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 고대 미술
- 고대 그리스 미술: 일반적으로 예술이라 하면 떠올리는 '아름다움'을 대상으로 하는 본격적인 작품이 시작되었다. 원근법이나 수학적 비례를 사용해서 조화와 안정을 작품에 반영했다. 원시시대처럼 신화의 신들을 소재로 삼기는 하지만, 그저 신화적 존재들을 조화와 균형을 통해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수단으로만 사용했을 뿐이다. 대표적으로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에렉테움 신전이 있다. 그리스 미술의 발전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대제국 건설로 가능했다. 그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 문화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문화를 헬레니즘이라고 하는데 '그리스 문화와 같은 문화'라고 번역된다. 다만, 서영과 동양이 교류하기 시작한 시기라 혼합과 융합을 통해 독창적인 예술 양식을 가진다. 대표적으로는 라오콘 조각상이다. 그런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요절하면서 신생 제국 로마에 흡수된다. 이는 그리스 미술을 국제적 성격을 띤 보편의 미술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로마 건축 발전에도 도움을 준다. 대표적으로는 콜로세움, 판테온 신전이 있다.
벽돌책 <지대넓얕> 혼자 읽기 도전 - Part 2
D-29
아리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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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 중세 미술
전쟁과 약탈이 반복되던 중세에는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추구하던 그리스 로마 미술은 자취를 감춘다. 내적으로는 그리스도교의 탄생과 확장으로 인해 예술이 교리 전달의 보조 수단으로서만 명맥을 유지했다.
교회는 신, 영원, 속죄, 믿음 같은 형이상학적인 개념들을 시각적 이미지로 바꾸는 것의 역할이 미술이라고 보았다. 예술적 재능은 신에게 받았으니 당연히 돌려주어야 한다는 분위기여서 당시에는 예술 작품들이 익명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물론 중세 후기에 이르러 건축 양식에 있어서 예술이 힘을 얻긴 하지만, 확실히 이전과는 달랐다. 대표적으로는 로마네스크 건축(이탈리아의 피사 대성당, 피사의 사탑)과 고딕 양식(파리의 샤르트르 대성당, 노트르담 대성당, 한국의 명동성당)
즉, 중세에는 예술의 독자적인 가치는 인정되지 않았고, 신의 영광과 권위를 드러내거나 교회의 교리를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사실상 예술의 본질로서 아름다움의 형식에서는 퇴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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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르네상스 미술
중세의 신 중심 세계관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된 르네승스. 교회와 유일신에 대항해서 인간적 가치가 필요했던 부르주아들은 고대 사회로 관심을 돌렸고, 고대 문화를 재탐색하는 분위기가 학계와 예술계를 장악한다. 르네상스는 '부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는데, 이는 고대 문화의 부활과 재생을 의미하며 동시에 인간적 가치의 부활과 재생을 의미한다.
르네상스는 초기와 전성기로 나눈다. 초기에는 정확성에 치중해서 개별 대상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두드러지지만 그림 전체의 조화로운 구성은 부족했다. 대표적으로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다.
전성기에는 천재 화가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설명이 필요 없지만 ^^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 건축가, 기술자이기도 했다. 그는 시체를 해부하며 인간의 골격과 근육의 움직임에 대해 정확히 이해했고, 이를 바탕으로 인물을 현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 그가 사용한 공기원근법 작품은 <모나리자>다. 원근법에는 선원근법과 공기원근법이 있는데 선원근법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물체의 소실점을 기준으로 앞에는 크게, 뒤에는 작게 그리는 방식이라면, 레오나르도가 그린 공기원근법은 가까이 있는 것은 선명히, 멀리 있는 것은 희미하게 그리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스마트폰 카메라로 '인물' 설정하고 찍을 때 딱 공기원근법 형태로 찍히는 것 같다.
미켈란젤로도 있다. 그는 레오나르도와 경쟁관계다. 조각에 집중했고, <피에타(자비를 베푸소서)> 조각상이 유명하다.
르네상스 미술은 교회에 종속되었던 수단으로서의 예술에서 벗어나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처럼 예술 자체의 가치를 회복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성적으로 완벽함과 조화를 추구하고 궁극적인 보편미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절대주의 측면이다.
그러나 17세기가 되면서 이성적이고 규칙적인 측면에 대한 반발로 이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하는 상대주의 화풍이 등장하는데, 이를 바로크라고 한다.
바로크, 로코코 시대: 감정에 호소하는 예술 사조.
바로크는 무겁고 어두운 반면 로코코는 밝고 가볍다.
바로크의 대표 화가는 루벤스로 강렬한 명암과 화려하고 역동적인 형태를 띤다.
로코코는 부드럽고 섬세하며 에로틱한 분위기의 사조로 부르주아나 귀족이 향유할 수 있는 그림이다. 대표적인 화가는 부셰. <비너스의 화장>이나 <아침식사>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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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 초기 근대 미술
예술의 흐름을 보면 이성을 중시하다가 이에 반발하고 다시 감성을 중시하고 이를 또 반복하는 흐름 같다. 초기 근대 미술 역시 앞서 로코코의 퇴폐미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되었다. 다시 이성적이고 강인한, 남성적인 모습이 강조된 것이다. 이를 신고전주의라 한다. 루이16세는 프랑스의 로코코 사조가 향락적인 분위기에 빠져있는 것을 바꾸기 위해 엄숙하고 계몽적이며 애국적인 분위기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신고전주의를 국가 주도의 의도적인 흐름으로 만든다. 국가 차원의 화가를 양성한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다비드, 앵그르가 있다.
이에 대한 반발로 탄생한 것은 낭만주의. 개인의 감성과 주관의 탁월성을 소홀히 했다고 믿었다. 작가의 주관적 해석과 내면의 감성을 중시했기에 작가의 천재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대표저으로는 제리코, 들라크루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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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 후기 근대 미술
낭만주의가 보여주는 극적이고 과장된 미척 양식에 대한 저항으로 사실주의가 탄생한다. '사실'은 눈에 보이는 사물을 똑같이 그려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릴 대상을 선정하는 데서의 '사실'을 추구하는 사조다. 인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가난, 노동의 고됨 등을 미화하지 않고 가감없이 묘사한다. 대표적으로는 쿠르베로가 있다. 민중을 회화의 주인공으로 가져오는 진보적 성향이 나타난다. 물론 중간에 정치적 이념이 개입되며 사실주의는 공산주의의 정치 이념을 대변하기도 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그것이다. 그러나 사실주의 자체는 예술에서 배제되었던 일상을 예술의 소재로 데뷔시키고 예술의 의미를 새롭게 고민하게 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의를 갖는다.
인상주의는 작가의 주관과 감성이 강조된다. 일상의 삶과 자연을 그리지만, 사실주의와 달리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는 방식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순수하게 보이는 그대로. 대표적으로는 모데, 마네, 르누아르, 드가, 로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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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 현대 미술
입체주의: 큐비즘이라고 부른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세잔이 사물의 기하학적 분석과 다양한 시점의 적용을 도입한 후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이 큐비즘이다. 대표적으로 피카소가 있다.
추상미술: 그림의 대상을 그림에서 아예 제거하는 추상미술이 탄생한다. 대표적으로 칸딘스키. 그는 색의 덩어리와 단순한 선과 면으로 시각적 효과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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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 오늘날의 미술
예술의 주체를 흔드는 시기다. 화가의 행위 자체를 예술로 규정하기도 하는데 이는 추상표현주의로 잭슨 폴록이 유명하다. 액션페인팅이라고도 한다. 이후 퍼포먼스 형태의 예술이 진행되는 것도 맥락을 같이 한다. 또한 주체를 아예 없애기도 한다. 자동기술법 또는 자동묘법이라고 하는데 그냥 무의식,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막스 에른스트. 주체를 집단화하는 방법도 있다. 작품을 직접 만져볼 수 있게 하거나 감상자가 작품을 경험하고 작품의 일부가 되게 하는 방식이다.
현대 예술은 미의 추구보다는 새로움의 추구에 가깝다. 현대 미술의 낯선 모습과 마주한다면 당황하지 말고 두 가지를 생각해보라고 조언한다.
"아!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도하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예술의 대상, 주체, 의미 중에 무엇을 흔들고 있는 것일까?"
현대미술을 접할 때 가져야 할 생각이다. ^^;;;
미술이라고 하면 아름다움, 조화, 약간의 부조화라도 화폭이나 공간에 한정된 작품을 떠올리곤 했는데, 특히 현대미술이 특징을 읽다보니 완전히 모든 틀이 깨어지는 기분이 들면서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느껴진다. ^^
아리사김
종교 - 종교라는 진리(인간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
진리라는 용어와 가장 밀접한 분야다.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측면에서 종교가 가지는 문제점도 있으나, 여전히 종교는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 시해줌으로써 자기 삶의 진리 앞으로 다가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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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종교의 구분(절대적 유일신교와 상대적 다신교)
세계 3대 종교는 <구약>에 해당하는 유대교, 그리스도교(가톨릭, 개신교), 이슬람교다. 세계는 분명 서구 그리스도교 문화권의 역사였던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규모상 세계 3대 종교인 것이다.
이들은 성서에 대한 입장 차이로 구분된다. 유대교는 <구약>을 절대시하지만 <신약>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는 <구약>을 믿고 동시에 <신약>을 절대시한다. 이슬람교는 <구약>을 절대적으로 믿지만, <신약>을 절대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신이 보낸 인물이라 믿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남긴 <코란>을절대시한다.
우리나라에는 그리스도교가 세분화 된 로마카톨릭(천주교), 프로테스탄트(개신교)가 주로 유입되었고, 동방정교회는 교세가 크지 않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와 천주교를구분하는 오해가 생겼다. 범주를 정확히 하자면 기독교는 그리스도교를 의미하는 것으로 천주교, 개신교, 동방정교회를 모두 포함하는 상위개념이다. 어찌됐든 이 세 교파 모두 절대적 유일신교(구약 신뢰)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 외에 상대적 다신교는 <베다>를 따르고, 힌두교, 불교 티베트 불교가 있다.
아리사김
종교 - 절대적 유일신교(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 유대교: 유대인의 민족종교다. 최초의 유일신 사상으로 평가받는다. 교리의 핵심은 유일신 야훼를 믿고, 구세주로서의 메시아 사상을 따른다. 유대교에서는 아직 메시아가 오지 않았다고 믿는다.(반면 메시아가 이미 왔다는 입장이 그리스도교다)
- 그리스도교: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2천 년 전에 세상에 왔다고 믿는다. 믿음의 근간은 <신약>이다. 예수의 희생과 부활은 그리스도교인의 종교적 신념의 구심점이 되었다.
- 이슬람교: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신자로 추정된다. 남성은 무슬림, 여성은 무슬리마라고 부른다. 그들은 <구약>을 믿고, 예언자 무함마드를 하느님의 사도로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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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상대적 다신교(힌두교, 불교, 티베트 불교)
상대적 다신교는 인도를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에 영향을 끼쳤다. <베다>를 기원으로 한다.
- 힌두교: 단순히 인도(힌두)의 종교라는 뜻이다. 베다의 철학과 인도의 민간신앙이 섞여 있는 형태다. 수많은 신이 존재하고, 대표적으로 창조신 브라흐마, 유지신 비슈누, 파괴신 시바를 중심으로 한다고 믿는다.
- 불교: 고타마 싯다르타에 의해 시작되었고, <베다>의 영향권 안에서 업, 윤회, 해탈의 개념을 이어받았다. 다만, 베다 철학의 현실적이고 실천적 측면을 강조한다. 인간의 삶에서 고통이 발생하면 그 원인을 논하기보다는 가장 먼저 고통을 없애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는 형태다. 불교의 문제의식은 '고통'에서 시작한다. 부처의 깨달음이 바로 모든 것은 고통스럽고, 자아의 실체는 없고, 세상의 실체도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 티베트불교: 불교의 가르침이 여러 분파로 나뉘면서 대승불교, 소승불교, 금강승으로 구분되었다. 그중 밀교적 형태를 가진 금강승은 티베트로 전파되어 티베트불교가 된다.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의 정치적 왕이자 종교적 최고 지도자다. 달라이는 '큰 바다'를 뜻하고, 라마는 '스승'을 뜻하는 몽골어로 정치와 종교 지도자의 세습명이다.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를 찾으며 다음 지도자를 찾는 형태다.
아리사김
신비 - 마지막 여행, 신비(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지금까지 작가는 '대화'를 위한 지식들을 설명했다면, 이제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신비'라는 분야로 기록한다. 그 기준은 감각적 경험이 가능한지의 여부다.
말할 수 있는 것은 경험 가능한 것으로 '사과, 의자, 사건' 등이고 이는 철학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것은 경험할 수 없는 것으로 '종교, 윤리, 예술'인데 이는 철학의 대상이 아니다. 그동안 철학자들이 말할 수 없는 것을허황되게 말하기 시작하며 번잡한 철학적 문제를 발생시켰다고 보고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 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예술적 아름다움이나 신앙의 경건함, 삶의 의미나 죽음의 신비는 타인과 토론하거나 검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장에서는혼자서 깨닫고 이해해야 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체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리사김
신비 - 죽음의 순간(임사체험에 대한 연구와 철학적 입장)
Near Death Experience. 임사체험은 의학적 기준으로 죽음에 이르렀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 이후 특수한 체험을 기억하는 현상이다. 물론 기술의 발전에 의해 이런 일이 더 많이 생기고 있다. 이런 연구의 선구자는 레이먼 무디와 제프리 롱이다. 임사체험자들은 대체로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연결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체험이후 주변 환경과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증가되고 지식에 대한 욕구도 늘어나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도 한다.
물론 임사체험 연구에 대한 반론도 있다. 대표적으로는 뇌이상설. 임사체험이라기보다는 뇌에 비일상적인 영향을 주어 환각으로서의 경험일 뿐이라는 의견이다.
사실 임사체험에 대한 논쟁은 정신이나 영혼을 인정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물심이원론(물질과 정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함), 물심일원론(물질만 존재하고, 정신은 허상임), 유물론(독립된 정신은 부정하고, 물질의 존재만 인정)으로 나뉜다.
나로서는 .. 엄마가 정말 임사체험을 해보셨고, 영혼을 인정하는 쪽이라 임사체험으로 인한 사람들의 반응은 공감할 수 있다. 당연히 반대 입장도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
아리사김
신비 - 죽음 이후(죽음 이후의 네 가지 가능성)
- 가능성 1. 무 無 : 죽음의 시 간이 안전히 끝난다는 관점이다. 유물론의 관점으로 영원한 사후 세계나 반복되는 윤회와 같은 종교적 견해를 부정한다.
- 가능성 2. 영생 : 죽음 이후에도 삶의 시간은 지속된다는 관점이다. 영혼은 소멸하지 않고 특정 체험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절대적 유일신교가 가지는 사후관이다.
- 가능성 3. 윤회 : 죽음 이후에 시간이 되돌아온다는 견해다.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고, 가축으로 태어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시간의 관점에서는 돌고 돈다는 의미다. 전생의 과보에 따라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 가능성 4. 영원회기 : 니체의 개념이다. 윤회와 비슷하게 죽음 이후 삶이 다시 반복된다고 보지만, 죽음 이후 새로운 삶이 아닌 내가 살아온 삶을 정확히 다시 반복한다는 의미다. 이건 정말 때로는끔찍한 사후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니체가 이런 사후관을 제시한 이유는 결국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돌아보게 하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똑같이 반복되는 삶이라면 조금 더 잘,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게 되니까 말이다.
아리사김
신비 - 삶(통시적 측면에서의 인생과 공시적 측면에서의 의식)
시간을 고려한 역사적 측면에서 개념을 파악하는 방법이 통시성, 시간성을 배제하고 특정 시점의 현 상황을 기준으로 개념을 파악하는 방법을 공시성이라고 한다. 삶은 시간 속에서는 '인생'으로 드러나고, 시간을 벗어나 현재의 공간에서는 '의식'으로 인지된다.
- 삶의 의미_인생: 누구를 만나고, 왜 이런 상황에 놓였는지 등 삶을 살아가는 중에는 의미가 확정되지 않는다. 누구나 삶의 마지막에 도래하는 순간 비로소 왜 자신의 삶이 이렇게 펼쳐진 것인지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죽음은 필수가 된다. 앞서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 삶을 다르게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 이해된다.
** 그러나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한다. 죽음에 이르러서야만이 내 삶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때로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매일 새로운 하루를 사는 마음으로, 매일 죽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간다면 삶의 의미가 더욱 충만해지지 않을까? 임사체험을 꼭 해야만이 삶의 태도가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 어느 책의 한 구절이 삶의 태도를 바꿔줄 수 있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새롭게 바뀌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저 중요한 것은 매일 바람직하고 현명한 방향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행운의 여신은 늘 나의 편에 있을 거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삶의 의미_의식: 지금 내가 살아 있는 상태가 공간 안에서 어떻게 발견되는가를 이해하는 걸 의미한다. 보통 이 의미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 인간의 정신을 컴퓨터에 비유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반론은 있지만..)
*1kg짜리 노트북은 우리 신체다. 키보드, 마우스, 소형 카메라 등의 입력장치는 눈, 코, 입, 귀, 피부다. 노트북 속의 CPU와 메모리, 저장장치는 뇌다. 즉, 인간의 뇌가 감각기관과 복잡한 신경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다.
*소프트웨어는 정신에 해당한다. 마치 노트북에 전원이 들어온 상태다. 물론 단순히 전원이 켜졌다고 컴퓨터가 제대로 기능하는 건 아니다.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윈도, 맥OS, 리눅스 같은 운영체제가 필요하다. OS가 모니터에 의미 있는 무언가를 드러나게 해주는 것처럼 의식이 인간이 내면 세계를 가질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을 토대로 다양한 이미지와 감각, 느낌, 관념, 언어들이 뒤섞여 드러나게 된다.
아리사김
신비 - 의식(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진짜인가)
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관성을 알아야 한다. 이는 세계의 구심점으로서 세계를 인지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인데, 의식은 주관성을 발현시키는 능력이자 주관성에 의해 구성된 세계가 열리는 장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해석한다. 눈으로 들어와 망막을 자극하고, 이를 전기 신호로 바꿔서 뇌에 전달된 것을 본다고 말한다. 즉, 뇌가 해석한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칸트는 세계를 둘로 구분한다. 내가 구성해낸 주관적 세계가 현상 세계고, 내가 절대로 다가갈 수 없는 실제 세계가 존재한다고 본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말이 떠오른다. 인간은 이렇게 작은 뇌 안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함부로 판단하 거나 비판하거나 장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실을 깨달으면 그야말로 겸손한 자세를 갖고 살아갈 수 있을텐데...
아리사김
신비 - 의식 탐구의 한계(발견되지 않은 주관의 세계)
살아 있음 그 자체만으로도 신비한 일이다. 살아 있다는 건 개인이 온전히 하나의 내적 세계, 하나의 우주를 소유하고 그 안에 거주함을 의미한다. 타인과 바꿀 수 없고 서로의 의식 세계를 체험해볼 수도 없다. 의식의 이러한 완벽한 주관성은 자연과학이 의식을 전혀 다루지 못하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한다고 해도 신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의식세계까지 관장하려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삶에서 진정으로 신비하고 심오한 깨달음을 주는 진실은 내가 세계의 구심점으로서 세계를 구성해내는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실체라고 믿었던 눈앞의 세계가 사실은 나의 주관에 의해 구성된 것이며, 그것은 단지 내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진실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내면으로 향하는 길을 찾아가길 바란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아리사김
제 2권을 읽어나가면서 사실 좀 게을러지기도 했었다. 혼자 읽기는 확실히 더 강한 인내와 자신과의 싸움이 필요함을 느낀다. 그래도 지대넓얕 벽돌책의 3분의 2까지 완독한 나를 칭찬하며.. 또 29일간의 목표 중 18일만에 완독한 것을 자축하며 마지막 파트로 넘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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