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서점 × 책방밀물]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같이 읽기

D-29
팍타. 순트. 세르반다.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야.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정진영/숨바꼭질, 김의경 외 지음
내가 오 년 가까이 머물렀던 공간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는 이번 숨바꼭질에서 이긴 걸까, 진 걸까. 이 숨바꼭질에 끝이 있긴 있는 걸까. 제때 돌려받지 못한 전세금의 지연이자까지 소송으로 받아내려면 또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까. 일주일 안에 과연 괜찮은 방을 찾아 이사할 수 있을까. 익숙했던 서대문역 주변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정진영/숨바꼭질 241p, 김의경 외 지음
결혼 전, 집 구하던 때가 생각났던 단편이었어요. 근린생활시설은 주담대나 보증보험이 안 되는 걸 처음 알았네요. 서울 국평 아파트를 제돈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할까요? 부모 도움이나 대출없이요. 😭
하아.. <숨바꼭질> 은 저한텐 거의 르포입니다. 다행히 집주인이 보증금 안돌려준 건 아녔으나.. 이거 빼곤 거의 똑같은 시간을 겪은ㄷㄷ <광합성 런치>의 이서수 작가님 단편 중에 <나의 방광 나의 지구> 도 비슷한 소재인데, 읽고 나서 신랑이랑 우리 집에 CCTV 달아 두고 쓰신것 같다고 얘기했지요. 소설 속 시기를 비슷하게 겪으면서 제일 힘든건 걱정과 원망의 시간을 지나 결국은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는 거더라고요. '남들 다~살 때 누가 칼 들고 다님서 사지 말라고 했냐, 내가 현실 파악 못하고 안샀지.. 빡세게 고생해서 돈 벌면 뭐하냐.. 굴리는 재주도 없고..' 이런 귀결이.. 많은 이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하고 있을것 같아요. 그래도 소설 결말은 맘에 들었어요! 주인공이 만족할 순 없겠지만 억울함이라도 저만큼은 풀고 마쳐서 응원한ㅎㅎ
일 초라도 빨리 달리기 위해 붉은 신호일 때도 진행하는 게 일상이다. 내 눈에 보이는 건 차량의 붉은 브레이크 등이 전부다. 그 붉은 태양과도 같은 수많은 불빛을 넘어서고 나면 단내가 내 몸과 코끝에 절묘하게 파고드는 시간이 가까워진다. .... 내가 달다고 느끼는 건 아주 잠깐, 다세대주택, 빌라, 주상복합 오피스텔, 사무실, 지하 연습실 같은 다양한 공간에서 문이 열리고 음식을 주고받는 그 짧은 순간에 슬쩍 마주치는 수령인과의 시선 충돌. 그 순간은 묘하게 달다. 수령인은 내 얼굴을 보지 못한다. 검은 헬멧을 늘 벗지 않았으니까....... 문 앞에 놓고 가라는 경우는 제외하고, 아주 잠깐이었지만 살아 있는 눈을 보는 특권은 정말 달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충동을 넘어선 단내가 내 몸과 머릿속을 야무지게 채우는 걸 느낀다. 그 단내가 뭐냐고 누군가 진지하게 따져 물으면 한마디도 대답 못하겠지만,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그 순간만큼은 달았고, 내가 살아 있는 걸 느꼈다. 그 기분이 좋은 건지, 우울한 건지, 무섭고 두려운 건지에 관해선 해석이 불가하다. 길 위에서 내 역한 입김이 눈앞의 헬멧 실드에 성에로 잔류하는 순간순간마다 춥고 달다는 실감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감각되지 않는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주원규/카스트 에이지 253p, 김의경 외 지음
오늘도 오후 세시에 지하철 2호선에서 나갈 자신이 있냐고, 오토바이에 올라타 돈 벌 자신 있냐고, 여자친구에게 같이 지내자고 징징거리지 않을 자신 있냐고, 멘토에게 근거 없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자신 있냐고. 끝으로 하나만 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내 지겨운 스무 살, 사과받지 않고도 살아갈 자신 있냐고.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주원규/카스트 에이지 271p, 김의경 외 지음
힘들게 읽은 단편입니다. 이은해 사건 등, 여러 사건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코인 빚투자 실패로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20살 태양이 발 뻗고 잘 곳도 없어 2호선 순환선을 타고 쪽잠을 자면서도 택배 상.하차와 배달로 번 돈을 고스란히 여친과 멘토에 삥뜯기는 일상이 참담합니다. 여친과 멘토의 전형적인 가스라이팅, 묘하게 그 둘 다 태양과 눈을 똑바로 마주 보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태양이 유일하게 살아있다고 느끼는 눈을 마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배달시킨 사람들. 누가 태양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나요, 일확천금을 노린 마음에 빚을 내 코인을 투자해 망했으니 전적으로 태양의 잘못인가요.. ㅠㅠ
카스트 에이지의 뜻이 뭘까요? 영어도 안 써있고 각주나 미주에 안 나와있네요. 막연히 신분제도시대 정도로 추측하는데요..🤔
야심차게 시도했던 개별 수정들이 결국엔 모두 추가 비용이나 설계 오류가 되어 돌아왔다. 그때 배웠다. 이상은 현실을 극복할 무엇 없이는 이루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게 자본이 됐든, 건축법이 됐든, 천재적인 설계 능력이 됐든, 아니면 허울뿐인 이름값이 됐든 말이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p.144 임성순 <기초를 닦습니다>, 김의경 외 지음
'현실을 극복할 무엇 없이는 이루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그 무엇을 찾아 극복하려 애쓰고 싸우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맞이하고 누리게 되는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 지난한 과정 속에 있었을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었네요.
"세상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지구를 지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빌라를 짓는 거라고 " "그래도 " "니 양심껏 하자 없는 집 만들자고 이러는 거잖아." "최소한의 돈으로요." "그래. 그러니까 받은 만큼만 일해."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p.162 임성순 <기초를 닦습니다>, 김의경 외 지음
오래 전 잡지사에서 일할 때 자주 들었던 말입니다. "받은 만큼만 일해, 뭐하러 사서 고생해." 그로부터 훨씬 시간이 지나 다른 직장에서 중간관리자가 되었을 때 동료들에게도 자주 들었습니다. "클라이언트한테 받은 만큼만 일해야죠. 우리 여기까지만 해요." 그러고보니 그때 그 시절엔 '받은 만큼만 일한다'는 것에 대해 꽤나 자주 생각했었네요.(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라졌습니다마는) 여전히 '받은 만큼 일한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고요.
"그러니까 그게 왜 나였느냐고." "퍼포먼스마케팅팀에 젊고 빠릿빠릿한 사람이 가는게 좋을 거 같아서." 이중구가 내 눈을 피하며 답했다. "와, 내가 진짜 썸이라도 타고서 남자한테 꼬리 친 년 소리를 들으면 억울하지나 않겠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p.201 장강명 <간장에 독> , 김의경 외 지음
이 마지막 대사 정말 너무 찰떡입니다. 눈으로 읽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소리내어 읽고 있는 느낌이 들 만큼 입에 착 붙는 느낌이었습니다. 분명 언젠가 현실에서 이런 대사를 들어본 것만 같은 기분이거든요. 확실히 장작가님은 이런 여성 화자의 대사를 맛깔나게 쓰신단 생각이 듭니다.^^ 이 대사를 다시 보며 오래 전 한국 영화 중에 박해일, 강혜정 배우님이 주연한 <연애의 목적>의 한 장면이 떠올랐어요. 그 영화에서 가장 폭발하는 장면도 이 대사와 비슷한 순간이었거든요. 엄청 오래 전 영화인데 순간 떠올랐습니다ㅎㅎ
저는 여적여라고 로즈같은 사람들, 진짜 싫어요. 여직원이 잘 나가면 그걸 팀장한테 꼬리쳐서 됐을거라고 생각하는 거 자체가요. 예전 회사다닐 때 보면 유독 같은 여자동기들 잘나가는 걸 꼭 남자한테 꼬리쳐서 잘 나간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별로인 곳에서 일하는 나 역시 별로였고, 너무 달라붙은 관계는 삐걱기릴 때가 더 많았다. 이곳에서 어면 친절은 배려의 반의어였고, 어떤 고립은 구원의 동의어였다.... 밀착된 관계는 도리어 걷잡을 수 없는 틈을 발생시키고 그렇기에 적당한 거리의 유지는 원만한 관계의 필수 조건이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지영/오늘의 이슈 287p, 김의경 외 지음
이방인 레고는 닳고 닳은 채로, 또 어딘가 구멍난 채로 발길을 옮긴다. 그는 안다. 반쪽은 빛바래서 남은 반쪽과 만난다 해도 결코 하나가 아님을.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지영/오늘의 이슈 302p, 김의경 외 지음
레고와 옥스포드는 호환이 가능하던데 인턴 체험은 호환불가, 업그레이드도 안 되고... 그냥 인생 마모만 시키는 🙍‍♀️
프리랜서라면 말 그대로 프리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마치 당직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서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언제 갑자기 들어올지 모르는 프로젝트 때문에 스케줄을 항상 비워두어야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였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최영/이해와 오해가 교차하는 방식 311p, 김의경 외 지음
졸업 전, 저도 번역을 해볼까해서 번역사무소에서 테스트를 받은 적이 있었거든요. 근데 번역이 진짜 만만치 않은 작업이더라고요. 게다가 장 당 번역료가 생각보다 굉장히 짰고, 초벌 번역은 번역에 이름도 못 올리더라고요. 그래서 빨리 포기를 했었어요. 권남희 번역가가 '혼자여서 좋은 직업'에서 우리나라 번역시장에서 자리잡는다는게 얼마나 치열한 일인지 잘 써놓으셨더라고요. 더불어 터무니없이 싼 번역료 얘기도 언급하셨는데, 예전에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님이 번역료 이슈에 관한 기사를 내셨는데 읽어볼만 합니다. https://naver.me/FU9bTnmM 출판시장에서 번역이 아닌, 작가님들 원고료나 지급 문제는 이미 장강명 작가님께서 여러 번 말씀하셨고요. 출판물이냐, 영상물이냐, 프리랜서냐, 기업소속이냐,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각각의 오해와 이해가 교차하는군요. 다 남의 떡이 커보이는 거겠죠.
혼자여서 좋은 직업프리랜서 번역가의 삶이 담긴 『혼자여서 좋은 직업』. 믿고 읽는 번역가를 넘어 믿고 읽는 에세이 작가가 된 권남희의 유쾌하면서 따스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유일한 재주를 30년째 붙잡았다’고 말하는 권남희 번역가. 연중무휴로 긴 세월 일하면서 직업이 취미 생활이 되었고, 번역하는 일은 행복하고 글 쓰는 일은 즐겁다고 토로할 만큼 직업을 향한 진심을 드러낸다. 자칭 ‘유명한 집순이’로, ‘엉덩이가 무거워야 하는’ 번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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