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들은 이런 경험 없으실까요? 가령 '난 음악이 너무 좋고 온 생을 걸어도 좋을 만큼 강한 확신으로 뮤지션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살아 왔는데, 문득 그렇지 않은 스스로를 발견해서 당황하고 내 자신이 낯설었던 경험이요. 그저 좋은 뮤지션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맞닥뜨린 내 자신은 음악 평론가에게도 극찬받고 빌보드차트 상위에도 오르는 그런 음악가임을 깨닫는. 아마 잘은 몰라도 마리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내 삶의 골수라고 생각하며 굳게 믿어온 신념이나 스스로의 모습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의 섬뜩함이요. 저는 언젠가의 제 모습이 떠올라서 이 문장 읽으며 살짝 소름 돋았습니다. ^^;;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함께 읽어요
D-29
Jonas
연해
저도 이 문장 좋았어요. 적어두고 싶었는데 @Jonas 님이 먼저 올려주셔서 반가웠습니다.
'그동안 이게 나에게 맞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나'하는 경험을 저는 최근에 했습니다. 직업적인 부분은 아니었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해야할까요. 사실 저는 엄마와의 관계가 건강하지 못해 30살부터 독립해 혼자 살기 시작했는데요. 그때부터 안정적인 삶에 대한 갈망이 더 강해졌던 것 같아요. 혼자라 불안했으니까요. 그리고 그게 맞다 생각했고요.
근데 그렇게만 살다 보니 감정을 억누르고 절제하는데 익숙해져 건강하게 표출하는 법을 모르는 적당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감정에 더 솔직해지고, 그때그때 불편하지 않은 선택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소 위험할지라도요.
아직은 이게 맞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가짜'가 아닌, '진짜'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더 저답고 건강한 느낌이랄까요.
소복소복
저는 아직 경험이 부족한지 아직 이런 생각에 닿진 않았는데, 저 문장과 jonas, 연해님의 댓글을 보니 뭔가 걱정되기도 하는 마음이에요. 현재 저는 제 인생의 비전을 이루기 바로 전 단계에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평소 꿈꿔온 그 비전이 과연 내가 할만한, 나에게 잘 맞는 목표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고민의 과정이 제 비전을 더 단단하게 다져놓는 계기가 되겠지요? 아무래도 그 상황이 되어봐야 뭔가 결정할 수 있으려나요..
Jonas
우와.. 어떤 일인지는 몰라도 중요한 결정이 이뤄지기 직전이라는 상황만으로도 저는 어어엄청 부러운걸요? ^^ 백세시대이니 그 선택 이후로도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또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여전히 지금 이게 맞나.. 이럼서 보내고 있지요)
우선은 부러움을 가득 담아 응원부터 하겠습니다!
장맥주
인생의 비전을 이루기 직전의 단계라니... 저도 정말 부럽습니다!
장맥주
저는 소설가로 등단한 게 30대 후반이었는데 요즘 기준으로는 늦은 편이었습니다. 당시에도 ‘늦깎이 데뷔’라는 소리를 들었고요. 20대 초중반에 ‘너는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데뷔한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힘 빠져서 글 못 썼을 거 같네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20대, 30대일 때 이런저런 경험을 한 것이 소설을 쓰는 데 다 도움이 됐습니다. 어쨌든 소설가가 되었으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겠죠?
40대 후반이 되어서도 저에 대해서 계속 알아가는 게 많네요. 저는 최근에 저의 적정 수면 시간은 하루 9시간 이상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냥 타고나기를 잠이 많은 사람인 듯한데, 이거 인정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잠이 많은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었나 봅니다.
연해
와, 작가님. 작가님의 에세이에서만 접해왔던 내용을 작가님께서 구체적으로 전해주시니 너무! 신기합니다. 유튜브에서도 종종 들어왔는데, 기자 생활을 하시면서도 소설 쓰기를 놓지 않으셨다는 점이 놀랍고 대단하다 생각했어요. 물론 갑작스러운 퇴사(?)에 불같은 면모도 보았지만요(하하). 그때의 경험들이 지금의 소설 집필 과정에 다 도움이 되셨다는 말씀이 저에게도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어릴 때는 지금의 제 나이쯤 되면(참고로 저는 30대 중반입니다), 저에 대해 어느 정도 다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요. 여전히 새롭고 계속해서 낯선 저를 발견하는 것 같아요.
근데 작가님, 적정 수면 시간이 하루 9시간이라니, 꽤... 긴데요?(ㅋ).
작가님의 글을 읽다 보니 김지선 작가님의 <우아한 가난의 시대>라는 책 속 문장이 떠오릅니다. 조금 다른 맥락일 수도 있지만요.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의 유일한 차이점은 일찍 일 어나는 사람들이 단지 지나치게 우쭐댄다는 정도다."
잠이 많은 건 게으른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 근데 저는 잠이 적습니다(헷).
거북별85
<알래스카의 아이히만>은 우선 아돌프 아이히만과 한나 아렌트가 떠올라 궁금증을 안고 읽은 소설입니다.
타인의 경험을 체험하는 기계라니~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의 기억은 어떤 느낌일까요? 전 왠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체험할 엄두도 못 낼 것 같습니다. 학살자 아이히만을 체험한다면 그에 대한 생각이 바뀔까요?
처음에는 체험기계라니!! 정도로 여겨졌는데 이를 통해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우리의 공동의 합일된 가치, 선등이 무엇일까?? 체험기계를 써야만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예전에는 공동의 가치나 감정이 가능했는데 요즘은 왜 체험기계가 있어야 겨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걸까요??
읽는 내내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지 않은게 걸리더라구요..
거북별85
“ 저는 아이히만에게, 또 나치 독일과 그에 동조한 전 세계의 반유대주의자들에게, 보상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제 발 아래 엎드려 자비를 애걸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들이 자신들이 어떤 일을 저질었는지, 자신들이 한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자신들이 무엇을 부정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p145<알래스카의 아이히만>, 장강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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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별85
“ 선악이 그렇게 주관적인 의도에 흔들리고 역시 주관적인 감수성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일까?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에게 나쁜 일을 저지르는 것과 무덤덤한 사람에게 같은 짓을 저지르는 걸 구별 해야 하는 걸까? ”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p150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장강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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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 그런 감정들은 모두 진짜였다. '진짜 감정'의 힘은 강력하다. 가짜 몸뚱이와 가짜 대사와 가짜 설정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거짓들이 위태롭게 걸쳐진 상태에서도 전체 그림이 어색해 보이지 않게 우뚝 서서 지지대가 되어준다. ”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당신은 뜨거운 별에> / 20%, 장강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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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아무리 가짜가 진짜처럼 되려 해도, 가짜는 결국 가짜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이 문장이 눈에 콕 들어옵니다. 사람들은 그 감정의 격류에 휘말리고 싶어서 극장에 가고 텔레비전을 켜는 것이라는 뒤 문장도요.
고독과 고립을 감내하면서까지 금성에 남고자 하는 수정의 모습이 과학자의 본질 같으면서도, 그곳에서 느낄 복잡한 감정들을 다뤄낸 것 같아 어떤 것이 진짜 수 정의 모습에 가까운 걸까 생각하게 됩니다. 한 편을 다 읽고 감상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중간중간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내려가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거북별85
주변에서 인정받고 평탄한 삶을 살아오신 분께서 갑지기 이런 깨달음이 찾아온다면?? 그럼 두려울거 같긴 하네요~ 🤔
나의 그동안의 시간과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아 허무하고 속상하고 다시 0에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낯선 것에 대한 강한 두려움~
하지만 전 그 정도로 뛰어나게 인정받은 적은 없어서~^^;;
그냥 그 모습 또한 내가 남과 다른 모습을 구체화시키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흔한 말이지만 스티브 잡스가 스텐포드 졸업식에서 했다던 언젠가 이 점들이 나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을 거라던 말을 전 믿는 편입니다
아주 사소한 때로는 힘든 기억들로 쌓여진 오답들이 저로 만들어 가더라구요^^
Jonas
작가님이 SF 좋아하시고 작품들도 쓰신건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동안 읽어보진 못했는데;; 이번 소설집 읽으면서 새로운 글들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이야기꾼에게 "재밌는 얘기 더 해주세요~"하고 막 조르고 싶은 맘으로 이런 글들 더 써주세요 하고 싶달까;;
어제는 3번째 작품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을 읽었는데, 생각지 못한 결말이 있을거라 예상되면서도 결말이 굳이 안궁금하다 싶을만큼! 초반부터 쭈욱 집중도가 높았어요.
앞의 두 편도 이야깃거리가 많지만 세번째 작품은 특히나 더욱 대화들이 기대됩니다 ^^
연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약'을 먹고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되더라도, 누군가 몰래 물에 타놓은 그 약을 모르고 먹게 되는 것과 스스로 복용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당신은 뜨거운 별에> / 21%, 장강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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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이 뒤에 이어지는 '오답을 선택하기 위해 자신으로부터 도망친 아이'라는 수정의 표현도 좋았습니다. 저는 이번 편은 금성이라는 낯선 행성과 인간과 로봇의 묘한(다소 잔인한) 결합들이 신선하기도 했지만, 엄마와 딸의 관계에 더 집중하며 읽었던 것 같아요. 과학자로서 한 길만을 우직하게 파오던 수정의 모습 안에 어쩌면 자신조차 몰랐던 진짜 감정이 숨어있지는 않았을까 싶기 도 했고, 그걸 천천히 알아가는 것 같았거든요. 그 과정에서 딸과 연대하며 마침내 그 집단에서 벗어나려 하는 모습을 굉장히 응원하기도 했고요. 소설에는 없지만,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도 살짝(아니 많이) 궁금해집니다. 여운이 길게 남을 것 같은 이야기였어요. 저는 이제 세 번째 단편을 읽기 시작하렵니다:)
Jonas
@연해님의 글을 읽다보니 문득 궁금증이 생겼어요. 왜 하필 모녀 서사일까. '부자', '부녀' 혹은 '모자' 서사였다면 글의 전반적인 내용이나 분위기가 잘 상상이 안 되는데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하고요. 애증의 모녀 서사가 유독 우리 나라에서 강하게 있는건지 외국도 비슷한건지.. 외국 소설이나 영화 중에 이런 정 서가 느껴지는 작품이 있던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Jonas
똑같은 작품도 읽는 사람마다 정말 다양하게 받아들이는구나 새삼 느꼈는데요.
저는 @연해님의 글처럼 응원하고 싶단 마음이 들기보단, 처음부터 비극의 결말을 베이스로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왜 항상 열린 결말에선 비극부터 생각하고 보는건지..;) 결국은 닿지 못할거고, 다시 만나지 못할거라 생각해서 그들의 이후 서사는 생각지 않고 있었어요. 오히려 수정의 소설 이전의 전사를 궁금해하고 있었답니다. 저는 삶의 소중한 무언가 (가족이든 자신의 꿈이든 신념이든)가 있고, 모든걸 다 걸더라도 그걸 위해 나아가는 인물들에 항상 매혹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금성을 가게 됐을때의 몇년 전 수정의 마음이나, 결국은 그곳에 남게될(?) 상황마저도 감수하는 선택까지 참 그녀답다.. 라고 생각했지요. 저라면 음료회사에 분노하고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더라도 "포기한다"가 선택지였을것 같거든요.
연해
오, 이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정말 그러네요!
저는 '여성'과 '엄마'의 정체성? 으로 봤는데, 애증의 모녀 서사라는 말씀에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재작년쯤에 김지윤 작가의 <모녀의 세계>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서도 말하길 모녀의 세계는 20~30년 이상 뒤엉킨 상태에 머물고 있는 실타래 덩어리 같다고 하더라고요. 부부 갈등과 고부 갈등과는 달리 모녀 갈등에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이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모녀 사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만한 일들조차 아예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고.
그리고 외국 소설 중에도 모녀의 내면 심리를 섬세하게(혹은 잔인하게) 담아낸 작품 중에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으로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딸은 딸이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소설은 읽다 보면 제 경험이 자연스레 묻어나고 떠오르다 이내 비교하며 해석하다 보니 저의 결말은 응원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지금와서 제가 저의 엄마를 바라보며 느끼는 지향점이기도 해서요. 바로 엄마의 삶을 향한 응원이죠. 근데 위에서 제가 말씀드린 <딸은 딸이다>는 오히려 반대의 결말이...
@Jonas 님의 글을 읽으며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니 너무 흥미로워요. '모든 걸 다 걸더라도 그걸 위해 나아가는 인물들에 항상 매혹된다'는 말씀도 인상 깊고요.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저 둘의 관계가 '부자', '부녀' 혹은 '모자'의 서사였다면 제가 또 어떤 마음을 품었을지(?)도 문득 궁금해집니다. 아니면 어릴 적 단짝 친구였다면? 성인이 되고 각자의 길로 갈라섰다가 이번 일을 계기로 우정을 되찾는 서사였다면?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되고요. 더불어 저에게 SF 장르는 아직 많이 낯설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소설에 주요하게 담긴 세계관이나 과학적 상상력보다는 주인공들의 감정과 관계에 더 몰입하는 저를 보며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해력의 부족인지도 모르겠어요(라고 지나가던 문과생이 말했다).
Jonas
수정이 남자 주인공인 헐리우드식 각색을 상상해봤습니다 ㅎㅎ
우선, 지구의 누구에게도 도움 요청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거에요. 탐사선의 동료 외국인 우주인들까지 모두 이끌고! 지구로 무사히 귀환해서 기자회견을 하며 음료회사의 만행을 폭로해버리는거죠. 그 모습을 뒤에서 멀찍이 지켜보고 있는 (과거의 오해로 사이가 멀어진) 마리와 감격의 포옹을 하며 엔딩-
쓰고 보니 제가 꼭 눈물찔찔을 강조한 광고주 대리인이 된 기분이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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