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함께 읽어요

D-29
나름 전공분야이기도 한데, ‘변상증’이라는 용어도 처음 알게되어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작품에서 작중화자가 겪는 현상은 변상증이라기 보다는 좀더 순수한 환각(환시)에 가깝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말에 <사이보그의 글쓰기>에 대한 내용만 없어서, 이건 소설이 아니라 진짜라서 작가후기에 언급을 안 한건가? 라는 실없는 생각도 해 보았고요.
고맙습니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데 카프카의 『변신』을 두고 어느 책에서 ‘문학사상 가장 성공적인 자전소설’이었던가, 콕 찝어서 ‘중년 소설가의 자전소설’이라고까지 했었던가, 하는 문구를 읽고 한참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변신』이 자전소설인 정도로는 「사이보그의 글쓰기」도 자전소설입니다. 제가 그런 장치를 쓴 적도 없고 카이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도 없지만요. 한창 슬럼프를 겪으며 우울감을 느낀 시절이 있었고, 그때 썼던 단편이에요. 카이스트는 2019년까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고 합니다. 지인 소설가를 포함해서 예술가 30명이 카이스트에 머물렀다고 하는데, 저도 한때는 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학생들과 워크숍을 하는 게 귀찮기도 하고... 어쨌든 올해 하반기와 내년에는 이곳저곳 레지던시 생활을 하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하늘 보기 어려운 곳인데 너무 답답해서요. ㅠ.ㅠ
수록작은 200자 원고지 1200매 분량 안에서 제가 싣고 싶은 우선순위대로 골랐습니다. 요즘은 소설책이 너무 두꺼우면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해서 고민이 많네요. 편집자들은 400쪽을 안 넘기려고 하는 거 같은데 이번 책의 경우 끝내 넘어버렸어요. 「노라」랑 「센서스 코무니스」 둘 다 STS SF의 정의에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하는데, 순위에서 밀렸습니다. 당초에 실으려고 했던 자율주행차 소재 단편을 제대로 썼으면 「아스타틴」도 뺐을 것 같습니다. 이 단편은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서, 경장편으로 쓰려 합니다. ‘작가의 말’도 원래는 꽤 길게 썼는데, 200자 원고지 15매 분량에 맞춰 줄였습니다.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면 「사이보그의 글쓰기」 레퍼런스도 좀 적었을 것 같습니다. 책에 묘사한 증상은 제가 자주 겪는 일인데, 이게 변상증이 아니라 환시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작가님. 저는 <센서스 코무니스> 너무 좋았습니다. 웨어러블 뇌파측정기 개발하시는 분과 함께 창업해 볼까 생각도 했고요. 만약에라도 창업하게 되면 작가님 지분은 잊지 않고 챙겨놓겠습니다.ㅎㅎ 변상증은 의미 없는 패턴이 의미있는 모양으로 보이는 일종의 착각(illusion)인데 나중에 과다사용으로 세게 부작용이 나타날때는 멀쩡한 벽에서 팔, 다리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는 착각보다는 환각(hallucination)의 일종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으하핫. 지분 미리 감사합니다. 각 작품들의 고증 노력은... 음... 거의 안 했습니다. 그냥 대강 인터넷 검색으로... 그럴싸해 보이면 그걸로 됐다 싶은 그런 마음으로... 음... 어...
방금 <알래스카의 아이히만>을 다 읽었습니다. 아주 오묘한 심정이에요.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어요. 그때는 시종일관 반성과 참회없는 표정이 참기 힘들게 불쾌했었는데 아이러니하게 책에서 아이히만이 무릎꿇고 비는 모습이 통쾌하지 않고 인상이 찌푸려 졌어요. (왜 이런 장면을 넣으셨을까 차라리 끝끝내 반성하지 않는 모습이 더 위안일텐데 라면서 읽다가 뒤에 반전에서 역시 작가님👍👍) 책에 '입장 바꿔 생각해본다' 라는 문장이 나오는데요. 만약 체험기계를 통해 가해자가 피해자의 기억을 경험하고 입장을 모두 이해해서 용서를 구한다 하더라고 일어났던 사건이나 상황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 이게 참 어렵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은 정말 걸작인 것 같습니다. 신경과학과 관련된 내용도 굉장히 고증이 잘 된 것같습니다. ‘디그램 세포’라는게 실재하는지 찾아보았지만, 아마도 엔그램 세포(engram cell)에서 착안한 작명이지 않을까 추측해 보았습니다. 작품에 나온 체험기계는 엔그램 세포 하나하나를 조작하는 대신 엔그램 세포의 활성화 패턴의 색인정보가 있는 디그램 세포의 활성도를 측정하고 이를 타인의 디그램 세포에서 활성화 시킨다… 라고 이해했는데 맞겠지요?
타인은 타인인 채로 남아 있는 게 좋다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p.163, 장강명 지음
저도 이 부분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간 생각치 못했던 것이기도 하고요.
이 문장과 체험기계가 상대의 주관적 기억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내용을 보면서 ‘공감’의 학술적 의미가 떠올랐습니다. 정서의 원천이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있고(동감x), 타인과의 정서적 일치가 나타나기 이전에 인지적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며(군중 심리, 감정 전염x), 주체가 타인과 자신을 구별하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음(감정 이입x) 결국 우리는 상대랑 원활하게 대화하고, 그 과정에서 이해하기 위해 공감을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우리’는 하나가 아니라 나와 너로 구별되어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해보고 유사한 감정을 느끼고, 위로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너를 공감하기 위해 그 사람의 경험을 직접 체험해보는 것은 공감이라기보다는 동감, 감정 전염이 아닐까 싶어요. 직접 그사람의 기억을 체험하고 나서야 그 사람이 이해되는.. 이런 건 진짜 공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의 삶을 경험해보지 않고도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대화를 한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처럼 직접 그 사람의 상황을 생각하고(인지적), 유사한 감정을 가지고(정서적), 이를 바탕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더 좋은 방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으로 우리가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바로설 수 있는 것 같아요. 모두가 서로를 경험한다면 진짜 내 자신은 막 섞 |여버릴 것만 같네요.
쓰고 생각해보니 주제와는 살짝 동떨어진 이야기같기도 하고요..,ㅎㅎ 다른분들이 말씀해주신 것들 보면서도 많이 고민하고 갑니다ㅎㅎ
오, '감정 전염'이라는 단어가 강렬하네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일방적인 투입에 가깝지 않나 싶기도 해요. 중요한 건 상대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노력과 정성'이 선행되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의 삶을 경험해 보지 않고도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대화를 한 것이라고 봅니다."라는 말씀처럼요. 한 끗 차이로 잘못 나가 '감정 노동'이 되어버릴 수도 있을 테니까요. 공감자에 대한 흔한 착각이 '모든 사람과 원만하게 지내는 선한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소복소복님 말씀처럼 서로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우선은 내가 있어야 너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소복소복님의 글을 읽으며 오늘도 공감!! 버튼 누르고 갑니다^^ 체험기계를 통한 공감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공감하는 법을 찾아야하는게 맞는거 같네요 어느 순간부터 빠르게 변하는 각자의 알고리즘 세상에서 살다보니 보편적 윤리의 기준이나 근거도 희미해져 가는거 같습니다 글쓰는 것을 좋아하셔서 글과 생각이 명확하게 잘 와닿았나 봅니다^^ 그믐에서는 오타가 발생해도 삭제기능을 쓸 수가 없는데 긴 글을 오타없이 정갈하게 장문으로 쓰시는 분들이 많으신걸 보면 숨은 고수님들이 여기에 많지 않을까 살짝 예상해봅니다^^
저도 챠우챠우님 글처럼 <사이보그의 글쓰기>는 사실인가 싶을정도로 왠지 의심하며 읽게 되었답니다^^;; 뭐랄까 장작가님을 1인칭 주인공 시점인 이 단편은 <책 이게 뭐리고> 쓰실 때쯤 인거 같은데 그때의 고민들이 <사이보그의 글쓰기>에서 똑같이 언급하시니 더 현실같이 느껴지더라구요~~^^;; 작가님 책들 중 워낙 문학상 받은 작품들도 많지만 전 작가님을 처음 접한 책이 <책,이게 뭐라고>이고 이책을 통해 <그믐>을 알게 되어 참 의미있는 책이랍니다 너무 친근하고 재미있는 문장들, 그러면서도 냉소적이면서 또 고민되는 문제들이 언급되어 <책, 이게 뭐라고>를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사이보그의 글쓰기>에서 비슷한 내용들이 나와 재미있으시면서도 실감이 났어요~ 그런데 작가님의 그 당시 이야기들은 너무 위트있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하시는데 우울증으로 많이 고생하셨다는 이야기에 참 걱정되면서도 신기했습니다 그렇게 우울하신데 그 어떤 작가들보다 재미있는 글을 쓰시다니 의아했습니다 작가님 본인을 1인칭 주인공시점으로 표현할 때 뛰어난 유머감각과 위트 그러면서도 냉소적인 시선들이 느껴지시는 분들이 제 주관적인 기준에서는 장강명 작가님, 박상영작가님,김보통 작가님이신데~~ 글은 너무 재미있으신데 모두 우울하신건 아니신지 이번에 <사이보그의 글쓰기>를 읽으며 좀 걱정되었습니다~ㅜㅜ 모두모두 건강하게 오랫동안 좋은 글을 계속 써주시면 너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제 우울증은 그리 심하지 않았고, 항우울제 복용도 금방 그만뒀어요. 그런데 우울증 에피소드를 고백했더니 아는 작가들이 여러 분 자기도 우울증 겪고 있다면서 고백을 해오시더라고요. 그리고 제 우울증 삽화는 그 분들에 비하면 상당히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굉장히 놀랐어요. 그나저나 저는 가끔 이렇게 1인칭으로 제가 등장하는 소설 쓰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적당히 사실 섞어서 읽는 분들 헷갈리게... 그렇게 쓰는 이유는 다분히 장난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얘기하면 안 되려나요?) 즐겁게 읽어주신 것 같아 기쁩니다!
작가님께 이렇게 답장도 받고^^ 넘 좋으네요~학생때 부터 아이돌보다 작가님 덕질한게 다행이다 싶네요~ 1인칭으로 등장하는 글을 쓰시는게 재미있으시다니 다행이네요~앞으로도 종종 볼 수 있을테니까요^^ 전 장작가님 에세이나 1인칭 등장 글은 왜 그렇게 유머러스한지 지하철 탈 때는 읽지 않는 편이랍니다( 혼자 책보며 빵빵 웃으면 옆자리분이 조용히 다른곳으로 옮기실까봐^^;;) 개콘이나 코미디빅리그보다 장작가님 글이 재미있는건 저만 그런건 아니겠지요??^^(딸들도 재밌다고 동의해주었는데~~^^) 글을 유머러스하게 쓰는 것은 노력으로 되는걸까요?? 아무래도 재능없이는 힘들거 같은데~ 그리고 우울증은 심하지 않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전 예술가가 아니지만 행복하게 글을 쓰실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시간이 흘러도 아직도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기분이지만 가족도 있고 이렇게 책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항해가 덜 외롭네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말씀만 들어도 마음이 붕 뜨네요. 제가 20대 초반에 재빨리 깨달은 사실인데, 제 유머에 웃는 분이 되게 적더라고요. 여전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태연한 얼굴로 농담하고 안 먹히면 유머가 아니었다는 듯이 무표정을 유지하는 버릇이 들었는데 글도 좀 그렇게 쓰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한국에는 일종의 ‘농담 프로토콜’이 있는 거 같아요. 농담을 던지기 전이나 후에 ‘이거 농담이야’ 혹은 ‘이거 농담이었어’ 하고 표정이나 보디랭귀지로 설명을 해주는 게 그 프로토콜의 일부인 듯합니다. 그래서 가끔 어떤 분들은 제 농담이 퉁명스럽다거나 공격적이라거나 아니면 ‘가끔 이상한 말을 한다’고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그건 저하고 가까운 사이냐 아니냐와는 상관이 없더라고요.
와... 위에 남겨주신 모든 분들의 글들이 다 너무 좋네요. 찬찬히 읽으면서 내려오는데 대화의 밀도가 높아 그런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이 많았어요(개인적으로 우울증에 대한 솔직한 얘기가). 저는 아직도 세 번째 편에 머물러있는데, 약간의 스포를 당하긴 했지만 그조차 즐겁습니다. 다음 편들이 기대되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거북별85 님의 "모두모두 건강하게 오랫동안 좋은 글을 계속 써주시면 너무 좋겠어요."라는 문장에 "저도요!"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일요일 밤은 대체로 월요병을 견뎌내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곤 하는데, 왠지 오늘 밤은 이 공간 덕분에 마음이 넉넉한 상태로 잠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앗 제가 혹시 스포를 했다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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