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맨》 가제본 함께 읽기

D-29
약간 뜬금없이 궁금한 건데요, ‘우리의 기원’을 쫓는 일에 다들 관심이 많으신가요? 저는 사실 저의 기원은 몰라도 제가 속한 집단의 기원에는 큰 관심이 없거든요. 한국 근현대사는 제가 지금 서 있는 위치나 저를 둘러싼 여러 가지 환경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니까 관심이 있지만 중세사, 고대사, 상고사는 제게 썩 재미있지는 않아요. 마찬가지 이유로 부모님의 삶에는 관심이 있지만 조부모의 삶에는 관심이 덜하고, 저희 가문의 시조는 누구인지도 모르며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 양반이 나랑 딱히 관련이 있나, 싶은 생각마저 하고요.
한데 건국 신화나 어떤 부족의 시조 설화, 하다못해 어떤 현상이나 작품의 탄생 과정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인 거 같습니다. 왜일까요. 시초에 본질이 담겨 있다고 믿기 때문일까요. 제가 특이한 걸까요. 인류의 기원에 대한 높은 관심도 그 기원이 인간의 본질에 대해 뭔가 설명해줄 거라고 보는 마음에서 비롯된 걸까요. 그런데 인간의 기원과 인간의 본질은 과연 큰 관련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고인류학은 특히 한국에서는 비인기 분야인 것 같아요. 그 이유는 작가님 말씀과 대충 비슷하지 싶네요. 저도 이 책 편집하기 전까지는 거의 관심이 없었고요. 궁금하신 부분에 대한 답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앞서 링크 드렸던 EBS '위대한 수업'에서 팀 화이트가 한 말을 옮겨봅니다. '인간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에 대해 과학적 호기심을 갖고 드립다 파헤치는 분야가 고인류학인 것 같아요. 말씀하신 '인간의 본질'이 도덕성이나 언어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한 개념이라면 이 책에서 딱히 다루고 있진 않고요^^ [지구라는 행성에서 일어난 진화는 반복할 수 없는 거대한 실험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단 한 번 일어났고 우리는 여전히 그 과정 중에 있죠. 따라서 고인류학은 '범죄 과학'처럼 '역사 과학'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과거에 일어난 일의 모든 증거를 찾아 연구하는 거죠. 우리의 질문은 이겁니다. 지금의 인간은 어떻게 있게 됐을까? 이건 모든 문화권의 신화에서 묻고 답한 질문입니다. 지구상에는 많은 문화와 신화가 있죠. 지난 세기,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인간은 스스로 진화의 정점 혹은 궁극적 목표라고 여겼습니다. 매우 편협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생각이에요. 인간이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답은 단 하나입니다. 우리는 그 진정한 답을 추구하죠.]
와, 감사합니다. 편집자님 척척박사 같으세요! ^^
척척박사는요 ㅜ.ㅜ 머리가 안 돌아가니 손이라도 바빠야지요..
덕분에 흥미로운 사이드 스토리도 듣고, 화이트 박사님 목소리도 듣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로 저는 손마저 똥손입니다...)
199쪽, [고대의 유물 및 유적을 보전하기 위해 발굴자는 그것이 나온 맥락을 파손해야 한다. 화이트는 자신의 대학원 지도교수 중 한 명의 말을 절대 잊지 않았다. “우리는 연구 과정에 우리의 정보를 파괴한다.”] 발굴이 이런 건줄 저도 전혀 몰랐습니다.
205쪽, [이것은 초기 인류에 관한, 딩크네시 이후 가장 중요한 발견이었다. 이 화석은 루시처럼 혁명적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루시에 대해서조차 다시 쓰게 만들었다.] 흥미진진!
'이렇게 극비리에 연구한 아르디를 나중에 짠! 하고 공개해서 대박났다'에서 끝나는 책이 아니라 저는 매력적이었어요. 공개 이후에 벌어지는 일도 흥미가 진진합니다.
208쪽, 아. 팀 화이트 박사의 적이 리처드 리키가 아니라 돈 조핸슨인 모양이군요.
인물관계가 꽤나 복잡합니다. 뒤로 가면 또 달라지거든요 ㅎㅎ (여러 가지로 바쁘실 터인데, 흥미롭게 읽어나가주셔서 감사합니다. ㅜ.ㅜ)
217쪽, [그레이는 결국 조교 일을 그만뒀다. “조핸슨은 복수심이 몹시 강해요. 만약 내가 너무 심하게 불쾌해했다면, 그가 내 학위 논문 통과를 망치려 했을지도 몰라요.”] 고인류학이랑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인데요, 예전에 제가 몸담았던 신문사에 한 부서를 완전히 장악하고 자기 마음에 안 드는 후배들에게 아주 치졸하고 꼼꼼하게 복수하는 데스크가 하나 있었습니다. 제가 아주 그 양반한테 치를 떨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저만큼 분개하는 거 같지 않아 보였거든요. 그런데 퇴사하고 나니까 아무도 그이를 거들떠보지 않더군요. 요즘은 외롭고 가난하게 늙어간다고 합니다. 안 됐다는 마음은 전혀 안 듭니다.
저자가 화이트 박사와 그 적들을 다 깊이 인터뷰한 것 같네요. 이렇게 서로 사이가 험악하고 성질도 안 좋은 사람들에 대해 논픽션을 쓰려면 정말 각오가 대단해야 할 거 같아요. 어느 한 편을 조금이라도 편드는 것처럼 쓰면 다른 쪽에서 엄청나게 항의할 게 분명한데.
맞아요. 그게 참 신기하더라고요. 여기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 살아있는데 이렇게 써도 되나 싶고..ㅎㅎ 이 분야 다른 책들이 연구자 본인들이 쓴 경우가 많아 한쪽 말만 듣는 느낌이라면, <화석맨>은 저널리스트가 써서 그런지 대립되는 의견을 모두 직접 인용으로 읽을 수 있어 생생하더라고요.
제가 기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양측이 대립하는 쟁점이 있을 때 그걸 설명하는 책이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 편을 들면 읽기 버겁더라고요. ‘글은 균형 감각 있게 써야 한다’는 강박이 저한테 있는 것 같은데, 그건 또 그 자체로 늘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화석맨』은 등장인물들의 쪼잔함과 치열함에는 혀를 끌끌 차고 눈을 크게 뜨면서도 저자의 필력에 대해서는 아주 안도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
작가님 어떻게 읽으실지 무척 궁금해하며 제안드리긴 했습니다. 하핫. 저는 스트레이트 기사도 균형, 객관.. 이런 게 가능한가 싶어요. 하물며.. 아무튼 흥미롭게 읽고 계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재미있습니다! 저는 13장부터 확 재미있습니다. 균형, 객관... 저 안 믿는 말이긴 합니다. 제가 제일 안 믿는 말은 '정론'이에요.
221쪽, [발은 화석으로 남는 법이 드물다. 손발은 맛있는 인대와 힘줄로 가득 차 있기에, 사체를 먹는 동물들에게는 ‘나를 먹어주세요’라는 유인물과 같다. “발은 육식동물에게는 전채 요리와 같지요.” 화이트가 설명했다. “발은 다리 끝에 위치한 데다 쉽게 물어뜯을 수 있습니다. 사체 가운데 가장 먼저 사라지는 부위지요.”] 그렇군요. 제가 변태라서 그런지, 이런 TMI는 좋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족발이나 먹을까...
소소한 오타 신고합니다. 아마 편집부에서 이미 잡으셨을 것 같지만... 222쪽, [화석에 손상힌]→[화석에 손상을 가하는] 혹은 [화석을 손상한]
감사합니다! 아직 좀 다듬을 곳들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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