....
이 책을 읽고 좋아할 독자는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면 1980~90년대에 발표되었던 하루키의 소설들의 팬이었던 이들은 여전히 좋아할 수도 있겠다 싶긴 했어요. 소범 기자님이 궁금해하신 것처럼 3번에 해당하는... 이 소설로 하루키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일단 완독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작들을 궁금해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앞으로 어떨까? 싶었는데요. 동시에 선생님들도요! 앞으로 하루키의 신작이 발표가 된다면, 또 읽을까를 생각해보면, 저는 어쨌거나 읽을 것 같아요. 다른 소설일 거란 기대도 없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번 읽게되는 것이 하루키의 소설이 가진 묘한 힘인 것 같기도 해요. 잘 알고 있는 익숙한 세계이니까 없던 기대만큼 큰 실망도 없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요..? !
아무리 단단히 갇혀 있어도 존재 자체가 위협이니까요. 그것들이 어떤 계기로 힘을 얻어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그게 아 도시의 잠재적 공포가 아닐까요. 만약 그런 사태가 빚어지면 도시는 순식간에 와해될 테죠. 그렇기에 더더욱 그들의 힘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고 소멸시키고 싶은 겁니다. 누군가가 오래된 꿈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들의 꿈을 같이 꿔줌으로써 잠재된 열량이 달래진다-그들은 아마 그런 걸 원하는 거겠죠. 그리고 그럴 수 있는 건 지금으로선 당신 한 사람뿐이에요.
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두번째 계절 #2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저도 유정 평론가님과 같은 의견이에요. 어떤 작품을 썼을지 궁금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단 '그가' 이번엔 어떤 작품을 어떻게 썼을까 하는 궁금증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그건 하루키가 한 시대를 팬으로 가졌던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작가의 행로에 '참여'하는 건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기도 한 것 같아요. "편안하고 설레면서", "이젠 제발 좀 잊어", "오래된 현대", "아는 맛"에 대한 정리 등 한 달 동안 하루키 소설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 보면서 공감하고 감탄하기도 했어요. 그런 동시에, 유정 평론가님 의견처럼 보다 '하루키 세대'의 평가와 감상이 어떨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오프라인 북토크에서 좀 더 이야기 나눠 볼 수 있기를요! ^^ 여기 들어오면, 빠르고 정신없이 스치는 뉴스들과 무관한 속도로 하나둘 쌓여 있는 생각을 보는 것이 참 좋더라고요. 사실 문학에 대한 이론 공부를 하면서도 그걸 바탕으로 구체적인 작품을 평가하는 데에는 언제나 좀 한계를 느꼈어요. 고려해야 할 상황이나 변수들도 워낙 많고 실증적인 차원으로 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럴 때 기댈 수 있는 것이 다른 사람의 독서일 텐데, 그런 점에서 <마주>나 <도시...>를 읽으며 비슷한 것을 느끼고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을 나눴던 경험이 앞으로의 독서에 영향을 많이 줄 것 같아요.
맞아요! 이곳에서의 독해는 함께 대화하는 다섯 분의 생각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고, 조금 더 편안하게 작품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어요. 이런 읽기도 참 필요한데,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이 익숙해지니 혼자서는 다소 고립적으로 읽게되는 것 같아요^ㅇ^;; 아마 오프라인 북토크에서도 이야기를 나눌 테지만, <마주>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 대한 고전의 가능성이 궁금해지네요! 지난 계절의 텍스트(<취미는 사생활>, <나의 친구, 스미스>)는 신인 작가의 책이었던 데 비해 이번에 읽은 두 소설은 이미 자신의 작품 세계를 단단히 다져둔 작가의 책이었으니까요. 게다가 하루키는 40년 만에 비로소 완성한 작품이고, 최은미도 이전에 발표한 작품을 장편 분량으로 개작했으니 두 소설 다 작가에게 있어서는 작지 않은 의미를 지닐 것 같아요. 이런저런 점들을 고려해서 고전의 가능성을 판단해야 할 것 같아 지난 번보다 더 생각이 많아지네요 @.@ 하루밖에 대화 시간이 남지 않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못다 한 이야기는 북토크에서 살펴 주시어요-*
글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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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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