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기 작가와 <계간 미스터리> 79호 함께 읽기

D-29
안목이 높으시군요
제 작품 속 악마 이야기에 여러 고전을 떠올리시는 듯해서 첨언합니다. 제 소양은 그런 깊고 묵직한 고전보다는 조금 더 얕은 지점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악마의 모델은 테리 프레쳇과 닐 게이먼이 쓴 <멋진 징조들>과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그 원형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악마가 좀 방정맞아 보이는 건 <멋진 징조들>의, 특히 그 드라마판의 영향이 꽤 있습니다. 한편 악마가 사람을 교묘하게 타락시키는 스토리는 체스터턴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와우 멋있으세요!
어, 일단 질문이 딱히 없으신 듯해서 제가 직접(?) <치지미포, 꿩을 잡지 못하고>에 관한 썰 약간 풀겠습니다. 이 작품은 원래 '악마 연작'이라는 타이틀을 단 여러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지하철에서 겪은 모종의 사건으로 '악마'라고 자신을 칭하는 자와 만난 '나'는 어느 이름모를 바에 들어가 술을 홀짝이며(그렇습니다, 그렇게 아드벡을 강매당한(?) 겁니다...) 악마의 자기자랑, 그러니까 어떻게 인간들을 교묘히 타락시켰는지 그 무용담(?)을 듣는다는 걸로 구성된 여러 편의 이야기를 구상했었어요. <치지미포, 꿩을 잡지 못하고>는 그 연작에서 가장 먼저 쓴 작품이었습니다. 참고로 이 연작은 두세 편의 단편과 그 부스러기를 남기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악마'와 '나' 사이의 관계성을 어떻게 설정할까를 고민하다가 그만 거기서 막혀 버렸던 거죠. 이 작품의 제목이 된 '치지미포 계가비수(雉之未捕 鷄可備數)'라는 한자어는 현직 국어 교사인 친구가 알려줬습니다. 친구에게 '꿩 대신 닭'을 가리키는 사자성어 없냐고 물었을 때 저걸 가르쳐 줬거든요. 낯선 어감이 무척 맘에 들어서, 자칫 '꿩 대신 닭' 운운하는 제목이 될 뻔한 이 작품 제목이 현재의 것처럼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그 친구를 감사인사 명단에 넣었어야 했는데...)
@무경 그런 사연이... ㅎㅎ 한자성어를 잘 몰라서 처음엔 제목이 어렵게 느껴졌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 내용을 잘 담은 제목이네요!
아시모프가 쓴 소악마 아자젤과의 에피소드 단편집이 있는데 악마와의 대화로 이어지는 단편 모음집도 괜찮을 듯 합니다
악마와 나의 관계성, 악마가 나를 타락시키기 위해 일종의 정면 승부를 걸었다고 하면 어떨까요?
네, 사실은 그걸 고려했었습니다. 그래서 악마가 자신이 남을 타락시킨 사연(...)을 퀴즈처럼 내고, 내가 그걸 맞추는 내기를 하는 거라는 설정을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려니 각 단편들의 어떤 포인트를 퀴즈로 낼 수 있을지, 거기서 막히더군요.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연작은 유야무야되었습니다. ㅜㅜ
@무경 오늘 <치지미포...>를 다 읽었습니다. 서두와 결말을 보아하니 처음에는 악마와 나의 대결을 염두에 두셨다가 다르게 수정하신 모양이군요. 즐겁게 읽었습니다. :-) 6.25와 위스키와 악마의 조합이라니. 아이디어가 참 좋았단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히라노 게이치로의 <한 남자>란 소설을 좋게 읽었는데 그 소설도 처음에 위스키바에서 두 남자가 나누는 대화로 시작합니다. 영화에서는 뒷부분에, 소설에서는 첫부분에 술집이 나오죠. 저는 등장인물들을 이렇게 치환해볼 수 있단 생각도 들었어요. 마상병 - 유혹, 박상사 - 양심, 윤소위 - 세속. 단지 6.25에 얽힌 악마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기가 참 어렵다는 것을 들려주는 한 편의 우화같이 읽히기도 했습니다. 애쓰셨습니다. ㅎ 제목이 처음엔 어렵게 느껴졌는데 뜻을 알고 나니 정감이 가네요. ^^
즐겁게 읽어주셔서 무엇보다 다행입니다^^ 등장인물에 대한 해석에 공감했습니다. 노골적인 우화는 아니지만, 각 인물이 어느 정도는 그런 속성을 대표하고 있지요. 사실 사건의 배경이 한국전쟁 당시의 지리산 어딘가로 제시되었지만, 배경을 다른 곳으로 옮기더라도 비슷한 이야기는 벌어질 법합니다. 이야기를 쓰면서 인간과 세상사의 특수성과 보편성 사이를 계속 저울질해 나가며 고민하는 게 제게 주어진 과제이자 업보 같습니다. 평가 감사드립니다.
@무경 평가라니요... 감, 감상이었습니다. ^0^
우여곡절 끝에 오늘 책이 도착했습니다! 늦었지만 합류할게요~
반갑습니다 😁
치지미포... 꿩대신 닭? (처음 들어보는 고사성어네요.. 하나 배우고 갑니다. )이라 내용중에 언급되지만 저는 다 읽고 난 후 닭대신 꿩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결국 닭이라도 잡으려 했는데 꿩들을 잡아간 격이니까요. 윤소위는 어느정도 유혹에 걸려들거라 생각이 들었고 결국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다지만, 박상사까지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결말은 다소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성과 양심이 앞섰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윤소위에 대한 불신이 확신(자신을 해할거라는?)으로 바뀌게 되었으니까요. 결국 '악은 통제된 욕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욕망은 통제되지 않으면 겉잡을 수 없이 커지니까요. 그렇게 되면 더더욱 통제할 수 없으니까요.. 별개로 치치미포를 읽고나니 영화 데블스 애드버킷의 그 알 파치노가 떠오르면서 뭐랄까 어떻게 이 먹잇감을 요리할까?하면서 그 능숙한 표정과 말주변으로 악마의 손을 건네는...그 연기와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감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하게 보이는 자도 어떤 계기로 타락할 수 있다는 게 무척 두려운 일이지요. 만약 전쟁이 아니었다면 박 상사는 계속 자신의 양심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작가로서 문득 그런 의문을 가져 보았습니다...
영상화한다면 알파치노가 ㅎㅎㅎ
화제로 지정된 대화
즐거운 추석 되시고 있을까요? 긴긴연휴를 계간과 함께 보내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전 붉은박물관을 챙겨왔습니다만 ㅎ 이제 치지미포 다음으로 김세화 작가님의 '알리바바와 사라진 인형'에 대해 이야기나누고자 합니다. 김세화 작가님은 그믐에 참여하지 않고계셔서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토요일쯤 여실지 작가님 작품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
풍성한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명절 무사히 넘기시길 바랍니다! 김세화 작가님의 <알리바바와 사라진 인형>은 과거에 읽은 아라비안 나이트 속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작품 안의 복선을 추적하고 짐작하는 식의 읽기가 아니라 그냥 이야기가 흘러가는 그대로 키득거리면서 따라 읽으니 그것만으로도 무척 상쾌하더라고요^^ 안에 오밀조밀 깔아둔 것들도 흥미롭게 주시했는데, 클라이막스의 반전....이라면 반전일까요? 격렬한 액션에 거기 집중하던 생각이 휙 증발해 버렸습니다. 무척 통쾌한 액션이었습니다. 마치 게임의 일기당천의 장수가 전장에서 날뛰는 걸 보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에 '알리바바'가 언급되는 부분에서 한번 더 뿜어버렸고요. 오랜만에 유쾌하게 읽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덧. 작중 도치가 말끝마다 '~지'로 마무리하는 게 특이했습니다. 심지어 화자가 그거 듣다가 거지, 거지, 거지 녀석! 이라면서 진저리치기도 했죠. 인상적인 포인트였습니다. 장편이었으면 억지스러울 수도 있었겠는데, 단편이라서 딱 좋은 포인트가 된 거 같아요^^
기존 김세화 작가님의 작품은 사회파 미스터리였기에 좀 더 새롭게 다가왔던것 같습니다. 무거운, 가벼운 분위기를 자유자재로 쓸수있는 능력이 부럽더군요. 그렇게보니 @무경 작기님의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도 궁금하네요. 조만간 볼수있을까요? ㅎ
기본적으로 가벼운 사람이기에(?) 언젠가는 보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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