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오 년 가까이 머물렀던 공간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는 이번 숨바꼭질에서 이긴 걸까, 진 걸까. 이 숨바꼭질에 끝이 있긴 있는 걸까. 제때 돌려받지 못한 전세금의 지연이자까지 소송으로 받아내려면 또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까. 일주일 안에 과연 괜찮은 방을 찾아 이사할 수 있을까. 익숙했던 서대문역 주변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
결혼 전, 집 구하던 때가 생각났던 단편이었어요. 근린생활시설은 주담대나 보증보험이 안 되는 걸 처음 알았네요. 서울 국평 아파트를 제돈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할까요? 부모 도움이나 대출없이요. 😭
Jonas
하아.. <숨바꼭질> 은 저한텐 거의 르포입니다. 다행히 집주인이 보증금 안돌려준 건 아녔으나.. 이거 빼곤 거의 똑같은 시간을 겪은ㄷㄷ
<광합성 런치>의 이서수 작가님 단편 중에 <나의 방광 나의 지구> 도 비슷한 소재인데, 읽고 나서 신랑이랑 우리 집에 CCTV 달아 두고 쓰신것 같다고 얘기했지요.
소설 속 시기를 비슷하게 겪으면서 제일 힘든건 걱정과 원망의 시간을 지나 결국은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는 거더라고요. '남들 다~살 때 누가 칼 들고 다님서 사지 말라고 했냐, 내가 현실 파악 못하고 안샀지.. 빡세게 고생해서 돈 벌면 뭐하냐.. 굴리는 재주도 없고..' 이런 귀결이..
많은 이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하고 있을것 같아요.
그래도 소설 결말은 맘에 들었어요! 주인공이 만족할 순 없겠지만 억울함이라도 저만큼은 풀고 마쳐서 응원한ㅎㅎ
스마일씨
“ 일 초라도 빨리 달리기 위해 붉은 신호일 때도 진행하는 게 일상이다. 내 눈에 보이는 건 차량의 붉은 브레이크 등이 전부다. 그 붉은 태양과도 같은 수많은 불빛을 넘어서고 나면 단내가 내 몸과 코끝에 절묘하게 파고드는 시간이 가까워진다. ....
내가 달다고 느끼는 건 아주 잠깐, 다세대주택, 빌라, 주상복합 오피스텔, 사무실, 지하 연습실 같은 다양한 공간에서 문이 열리고 음식을 주고받는 그 짧은 순간에 슬쩍 마주치는 수령인과의 시선 충돌. 그 순간은 묘하게 달다. 수령인은 내 얼굴을 보지 못한다. 검은 헬멧을 늘 벗지 않았으니까.......
문 앞에 놓고 가라는 경우는 제외하고, 아주 잠깐이었지만 살아 있는 눈을 보는 특권은 정말 달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충동을 넘어선 단내가 내 몸과 머릿속을 야무지게 채우는 걸 느낀다. 그 단내가 뭐냐고 누군가 진지하게 따져 물으면 한마디도 대답 못하겠지만,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그 순간만큼은 달았고, 내가 살아 있는 걸 느꼈다. 그 기분이 좋은 건지, 우울한 건지, 무섭고 두려운 건지에 관해선 해석이 불가하다. 길 위에서 내 역한 입김이 눈앞의 헬멧 실드에 성에로 잔류하는 순간순간마다 춥고 달다는 실감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감각되지 않는다. ”
“ 오늘도 오후 세시에 지하철 2호선에서 나갈 자신이 있냐고, 오토바이에 올라타 돈 벌 자신 있냐고, 여자친구에게 같이 지내자고 징징거리지 않을 자신 있냐고, 멘토에게 근거 없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자신 있냐고.
끝으로 하나만 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내 지겨운 스무 살, 사과받지 않고도 살아갈 자신 있냐고. ”
힘들게 읽은 단편입니다. 이은해 사건 등, 여러 사건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코인 빚투자 실패로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20살 태양이 발 뻗고 잘 곳도 없어 2호선 순환선을 타고 쪽잠을 자면서도 택배 상.하차와 배달로 번 돈을 고스란히 여친과 멘토에 삥뜯기는 일상이 참담합니다. 여친과 멘토의 전형적인 가스라이팅, 묘하게 그 둘 다 태양과 눈을 똑바로 마주 보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태양이 유일하게 살아있다고 느끼는 눈을 마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배달시킨 사람들. 누가 태양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나요, 일확천금을 노린 마음에 빚을 내 코인을 투자해 망했으니 전적으로 태양의 잘못인가요.. ㅠㅠ
스마일씨
카스트 에이지의 뜻이 뭘까요? 영어도 안 써있고 각주나 미주에 안 나와있네요. 막연히 신분제도시대 정도로 추측하는데요..🤔
무슨
“ 야심차게 시도했던 개별 수정들이 결국엔 모두 추가 비용이나 설계 오류가 되어 돌아왔다. 그때 배웠다. 이상은 현실을 극복할 무엇 없이는 이루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게 자본이 됐든, 건축법이 됐든, 천재적인 설계 능력이 됐든, 아니면 허울뿐인 이름값이 됐든 말이다. ”
'현실을 극복할 무엇 없이는 이루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그 무엇을 찾아 극복하려 애쓰고 싸우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맞이하고 누리게 되는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 지난한 과정 속에 있었을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었네요.
무슨
“ "세상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지구를 지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빌라를 짓는 거라고 "
"그래도 "
"니 양심껏 하자 없는 집 만들자고 이러는 거잖아."
"최소한의 돈으로요."
"그래. 그러니까 받은 만큼만 일해." ”
오래 전 잡지사에서 일할 때 자주 들었던 말입니다. "받은 만큼만 일해, 뭐하러 사서 고생해." 그로부터 훨씬 시간이 지나 다른 직장에서 중간관리자가 되었을 때 동료들에게도 자주 들었습니다. "클라이언트한테 받은 만큼만 일해야죠. 우리 여기까지만 해요."
그러고보니 그때 그 시절엔 '받은 만큼만 일한다'는 것에 대해 꽤나 자주 생각했었네요.(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라졌습니다마는) 여전히 '받은 만큼 일한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고요.
Jonas
“ "그러니까 그게 왜 나 였느냐고."
"퍼포먼스마케팅팀에 젊고 빠릿빠릿한 사람이 가는게 좋을 거 같아서."
이중구가 내 눈을 피하며 답했다.
"와, 내가 진짜 썸이라도 타고서 남자한테 꼬리 친 년 소리를 들으면 억울하지나 않겠네." ”
이 마지막 대사 정말 너무 찰떡입니다. 눈으로 읽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소리내어 읽고 있는 느낌이 들 만큼 입에 착 붙는 느낌이었습니다. 분명 언젠가 현실에서 이런 대사를 들어본 것만 같은 기분이거든요. 확실히 장작가님은 이런 여성 화자의 대사를 맛깔나게 쓰신단 생각이 듭니다.^^
이 대사를 다시 보며 오래 전 한국 영화 중에 박해일, 강혜정 배우님이 주연한 <연애의 목적>의 한 장면이 떠올랐어요. 그 영화에서 가장 폭발하는 장면도 이 대사와 비슷한 순간이었거든요. 엄청 오래 전 영화인데 순간 떠올랐습니다ㅎㅎ
스마일씨
저는 여적여라고 로즈같은 사람들, 진짜 싫어요. 여직원이 잘 나가면 그걸 팀장한테 꼬리쳐서 됐을거라고 생각하는 거 자체가요. 예전 회사다닐 때 보면 유독 같은 여자동기들 잘나가는 걸 꼭 남자한테 꼬리쳐서 잘 나간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스마일씨
“ 별로인 곳에서 일하는 나 역시 별로였고, 너무 달라붙은 관계는 삐걱기릴 때가 더 많았다. 이곳에서 어면 친절은 배려의 반의어였고, 어떤 고립은 구원의 동의어였다....
밀착된 관계는 도리어 걷잡을 수 없는 틈을 발생시키고 그렇기에 적당한 거리의 유지는 원만한 관계의 필수 조건이다. ”
레고와 옥스포드는 호환이 가능하던데 인턴 체험은 호환불가, 업그레이드도 안 되고... 그냥 인생 마모만 시키는 🙍♀️
스마일씨
“ 프리랜서라면 말 그대로 프리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마치 당직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서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언제 갑자기 들어올지 모르는 프로젝트 때문에 스케줄을 항상 비워두어야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였다. ”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최영/이해와 오해가 교차하는 방식 311p, 김의경 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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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씨
졸업 전, 저도 번역을 해볼까해서 번역사무소에서 테스트를 받은 적이 있었거든요. 근데 번역이 진짜 만만치 않은 작업이더라고요. 게다가 장 당 번역료가 생각보다 굉장히 짰고, 초벌 번역은 번역에 이름도 못 올리더라고요. 그래서 빨리 포기를 했었어요.
권남희 번역가가 '혼자여서 좋은 직업'에서 우리나라 번역시장에서 자리잡는다는게 얼마나 치열한 일인지 잘 써놓으셨더라고요. 더불어 터무니없이 싼 번역료 얘기도 언급하셨는데, 예전에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님이 번역료 이슈에 관한 기사를 내셨는데 읽어볼만 합니다.
https://naver.me/FU9bTnmM
출판시장에서 번역이 아닌, 작가님들 원고료나 지급 문제는 이미 장강명 작가님께서 여러 번 말씀하셨고요.
출판물이냐, 영상물이냐, 프리랜서냐, 기업소속이냐,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각각의 오해와 이해가 교차하는군요. 다 남의 떡이 커보이는 거겠죠.
혼자여서 좋은 직업프리랜서 번역가의 삶이 담긴 『혼자여서 좋은 직업』. 믿고 읽는 번역가를 넘어 믿고 읽는 에세이 작가가 된 권남희의 유쾌하면서 따스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유일한 재주를 30년째 붙잡았다’고 말하는 권남희 번역가. 연중무휴로 긴 세월 일하면서 직업이 취미 생활이 되었고, 번역하는 일은 행복하고 글 쓰는 일은 즐겁다고 토로할 만큼 직업을 향한 진심을 드러낸다. 자칭 ‘유명한 집순이’로, ‘엉덩이가 무거워야 하는’ 번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