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함께 읽어요

D-29
정작 제가 질문을 던져놓고 늘 고민의 늪에 빠지는 기분입니다. 작품 한 편 한 편이 다 너무 좋았는데, 가장 애정이 가는 인물도 여럿 있어서요. 그럼에도 단 한 명 만을 골라본다면 저는 '사마륨'입니다(마리도 고민했어요). '아스타틴'에 대한 감상을 중간중간 올리면서 '사마륨'의 변해가는(?) 모습들이 참 좋더라고요. 인간미가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제가 지독한 낭만주의자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아스타틴스러움을 말하던 그가 선대 아스타틴과 같은 인간이 되고픈 마음이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변하는 모습도 좋고, 사마륨스럽다는 문장도 좋았어요. "나는 이제 내 형제들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아스타틴이 되려고 해도 될 수 없는 존재다." 사실 '아스타틴'의 등장인물로 가장 괜찮은 인물은 '툴륨'이겠지만, 너무 분량이 짧았어요. 번외로 @Jonas 님과 장작가님의 캐스팅 토론도 흥미로웠습니다(영화 갑시다아!).
예상하신 작품인지는 모르겠네요. 저는 '아스타틴'을 쓸 때 제일 즐거웠어요. 그런데 아마 그 이유는 예상 못하셨을 거예요. ^^ '아스타틴'이 이중에서 유일하게 마감 없이 쓴 글이거든요. '아스타틴'을 쓸 때까지만 해도 마감이 별로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록작 중에서 '아스타틴'보다 더 빠르게 쓴 글도 있고, 결과물이 더 마음에 드는 원고도 있습니다. 그런데 더 여유 있게 쓴 글은 없었습니다. '아스타틴'은 청탁을 받고 쓴 글이 아니어서 '어디 이거 어떻게 되나 보자, 망하면 할 수 없고' 하는 기분도 가볍게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그 시기를 그렇게 추억할 수 있는 거겠지요? 그때는 '나한테는 왜 원고 청탁이 안 오나, 다음 단행본은 언제 낼 수 있을까, 지금 쓰는 이 글은 과연 인쇄가 되어 독자를 만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컸고요. 사실 지금도 많은 작가들이 그런 고민을 합니다.
다시 즐겁게 글을 쓰고 싶기도 하고, 또 저한테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최근에 일을 많이 줄였어요. 마감을 의식하고 허덕이며 쓰면 어떤 한계를 못 넘을 거 같다는 막연한 의심도 있고요. 제가 원래 신문 칼럼을 세 개 연재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두 개를 최근에 그만뒀습니다. 한 칼럼은 마지막 원고를 얼마 전 송고했고, 다음주에 다른 칼럼 하나도 마무리합니다. 그러고 나면 벽돌책 칼럼 하나만 남게 되네요. 이 칼럼은 제가 애정이 있어서 계속할 생각이지만 다른 연재는 더 시작하지 않으려고요. 방송이나 강연 제안도 얼마 전부터 정중히 거절하고 있습니다. 다음달부터는 혼자 지방에서 석 달 동안 머물 생각인데 경장편 원고 개고 작업도 하고 새 장편도 줄거리를 잘 짜서 돌아오겠습니다. 내년에도 서울에는 거의 머물지 않으려고요.
그래서 "마감을 의식하고 허덕이며 쓰면 어떤 한계를 못 넘을 거 같다는 막연한 의심도 있고요."라는 작가님의 말씀이 참 좋기도 해요. 무조건 적으로 일감을 늘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속도를 조절하는 느낌이 들어서요. 저도 적당히 기분 좋은 책임감은 좋아하지만, 그게 의무감으로 넘어가는 순간 좋아하던 일도 싫어지게 되고, 무엇보다 저 답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불편하더라고요. 칼럼도 그만두시고, 방송이나 강연 제안도 정중히 거절하고 계시다는 점은 본업에 집중하기 위한 현명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단행본 저술업자'라는 표현을 선호하시는 작가님의 정체성이 흐려지지 않도록 말이죠. 지극히 팬 입장에서만 말씀드리자면, 저 또한 작가님의 글을 오래 읽고 싶기 때문에 작가님 스스로가 지치지 않도록 건강하게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건 너무나 중요하다 생각해요. 지방에 석 달 동안 머무시는 건 지난 에세이에서 말씀하셨던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같은 것일까요? 부디 그곳에는 커다란 벌레들과 (지옥 제일 밑바닥에 갇힌 하급 악마같은 소리를 내는)고라니가 없기를 바랍니다(ㅋ). 어떤 작품을 안고 돌아오실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네, 레지던스에 갑니다. 이 레지던스 주변에 고라니는 없는데 건물 안에서 지네가 많이 나온다는 얘기를 며칠 전에 들었습니다. 오 마이 갓... 지네의 생태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는데 알면 알수록 싫어지는 생물이네요. ㅠ.ㅠ 오늘 살충제와 끈끈이를 샀는데 살충제는 잘못 샀습니다. 제가 산 상품이 지네에는 효과가 별로 없다고 하는군요.
강연과 방송 출연을 사양하는 것은... 머리로는 그게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하는데 결심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어요. 제 수입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고, 다른 수입들은 무척 들쭉날쭉하거든요.
작가님의 신문 칼럼도 기다리며 읽고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그래도 벽돌책 칼럼은 계속 하신다니 다행이고요. 최근에 쓰셨던 <흥미로운 중년이 되기 위하여>는 특히나 좋아서 주변 지인들이랑 이야기 많이 했었답니다. 저도 나이 들수록 고민 많이 하는 주제였거든요. 옛날 이야기만 하는 중년은 되지 말아야지 하고요. ^^;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278952?sid=110 아, 그리고 8월에 출간 예정이라고 들었던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단편집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엇! 저도 이 칼럼은 지인이 공유해줘서 알게 됐는데, 읽으면서 '그래 이거다!'했던 기억이 떠올라요. 빠름에 미쳐(?)가는 것 같은 사회가 종종 두려울 때가 있거든요. 뒤처지면 큰일 날 것처럼 호들갑 떨지만, 정작 그 속도감에 깊이가 있다면 삶은 더 다채롭고 충만해질 거라 믿어요. 보여지는 게 다가 아니고, 반짝 아름다운 것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법도 없죠. 순간의 쾌락에 취해 삶을 잃어버리기보다는 조금 느릴지라도 서서히 자신만의 영역을 공고히 다져가는 분들의 삶이 더 빛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요. 저는 꽤 고리타분한 사람이라 가끔 이 세대와 맞지 않다고 느껴질 때가 많아요. 일단 느리고, 사색을 좋아하고, 꽤나 진지하다보니 우스꽝스럽게 보일 때도 많거든요. 그럼에도 작가님의 책 중 <책, 이게 뭐라고>의 문장에서 위안을 얻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현대 사회는 진지한 인간들을 싫어한다. 광고와 열광에 기대야 하는 이들은 거대한 질문, 예를 들어 ‘왜’와 같은 물음에 “그냥요”라든가 “재미있으니까!”라고 답하는 부류를 선호한다. 의미가 아니라 느낌을 추구하는. 그런 이들은 같은 질문에 긴 답을 품은 사람들을 떨떠름히 여기고, 진지충이라고 놀린다. 자신들이 결핍하고 있는 것, 진지함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는 어떤 가치들을 우리들이 가졌다고 의심하고 질시하는 걸까."
연해님 글을 읽을때마다 제가 느꼈던 감정을 똑같이 느끼실 때가 있어 참 반갑습니다^^ 저도 <책, 이게 뭐라고>에서 작가님의 이글에 깊이 공감했고 그래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좀느리고 깊이 생각하기를 즐기는 저의 모습에 덜 외로웠어요^^ (저도 혹여라도 진지충으로 낙인 찍힐까봐 저의 모습에 가면을 쓰며 같은 고민을 가지신 분들을 찾아다녔네요~~ 암호명을 대며 본색을 드러내야 할거 같은^^;;)
@거북별85 님! 이렇게 마지막까지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동안 참여도와 기여도가 정말 높으신걸요. 저와 같은 감정을 느낄 때가 있으셨다니 저야말로 반갑고 기쁜 마음이에요. <책, 이게 뭐라고>도 정말 좋죠? 저도 굉장히 애정 하는 에세이 중 한 권입니다. 암호명에서 웃음이 났어요(귀여우셔라). 저도 저의 진지함이 우스꽝스러워질 될 때가 자주 있어서 되도록 숨기려고 하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저와 비슷한 결의 사람들을 만나면 내적 친밀감이 무한상승하는데, 이 공간에서 @거북별85 님과의 소통이 그랬던 것 같아요.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매번 연해님의 길고 세심한 답글을 보며 항상 반갑고 고마우면서도 대단하시다 싶었습니다~😊👍 연해님이 있는 독서모임에서도 이렇게 세심하게 진행하시는지 궁금했어요(저도 나중에 내공이 쌓이면 연해님처럼 모임지기로 도전해볼까봐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고 덕분에 무척 즐거웠습니다~ 처음 그믐에서 <문맹>으로 했었는데 정이현 작가님이 세심하게 매번 답글과 좋은 발문으로 이끌어주셔서 참 즐거웠는데 이번 <당신이 보고싶어하는 세상>도 참 좋은 기억으로 남겠습니다 그리고 장작가님은 정말 매번 너무 답글 잘 주셔서 혹시라도 제가 스토커처럼 부담드리는건 아니길~~^^;; 바랍니다~ (작가님 책도 참 좋아하고 궁금한 점들도 좀 많아서~) 항상 건강 챙기시며 좋은 작품 매번 기다리겠습니다~~^^
어맛! 안그래도 @연해 님이랑 <문맹> 이야기도 위에서 살짝 했었는데 넘 신기한 인연이에요!! 위에서 수학여행 같다는 이야기했는데 @장맥주 님의 참여 덕분에 건넛방에 있는 담임 선생님까지 합류한 수학여행 같습니다. ㅎㅎ 저 어릴때 좋아한 Skid Row 라는 락밴드 내한공연이 있어서 학교엔 "미국에서 친한 친구가 와서요"하고 결석하고 쉐라톤 호텔 자정에 하는 콘서트 온적이 있는데 (무려 강원도에서요!! ㅎㅎ) 그때같은 한여름밤의 꿈 느낌입니다 ^_^ 그날 마법같이 콘서트 끝나고 새벽 동틀때까지 호텔 로비서 지나가던 락밴드 멤버들이랑 세시간쯤 이야기한.. 선물같은 순간들이 이렇게도 생기네요.
와!! 정말 멋진 추억입니다~~~☺️ 전 음악이나 과학쪽에 문외한이지만 @Jonas 님 글만 읽어도 너무 황홀한 추억이네요 전 처음 <문맹> 책 그믐에서 읽을때 '아고타 크리스토프' 작가님이나 '정이현' 작가님도 모르는 제가 '문맹'상태였지요~ㅜㅜ 하지만 찬찬히 읽으며 '모국어'의 소중함이나 이방인으로서의 느낌들을 새롭게 느낄 수 있어 즐겁게 읽었답니다(처음 그믐에서 활동할 때는 모두 닉네임이셔서 작가님들이신 줄도 모르고 오지랖 넓게 참견하는 흑역사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답니다~😅)
감사합니다. 시사 칼럼 두 편과 벽돌책 칼럼, 그렇게 칼럼 세 편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시사 칼럼들은 이번에 정리했습니다. 내일 마감인 모 일간지 칼럼 원고가 마지막입니다. 한때는 칼럼을 여섯 군데에 연재하기도 했는데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칼럼 작업 자체는 즐겁기도 했고 애정도 있었는데 이게 쌓이는 글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그냥 제 조바심인지도 모르겠지만... 월급사실주의 동인 앤솔로지는 9월 1일 출간 예정입니다. 제목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월급사실주의 2023』으로 정했어요. 표지가 꽤 귀엽습니다. 벌써 언론 인터뷰도 한 매체와 했네요. 제 단행본보다 더 공들인 기획이었는데, 만감이 교차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많관부.. 올해 읽은 소설 엔딩 중 베스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 엔솔로지에 함께하시는 이서수 작가님의 글 손꼽아 기다리고 있답니다. 제게는 처음인 작가님들도 꽤 계셔서 9월도 여러 글 찾아 읽느라 행복하게 바쁠것 같아요. 좋은 기획 감사드려요.
나의 동생 많관부! 저도 정말 좋았습니다. 진짜 글 잘 쓰신다 싶었고요. 이서수 작가님 꼭 섭외하고 싶었는데 승낙해주셔서 박지성 골 들어갔을 때 히딩크마냥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했습니다. 그런데 앤솔로지에 실린 이서수 작가님 단편은 아직 못 읽어봤습니다. 교정 작업 때 서로 글을 돌려 읽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교정 마치기 전까지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작가님들도 몇 분 계셨어요. 그래서 다들 책이 나오면 그때 읽기로 하자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수록작을 다 읽어본 사람은 문학동네 편집자들뿐입니다. 작품 수록 순서는 그냥 작가 이름 가나다 순으로 하셨더라고요.
저도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중에서 '젊은 근희의 행진' 너무 좋았어요. 작가노트 제목도 '동생을 이해하기 위하여'라니... 5월에 출간된 <젊은 근희의 행진> 소설집을 아직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월급사실주의 동인 앤솔로지에 이서수 작가님의 글도 있다니 저도 설레는 마음이 또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저는 재작년에 <미조의시대> 처음 읽고 너무 충격받았어요. 그전에 전혀 몰랐던 작가님인데 대체 어디 계셨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거지.. 할만큼 너무 좋아서 놀랐답니다. 그래서 이번 <젊은 근희의 행진>은 기다리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미조의시대 보다 별로면 어떡하지.. 비슷한 내용이나 스타일이면 어쩌지 하고 읽기 전에 살짝 걱정도 있었는데.. 웬걸요.. 젊은 근희도 너무 좋아요..ㅠㅠ 동어반복 이 아니면서 좋고, 무엇보다 읽는 맛이 끝내줬어요. 뭔가 이서수 작가님 글들은 노희경 작가님 드라마 볼때 건드려지는 그 비슷한 느낌이 있는것 같아요. 미조의시대 읽고도 @장맥주 님의 <산자들> 생각나면서 월급사실주의동인 함께 하시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렇다기에 저도 어어엄청 기뻤습니다. ^__^
와, @Jonas 님의 독서력은 대체... 이 방에서 추천해 주신 책들만 해도 정말 다양해요! 말씀해 주신 <미조의 시대>도 잘 몰랐는데, 덕분에 방금 검색을 해봤어요. 2021년 이효석문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네요. <젊은 근희의 행진>에도 수록된 작품이고요. "무엇보다 읽는 맛이 끝내줬다"는 말씀에 영업당하는 중입니다. <동물권력>도 @Jonas 님 덕분에 잘 읽고(는) 있어요. 이해는 또 다른 영역이겠지만요(ㅋ). 9월 1일이 너무 기대됩니다:)
아, 저는 사실 <젊은 근희의 행진>에서 결말 보고는.. 솔직히 '도망가, 문희야....' 하고 생각했어요. ㅠ_ㅠ 정말 나쁜데 솔직한 심정은 그랬답니다. 그래서 결말에 울컥, 짠한 맘의 51%는 '어우.. 문희야... 야아~아!! 어쩌자고 그래..이것아.. ' 였답니다. 아마도 그래서 <당신은 뜨거운 별에> 의 마리를 마냥 응원 못하나봐요. 저는 수정보다 마리가 더 맘에 쓰인것 처럼 근희보단 문희가 더 맘에 쓰였답니다. 가끔씩 저도 제 자신을 들여다 볼때 이렇게 좀 차가운 부분을 발견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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