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함께 읽기] #32.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D-29
저도 1장 다 읽었습니다. 오펜하이머의 정치적 감성의 진보적 교육을 받은 에티컬 컬쳐스쿨의 윤리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어떻게 바뀔수 있는지에 대한 소크라테스식 교육과 자율적 학습도 의미심장했지만 1장 마지막의 로스앨러모스 목장학교의 난방도 안해주고 1년 내내 반바지를 입어야하며 야영을 다니는 자주 다니는 이곳이 오펜하이머의 저돌적 근성을 길러준것이 아닌가싶네요. 술술 읽히고 미국의 진보적 교육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2~3장에서는 오피의 미국, 영국 대학 생활과 우울증이 주를 이루네요. 독사과 에피소드와 닐스 보어와의 첫 만남이 인상깊었어요. (그나저나 '노벨상을 수상한 xx' '나중에 노벨상을 받게될 xx' ... 이제 오피가 독일 유학가면 이런 사람들 더 만나겠죠? 허허) 이제까지 읽어 온 오피의 성격을 감안할 때 이런 '지식의 최전선'에서 태동중인 양자역학에 흥미를 느낀것이 필연적이라 느껴져요. 시대를 만난 천재랄까.
수학적인 어려움입니까, 물리적인 어려움입니까?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 p.97, 카이 버드.마틴 셔윈 지음, 최형섭 옮김
저도 이 부분에 밑줄쫙!! 문과출신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질문이었음. 그 질문에 대한 해설이 마음에 쏙 들었음.
생업이 바빠서 체크만 해놓고서 말씀 못 드린 것 한 가지 짚고 갈게요. 과학자 특히 물리학자 가운데는 수학적 아름다움에 방점을 찍는 ‘플라톤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현상에서 과학적 원리를 찾기보다는 수학적 아름다움(조화)을 전제하고 그것에 부합하는 현상을 찾으려고 노력하죠. 수학(이데아)이 우선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플라톤주의자라고나 할까요? 1부에서 나온 폴 디랙이 그랬습니다. 디랙이 생각하는 “추상적이고 완벽한 수학적 묘사를 통해 자연을 기술하는 것”이었어요. 실제로 디랙은 1928년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과 슈뢰딩거 방정식을 결합해서 얻은 디랙 방정식에서 반입자의 존재를 예측합니다. 바로. 디랙 방정식을 보고서 전자에 대응하는 양의 전하를 띤 입자의 가능성을 먼저 말한 사람이 오펜하이머였어요(148쪽). 방정식을 풀어보니 음의 값을 갖는 ‘해가’ 있으니, 그것에 부합하는 물질이 실재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었죠. 플라톤주의자 디랙도 머뭇거리던 상황에서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천재성으로 과감하게 밀어붙인 것이죠. 놀랍게도 1932년에 칼 앤더슨(1905~1991)이 전자의 반입자인 양전자를 발견하면서 이는 사실로 확인되었죠(149쪽). 디랙은 바로 노벨상을 받았고요(1933년). 흥미롭게도 오펜하이머는 플라톤주의자는 아니었어요. 그는 현상에서 핵심을 짚는 데에서도 또 방정식에서 핵심을 짚는 데에도 능했던 말 그대로 르네상스적인 과학자였던 것이죠. 계속해서 오펜하이머와 교류했던 당대 최고의 과학자(천재)들이 ‘사기캐’라고 그를 칭송하면서 놀라는 것도 이 때문이었던 것 같고요.
하버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오펜하이머는 나중에 청문회 때를 제외하고는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을 겪었을 거예요. 어쩌면 그 상태에서 양자 역학과 이론 물리학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인생의 스승들을 잇따라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 우리가 아는 오피는 없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답니다. 저는 가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과 만나면 자기가 '잘하는 것'을 찾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해요. 오피 같은 희대의 천재도 '실험'에는 잼병이었잖아요. 자기가 잘 할 수 없는 일을 잘 하려다 보니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자칫하면 살인 미수 범죄자가 될 뻔했겠죠.
학생 스스로 본인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도 정말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주변 어른, 멘토의 중요성을 알려줄 챕터 같기도 해요. 실험을 못하는 오피를 무시하고 윽박지르기만 한 멘토들도 아쉬운 장면이었어요. 집 떠나 멀리 유학 온 어린 오피 ㅠㅠ 경제적으로 여유로워도, 언어가 통해도… 엄연히 다른 나라에 가족 떠나 온 어린 학생이었는데 ㅠㅠ 어린 학생 입장에선 본인이 속해 있는 곳, 지금하고 있는 일 말고도 세상은 넓고 할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아는 것이 쉬운일 은 아니니까요. YG 계속 강의 활발이 하셔야 할듯요!
@진태트록 님께서 인용하신 부분과 관련해서 오피가 자기와 반대편의 과학자로 폴 디랙을 꼽잖아요? 그 의미를 제가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해 볼게요. 마침 물리학자 이광진 박사의 책에 디랙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 (책이 집에 있어서 제가 나중에 자세히 소개해 드릴게요.)
진격의 물리학80년대생 젊은 물리학자의 눈으로 재구성한 현대물리학의 ‘진격의’ 여정. 저자 이광진은 고려대학교 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 연구교수로, 현재도 세계의 저명한 과학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고 있는 프런티어 연구자이다. 그의 전문 분야인 분광학은 간단히 말해 빛이 매질을 통과하면서 나타나는 여러 현상들을 분석하여 물질의 특성을 연구하는 분야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말 그대로 ‘빛’처럼 눈부시고 도전적인 물리학의 세계를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 먼저, 우리
화제로 지정된 대화
8월 3일에는 4장과 5장을 읽습니다(101~136쪽). 오피가 독일 괴팅겐에서 드디어 양자 역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성취를 시작하게 되고(4장)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귀국해서 하버드 대학 대신에 서부에 자리를 잡고서 1년간 다시 스위스 취리히에서 연구하는 과정(5장)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평생의 과학자 친구들, 경쟁자, 짧은 썸과 실패 등이 나오면서 오피의 모습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냅니다.
오펜하이머는 과학자가 된다는 것이 “터널을 통해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라고 비유한 적이 있다. “터널 반대편이 계속 위쪽으로 이어져 있는지, 아니면 출구가 있기는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 p.118, 카이 버드.마틴 셔윈 지음, 최형섭 옮김
그가 지난해의 위기로부터 회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자신에게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 p.123, 카이 버드.마틴 셔윈 지음, 최형섭 옮김
2,3장 막 끝냈습니다. 1장에서는 오펜하이머가 받은 유대인공동체 교육내용이 흥미로웠고, 유대인 정체성이라는 것이 당시 지식인들에게 무척 중요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2,3장에서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오피가 심각했던 자신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프로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며 스스로 치료?해나갔다는 부분이었어요. 똑똑한 인간들이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책에 명시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20세기 초 서구 사회의 반유대주의(anti-semitism) 분위기를 상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유태인은 (흑인만큼은 아니었지만) 은근히 차별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오펜하이머가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동부에 있는 전통적인 명문대학을 마다하고 캘리포니아에 자리잡은 것은 이런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미국의 상류 사회에서 반유태주의는 1920년대와 1930년대를 거치면서 고조되고 있었다. 많은 대학들이 1920년대 초에 하버드가 유태인 학생의 수를 제한하는 정책을 세우는 것을 보고 그것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 p.179, 카이 버드.마틴 셔윈 지음, 최형섭 옮김
저는 2~3장을 읽으면서 오펜하이머의 부르주아적 유약함과 예민함,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과 반복적인 실험에 대한 회피같은 성향에 대한 거부감도 들었습니다. 감정적 허약함에 맞서려 노력하는 것을 스스로 정신분석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그것은 실험실의 실질적인 반복적인 훈련을 통한 결과물을 내는 것에 대한 무능과 신경과민을 넘어선 우울증은 확실히 이론물리학연구가 천성임을 깨닫기까지 세상과 부딪치는 청년의 몸부림을 세밀하게 드러내보여준것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의외로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청각적 민감함이 굉장히 높은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저도 읽으면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영화 <콜 바이 유어네임>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오펜하이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깊고 항구적인 인상을 남긴 소설로 고뇌하는 영혼에 답을 주었던 책이라는 구절을 읽으며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이 남에게 끼치는 고통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통찰하고 죄의식의 어두운 면을 책을 읽으며 투사하는 그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젊은 날의 초상에 우리를 심연의 깊은 내면속으로 침잠하고 스스로를 투사시킬 수 있었던 책, 문장을 외울수있을 정도로 계속 읽어내려갔던 책.... 그때의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오펜하이머가 정신과 의사의 도움 없이 독서를 통해 우울증을 극복한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최형섭 님 감사합니다. 서양사회의 뿌리깊은 유태인 차별을 오펜하이머도 피해갈 수 없었네요.
“Although the university awarded him a fellowship, he didn’t accept it “because I could get along well without the money.”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 카이 버드.마틴 셔윈 지음, 최형섭 옮김
저는 2장 처음에 장학금 거절하는 모습이 오펜하이머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장면처럼 보였어요. 부족할 것 없이 풍요하게 자라서 그렇겠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간섭없이 하고자하는… 그런 (나쁘게 보면 안하무인 같기도 하겠네요). 그리고 캠브리지 생활에선, 본인이 appreciate (적확한 한글 단어가 생각이 안나요 ㅠㅠ) 되지 않는 장소에선, 성과는 커녕 멘탈을 똑바로 잡고 있기도 힘들다는 사실이 다시 기억났습니다. 선인장도 사막에서 데려와 환경 좋은 곳에 심어주면 더 잘 자란다 는 <랩걸> 호프 재런 박사님 말이 떠오르면서요.
하버드와 케임브리지에서 오펜하이머는 주로 책을 통해 외로운 지적 작업을 했다. 괴팅겐에서 그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 4. 이곳의 일은, 정말 고맙게도, 어렵지만 재미있다, 카이 버드.마틴 셔윈 지음, 최형섭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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