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TV 소리를 줄이고 부엌의 냉장고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와 이 친구에게 하나를 권했다. 시크 교도들이 술을 마시는지 어떤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의 내 상식으로 봐서는 안 마실 게 분명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몇 번이고 마다하는 이 친구에게 맥주를 권했다. 어쨌든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밤인데다가 서로 좀 취하게 되면 이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좀 나아지지 않겠는가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친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한 표정으로 캔을 땄다. 우리는 캔으로 서로 건배한 뒤, 한 모금 들이켰다. 나는 이 친구가 오른손으로 수염을 한번 쓰다듬는 동안에도 캔에서 입을 떼지 않았다. 나는 한번 더 건배하자고 캔을 내밀었고 우리는 맥주를 들이켰다. ”
『세계의 끝 여자친구』 p.136, 김연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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