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서점 × 책방밀물]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같이 읽기

D-29
한낮에 번화한 거리를 걸을 때면 아직도 오래전 그 편의점의 파라솔과 분식점의 창가 자리가 떠오르고 거기 앉아 밥을 먹고 숨을 돌리던 자신이 생각났다. 어떤 시기의 자신을 거기에 두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경진은 밤의 벤치에도 자신의 일부를 두고 왔고 그것이 영영 사라져버렸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p.72 서유미 <밤의 벤치>, 김의경 외 지음
<밤의 벤치>를 읽으며 떠도는 노동자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보통 노동자라고 하면 공장이나 사무실, 이 두 장소에 귀속된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는데 여기가 아닌 곳에서 노동하는 사람들도 생각해 보면 많잖아요. 이 단편 읽으면서는 유현준 교수님 주장처럼 도시인들이 돈 안 내고 편히 앉을만한 공간이 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어요.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그동안 '노동'이라는 단어의 의미 혹은 이미지를 아주 편협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평일 낮에 길을 다니는 사람도 노동을 하고 있는 중일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아주 흐릿하게 나마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고요. 덕분에 예전에 옮겨 써두었던 (출판사 북노마드 대표가 쓴) <좋아서, 혼자서>라는 책에서 읽은 구절이 함께 떠올랐습니다. "어쩔 수 없다. 일이라는 게, 직업이라는 게 그렇다. '일이란 자신에겐 뚜렷하지만, 남들에게는 한없이 모호'하다는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의 말처럼 사람들은 실제와 동떨어진 이미지로 직업을 소비한다. 누구도 남의 직업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제멋대로 격상시키기도 하고 폄하하기도 한다. '책을 만들어 파는 일'로 정의할 수 있는 '출판'도 그러하다.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일을 아는 게 아니고,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일을 모르는 게 아니다."
일을 그만둔 뒤에도 경진은 걸으면서 나무를 보고 공기 중에 섞인 비의 냄새를 맡던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어딘가에 도착해서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렸다. 나무 하나를 찬찬히 보며 걷게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p.69 서유미 <밤의 벤치>, 김의경 외 지음
전 직장 퇴사 후 서점을 오픈하기 전까지 홍제천변을 매일 같이 걸었는데요. 그때의 제가 꼭 이랬습니다. 목적지를 정하든 시간을 정하든 혹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든, 걷는 것으로 자꾸 뭔가를 해내려고, 얻으려고 하고 있더라고요. 경진의 '밤의 벤치'가 저에겐 항상 걸었던 그 길(매번 걷던 코스가 있었거든요)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경진의 벤치처럼 없어지진 않았지만... 여러분에게도 '밤의 벤치'같은 자신만의 장소가 있으신가요?
김순화를 만나고 나면 늘 그랬듯 차진혜는 노동의 당위성을 되찾았다. 주말마다 의식처럼 김순화의 집에 들르며 그녀는 마음을 단련시켰다. 은퇴할 때까지 회사에서 버티는 것이 유일한 목표임을 상기하면서.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p.115 이서수 <광합성 런치>, 김의경 외 지음
이서수 작가는 <광합성 런치>에서 등장 인물을 죄다 이름 석자로 표기하는데요.(심지어 화자의 엄마도) 대표와 홍차장의 이름은 끝끝내 나오지 않더라고요. 왜 그렇게 쓰신 걸까, 읽는 내내 궁금했습니다.
전혀 인지 못했던 내용인데 저도 궁금해지네요 -.-a 근데 친구인 신오연이나 짝사랑하는 박이재, 엄마인 김순화 외엔 다른 어떤 회사 사람이 등장했어도 이름으론 불리우지 않았을것 같아요. 그냥 딱 회사 동료 그만큼의 거리감 같거든요. 대표, 홍차장, 한대리 모두요. 서이재도 짝사랑하는 인물이 아녔다면 서사원, 서대리정도였을 것 같아요.
갑자기 저도 궁금하네요. 이 거 오프라인 북토크 때 작가님께 물어봐야겠어요. ㅎㅎㅎ
화자가 품은 마음의 거리를 표현했다기엔 '그럼 엄마는...?' 싶어서ㅎㅎㅎ 작가님의 대답이 기다려집니다!
중요한 것은 건축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가장 싸게 가장 빨리 짓는 것뿐이다. 그동안에도 은행 이자는 착실히 붙고 있으니까.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임성순/기초를 닦습니다 143p, 김의경 외 지음
리얼한 건축 현장을 보니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판타지 같네요. 제가 듣기론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기'라고 하더라고요. 시간이 돈,이자다 보니 무조건 기간 안에 건물을 지어내야 한다고. 그러니, 순살 아파트도 나오고 워터파크 아파트도 나오나 봐요. 네임드 아파트도 저런데 일반 빌라는 더하겠죠. 헌치도 없이 대충 감으로 판 땅에 공그리치면 아무도 모른다는게 섬뜩해요. 우리나라는 빌라.주택을 위한 동결심도도 제대로 연구 안 되었다고 합니다. 평소 관심있던 건축이야기라 재밌게 읽었어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1982년 일본의 고급 별장지 가루이자와. ‘무라이 건축 설계 사무소‘는 여름 한철을 그곳 아사마 산 자락의 별장에서 보낸다. 삶과 맞닿은 건축을 꿈꾸는 사람들과 언제까지고 계속되었으면 했던 그 여름의 고아했던 나날. 이윽고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을 앞두고 뜨거운 분투가 시작되는데.
저도 새삼 이 단편을 읽고나니 건축사라는 직업도 이상과 현실이 많이 다르겠구나 싶었어요. 다른 직종에 비해 처우가 많이 안좋다는건 알고 있었는데 (국내 일급 설계 사무소 조차도요;) 소설에 나오는 상황같은 이유로도 기운 진짜 빠지겠다 싶은; 최근에 교사하는 지인들한테서 학교 얘기들을때랑 비슷한 느낌입니다.
그때 배웠다. 이상은 현실을 극복할 무엇 없이는 이루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게 자본이 됐든, 건축법이 됐든, 천재적인 설계 능력이 됐든, 아니면 허울뿐인 이름값이 됐든 말이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임성순/기초를 닦습니다 145p, 김의경 외 지음
도면에 직선밖에 없잖아. 그런데 이런 사선 하나 들어가면 아주 좋아해. 건축주 새끼들이 졸라 신경써서 도면 그려준 줄 안다고. 사선 하나 넣어주면. 이 바닥이 그렇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임성순/기초를 닦습니다 159p, 김의경 외 지음
이 대사 진짜 찰떡같이 딱이었어요. 너무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나오는 동시에 진짜 이게 현실일까봐 살짝 소름 돋기도 했구요. 전에 젊은 치과의사가 하는 얘길 들었는데, 임플란트하러 오는 나이 많은 환자분들 진료비 수납하실때 의사가 나와서 손한번 잡아드리면 진료비 비싸단 컴플레인 안하신다고 ;;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순간 이 얘기가 떠올랐어요.
저도 이 말에서 정말 어이없는 웃음이....
건축 도면에 사선이나 원형 들어가면 저도 멋있다고 좋아할 것 같아서 뭐라 할 말이 없더라구요. ㅎㅎ
안도타다오 전시에서 설계도면을 봤는데..예술작품같더라고요. 그 유려한 곡선들 때문에요. ㅎㅎ
사무실의 크기가, 횡뎅그렁한 빈 공간이 내 몸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육체를 짓누르는 공기의 무게를 느낀다. 시간은 나에게 맞지 않는 속도로 빨리 흘렀다가 더디게 훌렸다가 한다. . . 밤에 이중구와 을지로의 후줄근한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실 때에는 모든게 실감났다. 공간은 적당히 들어찬 듯 보였고, 공기는 짓누르는게 아니라 나를 감싸주는 무게였으며, 시간은 제 속도로 흘렀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장강명/간장에 독 188,191p, 김의경 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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