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맨》 가제본 함께 읽기

D-29
다만 여전히 저는 고인류학이나 인류의 기원 자체에 깊이 몰입하지는 못하고 있고, 핵심 소재인 아르디도 등장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뭐, 재미는 있는데 이게 나와 무슨 상관?’이라는 마음도 조금 듭니다. 밤에 TV 틀었는데 재미있는 토크쇼가 나와서 그냥 보는 기분에 빗대면 편집자님 너무 속상하시려나요. 아무튼 뒤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전혀 짐작도 못하겠고, 계속 읽어나가겠습니다.
아닙니다. 속상하긴요. <뉴욕 타임스> 북리뷰에도 작가님과 비슷한 감상을 표출한 부분이 있어 되려 신기할걸요. 대충 옮겨보자면.. "어떤 부분은 대중 과학서라기보다는 엄청난 괴짜 출연진들이 펼치는 리얼리티 TV 쇼 같다." 저는 이런 점이 오히려 좋았어요. 나랑 별 상관없는데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다 실화라니! (*영화판이 워낙 소문이 많고, 엎어지는 경우도 많다지만 이 책을 영화로 만든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저도 처음 읽을 때 '아, 이거 이렇게 벌려놓고 뒤에 어떻게 끝내려나' 넘 궁금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주 마음에 드는 결말이었어요. 살짝 감동적이기까지 했다면 오바일까요?ㅎㅎ
101~102쪽, [1981년, 큰 소동이 일어났다. 워시번이 화이트의 동료 중 한 명이 출간한 논문에 대한 비평 세미나를 개최하자, 화이트가 그 자리에 나타나 공개적으로 워시번과 맞붙어 워시번을 노발대발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팀 화이트는 세미나에 와서 다른 정상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게 했다.” 워시번은 학과에 남긴 메모에서 이렇게 불평했다. “화이트는 몇 번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되풀이했고, 다른 사람 의견은 수용할 뜻이 없어 보였다. 그가 너무 말을 많이 해서 내가 말을 하려면 그의 말을 끊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는 워시번의 학자 생활 40년 만에 처음이었다.] 야... 아무리 주인공이라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저는 어제밤부터 시작해서 이제 겨우 52 페이지를 지나고 있는데요 😅 사실 넘 많은 분량에 좀 막막했는데 꽤 흥미롭고 잘 읽힙니다. 46쪽에 "어떤 곳은 화석을 밟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었죠." 감격스럽게 말했을 화이트 박사의 모습에서 그 설레임이 막 전해지더라구요. 저까지 막 설레었다는요. ㅎㅎ
감사합니다. 흥미롭게 읽고 계시다니 다행이고요! 완독의 부담은 내려놓으시고 읽으시는 데까지만 감상 나누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직은 그믐시스템이 좀 낯설어요 ㅎㅎㅎ
저도 아직 낯설어요. ^^;;; 예전 PC통신의 토론 공간,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페이스북 뉴스피드, 네이버 블로그 같은 걸 레퍼런스 삼아서 간신히 문만 열어놓은 상태예요. 편안히 독서 모임과 책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주제를 중심으로 대화가 돌아가고, 그러면서도 직관적인 디자인이 되도록 잘 연구하겠습니다. 송구하고 감사합니다.
105쪽, [적들은 화이트에 대해 적대감을 품은 수준이 아니라, 진심으로 증오했다. 화이트는 그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이런 성격 조금 부럽기도 합니다. 저는 누가 저 미워하는 사실을 알게 되면 되게 신경 쓰거든요. 그 사람이 저랑 아무 상관도 없고, 별로 존중할 만한 의견을 내는 인물이 아닌 걸 알아도요.
128쪽, [그는 고대 호미니드를 발굴했다고 발표했는데, 알고 보니 개코원숭이 화석이었다.] 앞에 돌고래 뼈 사례도 있고, 고인류학계에서는 이런 일이 왕왕 벌어지나 보네요.
읽으면서 고인류학계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이 분야에 한 성깔 하는 학자들이 많은 건 약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워낙 현장이 험악하고 일이 고되니까 어지간한 성격으로는 버틸 수가 없을 거 같아요. 그런데 고인류학자들이 이렇게 경쟁이 치열하고 갈등이 심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고인류학이 다른 과학 분야에 비해 연구 투자를 많이 받는다거나, 대중이 좋아하는 분야라서 스타 과학자가 나오기 쉽다든가, 화석 발견처럼 딱 떨어지는 승부가 벌어질 수 있다든가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아니면 다른 과학 분야도 학자들 사이의 경쟁과 갈등이 이 정도인가요? 혹은 저자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경쟁과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걸까요?
이건 (혹 보신다면) 윤신영 선생님이 답글 달아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이상희 선생님과 함께 <인류의 기원>을 쓰시기도 했으니.. 중반 넘어가면 이런 문장들이 있긴 한데 작가님 궁금증을 해결해주진 못할 것 같아요ㅎㅎ 쪽수는 따로 안 적을게요~ [화석, 영토, 그리고 돈은 고인류학 분야의 원동력이기에 이것들을 놓고 경쟁이 벌어졌다.] [그는 인류학 분야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적은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고전적 비극을 재현하고 있다고 봤다.] [1950년대에 미국은 매년 겨우 20명 정도의 박사를 인류학과 고인류학 분야에서 배출했다. 1970년대에, 그 수는 연 4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2013년에는 연 600명 이상이 됐다). 학계의 이런 전문가 홍수 사태로 인해 연구비를 타거나 화석을 발굴하기 위해, 학계와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해 더 많은 경쟁을 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발견 사례 증가 속도가 전문가 수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네, 사실 인류학계만이 아니라 과학계도 전반적으로 경쟁이 매우 치열해졌어요. 전문가 수가 최근 크게 증가해서 더더욱 싸움이 살벌해졌고요. 다 그런 건 맞는데, 고인류학계가 그 중에서도 가장 정점을 이룬 건 아무래도 1. 화석이 발굴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자원이라 데이터 원천이 매우 제한적인 점, 2. 자원의 분포가 학자의 분포와 (지리적, 정치적으로) 다른 점, 3. 그렇게 얻은 자원을 극소수가 독점할 수 있는 구조인 점, 4. 연구에 들어가는 기간이 길어 다른 과학(생명과학 등)보다 업데이트 주기가 느린 점 때문일 것 같아요. 3은 특히 최근 다른 과학 분야와 완전히 다른 점인데, 요즘은 NASA에서 그 엄청난 돈을 들여 우주 탐사를 해도 데이터를 공개하거든요. 물론 초반(보통 1년)은 미국(과 공동연구하는)팀이 독점하지만, 이후엔 로데이터까지 다 풉니다. 생명과학도 게놈 해독해서 곧바로 다 공개해 버리는 게 요즘 거의 표준이에요. 코로나19 때 이전부터 그랬어요. 근데 고인류학은 꽁꽁 싸매고 자기들까리 논문 쓰고 그런 전통이 최근까지 있었고 그 정점이 팀 화이트팀입니다. 그래서 욕을... 많이 먹은 거죠. 끼리끼리 오래 해먹었다(?)...하고. 참고로 이 책 후반에 잠깐 등장하는 리 버거(남아프리카공화국)는 반대 의미에서 굉장히 재미있는 인물입니다. 최근 20여 년 사이에 꽤 중요한 화석 두 종을 발굴했는데, 특히 두 번째 종(호모 날레디)은 발굴 인원 모집부터 과정까지 SNS로 중계를 하며 진행했고, 그렇게 발굴한 화석은 그냥 다 스캔해서 클라우드에 올려 공개해버렸습니다. 논문도 금세 썼는데, 전통적으로 유명한 학술지에서 안 받아주니까 그냥 오픈액세스 저널(누구나 볼 수 있는 개방형 저널)에 올려버렸어요. 이 책에서는 화이트의 시선에서 좀 날라리처럼 그려졌는데, 실은 당시에 고인류학계의 오랜 구습을 날려버린 혁신적 행보로 주목 많이 받았아요. 가장 흥미로운 건, 발굴팀 모집을 했는데(좁은 동굴 발굴이 필요), 그 결과 대학원생 등 젊은 여성으로 구성된 발굴팀이 최종 선정됐고, 그들이 위험한 동굴 파고들어 발굴을 했습니다. 화이트 팀의, 남성 위주의 발굴팀과 매우 대조적이지요. 이 기사를 보시면 조금 대조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adventure/article/150917-naledi-cave-hominin-fossils-human-evolution-berger-peixotto-interview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말씀 듣고 나니 책 내용도 한층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다른 점들은 연구 여건상 다 그렇겠거니 하고 쉽게 납득이 되고, ‘데이터 원천 자료를 극소수가 독점할 수 있다’는 부분은 조금 상상을 곁들여 이해하는 중입니다. 아마도 화석 원본은 복제가 불가능하고, 디지털 데이터를 만드는 과정에서조차 손상이 발생할 수 있어서이지 않나, 거기에 폐쇄적인 학계 분위기가 더해진 걸까, 뭐 그런 상상입니다. 번역가님 말씀을 듣고 나니 리 버거가 책에서와는 완전히 다르게 보이네요.
그쵸. 다른 데이터들... 게놈 데이터나 천문 관측 데이터는 그 자체로 데이터니 일단 생산되고 나면 공유에 다른 절차가 필요하지 않지만, 화석은 발굴 뒤에도 클리닝과 복원, 계측, 스캐닝, 보관 등 연구에 필요한 추가 작업이 필요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보관 주체, 클리닝 주체 등이 다 필요하고, 이것들이 다 많은 자원이 필요한 일이니 참여한 사람들에게 뭔가 차등적인 권리를 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고인류학은 잘 모르지만 ‘최초의 발견’이 중요한 분야라 경쟁이 치열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조생물학이라는 분야에서는 특정 단백질의 결정구조를 최초로 밝히게 되면 큰 주목을 받게 되지만 같은 단백질을 연구하던 경쟁그룹은 닭쫓던 개가 됩니다. 아예 논문으로도 못 쓰고 프로젝트를 접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설을 입증하는 화석을 누가 가장 먼저 발견하느냐가 중요한 고인류학과도 비슷한 이유로 경쟁이 치열하지 않을까요?
구조생물학 분야에서 경쟁에서 승리하면 학계내에서 유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내는 정도라면 고인류학에서 최초의 발견을 하게 되면 학계외의 대중에게도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더 경쟁이 치열하지 않을까요?
그렇군요. 생각해 보니 창작이나 발명과 달리 발견은 그 속성 자체가 배타적이고, 그래서 경쟁을 더 치열하게 부르는 것 같습니다. 누가 멋진 작품이나 발명품을 만들어내도 나는 나대로 다른 작품 혹은 발명품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남이 발견한 무언가를 내가 다시 발견할 수는 없네요. 특히 고인류학계는 발견하고자 하는 대상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예전에 재밌게 읽었던 진주현, <뼈가 들려준 이야기> 들춰보는데 이런 구절이 있네요. [아프리카의 인류학 발굴판은 웬만한 정치판 못지않다. 누가 어느 지역에 발굴을 들어가느냐, 누가 누구와 손잡고 연구를 하느냐 등의 이슈들이 때로는 진흙탕 싸움으로까지 번진다. 발굴지에서 무언가를 찾으면 단박에 스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살벌한 땅인 거 같아요. 그런데 곁가지 얘기이지만 저는 학자들의 정치 싸움은 약간 한 수 아래로 보게 되더라고요. 총장 선거가 치열하다고, 진흙탕이라고 알려진 대학에서 승리한 교수들이 자기 정치력을 과대평가하고 진짜 정치판 뛰어들었다가 망신당하는 모습을 몇 번 봐서 그런가...
138쪽, [여러 해에 걸친 탐사 경험을 통해 그는 현장 발굴 연구에서 단 하나의 확고한 진리를 깨달았다. 예측하지 못한 혼란은 언제나 모든 노력을 틀어지게 할 위험 요인이라는 것이었다. 총격, 관료주의적 장벽, ‘동료’로부터의 비난, 베르하네를 향한 정치적 공격, 자동차 타이어 펑크, 엔진 라디에이터 고장 등이 그런 것들이었다. 여기에 이제 망할 놈의 소총이 추가됐다. “아프리카는 언제나 상상 이상이군.” 화이트는 이렇게 투덜댔다.] 으으... 전 저런 근로 환경에서 일 못합니다. 안전제일주의자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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