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꾸러미 : 오진원 <플로라의 비밀>

D-29
안녕하세요, 동화꾸러미 두 번째 모임을 열어봅니다:D 함께 읽을 책은 오진원 작가의 장편동화 <플로라의 비밀>(2007)입니다. 개인적으로 같은 작가의 <꼰끌라베>(2009)도 흡입력 있는 판타지 동화라 인상 깊었습니다. <플로라의 비밀>은 출간시기가 오래되었지만 일전에 동화 공부하던 모임에서 추천받았던 작품이라 이번 기회에 읽어보려 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언제든 찾아와 얘기를 나눠주세요. 감사합니다!
우리가 사랑한다 말할 때 저 광활한 우주에는 새로운 행성이 탄생한단다. 그 행성은 모래알보다 작지만 빛보다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때문에 무한한 에너지를 방출해 낼 수 있지. 한번 탄생한 행성은 사라지지 않아. 그래서 우리는 그 행성을 '플로라'라고 부르지. 플로라란 영원하다는 뜻이야.
플로라의 비밀(문지아이들 82) 11쪽, 오진원
플로라 행성의 이방인 같은 존재인 푸르니에 할머니. 그녀의 입으로 시작하는 플로라의 역사는 언젠가 닥쳐올 종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빛이 어둠을 이긴다기보다 빛이 어둠에 먹혀버릴 것으로 끝맺는 첫 장이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엘르윈, 나는 당신처럼 되고 싶어요. 이렇게 평생 심부름만 하며 살고 싶지는 않아요. 나같이 한심한 아이도 당신처럼 될 수 있을까요. 당신처럼 당당해질 수 있을까요.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플로라의 비밀(문지아이들 82) 42쪽, 오진원
푸르니에 할머니의 양손자, 마로는 외형으로나 됨됨이로나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습니다. 할머니를 위한 일상적인 일들만 하는 것에 진저리가 난 건 마로가 성인이 되어가는 길목에 있고 혼란을 겪는 한창때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독자가 나이를 막론하고 이입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경과 갑갑함이 뒤섞인 마로가 이 이야기에서 어떤 역할을 마침내 해낼지 궁금해요. 한편 마로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어서 푸르니에 할머니는 마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반전이 있을지 기대됩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1인칭을 택했을까요?
난 내 마음을 잘 다스리려 노력할 거예요. 내가 걷는 이 길 끝에 내 삶을 변화시킬 방법이 있을 거예요.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길이잖아요.
플로라의 비밀(문지아이들 82) 163쪽, 오진원
남들 보기엔 우스워 보이겠지만 그건 내가 내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에요. 자신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요.
플로라의 비밀(문지아이들 82) 163쪽, 오진원
생각보다 빨리 읽기를 마쳤는데요. 세 명의 어린이 인물들이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의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먹먹했던 것 같아요. 책 속 플로라 세계에서 13살 어린이는 '작은 어른(페페르온)'으로 불리며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할 권리를 부여 받지요. 그러나 생각지 못했던 인생의 시련이 더해지고 이제까지 믿던 것과 전혀 다른 진실을 알게 되면서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립니다. 그럼에도 '함께'이기에 이들은 끝까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합니다.
어쩌면 윗 세대 어른들에게 비극적으로 휘둘렸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구도 이방인이 되거나 자기 종족을 대신해 목숨을 희생하고 싶진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책 속 주요 어른들은 각기 성격은 다를지언정 세 친구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어린이는 스스로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작은 어른'이지만, 그 결정에 한 몫 하는 것은 주변 어른들이라는 것, 어른의 존재가 어린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하는 이야기였어요. 미래 세대가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보일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도 어른으로서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한편 마로, 로링, 코코 이 세 친구들은 개성도 능력도 제각각인데 누구도 절대적으로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지 않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코코가 가진 재주와 특징은 때론 장점이 되고 때론 단점이 되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가능성을 의심했던 마로는 중요한 순간에 누구보다 용감한 선택을 해서 두 친구의 의지를 이끌어냅니다.
<플로라의 비밀>은 하나의 사랑이 탄생하려면 스스로에 대한 존중과 타인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는 것을 독특한 설정으로 보여준 작품이었어요. 책에 나온 대로, 인물들이 겪는 시련은 실제로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의심을 이겨내고 용기를 내야 하는 여정에 다름 아니구요. 반면 본인만 중시하고 타인을 향한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악역의 변모과정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이 불완전해진 과정을 가상의 종족들의 '역사'로 설정한 것, 그 내용이 구전되어 어린이들에게 필수로 전해진다는 것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제 안에 새로운 사랑을 키우는 것을 망설이지 말아야겠다고, 그 사랑이 어떠한 이유로 소멸하는 것도 덤덤히 받아들여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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