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구역 부산 - 비록 부산행은 안 봤지만, 글만 봐도 어떤 상황과 배경일지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져서 좋았습니다. 온전한 단편이라기보다는 장편의 맛보기 편 정도의 느낌이어서 아쉽긴 했지만, 그만큼 이어질 이야기에 흥미가 생긴다는 것이겠죠? 진행되는 내내 흥미진진하고 긴장감이 있었고, 마지막에 약간의 반전도 있어서 재밌었어요. 영화보다는 웹툰이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면 어울릴 것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비치리딩 시리즈> 1. 먹구름이 바다를 삼킬 무렵 -부산 배경 장르스릴러 단편 읽기 모임
D-29
KarenJ
KarenJ
<내가 여기에 있었음>
'내가 여기에 있었음'은 소재나 방식이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고, 마음에 여운이 꽤 남았습니다.
원하는 것들을 쟁취하고자 했고, 나름의 큰 업적을 이루려고 했던 인간의 욕망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부질없어지는지...
죽은 후 존재의 일부만 남아 수중 드론으로 옮겨간 화자가 자신의 삶의 회상할 때,
재산도 명예도 업적도 아닌 사랑한 사람과의 관계와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이 가장 크게 남았다는 것이 울림을 주네요.
하지만 그 후 어떤 거룩한 생각과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복수를 실현하는 모습은, 화자가 여전히 '인간'임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인간 존재의 외로움, 불완전함과 유한함을 곱씹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맑음한때비
올여름 기가 막힌 휴가 선물이었던 '먹구름이 바다를 삼킬 무렵'. 얇아서 하루에도 다 읽어버릴 수 있는 두께였지만 시간을 두고 일부러 천천히 야금야금 읽었어요. 처음에는 설렁설렁... 두 번째 읽을 때는 조금 더 몰입해서 읽어봤습니다. '내가 여기에 있었음'이 특히나 인상적이었어요. 드론에게 빙의된 사람의 독백이라는 설정이 무엇보다 흥미로웠어요. 주인공이 기계로 빙의된 상태를 이해하고 라온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깨달아가고 조작된 유언의 비밀을 알게 되는 과정 전부가 흡입력 있게 읽히는 알찬 단편이었습니다. '배터리가 영혼인 내게'로 시작하는 문장을 읽을 땐 또 얼마나 웃었던지. 라온이나 은재와 같은 중성적인 이름을 쓰신 탓에 인물간의 구도를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었고요. 봄에 요트를 타봤었는데 그때의 느낌이 소설을 읽는 내내 따라와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HB
!3 폐쇄구역 부산
‘좀비 아포칼립스’는 영화 《부산행》을 비롯한 국내외의 완성도 높은 미디어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장르이며, 코로나19 팬데믹을 경유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 세계에서 ‘좀비 창궐’ 그 자체나 원인은 이제 핵심으로 다뤄질 필요가 없다. ‘좀비가 창궐한 지옥 같은 세계’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불합리하고 지옥 같은 세계’를 빗대는 허구적 리얼리즘의 장치로서의 기능이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의 유행 코드는 더 이상 ‘좀비 사태’ 그 자체가 아닌, ‘좀비 창궐 세계에서 지속되는 삶’으로 옮겨간다.
〈폐쇄구역 부산〉 역시 작중 언급되는 영화들로 친숙한 ‘좀비 아포칼립스 부산’을 무대로 시작된다. 항구가 자리한 부산에서 좀비 사태가 창궐했지만, 이미 봉쇄 조치가 완료되어 통제된 도시다. 좀비 창궐의 혼란과 갑작스런 피란통에 도시의 주민들이 미처 수습하지 못한 재산이 산재했고, 특히 해운대에 조성된 고급 단지 같은 경우에는 남겨진 재화의 가치가 상당했다. 국가적 혼란이 수습될 무렵, 의뢰를 받고 부산에 남겨진 중요한 물건이나 보물들을 수습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트레져 헌터’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도심의 목표물 회수를 방해하는 좀비와 맞서기 위해 총기와 폭발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프로 용병과 같은 존재다. 도심에 남겨진 재화를 수습하는 ‘트레져 헌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큼, ‘부산’의 묘사 역시 치밀한 측량을 바탕으로 그려지며, 부동산 시세와 함께 가늠되는 목표물의 품질은 그 속물성만큼이나 익숙하게 피부에 와닿는다.
치밀한 도입부가 독자의 구미를 당기는 순간, 좀비 원더랜드 부산은 토끼발이 달음치듯 재빨리 배경으로 물러난다. 연잇는 미국 대통령 일가의 의뢰, 사냥꾼 간의 내분, 대한민국의 보물, 대장의 비밀……. 콤펙트한 초고농축 비타민처럼 밀도 높은 정보량이 단편 소설 속에서 부대껴온다. 세기말 실재하는 도심을 배경으로 물건을 회수하려는 ‘트레져 헌터’들이 벌이는 활극은 동명의 게임으로도 제작된 러시아의 소설 『메트로 2033』(드미트리 글루코프스키, 제우미디어, 2010.)의 구도가 떠오른다. 해운대 고층 타워 내부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시가전은 치밀한 밀리터리 연출이 곁들여져 책장에 손 땀을 배게 한다.
정명섭의 단편 〈폐쇄구역 부산〉에서 도시는 허구적 상상력이 동반된 영화나 게임 속 배경 같은 인상을 준다. 《부산행》,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 미디어 속에서 ‘부산을 탈 코드화하여 재구축하려는 시도’(박훈하, 〈새로운 인터페이스 '광안대로'에서 바라보기〉, 《오늘의문예비평》48호, 2003, 100쪽.)는 익숙한 우리에게 동시에 충분히 탐색 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밀한 설정으로 구획되고 긴박한 액션이 그려지는 해운대 고층 타워는 미국 대통령이 숨겨놓은 보물이라는 거대한 파도로 널뛰기한다.
재미있는 방법으로 조밀하게 재배치된 〈폐쇄구역 부산〉의 설정들은 작가의 긴박감 넘치는 필력과 맞물려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이야기의 속편이나 더 긴 볼륨으로 다시 만나보고 싶은 이야기다.
영진
[먹구름이 바다를 살필 무렵]
작품의 배경이 '대공아파트'라는 점이 작품 말미까지의 흐름과 힌트를 암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에서 대공아파트에 4동이 없는 이유가 '죽을 사'와 연관있어서 아닌가라는 농담 섞인 대화가 오갔는데요. 혹시 이 외에도 별다른 암시나 장치의 차원에서 관련 설정을 넣은 것인지 궁금해 여쭙습니다.
영진
[먹구름이 바다를 살필 무렵]
호러 장르에 엄격한 개연성을 따지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장 실장의 배신 부분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고용주(아버지)와 합의는 된 사안인지도 의문이 들고요. 분량 제한이 있다보니 힘 줄 부분에 힘주고 힘 뺄 부분에 힘빼셔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신의 내막에 대해서도 기회가 된다면 풀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진
[폐쇄구역 부산]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을 줄 정도였는데요. 개인적으로 영상물로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짧은 분량의 소설이 가지는 장단점을 영리하게 잘 활용한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반전도 뭔가 웃음이 나오면서도 나쁘지만도 않았습니다.
영진
[내가 여기에 있었음]
작품 속 주요 인물인 라운은 설정만으로도 매력적인 인물이었습니다(인물이 맞겠죠?라는 생각도 드네요 순간). 본모습을 마주한 적 없는 주인공이 사랑에 빠졌던 이유도 납득이 갈 정도였습니다. 이쯤되 면 아바타와 실제 신체 중 본모습이 무엇일까라는 의문도 드네요. 미래를 반영한 것 같은. 라온에 대한 이야기로 따로 소설을 쓰셔도 저같은 독자들은 재미있게 읽을 것 같습니다.
영진
[비치리딩 시리즈]
평소에 책을 뒤지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처음 접하는 작가분들이어서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작가소개란을 보니 작가님들 모두 왕성한 작품생활을 하시는 분들이었더라고요. 다시금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귀한 기회를 주신 인디페이퍼측과 그믐에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좀 더 길게 생각을 주고받고 싶었는데 하필 독서 기간 중 코로나에 걸려서; 이제서야 올리네요..
HB
!3 내가 여기에 있었음
김주영의 〈내가 여기에 있었음〉은 인간 존재의 고유성과 경계를 허무는 ‘포스트 휴먼’적 상상력을 경유해 유능한 여성 공학자의 초탈한 듯 회고적인 문체로 서술되는, 이른바 요즘 감각이 오롯이 반영된 SF 소설이다.
성공한 공학자로서 큰 자산을 축적했던 ‘나’의 의문의 죽음과 유언의 진실을 알아가는 이 소설은 탄탄한 구성과 반전을 통해 단편 소설의 덕목을 보여준다. 근미래 부산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서정적인 SF와 고딕 환상소설의 기괴함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읽는 내내 입체적인 즐거움을 안겨줬다.
회고에 이어 비인간 존재로 눈을 뜬 화자가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소설은 시작된다.
과학기술의 실험적 결과물인 화자와, 자신이라는 존재를 설계한 화자 자신이었던 인간은 존재의 연장선에 있는 동일한 존재일까. 스스로를 인식하는 과정이 원만해 보이지는 않지만, 새로운 ‘몸’을 경유해 활동하고 세상과 부대끼는 과정이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그려진다. 그 존재가 설령 비/동일한 것이라 할지라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정동하는 존재가 가짜일까. 심원이 무엇과 맞닿았는지 모를 거대한 물웅덩이에 잠겨 우리는 그것을 바다라 부른다.
만일 휴가철 부산을 찾은 독자가 바닷가 축제를 찾는다면, 해변 가까이 노니는 상상력의 바다에서 인어 그림자가 스쳐 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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