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D-29
어린 아이와 부모의 관계라는 일차적 관계의 예시를 계속해서 이야기해보자. 아이의 자유는 부모로부터 떨어져 하나의 인간으로 자리잡는 개체화의 과정에 따라 발달한다. 개체화의 과정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자아의 증대이고 다른 하나는 고립의 증대이다. 자아는 육체적, 정서적, 그리고 정신적 요소의 통합이다. 이는 개체화의 진전에 큰 역할을 한다. 자아의 성장에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부분 사회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고립의 증대는 필연적이다. 아이는 독립하는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아이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개별적인 인간으로 인식하며 자유의 편린을 맛본다. 그렇지만 독립의 과정은 일차적 관계에서 아이를 끊어냄으로써 일차적 관계가 공급하던 “안전감과, 외부세계와의 조화”를 망가뜨린다. 대신 자유는 아이에게 무력감과 불안감을 제공한다.
개체화의 두 가지 측면에는 각각의 위험이 존재한다. 하나는 자아와 개체화의 불일치이다. 개체화의 과정은 필연적이지만 자아의 성장은 다양한 이유로 방해받는다. 한 인간이 외부 세계와 분리되는 과정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정신적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불안감과 고독을 느낀다. 다른 하나는 고립의 증대에서 일어나는 퇴행이다. 인간이 일차적 관계가 제공하는 안정감을 누리고 싶을 때 스스로의 개체화를 포기하고 다시 외부세계에 몰두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육체적으로 다시 모태 안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개체화 과정을 돌이킬 수 없다. 그리고 다시 외부세계에 복종한 인간은 본래의 편안함을 되찾기 보다는 불안감과 적의와 반항감을 갖게 된다.
개체화의 두 위험이라고 써놓았지만 하나로 묶어 설명할 수 있다. 한 인간이 개체화의 과정에서 충분한 자아의 성장과 자유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다. 이 상태에 놓인 인간은 다시 일차적 관계가 주던 안락함을 찾으려 시도한다. 회귀하려는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미루고 이전의 세계에 복종하지만 결국 이전의 세계에 반감을 갖는다
이 내용이 전부 개인의 정서 문제로 귀결되는 듯한 인상을 줘 추가로 적는다. 앞서 써놓은 내용처럼 자아의 성장은 사회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개체화된 인간의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위해서는 오직 하나의 가능하고 생산적인 해결방법이 있다. 그것은 일차적 관계에 의하지 않고,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으로서 그를 다시 외부 세상과 연결해 주는 모든 사람들과의 적극적인 결속과 자발적인 활동, 곧 사랑과 일이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일련의 사회현상을 심층 분석 p.36, 에리히 프롬 지음, 원창화 옮김
여기 적힌 일이라는 요소는 1장에서 인간의 가장 개인적이고 기초적인 욕망조차도 사회가 제공하는 방식에 따라 해결된다는 내용과 연결되며 3장의 기초 자본주의에 대한 내용과도 이어진다.
한편으로 프롬은 이 책의 제목에 관한 설명을 2장에서 보충한다. 프롬은 '~으로의부터의 자유'와 ''~에 대한 자유'를 구분한다. 두 문구는 비슷하게 읽힌다. '~에 대한 자유'를 '~을 위한 자유'라고 바꾼다면 책이 말하는 의미가 좀 더 명확해진다.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는 언제나 '~으로부터의 자유'였다. 인간은 자유를 바랐는데 자유를 원하는 이유는 순전히 자신을 억압하는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함이었다. 자유 이후에 어떤 상태에 인간이 놓이게 될 것인지, 자유가 어떠한 가치를 대변하게 될 것인지, '자유' 이후에 스스로의 개체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그들은 알 수 없었다.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두는 사람들이 있다. 자유가 최고선이 된 순간 역설적으로 그들은 자유와 무관해진다.
3장 종교개혁 시대의 자유 (p. 39 ~ p.88) 중세 시대의 한 명은 개인보다 하나의 인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개인의 욕망, 의지가 그 자신을 대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포섭하고 있는 하나의 구분이 그를 설명했다. (농부, 기사, 상인 등등) 또한 확고한 크리스트교의 질서는 세계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지 않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세민은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안정된 위치, 심리상태를 누렸다. 프롬의 관점에서 중세민은 개체화 과정을 거치기 이전의 안락함을 누리는 존재였다.
최초로 이탈리아에서 '신앙과 환상, 그리고 선입관적 호의로 이루어진' 베일이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국가나 그 밖에 다른 것, 이 세상의 모든 일을 '객관적'으로 다루고 고찰하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서 '주관적'인 면도 강조되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정신적 의미에서 개인이 되어 자기 자신을 한 존재로서 자각하게 되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일련의 사회현상을 심층 분석 p.44, 에리히 프롬 지음, 원창화 옮김
이탈리아 등지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시대로의 이행은 두 계층에 영향을 미쳤다. 하나는 부와 권력을 가졌던 최상위층의 계급이다. 새로운 경제체제는 길드의 붕괴, 동양으로부터 들어온 방직 기술, 무역의 중심 등으로 인해 촉발되었다. 최상위 계층의 사람들은 경제적 혼란으로부터는 중하위층보다 안전했으나 중세적 사고관의 붕괴로 극심한 자기중심주의가 발생했다. 쾌락주의는 역설적이게도 명예를 중시하는 욕망을 발생시켜, 기독교 세계관이 사라진 빈 공간에서 개인이 불멸성을 추구할 수 있게 하였다. 중하위층은 이들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처해있었다. 같은 직종 아래 평등했던 길드는 더 부유한 길드와 직공 그리고 더 빈곤한 길드와 직공으로 나뉘었고, 농민 역시 점점 높아지는 세율 아래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작은 땅조차 영주에게 빼앗기도 있었다. 이는 초기 자본주의의 독점적인 성질을 보여준다. 이들은 르네상스의 우아한 삶의 양식과 먼 위치에 있었다. 대신 루터와 칼뱅의 종교 개혁이 중하위층의 시대 정신을 대변하였다.
프로테스탄티즘과 칼뱅주의는 자본주의 이후에 등장한 중산층의 두려움을 보여준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입장에서 면죄부는 교회의 타락이었으나 실상은 가톨릭의 권위와 자본가의 권력이 표출된 것이었다. 동시에 신에게 속했던 죄의 판단이 인간적인 잘못으로 격하되는 현상이기도 했다. 개인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이신칭의는 개인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르네상스 이전의 교회가 가졌던 권위로 회귀하려는 시도였다. 믿음 아래 인간이 가진 자유의지는 허락 되었으나 신 앞에 인간은 복종해야했다.
칼뱅주의의 예정설은 인간의 탄생 전에 구원과 형벌이 정해져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칼뱅주의의 영향은 크게 두 개로 요약된다. 하나는 불평등의 인정이다. 예정설은 노력과는 무관하게 이미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칼뱅주의는 도덕적인 삶과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구원과 형벌이 정해져있으나, 인간은 그 방향을 미리 알 수 없다. 다만 구원받은 사람은 세속적, 도덕적 활동에서 성공함으로써 자신의 구원이 예정되었음을 입증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사고방식은 중산층으로 하여금 자본주의의 사회구조에 적응할 수 있게 하였다.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서 불안감과 회의감을 느꼈던 중산층의 비호 아래 프로테스탄티즘과 칼뱅주의가 주창되었지만, 도리어 이 새로운 사상은 중산층을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동력으로 만들었다. (노동 충동, 절약정신, 금욕, 강제적인 의무, 삶을 권력의 수단으로 만드는 태도)
면접을 준비하느라 늦었다. 4장부터는 블로그에 정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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