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D-29
첫 문단에서 발췌한다. "자유를 위한 싸움은 억압받는 사람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데, 그들은 지켜야 할 특권을 가진 자들에게 항거하여 새로운 자유를 얻으려고 했다. ...... 그러나 억압에 항거해 온 계급은 자유를 위한 줄기찬 투쟁의 한 단계에서 승리하여 일단 새로운 특권을 지켜야 할 입장이 되면 그때에는 도리어 자유를 해치는 적들과 한편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1914년의 대전쟁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규모나 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다면 역사의 방점은 2차 세계대전에 찍히겠지만, 나는 황금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고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은 20년 남짓 안되는 기간 동안 부풀어 오른 벨 에포크의 낙관과 희망을 터트렸다. "The Great War"라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붙을 정도로 제1차 세계 대전은 그 이전에 있었던 그 어느 전쟁과도 달랐다. 이러한 관점에서 1차 세계대전이 “최후의 싸움이자, 자유를 위한 궁극적인 승리가 될 것으로 여겨졌다”는 프롬의 진술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반대하는 나의 유일한 문장이리라.) 21년 동안의 전간기는 대전쟁 이전의 모습을 회복하기에는 짧았고, 대공황과 정치적 혼란으로 오히려 심화되었다. 이 책이 말하는 도피는 단편적으로 나치즘으로 구체화된 전체주의를 의미한다. 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서구 문명은 정치 권위와 종교 권위에게 빼앗겼던 개인의 자유를 되찾아왔다. 합리와 이성으로 무장한 근대인들은 중세의 암흑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자유가 인간의 본성이라면 왜 독일인들과 이탈리아인들은 왜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였는가?
경제적 자유주의, 정치적 민주주의, 종교적 자율, 그리고 각 개인의 삶에서의 개인주의 등의 원리는 자유를 동경하는 마음으로 표현되었으며, 그 와 동시에 인류로 하여금 그 실현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게 하는 것같이 보였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일련의 사회현상을 심층 분석 p.8, 에리히 프롬 지음, 원창화 옮김
파시즘이 세력을 장악하게 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못했다. 준비를 갖추기는커녕 인간이 그와 같이 악에 대한 성향을 지니고, 권력에의 갈망, 약자의 권리에 대한 무시, 그리고 강자에 대한 복종의 열망을 가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일련의 사회현상을 심층 분석 p.13, 에리히 프롬 지음, 원창화 옮김
1장에서 프롬이 제기한 심리학의 문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시작한다. 프롬은 프로이트의 심리학이 낡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니체,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합리와 이성 아래서 들끓는 당대의 모순을 포착했다. 정신병리학은 꿈과 무의식이 정신병의 발현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며 유년 시절의 작용이 성인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사례를 발견한다. 프로이트에게 인간의 성격이란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는 대상이다. 그는 성악설을 전제로 하여 사회가 인간의 충동을 억압함으로써 문화적 발전을 이룩한다고 믿었다. 충동에 대한 억압의 강도가 높을수록 개인은 신경질적으로 변하지만 문화적 요소는 증가한다. 충동에 대한 억압의 강도가 낮으면 사회가 가진 문화의 총량은 반대의 경우보다 감소하겠지만 개인의 만족은 늘어난다. 이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이다. 프로이트에게 있어 개인과 개인의 관계, 나와 타자의 관계는 자본주의 시장과 비슷하다. 인간은 본래 협력하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과 협력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개인은 생물학적 충동을 만족하기 위해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다. 타인은 개인의 수단일 뿐이지 목적이 되지 못한다. 프로이트가 주장한 개인과 사회, 개인과 개인의 관계는 이렇게 하나의 공식처럼 굳어져 있다. 이는 정적인 관계로 둘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본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사회가 개인에게 미치는 억압은 신경증을 만들어 낼지언정 개인의 충동을 바꾸지 못한다. 개인은 본질적으로 사회와 타자와는 무관한 존재이다.
정적인 적응이란 전체의 성격구조에는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은 채 새로운 습관만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양식에의 적응을 말한다. ...... 동적인 적응이란, 어떤 아이가 ...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하여 '착한 아이'가 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아이가 환경의 필요에 스스로를 적응시켜 가는 동안 아이의 마음속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 아이는 강렬한 적개심을 가지게 될지 모른다. ... 억압된 적개심은 비록 표현화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아이의 성격구조에 하나의 동적인 요소가 된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일련의 사회현상을 심층 분석 p.18, 에리히 프롬 지음, 원창화 옮김
프로이트는 인간 본성을 고정된 것으로 보고 개인이 정적인 존재라고 주장한다. 프롬은 프로이트의 주장을 일축하면서도 프로이트의 반대편에 서있던 행동주의 심리학의 주장 역시 거부한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 본성이란 사회 작용의 결과물에 불과하다고 본다. 작용을 가하면 변하는 젤리와 같은 반고체처럼, 행동주의 심리학은 문화적 양식 아래 인간 본성이 끊임없이 변한다고 말한다. 프롬은 프로이트와 행동주의 심리학의 중간지대에 위치한다. 인간은 생리적 욕구를 넘어, 사회와 타인과의 교류 속에서 인간성이 추하지 않고 아름다워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또한 문명의 진보는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욕망과 과제를 개인에게 제시했다. 그렇지만 인간이 자신의 성향과 성질을 무한히 변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역사의 변화 속에서 인간성은 고유의 패턴과 일정한 역동성을 보이며 1000년 전의 중세인과 현대인이 인간이라는 같은 이름 혹은 허물을 가졌음을 보여줬다. 인간과 인간성은 어디까지 적응할 수 있을까? 인간성의 한계는 어디에 걸쳐있는가?
인간성의 적응 한계를 파악하기 위해서 프롬은 필수적인 두 욕구를 지정한다. (변화무쌍해 보이는 인간의 성질 속에 핵이 있다면 우리는 이 핵을 가운데에 두고 인간성이 어디까지 뻗어나가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인간이 가진 생리구조에서 나오는 당연한 욕구이고 다른 하나는 고독을 피하려는 욕구이다. 이 두 가지 욕구에 따라 인간성이 사회적 양식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생리 욕구는 일을 통해서 해결되어 왔는데 시대마다 일의 형태는 달라져 왔다. 생리 욕구는 고정되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개인은 사회 양식에 적응해 왔다. 프롬은 인간에게 생리적 욕구와 더불어 고독을 피하려는 욕구가 있다고 말한다. 이 고독은 신체적인 고립이 아닌 정신적인 고립을 의미한다. 한 사람이 사람들과 물리적인 거리를 두고 있더라도 스스로를 사회의 일원으로 생각할 수 있다. 동시에 군중 속에 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개인이 카뮈적 고독을 느끼는 경우가 존재한다. 고독을 회피하는 경향은 모순적이게도 개인이 스스로를 개별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발현한다. 인간은 아무리 뛰어나도 제 혼자서 스스로의 자아를 확정지을 수 없다. 남과의 구별, 외부 세계과의 구분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확인한다
인간이 정신적인 고립을 피하고 개인이 자연과 타자와 일체감을 갈구한다는 내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해봤는데 아무래도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첫 문단을 언급하고 넘어가는 정도만 가능할 것 같다.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들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 그 시대에는 모든 것이 새롭지만 친숙하며, 모험에 찬 것이지만 뜻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이다. 세계는 넓지만 마치 자기 집과 같은데, 영혼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이 하늘에 떠 있는 별들과 본질적 특성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세계와 나, 빛과 불은 서로 뚜렷이 구분되지만, 서로 영구히 낯설게 되는 일은 결코 없다.
소설의 이론 p.27, 게오르크 루카치
소설의 이론20세기 사상사에 큰 영향을 끼친 게오르크 루카치의 대표작 〈소설의 이론〉. 루카치의 저작들 중에서 가장 폭넓은 독자층을 가진 책으로, 소설의 형식에 관한 철학적ㆍ미학적 탐구서이다. 소설이 근대의 대표적인 문학 장르로 부상하는 현상을 근거짓는 데 성공한 최초의 시도이며, 서구의 근대적 장편소설에 대한 미학적 담론으로서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원래 이 책은 '소설'의 '이론'을 목표로 쓴 것이 아니라, 도스토예프스키를 다루는 저작의 준비 과정
2장. 개성의 출현과 자유의 다의성 (p.28~p.38) 부정은 정체성을 갖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곤 사토시의 대표작, 퍼펙트 블루(1997)의 주인공 미마의 마지막 대사처럼 “난 나야”라고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타자를 필요로 한다. 남성의 증명은 여성을 필요로 하고 민족성은 타 민족과의 구분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부정의 출발에는 나를 외부세계와 구별하는 단계가 있었다. 이 단계의 이름을 프롬은 개체화라고 부른다. 그리고 나와 외부세계가 결합된 이전의 상태를 ‘일차적 관계’라 칭한다
개체화의 과정에 의해 한 개인이 완전하게 출현되기 이전에 존재하는 이와 같은 관계를 나는 '일차적 관계'라 이름 짓고자 한다. 이 관계는 정상적인 인간 발달의 일부라는 점에서 유기적이며 개체성이 결여되어 있지만 그것은 개인에게 안정감과 아울러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준다. 어린 아이를 그의 어머니와, 원시 공동체의 구성원을 그 씨족과 자연에, 또는 중세의 인간을 교회와 그의 사회적 계급에 연결짓는 것은 모두 일차적 관계이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일련의 사회현상을 심층 분석 p.27, 에리히 프롬 지음, 원창화 옮김
어린 아이와 부모의 관계라는 일차적 관계의 예시를 계속해서 이야기해보자. 아이의 자유는 부모로부터 떨어져 하나의 인간으로 자리잡는 개체화의 과정에 따라 발달한다. 개체화의 과정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자아의 증대이고 다른 하나는 고립의 증대이다. 자아는 육체적, 정서적, 그리고 정신적 요소의 통합이다. 이는 개체화의 진전에 큰 역할을 한다. 자아의 성장에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부분 사회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고립의 증대는 필연적이다. 아이는 독립하는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아이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개별적인 인간으로 인식하며 자유의 편린을 맛본다. 그렇지만 독립의 과정은 일차적 관계에서 아이를 끊어냄으로써 일차적 관계가 공급하던 “안전감과, 외부세계와의 조화”를 망가뜨린다. 대신 자유는 아이에게 무력감과 불안감을 제공한다.
개체화의 두 가지 측면에는 각각의 위험이 존재한다. 하나는 자아와 개체화의 불일치이다. 개체화의 과정은 필연적이지만 자아의 성장은 다양한 이유로 방해받는다. 한 인간이 외부 세계와 분리되는 과정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정신적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불안감과 고독을 느낀다. 다른 하나는 고립의 증대에서 일어나는 퇴행이다. 인간이 일차적 관계가 제공하는 안정감을 누리고 싶을 때 스스로의 개체화를 포기하고 다시 외부세계에 몰두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육체적으로 다시 모태 안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개체화 과정을 돌이킬 수 없다. 그리고 다시 외부세계에 복종한 인간은 본래의 편안함을 되찾기 보다는 불안감과 적의와 반항감을 갖게 된다.
개체화의 두 위험이라고 써놓았지만 하나로 묶어 설명할 수 있다. 한 인간이 개체화의 과정에서 충분한 자아의 성장과 자유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다. 이 상태에 놓인 인간은 다시 일차적 관계가 주던 안락함을 찾으려 시도한다. 회귀하려는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미루고 이전의 세계에 복종하지만 결국 이전의 세계에 반감을 갖는다
이 내용이 전부 개인의 정서 문제로 귀결되는 듯한 인상을 줘 추가로 적는다. 앞서 써놓은 내용처럼 자아의 성장은 사회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개체화된 인간의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위해서는 오직 하나의 가능하고 생산적인 해결방법이 있다. 그것은 일차적 관계에 의하지 않고,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으로서 그를 다시 외부 세상과 연결해 주는 모든 사람들과의 적극적인 결속과 자발적인 활동, 곧 사랑과 일이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일련의 사회현상을 심층 분석 p.36, 에리히 프롬 지음, 원창화 옮김
여기 적힌 일이라는 요소는 1장에서 인간의 가장 개인적이고 기초적인 욕망조차도 사회가 제공하는 방식에 따라 해결된다는 내용과 연결되며 3장의 기초 자본주의에 대한 내용과도 이어진다.
한편으로 프롬은 이 책의 제목에 관한 설명을 2장에서 보충한다. 프롬은 '~으로의부터의 자유'와 ''~에 대한 자유'를 구분한다. 두 문구는 비슷하게 읽힌다. '~에 대한 자유'를 '~을 위한 자유'라고 바꾼다면 책이 말하는 의미가 좀 더 명확해진다.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는 언제나 '~으로부터의 자유'였다. 인간은 자유를 바랐는데 자유를 원하는 이유는 순전히 자신을 억압하는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함이었다. 자유 이후에 어떤 상태에 인간이 놓이게 될 것인지, 자유가 어떠한 가치를 대변하게 될 것인지, '자유' 이후에 스스로의 개체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그들은 알 수 없었다.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두는 사람들이 있다. 자유가 최고선이 된 순간 역설적으로 그들은 자유와 무관해진다.
3장 종교개혁 시대의 자유 (p. 39 ~ p.88) 중세 시대의 한 명은 개인보다 하나의 인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개인의 욕망, 의지가 그 자신을 대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포섭하고 있는 하나의 구분이 그를 설명했다. (농부, 기사, 상인 등등) 또한 확고한 크리스트교의 질서는 세계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지 않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세민은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안정된 위치, 심리상태를 누렸다. 프롬의 관점에서 중세민은 개체화 과정을 거치기 이전의 안락함을 누리는 존재였다.
최초로 이탈리아에서 '신앙과 환상, 그리고 선입관적 호의로 이루어진' 베일이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국가나 그 밖에 다른 것, 이 세상의 모든 일을 '객관적'으로 다루고 고찰하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서 '주관적'인 면도 강조되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정신적 의미에서 개인이 되어 자기 자신을 한 존재로서 자각하게 되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일련의 사회현상을 심층 분석 p.44, 에리히 프롬 지음, 원창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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