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힘찬] 1. 소설 보다: 가을(2023) 함께 읽기

D-29
그러니까 자신이 내리는 판단을, 그 근거가 될 만한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신뢰해서는 안 됐다. 정현은 서일을 너무나 믿고 싶어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소설 보다 : 가을 2023 p.27,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꿈속에서 정현은 마냥 홀가분했고 깨어서도 그랬다. 마침내 0이 된 기분. 정현은 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이상하게 무섭기만 해서 그저 0인 채로 오래 있고 싶었다.
소설 보다 : 가을 2023 p.42,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언젠가 내가 '좋아하다'와 '값'을 동시에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버릴까봐서가 아니라, 이미 그런 사람인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겠죠.
소설 보다 : 가을 2023 p.46,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사랑이다/아니다를 가리기 위한 질문이라기보다는, 계기가 돈이든 사랑이든 결국 '정현'에게 필요한 것은 살고 싶어지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소설 보다 : 가을 2023 p.54,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 김지연, 「반려빚」 📝 (23/10/05) 빚과 대출 상환금, 신용 점수 등으로 수치화된 믿음과, 그러한 수치로는 절대 헤아릴 수 없는 마음에 대한 믿음. 어느 것이 진짜 믿음이고 가짜 믿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다른 종류의 믿음일 뿐이다. 반려라는 단어가 ‘반려伴侶’ 일 때는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 하는 짝이나 동무 혹은 항상 가까이하거나 가지고 다니는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배반(반려反戾)과 거절(반려返戾)’(이 계절의 소설 선정의 말 중)의 뜻을 지닌 단어이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반려빚’이라는 단어가 더 씁쓸하게 느껴진다. 정현은 셈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마음을 다 주어 ‘여생을 맡길 마음까지도 먹었기’ 때문에 ‘서일의 신용 점수를 만점’(p.20)으로 생각했으나, ‘이제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셈하고 값을 따져 보’(p.41)는 사람이 되었다. 그럼에도 ‘정현은 아직도 서일을 믿고 싶어 하고, 그렇기 때문에 도저히 믿을 수 없다’(p.27)고 한다. ‘반려’가 될 수 있으리라 믿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도 사랑을 믿는 사람. 결국 정현은 살기 위해 빚에 매달렸고, 또 살기 위해 사랑에 매달렸던 게 아닐까. ‘0인 채로 오래 있고 싶다’(p.42)고 했지만, 사실은 희망하고 욕망하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정현은 다시 ‘0’이 되었지만, 욕망할 줄 아는 사람이기에 다시 마이너스로 가기보단 플러스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정현이 새로운 욕망의 대상을 찾을 수 있길, 혹은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 빚을 ‘반려’라는 단어와 결부시켜 ‘반려빚’이라고 표현한 게 굉장히 인상적이라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는데 굉장히 인상적인 단편이었어. 너무 희망적이지만은 않은, 그렇다고 절망적이지도 않은 결말이 이 글에 딱 알맞은 결말이었다고 생각해. | 언젠가 내가 '좋아하다'와 '값'을 동시에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버릴까봐서가 아니라, 이미 그런 사람인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겠죠. (p.46) 인터뷰의 이 구절이 마음에 계속 남더라고. 난 어쩔 수 없는 속물이라 이미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 ‘경제적인 면은 확실히 취향과 삶의 방식, 욕망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고 그건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는 작가님의 말처럼, 더 좋아하면 더 많은 걸 해주고 싶고,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할 때가 많지. 정현도 사랑하는 서일에게 더 많은 걸 해주고 싶어서 자신이 가진 돈을 끌어모아 주었던 걸 거고. 그때 정현은 ‘좋아하다’와 ‘값’을 동시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겠지. 이 소설을 읽으며 ‘반려’라는 단어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어.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정현이 다시 ‘반려’가 될 무언가를 찾아 욕망하고 사랑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게 되네. ————————————
나도 bookulove처럼 이 소설이 ‘너무 희망적이지만은 않은, 그렇다고 절망적이지도 않은 결말’이라고 느꼈어. 사실 나는 드라마나 영화는 완전 꽉 닫힌 해피엔딩을 좋아하곤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잖아.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이 정말 현실과 가까이 닿아있는 소설이라고 느꼈던 것 같아. 함께 안내해준 문학평론가 홍성희님의 <이 계절의 소설 선정의 말> 부분도 좋았어. 나는 ‘반려’라는 단어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었어. ‘반려’가 반려伴侶’, ‘반려反戾’, ‘반려返戾’ 이렇게 다양하게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또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참 다르게 와닿네. 좋은 글을 함께 실어줘서 고마워! 나 역시 ‘반려’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기회였어.
화제로 지정된 대화
■ 10/8~10/14 | 이주혜, 「이소 중입니다」 단편&인터뷰 읽기 - 인상 깊은 문장과 감상평을 자유롭게 나누기 (필수) - 글을 읽고 같이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이야기 나누기 (선택) 안녕! 이번 주는 이주혜 작가의 「이소 중입니다」를 읽어보려고 해. 미리 안내한 것처럼 읽으면서 나누고 싶은 인상적인 문장과 감상평을 자유롭게 댓글로 달아주고, 같이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이야기 있으면 함께 나누자. 문학과지성사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이 계절의 소설 선정의 말>을 스포일러 지정해서 올려둘게.
이 계절의 소설 선정의 말 | 문학평론가 강동호 이주혜의 「이소 중입니다」는 번역가, 소설가, 시인으로 지칭되는 세 친구가 “육지 끝에 살고 있는 철학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나누는 근황에 대한 대화, 그리고 여행 중에 겪게 되는 몇몇 단편적인 일화를 무심하게 전하는 작품이다. 반려견(번역가), 딸(소설가), 전 남편의 아버지(시인)을 돌봐왔고, 이제는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 새로운 전환기를 앞두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특별한 사건적 요소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독특한 소설적 장면도, 기억할 만한 갈등도 없는 이 소설이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허무하게 끝맺는 과정에서 모종의 정체 모를 불안과 불길함을 느끼게 만든다는 점은 흥미롭다.아마도 그것은 이 소설의 초점 화자가 취하고 있는 묘한 스탠스, 다시 말해 멀찍이 떨어진 상태에서 세 사람을 조망할 때 가시화 되는 실존적 정동과 관련 있을 것이다. 하이데거라면 염려(Sorge)라고 불렀을 법한 이러한 정조는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 인간이 근원적으로 감당해야 할 실존의 범주에 해당한다. 우리는 대개 삶이 어딘가를 향해 흘러간다고 믿지만, 실상 생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종착지는 죽음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수많은 계획과 목표 속에서 내일을 상상하며 그 사실을 극구 회피하지만, 불현 듯 그것과 대면해야 하는 순간까지 피할 수는 없다.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표면상의 주인공에 해당하는 번역가의 자동차 트렁크에 놓여 있는 ‘짐’, “베이지색 담요로 둘둘 싸인 커다란 뭔가”가 확산시키는 불안의 ‘냄새’는 주목할 만하다. “물컹할 것 같기도 하고 단단한 것 같기도 하며, 따뜻해 보이기도 하면서 어딘가 싸늘한 기운을 풍기는 그 짐”이란 무엇일까? 정황상 우리는 그것이 번역가의 반려견 ‘상훈’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겠지만, 어쩌면 그 짐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닌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거기 실려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던 그 짐은 시간적 존재로서 늘 죽음에 대한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과, 그것이 야기하는 무지와 염려를 환기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소설의 서두에서 서술자가 제기하는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그 여름 그들에게 과연 내일은 있을까? 그건 우리도 그들도 알 수가 없다.” 죽음의 불안과 삶의 무의미성을 배태하는 토대도 바로 이러한 근원적 불가해성이다. 이 사실을 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이 다름 아닌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시간은 내일을 향해 무심히 걸어갈 것이다.” 「이소 중입니다」는 시간적 존재로서 인간이 감당해야 할 근원적 염려를 블랙 코미디적 필치로 탁월하게 형상화 한 수작이다. 링크: https://moonji.com/monthlynovel/34381/
가장 남다른 짐은 역시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면서부터 비릿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 트렁크의 짐이겠으나 셋 중 누구도 그 점에 대해 말하거나 묻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서로에게 가장 짐이 된다고 짐작되는 존재에 대해 안부를 물었다.
소설 보다 : 가을 2023 p.65,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그 상승선에서 조금이라도 미끄러지면 우리는 실패의 구렁텅이에 빠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그것을 과연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 말씀처럼 성장은 기꺼이 발전의 역방향을 자처하는 일에서 시작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앓는 존재를 만나기 위해 정상이 아닌 땅끝으로 가는 일, 여름에 배추씨를 뿌려 겨울을 도모하는 일, 서슬 퍼런 밤바다에 맞서 낭독의 빨간 날개를 펴는 일, 바람과 함께 담배를 나눠 피우는 일, 스스로 짐짝의 위치로 이동하는 일, 함부로 짐을 내팽개치지 않는 일, 초라한 몰골로 날갯짓을 연습하다 땅바닥에 떨어져 죽음 직전에 내몰린 상태에서도 이소를 단념하지 않는 일, 내일을 위해 오늘을 버리지 않는 일,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회하지도 후퇴하지도 않고’ 내일을 향해 곧장 가는 일. 그토록 구차하게 이소를 거듭하는 일이 제겐 곧 성장이고 이때 성장은 더 이상 추락의 반의어가 아닐 겁니다. 게리온처럼 소설가도 시인도 번역가도 철학자도 (저도 살짝 끼겠습니다) 추락하며 날아오르고 있으니까요.
소설 보다 : 가을 2023 p.105-106,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소설의 앞쪽 부분을 읽을 때, 몇 번은 다시 돌아가 읽었던 것 같아. 어느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번역가, 소설가, 시인(가나다 순)과 같이 직업으로 나오다보니까 인물이 처음부터 생생하게 그려지지 않더라고. 언급되는 순서도 계속 바뀌니까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의미일까 잠시 멈춰졌었어. 소설을 다 읽고 작가님과의 인터뷰를 보고나서야, ‘글에는 순서와 차례(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기준이 다양해질 수 있다면 누구도 항상 처음에 있거나 마지막에 있지는 않겠(p.92)’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었어. 이 대목은 내가 최근에 하고 있는 여러 고민들과도 맞닿아 있었는데, 그동안 나만의 좁은 기준으로 판단했던 것들이 생각나면서 부끄럽고 민망해지더라고. 소설의 마지막에는 이소를 준비하는 새가 등장하고, 어느새 소설의 제목과 그 의미에 가까워지지. 소설 속 모든 등장인물들이 저마다의 이소를 시도하는데,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추락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로 느껴졌어. 성장과 추락. 나는 이 두 가지 단어가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었어. 보통 성장은 긍정적으로, 추락은 부정적으로 느껴지니까 말이야. 그런데 우리가 모두 이소 단계이 있다고 생각을 해보면, 추락도 결국 성장의 과정인거잖아.(비록 추락 끝에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몇 번의 추락을 거듭하고 그 끝에 살아남는다면 그건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 보통의 사람들은 겉으로 보여지는 나의 삶을 결코 추락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사실 나는 내가 원하는 높이만큼 못 갔다고 느껴져서, 때때로 추락한 것만 같아 좌절감을 느낄 때가 있거든. 그런 나에게 위로가 되는 소설이었어.
피망이 말한 것처럼, 나도 인터뷰에서 작가님이 ‘사람은 ‘다면체’이며 어디서 어떻게 조명을 쏘아주느냐 따라 꽤 다른 피사체가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작가는 특히 공정한 조명을 쏘아야 하는 책무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더라고. 나는 지금까지 작가는 오히려 ‘주관적으로 자신의 인물에게 조명을 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고 생각했었거든. 그리고 성장하기 위해선 상승뿐 아니라 추락도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는 부분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락에 대한 두려움이 있잖아. 그런데 그 추락도 성장의 한 과정이라 생각하면 조금은 덜 두려워해도 되지 않을까 해서 나도 많은 위로를 받았어.
그 여름 그들에게 과연 내일은 있을까? 그건 우리도 그들도 알 수가 없다.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지금’ 그 여름을 준비하며 각자의 시집을 고르고 있다는 것, 그 여름이 오늘의 그들에게 내일이라는 것, 그러므로 그 여름의 일은 모르겠고 적어도 오늘의 그들에겐 내일이 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소설 보다 : 가을 2023 (p.63),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무수한 논쟁과 대화와 때론 독백이 이어질 것이다.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왔다 밀려갈 것이다. 살고자 하는 사람도 죽고 싶은 사람도 하릴없이 그 소리와 박자에 몸을 맡길 것이다. 여름이니까. 밤이니까. 마법 같은 여름밤이니까. 그러기로 약속했으니까. 그러려면 일단 그들은 무사히 육지 끝에 당도해야 할 것이다. 우회하지 않고 후퇴하지도 않고 철학자가 일러준 길을 똑바로 따라가야 할 것이다.
소설 보다 : 가을 2023 p.75,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그런 맥락에서 소설의 서두에서 서술자가 제기하는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그 여름 그들에게 과연 내일은 있을까? 그건 우리도 그들도 알 수가 없다.” 죽음의 불안과 삶의 무의미성을 배태하는 토대도 바로 이러한 근원적 불가해성이다. 이 사실을 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이 다름 아닌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시간은 내일을 향해 무심히 걸어갈 것이다.” 「이소 중입니다」는 시간적 존재로서 인간이 감당해야 할 근원적 염려를 블랙 코미디적 필치로 탁월하게 형상화 한 수작이다.
소설 보다 : 가을 2023 이 계절의 소설 선정의 말, 강동호,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흔히 어제-오늘-내일이 선형의 질서를 이루고 우리는 그 '오르막길'을 올라 정상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삶이 그리는 그래프는 반드시 상승이어야 하고 발전이어야 하며 그것이 최종적으로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말이지요. 그 상승선에서 조금이라도 미끄러지면 우리는 실패의 구렁텅이에 빠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그것을 과연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 말씀처럼 성장은 기꺼이 발전의 역방향을 자처하는 일에서 시작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그토록 구차하게 이소를 거듭하는 일이 제겐 곧 성장이고 이때 성장은 더 이상 추락의 반의어가 아닐 겁니다. 게리온처럼 소설가도 시인도 번역가도 철학자도(저도 살짝 끼겠습니다) 추락하며 날아오르고 있으니까요.
소설 보다 : 가을 2023 p.105-106,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 이주혜, 「이소 중입니다」 📝 (23/10/16) ‘이사’도 아니고 ‘이소’? 단어가 궁금했지만 읽다 보면 자연스레 뜻을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해 글을 읽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단어를 찾아보지 않은 건 좋은 선택이었다. 번역가, 소설가, 시인(가나다 순)은 각각 상훈(노견), 소리(딸), 노인(이혼한 전남편의 아버지)이라는 ‘짐’을 잠시 내려두고 육지 끝에 사는 철학자를 만나러 가는 중이다.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어딘가 불안하고 석연찮은 구석이 있고, 서로 알게 모르게 마음이 맞지 않고, 끝내 ‘그들이 탄 차 앞으로 검은 세단 한 대가 깜빡이도 켜지 않고 훅 끼어들어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p.85) 사고가 난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보통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게 뭔가 진행될 듯, 뭔가 밝혀질 듯하면서 결국 아무것도 풀리지 않고 해결되지 않은 채 육지 끝 철학자의 집에 도달했다고 가정하며 ‘~할 것이다’라는 미래형으로 끝나는 이야기. 이들의 여정 자체가 ‘이소離巢’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떠날 이離 새집 소巢. ‘새의 새끼가 자라 둥지에서 떠나는 일’이라는 뜻으로, 어린 새는 살아남기 위해 떠나고, 떠나기 위해 추락하고, 그 과정에서 비상하는 법을 배워 나가는 듯하다. 이는 번역가가 ‘철학자는 왜 육지 끝에서 멈추었을까?’라고 혼잣말한 것에 시인과 소설가가 각각 ‘추락하지 않으려고.’, ‘다시 말해 살려고.’라고 대답하는 것과도 어느 정도 맥을 같이 한다. 성장은 ‘추락의 반의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작가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다. 성장하기 위해선 추락할 수도 있다는 것, ‘우회하지도 후퇴하지도 않고’ 내일을 향해 곧장 가야 한다는 것. 어쩌면 마지막의 ‘사고’ 또한 그들이 ‘내일’로 향하기 위한 ‘추락’이 아닐까? ———————————— 처음 읽은 단편처럼 너무 희망적이지만은 않은, 그렇다고 절망적이지도 않은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난 따뜻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이런 결말이 취향에 잘 맞는 것 같아. 서로 아주 잘 맞지는 않지만 그래도 같은 길을 함께 떠나며 내일을 기다리는 세 사람의 연대가 좋았어. ‘돌봄’과 ‘연대’, 그리고 ‘상승과 추락’이라는 단어로 살펴보는 ‘성장’의 개념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소설도 좋았지만 인터뷰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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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5~10/21 | 전하영, 「숙희가 만든 실험영화」 단편&인터뷰 읽기 - 인상 깊은 문장과 감상평을 자유롭게 나누기 (필수) - 글을 읽고 같이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이야기 나누기 (선택) 안녕! 늦어서 미안해. 이번 주는 전하영 작가의 「숙희가 만든 실험영화」를 읽어보려고 해. 미리 안내한 것처럼 읽으면서 나누고 싶은 인상적인 문장과 감상평을 자유롭게 댓글로 달아주고, 같이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이야기 있으면 함께 나누자. 문학과지성사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이 계절의 소설 선정의 말>을 스포일러 지정해서 올려둘게.
이 계절의 소설 선정의 말 | 문학평론가 조연정 ‘3가구 중 1가구가 혼자 사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1인 가구 담론은 청년 세대나 노년 세대에 집중되어 있고 중년 1인 가구의 경우에는 주로 이혼이나 ‘기러기 아빠’로 혼자가 된 남성의 사례로 다루어지곤 한다(김희경, 『에이징 솔로』, 동아시아, 2023). 곧 50대를 앞두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줌마’라는 단어에 불편함을 느꼈으나 이제 주변의 친구들이 실제로 누군가의 할머니가 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중년의 독신 여성으로서 느끼게 되는 여러 혼란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전하영의 「숙희가 만든 실험영화」는 그런 점에서 특별하게 읽히는 소설이다. 흥미로운 점은 숙희에게는 자신을 보호해줄 안전한 둥지가 없다는 불안보다 오히려 자신이 누군가의 공식적인 보호자가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심적 불편함이 더 크다는 사실이다. 중년의 여성이 어떤 식으로든 돌봄 노동의 주체가 되지 않은 채 스스로 독신의 삶을 편안하게 즐기고 누린다는 것이 어떤 결핍처럼 느껴질 만큼, 여성의 생애주기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이 견고하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어리고 젊은 여성은 대상화되고 나이든 여성은 누군가의 조력자로 주변화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삶은 거칠게 이런 식으로 요약될 수도 있다. “자신이 나뭇조각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선을 끌지 않으려 노력했다”라는 소설 속 숙희의 말처럼 한국 사회에서 나이든 여성은 대부분 잊힌 존재에 가깝다. 공식적인 사회적 역할 속에서도 많이 배제되고 그녀들의 다양한, 그래서 오히려 보이지 않는 노동은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 여성이 특정한 방식으로만 대상화되는 사회 구조 속에서 나이든 여성은 점점 없는 존재에 가까워진다. 경제적인 불편함 없이 자신의 삶을 멋지게 잘 꾸려가는 숙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평온한 일상을 누리지 못하는 듯 보이는 것은 한국 사회의 고정된 여성적 삶의 패턴으로부터 일탈해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혼자 사는 중년 여성의 삶이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공통된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인식될 만큼의 다양한 참조점이 그녀에게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 남자와의 연애가 부끄럽다든가, 아이를 필사적으로 원했던 시기가 있다든가, 이 소설의 어떤 설정들은 다소 전형적이고 나아가 보수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중년 독신 여성의 내면을 공적으로 확인할 기회가 적었다는 점에서 날 것 그대로의 숙희의 마음을 읽는 것이 오히려 반갑기도 하다.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모성’ 욕망으로부터 탈피하여 같은 또래 독신 여성 윤미를 만나러 15년 만에 비행기에 오르는 숙희의 결단은, 그녀가 위태로운 ‘싱글’의 삶을 청산하고 완전한 ‘솔로’의 삶을 편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결심을 드러내는 듯도 하다. 이러한 모범적인 결론도 다소 전형적일 수 있지만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든다. 숙희와 유사한 삶을 살았던 그리고 현재 살아가고 있는 많은 여성들이 있을 것이다. 숙희가 자기 삶에 안심하고 만족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이 수많은 여성들의 삶이 서로에게 보여지지 않아서였기 때문일 수 있다.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수만큼 우리에게 가능한 삶의 양태도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어떤 성별인가로 결혼의 유무로 자녀가 있고 없음으로 나이가 많고 적음으로 어떤 일을 하는가로 성한 몸인가 그렇지 않은가로, 우리 모두가 똑같이 정해진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누구의 삶도 예상대로 흘러가서 정해진 대로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우연히 마주한 지금 나의 현재와 관련하여 특별히 자만할 것도 특별히 절망할 것도 없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불안할 것도 충분히 안심할 것도 없다.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겸허한 마음 그 자체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 어떤 상태이건 우리 모두는 숙희처럼 열린 결말의, 특별한 공식이 없는, ‘실험영화’ 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링크: https://moonji.com/monthlynovel/34385/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린다더니. 숙희는 삶이 제공하는 이 끝없는 개념적 공격에 좀 억울하고 피곤한 마음이 들었다. 인류의 반이 필히 경험하는 것인데도 왜 이토록 힘겹고 외로운 싸움으로 느껴지는 것인지.
소설 보다 : 가을 2023 p.118,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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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한 발짝 먼저 읽기, 가제본 북클럽
[바람의아이들] "고독한 문장공유" 함께 고독하실 분을 찾습니다. 💀《화석맨》 가제본 함께 읽기조지 오웰 [엽란을 날려라] 미리 읽기 모임[선착순 도서나눔] 중국 대표 작가 위화의 8년 만의 신작 《원청》! 출간 전 같이 읽어요
혼자 읽기 어려운 보르헤스, russist 님과 함께라면?
(9) [보르헤스 읽기]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1부 같이 읽어요(1) [보르헤스 읽기] 『불한당들의 세계사』 같이 읽어요(2) [보르헤스 읽기] 『픽션들』 같이 읽어요
일본 장르소설을 모았습니다
[박소해의 장르살롱] 21. 모든 예측은 무의미하다! <엘리펀트 헤드>[박소해의 장르살롱] 10. 7인 1역 [박소해의 장르살롱] 7. 가을비 이야기 [일본미스터리/클로즈드서클] 같이 읽어요!
스토리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어요.
스토리 탐험단의 첫 번째 여정 [이야기의 탄생][작법서 읽기] Story :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함께 읽기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함께 읽으실래요?
하금, 그믐, 지금
딱히 이번이라고 뭔가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희망할 근거는 없었다.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어느 여성도 셰익스피어의 비범한 재능을 갖지 못했을 거예요.횡설수설하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겨울에는 러시아 문학이 제 맛
[문예세계문학선] #01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함께 읽기[그믐밤] 8. 도박사 1탄, 죄와 벌@수북강녕[브릭스 북클럽]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커다란 초록 천막》 1, 2권 함께 읽기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내셔널 갤러리 VS 메트로폴리탄
[도서 증정] 저자이자 도슨트인 유승연과 함께 읽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낸 500일> [웅진지식북클럽] 1.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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