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믐에서 함께 읽기

D-29
큰언니는 물고기를 놓아버리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 "왜냐하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인간은 원래 곧잘 틀리잖아." (...)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정말로 이 물음은 모든 사람마다 다 다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12. 데우스 엑스 마키나, 룰루 밀러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13. 에필로그, 룰루 밀러
이 책이 출간되고 여섯 달 뒤, 스탠퍼드 대학과 인디애나 대학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름이 붙은 건물의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13. 에필로그, 룰루 밀러
2회독을 완료했습니다. 결론을 읽다 보면 작가가 너무 이상주의적인 주장을 펼치는 몽상가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조금 듭니다. 사다리를 만들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포기하고 싶지 않은 하나의 사다리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여러 개념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듯이 스스로가 만든 사다리 들도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하나의 사다리만 포기해도 되는 상황은 보통 오지 않습니다. 하나의 사다리를 포기하면 관련된 2~3개의 사다리도 부서지게 되는 법이죠. 이런 결심을 굳힐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만약 데이비드가 자신의 사다리가 잘 못된 것을 알았다고 할지언정 작가가 포기한 물고기가 과연 데이비드가 포기해야 할 물고기와 비교 했을 때 얼마나 복잡도가 높았을까요. 특히 마지막에 대학의 건물 이름을 바꿨다는 내용을 자랑스럽게 써놓았는데 이 부분도 모순된 부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물론 누군가의 편견을 깨고 데이비드의 본 모습을 온 세상에 밝혔으나 과연 이 것이 옳기만 한 일 이었을까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대학 측에 건물의 이름 변경을 요청했다고 하는데 이 책 자체가 독자들에게 새로운 사다리를 만들어 버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데이비드의 분류학에서의 업적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문은 그저 학문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피카소의 여성편력이 세간에서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유명했지만 현대에 이르러 계속해서 그의 업적은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종교가 없지만 좋아하는 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작가가 책을 구성한 방식은 저를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한 사람의 일생을 퍼즐 맞추 듯 분석했는데, 마지막에는 갑자기 분류학이라는 학문을 끌고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비유적 표현이기는 하지만 한 사람의 일생과 나중에 발견된 학문적 사실을 조합하여 마치 그 사람이 잘 못된 것처럼 몰고 갑니다. 과학적 사실은 항상 새로운 혁신에 의해 바뀌기 마련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이 잘못되었고, 돌턴의 원자설이 틀렸던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와 돌턴은 과학사에 엄청난 업적을 남겼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모든 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체계라는 말 같습니다. 숫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회의 약속이죠. 시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가, 국경, 인종, 정치도 모두 우리가 만들어 낸 개념일 뿐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토록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사회주의에 대한 개념이 없음에도 사회주의는 잘 못되었다고 부르짖는 것이 말도 안되는 것처럼 우리는 인류가 만들어낸 개념들을 계속해서 배워나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만든 물고기에 대해 배워나가야 하는 것이죠. 물론 별을 포기하고 우주를 얻게 되는 혁신가도 있겠죠. 하지만 과학적 혁신의 대가는 이번 '오펜하이머'에 나왔던 것처럼 혹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존재합니다. 모든 것은 선택이죠. 그렇기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지만 굉장히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분류학은 유연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학문이기에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중학교 부터는 책에 나온 것처럼 생물 분류 체계를 가르칩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학생들과 생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우리는 육지에 사는 생물, 물에 사는 생물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인위 분류라고 합니다. 사람의 편의를 위해 만든 기준이죠. 인위 분류는 중요합니다. 내가 세상을 재구성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비단 어류 하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책장을 특정 기준으로 정리하고, 연락처를 분류하는 것처럼 편의로 분류하는 하나 하나가 사다리입니다. 분류학에서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의 사다리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분류학의 마스터가 되려는 것도 아니니까요. 혹시 아나요. 데이비드가 틀렸던 것처럼 언젠가 "어류가 있다"라는 사실을 밝혀 낼 과학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작가가 에필로그에서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중요해'라는 말에도 동의합니다. 그저 자신이 만든 사다리일 뿐이니까요. 결국 내 생각의 끝에서 맞는 것들이 옳은 사다리가 되는 것이기에 개인적으로 작가는 그저 불행을 만들어 내는 사다리를 버리고, 희망을 얻기 위한 알맞은 사다리를 하나 장만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은 옳은 것도 틀린 것도 아니고 그저 양면성이 있는 선택일 뿐입니다.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다른 생물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내려놓기 싫을 겁니다. 종의 기원이 나온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개인들은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고 우선이라고 생각하지요. 우생학적 관점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생각하고, 도구를 쓰고, 다른 생명체를 제어하고,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다는 이유로 말이죠. 사다리는 어쩌면...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어요. 아웃풋사피엔스님이 정리해서 말씀해주신 부분은 제게 또 새롭게 다가오네요. 저는 이 책의 구성이 상당히 잘되어있다고 봤었거든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전기에서 우생학으로, 그리고 다시 분기학으로 가는 과정이 매끄럽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데이비드 얘기하다가 왜 갑자기 우생학얘하고 분기학 들고와서 물고기가 없다고 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통해 우리가 옳다고 믿고 해오던 일(분류학)이 사실 상당히 잘못된 방식이었고, 그 방식을 맹신하면서 생기는 우생학,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등장한 분기학까지 직선적으로 잘 이어진 느낌이었어요. 인간의 주관은 우주의 질서를 잡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를 잘 보여줬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교과서에서도 분류체계를 가르칠 때 '어류'라는 말을 쓰지 않지요(물론 제가 어렸을 때도 쓰지 않았습니다). 일상 생활에서는 물고기라는 말을 여전히 쓰고 있지만, 잘못된 것을 계속해서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편의를 위해 틀린 것을 쓰는 것이 옳다고 보지는 않아요. 나는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도는 게 살아가는데 이해하기 편하니까 천동설을 믿을래! 라고 할 수 없듯이, 앞으로는 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물고기, 어류 라고 말하는 것이 점차 줄어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종으로 분류하는 게 어렵다면 이름으로 불러줄 수도 있지요(ex. 고등어, 참치, 상어, 가오리 등). 데이비드의 업적에 대한 이야기는 찬반이 많이 나뉠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그가 무언가를 상세히 분류하려고 했던 업적은 인정하나 그 업적으로 일으킨 사건 또한 상당히 큰 영향을 줬던지라 그를 기억하기는 하되 우상화할 필요까지는 못느꼈습니다. 피카소와 다른 것은 그의 여성편력은 그 자신과 그와 얽혔던 사람에 한정되지만, 데이비드의 우생학은 국가 전반에 위협을 일으킨만큼 사안이 조금 다르다고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던 점은 좋았습니다. 저는 이 책이 인생책이라 불릴만큼 좋았지만, 제가 좋다고해서 모두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니 이 책이 아쉬웠던 사람들은 어떤 부분에서 아쉬웠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독자분들이 마지막에 저자인 룰루 밀러가 자신은 양성애자임을 밝히는데요. 이 책이 마지막에 하고자 했던 말이 종의 다양성은 자연에서 필요한 조건이라고 한 것이, 동성애나 양성애 또한 종의 다양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어필하기 위해서였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책의 결론이 저자의 양성애자를 뒷받침하는 주장과 근거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3주가 지나고 이제 다 읽으신 분들도 꽤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다들 이 책이 어떠셨는지요? 저는 제 인생책 리스트에 들어갈 정도로 흥미롭고 유익했던 책이었습니다. 인간의 주관이 빚어낸 문제를 분류학 > 진화론 > 우생학 > 분기학을 차례로 언급하면서 순서대로 아주 잘 적어놓았다고 봅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에는 '질서'가 있는데요. 우주의 질서를 기술하기 위해서 정말로 우리의 주관은 불필요한 것일까요? 주관적인 질서가 더 효율적인 예가 있을까요?
물리학자들이 흔히 하는 말로 우주와 우리의 존재에 의미를 두지 말라고 합니다.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것일 뿐이죠. 그렇지만 인간은 편의를 위해서 분류를 하고 질서를 만드려 합니다. 저는 우주의 질서를 기술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주관은 완전히 배제되어야 한다는 분기학자들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인간의 주관이 이입되면 데이비드처럼 잘못된 방향으로 질서를 잡을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주관적 질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생선 가게에 가서 '소와 친척인 어떤 생물종'을 달라고 하는 것은 삶을 너무 피곤하게 하니까요. xx어 라는 이름에서 이미 '물고기'라는 뜻을 내포하고는 있지만, 작은 사회/집단 간의 약속에서 이루어지는 주관적 질서는 우리의 삶을 편하게 해주는 게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임이 4일 남았습니다! 처음에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시고 함께 읽겠다고 했었는데요. 다들 재밌게 잘 완독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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