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서점 × 책방밀물]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같이 읽기

D-29
저도 드라마극장을 떠올렸는데 혹시나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까 싶어 단편영화라고.. ^^;;; 저는 이번 작품의 경진이라는 인물에게도 흠뻑 빠져버렸답니다. 열 몇 살 아래인 학습지 선생님께도 예의를 갖춰 대하고, 시간을 옮겨 주지 못한 스스로를 살짝 자책하고, 101동 여자에게 조심스레 맥주를 건낼 때 고양이 음식까지 함께 챙기는 마음을 가진 인물에게요. 이런 성정을 지닌 인물이라 주변도, 자신도 더 섬세하게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아파트에 이사온 지 몇 년 되었고 놀이터에서 은솔이 자주 뛰어노는데도 큰 소리로 웃는 아이들과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엄마들을 보면 오래전의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학습지 교사 일을 하던 시절에 일주일에 한 번씩 학생들의 집에 들어가서 수업을 하고 나올 때면 자신은 떠도는 사람이고 영원히 저기에 속하지 못하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건 너무 당연한 건데도 경진을 쓸쓸하게 만들었다. 그만둔 지 십오 년이 지났는데도 자신은 안정적인 세계에 속해 있지 않고 바쁘게 걸으며 어딘가에 도달하려 애쓴다는 기분이 몰려오는 순간이 있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에 대해 경진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p.58 서유미 <밤의 벤치> , 김의경 외 지음
이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언젠가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나보다 어린 누군가를 만난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읽거나 영화에서나 어떤 간접적인 경험은 많이 있었는데, 실제로 누군가를 보고 느낀 적은 없는 것 같아서요. 만약 만나면 어떤 느낌이 들까.. 하는 생각을 괜히 혼자 해봤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살았던 집을 작년에 처음으로 찾아가봤는데요,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전철역 출구를 올라오는 순간 울컥해서 스스로 당황했거든요. 장소만으로도 그런 느낌였으니 언젠가의 나와 같은 누군가를 보게 되면 정말 많은 생각이 들것 같아요.
한낮에 번화한 거리를 걸을 때면 아직도 오래전 그 편의점의 파라솔과 분식점의 창가 자리가 떠오르고 거기 앉아 밥을 먹고 숨을 돌리던 자신이 생각났다. 어떤 시기의 자신을 거기에 두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경진은 밤의 벤치에도 자신의 일부를 두고 왔고 그것이 영영 사라져버렸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p.72 서유미 <밤의 벤치>, 김의경 외 지음
<밤의 벤치>를 읽으며 떠도는 노동자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보통 노동자라고 하면 공장이나 사무실, 이 두 장소에 귀속된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는데 여기가 아닌 곳에서 노동하는 사람들도 생각해 보면 많잖아요. 이 단편 읽으면서는 유현준 교수님 주장처럼 도시인들이 돈 안 내고 편히 앉을만한 공간이 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어요.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그동안 '노동'이라는 단어의 의미 혹은 이미지를 아주 편협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평일 낮에 길을 다니는 사람도 노동을 하고 있는 중일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아주 흐릿하게 나마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고요. 덕분에 예전에 옮겨 써두었던 (출판사 북노마드 대표가 쓴) <좋아서, 혼자서>라는 책에서 읽은 구절이 함께 떠올랐습니다. "어쩔 수 없다. 일이라는 게, 직업이라는 게 그렇다. '일이란 자신에겐 뚜렷하지만, 남들에게는 한없이 모호'하다는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의 말처럼 사람들은 실제와 동떨어진 이미지로 직업을 소비한다. 누구도 남의 직업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제멋대로 격상시키기도 하고 폄하하기도 한다. '책을 만들어 파는 일'로 정의할 수 있는 '출판'도 그러하다.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일을 아는 게 아니고,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일을 모르는 게 아니다."
일을 그만둔 뒤에도 경진은 걸으면서 나무를 보고 공기 중에 섞인 비의 냄새를 맡던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어딘가에 도착해서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렸다. 나무 하나를 찬찬히 보며 걷게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p.69 서유미 <밤의 벤치>, 김의경 외 지음
전 직장 퇴사 후 서점을 오픈하기 전까지 홍제천변을 매일 같이 걸었는데요. 그때의 제가 꼭 이랬습니다. 목적지를 정하든 시간을 정하든 혹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든, 걷는 것으로 자꾸 뭔가를 해내려고, 얻으려고 하고 있더라고요. 경진의 '밤의 벤치'가 저에겐 항상 걸었던 그 길(매번 걷던 코스가 있었거든요)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경진의 벤치처럼 없어지진 않았지만... 여러분에게도 '밤의 벤치'같은 자신만의 장소가 있으신가요?
김순화를 만나고 나면 늘 그랬듯 차진혜는 노동의 당위성을 되찾았다. 주말마다 의식처럼 김순화의 집에 들르며 그녀는 마음을 단련시켰다. 은퇴할 때까지 회사에서 버티는 것이 유일한 목표임을 상기하면서.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p.115 이서수 <광합성 런치>, 김의경 외 지음
이서수 작가는 <광합성 런치>에서 등장 인물을 죄다 이름 석자로 표기하는데요.(심지어 화자의 엄마도) 대표와 홍차장의 이름은 끝끝내 나오지 않더라고요. 왜 그렇게 쓰신 걸까, 읽는 내내 궁금했습니다.
전혀 인지 못했던 내용인데 저도 궁금해지네요 -.-a 근데 친구인 신오연이나 짝사랑하는 박이재, 엄마인 김순화 외엔 다른 어떤 회사 사람이 등장했어도 이름으론 불리우지 않았을것 같아요. 그냥 딱 회사 동료 그만큼의 거리감 같거든요. 대표, 홍차장, 한대리 모두요. 서이재도 짝사랑하는 인물이 아녔다면 서사원, 서대리정도였을 것 같아요.
갑자기 저도 궁금하네요. 이 거 오프라인 북토크 때 작가님께 물어봐야겠어요. ㅎㅎㅎ
화자가 품은 마음의 거리를 표현했다기엔 '그럼 엄마는...?' 싶어서ㅎㅎㅎ 작가님의 대답이 기다려집니다!
중요한 것은 건축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가장 싸게 가장 빨리 짓는 것뿐이다. 그동안에도 은행 이자는 착실히 붙고 있으니까.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임성순/기초를 닦습니다 143p, 김의경 외 지음
리얼한 건축 현장을 보니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판타지 같네요. 제가 듣기론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기'라고 하더라고요. 시간이 돈,이자다 보니 무조건 기간 안에 건물을 지어내야 한다고. 그러니, 순살 아파트도 나오고 워터파크 아파트도 나오나 봐요. 네임드 아파트도 저런데 일반 빌라는 더하겠죠. 헌치도 없이 대충 감으로 판 땅에 공그리치면 아무도 모른다는게 섬뜩해요. 우리나라는 빌라.주택을 위한 동결심도도 제대로 연구 안 되었다고 합니다. 평소 관심있던 건축이야기라 재밌게 읽었어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1982년 일본의 고급 별장지 가루이자와. ‘무라이 건축 설계 사무소‘는 여름 한철을 그곳 아사마 산 자락의 별장에서 보낸다. 삶과 맞닿은 건축을 꿈꾸는 사람들과 언제까지고 계속되었으면 했던 그 여름의 고아했던 나날. 이윽고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을 앞두고 뜨거운 분투가 시작되는데.
저도 새삼 이 단편을 읽고나니 건축사라는 직업도 이상과 현실이 많이 다르겠구나 싶었어요. 다른 직종에 비해 처우가 많이 안좋다는건 알고 있었는데 (국내 일급 설계 사무소 조차도요;) 소설에 나오는 상황같은 이유로도 기운 진짜 빠지겠다 싶은; 최근에 교사하는 지인들한테서 학교 얘기들을때랑 비슷한 느낌입니다.
그때 배웠다. 이상은 현실을 극복할 무엇 없이는 이루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게 자본이 됐든, 건축법이 됐든, 천재적인 설계 능력이 됐든, 아니면 허울뿐인 이름값이 됐든 말이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임성순/기초를 닦습니다 145p, 김의경 외 지음
도면에 직선밖에 없잖아. 그런데 이런 사선 하나 들어가면 아주 좋아해. 건축주 새끼들이 졸라 신경써서 도면 그려준 줄 안다고. 사선 하나 넣어주면. 이 바닥이 그렇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임성순/기초를 닦습니다 159p, 김의경 외 지음
이 대사 진짜 찰떡같이 딱이었어요. 너무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나오는 동시에 진짜 이게 현실일까봐 살짝 소름 돋기도 했구요. 전에 젊은 치과의사가 하는 얘길 들었는데, 임플란트하러 오는 나이 많은 환자분들 진료비 수납하실때 의사가 나와서 손한번 잡아드리면 진료비 비싸단 컴플레인 안하신다고 ;;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순간 이 얘기가 떠올랐어요.
저도 이 말에서 정말 어이없는 웃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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