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독수리의 제국』 혼자 읽기

D-29
역사의 흥망성쇠는 원인이 매우 복잡하지만 운수와 개인적 요소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몇 가지 점에서 진시황은 카이사르와 상당히 유사하다. 두 사람은 모두 끝없는 자부심에 부합하는 정력과, 그 방대한 제국에 상응하는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경기를 관람할 때도 끊임없이 편지를 썼다. 진시황은 매일 일정량의 서간을 읽고 비답(批答)을 내리지 않으면 쉬지 않았다. 원로 박사들은 권력자가 정사에 힘쓰는 것이 모두 권력을 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원로 박사는 아마도 자신의 권력욕을 이루지 못하자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4장 처음 맞는 평화,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그러나 이들의 비평이 일리가 없지는 않다. 카이사르와 진시황은 모든 일을 직접 처리했다. 이 때문에 정책결정 기구가 업무 훈련을 할 시간이 없어서 허약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고, 정부도 지나치게 황제 개인에게 의지해야 했다. 또 두 사람은 후계자를 지정하려 하지 않았다. 카이사르는 56세에 자객에게 살해되었고, 진시황은 50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권력이양을 잘 준비해두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의 가장 큰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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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 있고 행정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의(仁義) 교육에 치우친 유가는 아는 사람을 밀어주고 끌어주는 일에 발이 묶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의’를 친척과 친하고 연장자를 존경하는 등의 개인 관계로 국한해서 이해하기 때문이다. 공중도덕을 배양하고 공평하고 공정한 사상을 발전시키는 건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문제로 남아 있다. 진나라는 법률로 행정 조치를 관리하며 관료의 책임을 감독하다가 치자(治者)로 자처하는 사람들의 반감과 반란을 야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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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가 거스른 것은 종법 봉건사회 도덕에 포함된 인의다. 진나라의 새 정치체제는 가와 국을 분리하여 정치적으로 봉건 귀족이 준수해온 인(仁), 즉 종친과 친해야 한다는 의미의 인을 거슬렀다. 진나라는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하다는 원칙을 견지하며 봉건제도가 엄수해온 귀천과 존비의 대의를 방기했다. 나의 해석은 어떤 현대 국학 대가의 견해와 비슷하다. 그는 진나라 말기 군웅들의 언행을 자세히 관찰한 후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봉건 관념의 잔재와 전국시대의 그림자가 아직도 백성의 뇌리에 남아 있었다. 이에 수졸 한 사람이 한번 고함을 치자 산둥의 영웅들이 모두 호응하며 고대 봉건 정치체제를 위해 움직였고, 이에 진나라가 마침내 멸망했다.” 나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봉건 도덕이 유가 경전에 새겨진 상황에서 유생들이 “법가가 진나라를 멸망시켰다(法家亡秦)”는 논조를 오랫동안 퍼뜨리며 황조 통치 엘리트의 권익을 일관되게 보호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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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대중은 편안한 생활을 한 적이 없지만 당시 통일 전쟁의 여진 외에 그들의 생활수준이 이전보다 나빠졌음을 증명할 만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당시에 가장 고통받은 대상이 대중이 아니라 귀족 군자였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봉건체제 안에서 누리던 권익과 지위가 진나라의 봉건제 폐지와 공정한 법률 원칙 견지로 사라졌기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진나라는 자기 정부의 관리를 포함한 모든 통치계층을 회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국의 신속한 팽창과 대규모 병력 감축으로 초래된 위기에 대처할 힘이 부족했다. 진나라가 멸망한 후 통치 엘리트는 여론을 조작하거나 심지어 진나라의 결점을 과도하게 날조한 후, 국가와 백성에 해악을 끼친 자신의 행위를 ‘왕도’의 깃발로 분식했고, 아울러 새 황조는 반드시 자신들의 특권과 이익을 돌봐줘야 한다고 경고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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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대중 봉기의 원인을 연구하는 일은 현대의 기준을 도덕적 잣대로 삼는 일과는 다르다. 진나라가 잔학했던 건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그 시대는 잔학이 일상화된 시대였다. 우리가 비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은 당시에 유행한 현실 풍경이지 절대적 도덕 기준이나 공상이 아니다. 예를 들어 진나라 아방궁과 루산의 능묘(陵墓) 등의 공사는 역대로 많은 질책을 받았지만 이런 교만하고 방자한 행동은 전국시대 귀족들 사이에서 매우 흔한 일이었다. 제 선왕은 “큰 궁궐을 지을 때 그 크기가 100무를 넘었고 당(堂) 위에는 300개의 문이 달렸다(爲大室, 大益百畝, 堂上三百戶)”. 이 때문에 3년을 넘기고도 완공할 수 없었다. 맹자는 선왕과 사이가 좋아서 큰 궁궐을 지을 때 큰 나무를 구해야 함은 언급했지만 비용의 낭비는 비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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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는 진나라가 4세 동안 계속 뛰어난 치적을 이룬 것이 행운이 아니라 간명한 통치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목격한 것은 공공 법규를 준수하는 진나라 사회였다. 진나라 사람의 공손하고, 검소하고, 충실하고, 신용 있는 행동은 도덕적 실천이 아닌 것이 없었으므로 당시 진나라에 부족한 것은 도덕이 아니라 유가의 허례허식과 경직된 윤리일 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가의 경직된 윤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이 많은 사람과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한다. 따라서 유학자는 법가의 정책이 젊은 사람과 비천한 사람의 버팀목으로 작용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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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적 평등 외에도 진나라는 분가(分家) 및 토지 분배를 장려했다. 경제적 독립이 젊은이의 자존심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아들은 농기구를 아버지에게 빌려줄 때 득의만만한 모습을 보였고, 며느리도 때때로 시어머니의 의견을 반박하기도 했다. 한나라 유학자들은 이런 행위를 금수 같은 풍속으로 간주하며 이것을 진나라 망국 원인의 하나로 꼽았다. 그러나 사실은 진나라도 효도와 순종을 버린 적이 없다. 후베이성(湖北省) 수이후디(睡虎地)에서 출토된 죽간의 실증적 증언에 따르면 진나라는 법률로 노인과 환자를 잘 보살폈고, 또 부권을 존중하여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고소는 접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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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에 입각해 연구하는 학자는 진나라를 폄훼하는 전통 선전판을 일찌감치 뒤집어엎었다. 진시황 각석에서 수이후디 죽간 「위리지도(爲吏之道)」와 「어서(語書)」에 이르기까지 진나라는 일관되게 전통 윤리와 풍속 개량을 제창했고, 관리에게도 도덕 교육을 실시했다. 장자산(張家山)에서 출토된 「주언서(奏讞書)」의 실례를 보면 진나라는 정확하고 분명하게 옥사를 판단한 것 외에도 청렴결백하고 온유돈후하며 공평무사하고 엄격단정한 사람을 법관으로 승진시켜 다른 관리의 모범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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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풍운이 지나간 후 유라시아대륙 동서 양 끝에 위치한 두 정치 집단은 각각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 카이사르의 삼두 정치에서 아우구스투스의 제국 건립에 이르는 역사를 다룬 『로마 혁명사(The Roman Revolution)』가 아마도 현대 저술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인 듯하다. 한 서구 사학자는 중국 진나라 역사에 이런 비평을 남겼다. “진나라가 중국을 변화시킨 내용을 살펴보면 질과 양을 막론하고 모두 비견할 만한 대상이 없다. 실로 ‘혁명’이라 불러도 부끄럽지 않다.” 로마와 중국의 혁명은 모두 군주제를 확립하여 공화제와 봉건제를 대체했다. 이로써 드넓은 강역은 속주와 군현으로 나뉘었다. 통치 권력은 황제의 손에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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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패배자는 옛 제도의 통치계층, 즉 로마공화정의 원로 귀족과 주나라 종법 봉건제도의 제후 및 세습 경대부였다. 이들의 반항은 격렬했다. 날 때부터 국왕을 통한(痛恨)으로 여기는 로마 귀족은 더욱 심했다. 중국 천자는 줄곧 세습했지만 정치 엘리트들은 진나라가 봉건 귀족제도를 폐지하자 분노했다. 카이사르는 자객의 칼을 맞고 죽었다. 진시황은 형가의 칼, 장량의 철퇴, 고점리(高漸離)의 축(筑:가야금과 비슷한 현악기)으로 세 차례 습격을 받았다. 따라서 그가 자신의 행차에 비밀을 유지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카이사르는 일찍이 브루투스를 용서했고 진시황은 고점리를 석방했지만, 이런 일은 예외일 뿐이었고, 반대파를 무정하게 진압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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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귀족은 자유를 부르짖었고, 진나라 유생들은 도(道)를 보위하자고 호소했다. 교조적인 구호로 사람들을 마취시켜,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기심·비현실성·무능함을 보지 못하게 했다. 카이사르의 자객은 로마 해방을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 로마를 대혼란 속에 빠뜨렸다. 로마인은 이후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전혀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생들은 학문을 과시했지만 현실에서 시행할 만한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이들은 진시황이 질문한 봉선의식의 전례나 한나라 재상 조참(曹參, ? ~전 190)이 질문한 치국 원칙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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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열세에 놓여있었지만 정치 엘리트는 마지막 패를 쥐고 있었다. 황제가 통치를 순조롭게 풀어나가려면 반드시 이들의 보좌를 받아야 했다. 로마제국과 양한 황조에 비가 개고 하늘이 맑은 뒤 평화가 다시 찾아오자 이들의 사상이 부분적으로 회복되었고, 새로운 정치체제 안에서 옛 전통이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원로들이 말한 자유와 유생들이 말한 인의의 최대 기능은 권세가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침내 정치 엘리트는 이들 이념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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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와 진시황은 권력 엘리트를 구슬릴 수 없어서 실패했지만 이들의 계승자는 마침내 성공했다. 로마 원로들은 집체 통치의 이상을 포기하고 재벌 통치에 참여하여 자유롭게 민중을 착취할 수 있게 되었다. 유가 사대부들은 관료 시스템 내에 취직하여 종친과 친하게 지내는 등의 사사로운 인정으로 공평한 법치제도를 부패시킬 수 있게 되었다. 재기한 정치 엘리트는 혁명의 열매를 잠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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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공화정은 역사에 찬란한 모범을 남겨서 이후 정치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면 미국 헌법과 프랑스대혁명이 그것이다. 정기적인 보통선거와 같은 일부 원칙은 하층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고 정부의 권력 남용을 방지하는 권력 제어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현대인의 안목으로 봐도 천리(天理)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이런 원칙을 뒤집어엎은 인물이 고도로 찬양을 받기도 한다. 독일 황제를 높여 부르는 카이저(Kaiser)와 러시아 황제를 높여 부르는 차르(Czar)는 모두 카이사르(Caesar)에서 나왔다. 미국인도 자신의 대통령을 카이사르에 비유하기를 좋아한다. 미국의 국부로 불리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유사 이래 가장 위대한 인물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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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중국을 달성한 사람과 로마공화정을 전복한 사람은 확연히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진시황이 기반을 닦은 정치체제는 계속 국가를 위해 존재했지만 그 자신은 악마로 격하되었다. 사대부는 판에 박힌 듯한 교조적 평가에 기대서 ‘포악한 진나라(暴秦)’라는 말을 사악함의 동의어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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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 황조와 로마제국에는 각각 웅대한 재능과 담략을 가진 황제가 있었다. 아우구스투스의 재위 기간은 41년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옥타비아누스의 이름으로 독재를 휘두른 세월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한 무제의 통치 기간은 더욱 길어서 장장 54년에 달했다. 이 두 사람은 영토를 확장하며 온 세상에 무공을 떨쳤지만 역사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오히려 정치제도 분야에 남아 있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무적 군사 시스템을 계승했고, 또 부유한 원로귀족과의 타협에 성공하여 이들을 제어하면서 공동으로 제국을 통치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5장 사해안정四海安定, 팍스 로마나Pax Romana,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한 무제는 법가의 제도, 즉 진시황이 전국에 시행한 관료 시스템을 계승했지만 제자백가를 퇴출하고 유가로 하여금 이 시스템 속의 지위를 독점하게 했다. 이는 세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비종교적 통제기구의 시작이었다. 진시황과 한 무제는 늘 황조 중국의 창조자로 병칭된다. 그것은 마치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제국의 창조자로 병칭되는 것과 같다. 이들 이후에 용과 독수리의 성격이 점차 틀을 갖추게 된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5장 사해안정四海安定, 팍스 로마나Pax Romana,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중국의 법가는 임금과 신하가 함께 법을 지킨다는 원칙과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하다는 개념을 제창했다. 이는 법치 정신의 맹아로 혁명적인 사상 범주를 개척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은혜가 부족하여 진나라 멸망을 초래했다고 배척되면서 임신부의 뱃속에서 유산되고 말았다. 이후 유가(儒家)가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인치주의가 힘을 얻어 모든 것을 통치계층 군주와 군자의 개인 품성으로 귀결시켰다. 공덕(公德)이란 개념은 사회의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하여 부정확한 사상의 공격을 받았다. 복고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정치사상도 다시 짓눌리게 되었으며, 행정도 이로부터 인간관계의 테두리 안으로 제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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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를 내세운 신하는 경학에 빠져서 경전을 끌어들여 모든 일을 판단했다. 그러나 이들의 ‘도덕’은 항상 로마제국 후기의 ‘공민’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공허했다. 이들 도덕의 허약성은 서한 말기와 동한 말기에 남김없이 폭로되었다. 입만 열면 도를 밝히고 세상을 구제해야 한다고 말한 사대부는 두 차례나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에게 재앙을 안기는 군벌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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