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② 『같이 가면 길이 된다』 함께 읽기

D-29
: 217쪽,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왜 금융위기가 오는 걸 아무도 몰랐느냐’고 경제학 교수들에게 묻고 영국학술원이 포럼을 조직해 답했다는 에피소드가 제일 인상적입니다. 경제학자들에게 늘 비슷한 질문을 묻고 싶었고, 사실 숱하게 나온 질문일 텐데 국왕의 권위가 이런 때에는 유용하네요. ‘공식 답변’을 이끌어낼 수 있으니. 그리고 그 공식 답변이라는 게 참 누추해서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이 에피소드 이후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이 뭔지도 고민됩니다. 경제학은 불완전한 학문이니 경제학이 아닌 다른 근거에 기초해서 정책을 만들어라? 경제학자들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그들의 힘을 축소해야 한다? 더 정확한 경제학 모델을 위해 많은 연구 발전이 필요하다? 그나마 점쟁이들보다는 나으니 경제학을 믿어야 한다?
당시에도 큰 화제가 되었던 에피소드입니다. 저는 경제학적 분석방식을 좀더 현실에 가까운 방식으로 다양화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협소한 정의와 정교한 수식과 통계를 통해서 학문적 '엄밀성'은 얻을 수 있겠으나, 현실 적합성은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점쟁이보다는 나아야 하는데, 사실 점쟁이도 때로는 꽤 정확한 편이라서요 ^^
5부에서는 <경제예측이라는 점쟁이>에서 생각이 좀 멈췄습니다. 대학시절 전공은 아니지만 경제학원론, 미시경제, 거시경제 등을 수강하면서 수없이 들어온 '합리적인 참여자에 대한 가정'부터 경제학의 함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과학(?)의 특성상 그러한 가정이 없으면 더 이상 논의가 어려워지니 이론 전개를 위해 불가피한 가정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이론적 가정이 터무니없다는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인식해와서 경제예측의 오류에 대해 관대해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그렇다면 경제관련 관료나 학자에게 너무 큰 힘이 주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어떤 대책(대안)이 있느냐...하면 그것도 어려운 문제 같아서 자꾸만 답답해지는 것 같습니다. 틀릴 줄은 알겠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예측하고 정책을 실천해가는 것일 뿐인지... 하지만 과거 정권에서 이미 맞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정책을 다시 갖다 쓰는 건(법인세인하, 낙수효과, 부동산경기부양...) 잠깐 빼앗겼던 정부가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반발에 근거하는 것일까요?
"자본"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가 한 말이 있습니다. "경제학은 경제학자에게만 맡겨 두기에는 너무나 중요하다".
9. 5부에서는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할 때’, ‘낮은 소리에 자유를 준 경제학자’ 두 꼭지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할 때’ 꼭지는 읽고 듣는 것 외에도 말하기와 쓰기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어 오래 머물렀습니다. 지금 제가 있는 이 자리에서 무엇을 말하고자/쓰고자 하는지, 말하고자/쓰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전달할지 예전보다 더 고민하는 요즘입니다. 작가님께서 ‘좋은’ 메시지가 곧 ‘옳은’ 것은 아니라고 하신 이 부분이 특히 인상 깊으면서 그만큼 229~230 페이지에 나오는 조지 애커로프 이야기에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낮은 소리에 자유를 준 경제학자’ 꼭지에서는 현 정치 상황이나 사회 분위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 오래 머물렀습니다. 뉴스를 보다 보면 낮은 소리를 대변하기보다는 ‘우리’로 묶인 사람들만을 감싸기 위한 목소리를 내고, ‘우리’가 아닌 사람들과는 제대로 된 대화가 아니라 고성만이 오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상대적으로 소수인 사람들과 다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는 그 창구가 사라져만 가는 듯합니다.
5부를 읽으며 전체적으로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곱씹어 보았습니다. 새삼스레 '경제학' 정의를 찾아보니 ‘한정된 자원을 이용한 최선의 선택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고 나와 있네요. 올해의 경제전망 같은 뉴스를 들으며 이런 신뢰성 없는 예측이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도 한 적이 있어서 <경제예측이라는 점쟁이> 에 잠시 생각의 멈춤이 있었습니다.
9. 5부는 문학으로 경제문제를 풀어주어 쉽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책에서 소개한 책, 문장, 싯구를 찾아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좋은 인용구, 좋은 글이 많았는데,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할 때>에서 평론가 존 버거의 말"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예 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것들"때문에 쓴다는 대답이 와 닿았습니다. 말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아예 말해지지 않을 것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노동자의 권리였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없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열악함을 말하려고 예쓰지 않으면 아예 말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노동의 문제가 가려져 왔겠죠. 노동자의 입장을 알고 노동자인 유능한 경제학들의 목소리가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9. <등대로 함께 찾아가려면> 꼭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위기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측하지 못한 위기들, 그리고 겨우 피했더니 다시 찾아와버린 위기들. 이런 것들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야말로 등대를 비춰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5부에서는 <경제예측이라는 점쟁이>와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할 때>에서 아끼지 않고 밑줄을 그었습니다. 실패는 왜 반복되는가? 물론 미래를 알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델 자체의 비현실성도 큰 몫을 했다. 미국 하버드대학 경제학 교수인 대니 로드릭은 <경제학은 지배한다>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경제적 충격이 왔을 때 시장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경제를 균형 있게 돌려놓는다는 믿음이 경제 예측 모델이 짙게 깔려있다고 보았다. 노동시장, 재화 시장, 그리고 자본 시장은 모델이 가정하는 것처럼 완전무결하지 않다. (p.218) -->경제 예측이 계속 실패하는 건 미래 예측이 어려워서뿐 아니라 모델 자체가 비현실적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인데요. 경제 모델을 믿는다는 건 결국 시장을 움직이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보거든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주체들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실패는 이미 예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문장은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의 결론, “경제학은 경제학자에게 맡겨두기에는 너무 중요하다” (p.229) 마크 트웨인의 피뢰침에서 비롯한 이야기가 4대강 사업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역시 웃음이 픽! 터졌습니다. (웃으면 안되는 걸까요?)
예전에는 웃고 넘겼을 일이 이제는 더 이상 우습지 않다. 그의 글은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옳지’는 않다. 그를 개인적으로 타박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의 문제다. 옳음을 말하는 우리가 실상 길을 막고 서 있다는 것이고, 존 버거가 말한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예 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문제다.
같이 가면 길이 된다 p.231, 이상헌
“정치제도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인류가 진보함에 따라 정치제도는 변할 것이고 변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란 “항상 사회적 최강자의 손에 있거나 넘어갈 것”이고, “이 권력의 본질이 곧 정치제도를 결정하기 마련이다.” 그가 집중한 사안은 그런 정치제도 안에 늘 있을 소수에게 어떻게 진정한 자유를 확보하게 할 것인가였다.
같이 가면 길이 된다 p.235-236, 이상헌
<5부> "경제학의 그늘"이라는 부제를 달아주신 것처럼 경제학자로서의 작가님의 고민과 생각들이 많이 담겨 있는 챕터 잘 읽어보았어요. "경제학자와 경제전문가들은 실수나 잘못을 좀체 인정하지 않는다. 이론과 숫자로 무장한, 사회의 유일한 '과학'이라 믿기 때문이다" => 이 부분이 재미있었어요. 문과 중에 제일 이과 같은 학문이라는 나름의 자부심을 예전의 대학시절 경제학도 친구들에게 느낀 적이 있어서 그 때 생각도 났네요. ㅎㅎ
화제로 지정된 대화
위의 @류월 님 질문에 이어지는 답변입니다만... 실은 내일 MBC 〈라디오북클럽 김겨울입니다〉 녹음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질문에 관한 이야기도 아마 나누게 되실 듯해요. 8월 27일(일) 오전 6시 5분 방송될 예정인데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네요-! 이번주 일요일 아침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
화제로 지정된 대화
마지막 읽기입니다. 6부를 향합니다. 6부 제목은 ‘이제 너에게 묻는다’입니다. 그간 품었던 모든 고찰과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상헌 작가님은 이제 스스로에게로 물음표를 건넵니다. 앞선 장들보다 자비 없지만 한층 섬세하게 떨리는 물음들이 종내는 책장을 넘기는 우리에게로 향할 때 제목 여덟 글자가 다시금 선명해지는 순간을 맞습니다. 10. 6부는 총 열한 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떤 꼭지(또는 문장)에 가장 오래 머무셨을까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6부> 경제학자의 칼럼집 이라는 처음의 단순한 생각이 무색하리만큼 책을 읽으며 가슴 떨리는 좋은 문장들을 많이 발견하였어요. 문장들 중 일부는 우리의 경제 현실이나 상황과 관계가 있기도 했고 또는 없기도 했고요. 특히 6부에서 시적이고 좋은 표현들과 아름다운 문장들 만날 수 있어서 수필가의 수필을 읽는 듯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 골목을 광장으로 만드는 법" 이라는 테마를 계속 생각하면서 책을 읽었는데 마침 읽다가 딱! 아래 문장을 만나 함께 나눠봅니다.~
10. 6부에서는 ‘차별하지 않는다는 네게 묻는다’ 꼭지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습니다. 글을 읽는 내내 교차성과 특권, 차별에 대해 떠올렸습니다. 교차성은 말하고 듣는 것, 읽고 쓰는 것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해 계속 고민하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차별받는다고 느끼면서도 다른 상황에서는 차별의 주체가 되어 버릴까 봐 걱정을 이어나가며, 경계하고 조심하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작가님 말씀처럼 ‘p.270 차별당해 보지 않은 자가 차별의 고통을 알기란’ 쉽지 않고, 그렇기에 ‘p.267 차별하는 자는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10. <차별하지 않는다는 네게 묻는다>에서 작가님의 이야기로 다시 잊었던 차별을 깨달았습니다. "차별은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많아야 아주 서서히 사라지는 놈이다"라는 말에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차별은 멈추지 않는 세계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옆에 서 있어주는 것이라는 걸 다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책 함께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
: 저는 〈매미가 뜨겁게 울던 여름날에 묻는다〉가 이상하게 기억에 남네요. 책의 다른 글들과 결이 다소 다르지만요... 그 여름날에 벌어진 사건이나 아카시아 숲 사내가 나중에 겪은 비극이 조금 더 궁금하기는 한데 작가님께서 일부러 더 명확하게 쓰시지 않은 것이겠지요?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한국 사회 왜 이 모양인가, ‘상식이 상식이 아닌 곳’이 참 많다, 생각하며 부끄럽기도 했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도 하게 되었습니다. 화장실의 불평등은 충격적인 야만이었고,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작가님과 편집자님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6부 에얄 프레스의 다소 신랄한 정의에 따르자면, 더러운 일은 착한 사람들이 그 사회적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명시적으로 그것과 관련되고 싶어 하지 않아 결국 다른 사람에게 떠맡긴 일을 말한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우리가 착하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만 스스로 하고 싶지는 않고 문제가 생기면 놀라는 표정만 잠시 짓고 곧바로 모른 척하면 되는 종류의 일이다. /한국으로 오면 더러운 일은 무엇보다도 위험하다. 일하다 다치거나 죽는다. 마치 더러운 일을 하는 용병 같다. (p.249) 최저임금이 다시 한번 ‘을’간의 감정 싸움이 되도록 내버려둔다. 이 역시 착한 사람의 방식이긴 하다. (p.250)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등등 자주 잊고 지워버리는 얼굴들을 떠올렸습니다. 값싼 용병을 이용하고 '을'의 전쟁으로 만들어버리는 '착한 사람'의 방식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드네요. 지난 봄에 어린이들과 이주 노동자에 관한 책을 읽고 토론을 했는데요. 어린이 책을 통해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고용허가제에 대해 공부를 하며 여러가지 문제를 함께 나누어서인지 이 부분에서 오래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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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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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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