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독수리의 제국』 혼자 읽기

D-29
이런 줄거리의 차이는 역사가의 수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로 기본적인 역사 사실이 상이한 데서 온 것이다. 어떤 학자는 미국의 세력 확장 경험을 로마 역사에 비유했다. 지중해 동부 열강이 머나먼 이탈리아에 아무 흥미도 갖지 않는 틈을 로마가 파고들어 강국으로 변한 것과 마찬가지로, 유럽 열강도 아메리카대륙의 신흥 국가를 방해할 틈이 없어서 미국도 쉽게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이 두 나라는 연맹을 만들어 적에게 대항한 전통이 부족하다.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로마는 어떤 적수에 대해서도 군사적 우위를 유지했다. 이 때문에 로마는 주체적으로 과녁을 선택하여 외국을 하나하나 요리하면서, 단독행동과 단독명령으로 외국을 대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또 어떤 학자는 전국시대의 형세를 현대 유럽 초기의 세력 균형에 비유할 수 있다고 인식했다. 관계가 밀접하고 실력이 비슷한 5~7개 국가는 군사와 외교 부문에 통달하여 설령 최강국이라 해도 몇 나라의 연합 전선에 대적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전국칠웅은 다방면으로 담판을 하며 합종연횡(合縱連衡)을 실시했다. 단독 혹은 다자간 외교 교섭이 제국이나 황조 시대에 이르러서도 쇠퇴하지 않았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후미진 강가에 숨어 있었던 진나라나 긴 반도에 자리 잡은 로마는 문화나 경제가 모두 동쪽 이웃보다 상당히 뒤떨어져 있었다. 두 나라는 본래 고급 학문에 별 흥미가 없었고 공예 기술 부문에서도 장기를 발휘하지 못했다. 진나라의 쇠뇌와 철검은 비교적 낙후되어 있었고, 로마의 무기도 늘 적국보다 수준이 떨어졌다. 그러나 국가조직에서는 독창적인 면모를 보이며 효율적인 정치 기관을 발전시켜 인력과 물자 동원을 순조롭게 할 수 있게 했다. 진나라 사람은 로마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활이 소박했고, 생각은 착실했다. 이들은 전사의 기풍으로 농민을 강인하게 단합시켰다. 칠국 중에서 진나라가 병농일치(兵農一致)를 제창했다. 로마인은 카르타고가 실패한 까닭이 상업을 군대 위에 올려놓은 탓이라고 인식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진과 로마는 모두 자신의 동쪽 이웃을 정복했지만 그 문화에는 복종했다. 진나라의 고위 경상(卿相)은 대부분 동쪽 여러 나라 출신이었다. 로마 관할의 그리스인은 라틴어를 배우는 사람이 드물었고, 오히려 로마인이 그리스 문학을 따라 배웠다. 그것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Horatius, 전 65~전 8)가 말한 바와 같다. “죄수인 그리스가 그 주인을 정복하여 야만적인 라틴인을 문명으로 진입하게 했다.” 진과 로마의 굴기는 가장 오래된 나라이면서 증거도 가장 많은 역사 모델에 부합한다. 본래 문명의 변방에 위치한 세력이 떨쳐 일어나 획기적인 전쟁으로 세상의 형세를 바꿨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로마제국 대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ius, 전 70~전 19)의 말에 따르면 로마는 도처에서 정벌에 나서 4대 사명, 즉 “약자를 도와주고, 강자를 제거하고, 천하를 잘 다스리고, 법률로 평화를 돕는 일”을 실행했다고 한다. 로마제국의 자기 선전은 진시황에 비해 훨씬 성공적이었고 아울러 후세의 나라들도 이를 모방했다. 19세기 중엽 구미 제국주의가 위세를 떨칠 때 고급 지식인들은 자위적 제국주의 이론을 발명하여 침략이란 용어를 벗어던지려고 했다. “로마는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따르며 자유롭게 행동하기를 바라다가 뜻하지 않게 시대의 희생품이 되었다.” 이러한 논리가 100년 이상 학계를 주도했고,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잦아들었다. 새로운 세대 학자들은 로마의 강고한 군국주의 전통을 폭로하면서, 그 제국주의 지향이 자위에 있지 않고 약탈에 있다고 질책했다. 그러나 세상은 변화막측이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제국주의 경향이 다시 강화되고, 자위적 제국주의 이론이 부활하는 조짐을 보여줬다. 역사 평론가들이 폭로하는 건 평론 대상에 그치지 않고 평론가 본인의 성질까지 포함한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자위적 제국주의 이론의 증거로 흔히 거론하는 것 중 하나는 로마가 다른 나라를 정복한 후 왕왕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나라의 영토를 병탄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중국의 전국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진나라는 기원전 352년 처음 위나라 안읍을 함락시킨 후 66년 지나서야 병탄했다. 또 진나라는 촉 땅을 탈취한 후 31년이 지나서야 촉후(蜀侯)를 폐위하고 군(郡)을 설치했다. 인내한 기간으로 말하자면 로마가 마케도니아를 다룬 시각보다 더욱 길었다. 진나라가 이렇게 한 이유는 주로 군정(軍政) 때문이었지 도덕 때문이 아니었다. 로마도 마찬가지다. 양자는 모두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았고, 아울러 적의 군대를 궤멸시키는 것이 확장의 첫걸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권을 공고하게 하려는 긴 노정에는 거대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므로 더욱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패전국 점령은 봉기자가 잠복하여 복수를 엿보는 등 갖가지 모험을 동반하는 일이다. 점령군이 부족하면 반격하는 적군의 공격 목표가 되거나 심지어 무기고 탈취의 대상이 될 뿐이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그런데 강대한 주둔군은 또 지휘 장수의 할거 야심을 쉽게 유발할 수 있다. 국력은 유한하기 때문에 모든 곳을 지키려면 그 인력과 자원이 모자라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병력을 분산하여 모든 곳을 지키다가 적의 의병에게 주도권을 내주기보다, 물러나서 자국의 강력한 기동부대를 보호한 후 자신은 잠시 적국을 통제만 하며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 편이 더 낫다. 이렇게 하면 수시로 점령지로 가서 강력한 징벌을 이용하여 적의 불측한 마음을 제압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온전한 기동부대는 새로운 지역을 정벌하러 갈 수도 있다. 로마가 승리 후에 군사를 물리며 점령지까지 돌려준 것은 결코 정의감이나 인자함의 소산이 아니라 스스로 경직된 수세를 버리고 기민한 공세를 이어가기 위한 전략에 따른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시기를 선택하여 패전국으로 다시 와서 공세를 강화하곤 했다. 카르타고에 대한 로마의 정책이 바로 이런 전략의 좋은 사례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아리스토텔레스는 세 가지 상황에서 벌이는 전쟁은 정의로운 것이라고 했다. “첫째, 우리가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는 걸 방비하는 전쟁이다. 둘째, 우리가 패주(hēgemōn)로서 영도적 지위를 갖기 위한 전쟁이다. 영도는 신민의 이익을 보살피기 위한 것이지, 그들을 노예로 부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셋째, 우리가 태생적 노예들의 주인으로 살게 하는 전쟁이다.” 키케로는 로마의 정벌이 생존을 위하고, 맹우를 보호하고, 제국을 건립하기 위한 것인데 이 세 가지는 모두 정의에 부합하고, 카르타고와 누만티아를 멸망시킨 것도 틀림없이 정의에 속하지만, 코린토스를 멸망시킨 건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자위적 제국주의 이론에서는 로마의 해외 출병이 생존을 위한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실재하는 위협이 없을 때도 로마인은 자신이 위험하다고 상상했다. 그 부분적인 원인은 그들이 동방의 정사(政事)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다. 이 이론은 상세하고 착실한 연구에 의해 뒤집어졌다. 역사적 사실이 증명하는 바에 따르면 그리스 세계는 그 내부에 온갖 어려움이 중첩해 있어서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야만의 나라 이탈리아에 관심이나 흥미를 가질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로마인도 그렇게 무지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속셈을 품고 있었을 뿐이다. 다수의 로마 귀족은 그리스 문화를 배웠기에 동방의 상황에 대해 상당히 익숙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지식은 늘 군사 정책 결정 밖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귀족은 영예를 갈망해서 위협적인 수단으로 사령관의 직책을 쟁취했고, 정객은 일부러 과장된 말로 백성을 선동하여 전장으로 내몰았다. 양심에 입각하여 사실을 보지 않고 해마다 아득히 먼 나라로 군사를 보내 공격을 일삼았는데 어찌 여기에 자위의 의미가 조금이라도 들어 있겠는가?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방어적 전쟁은 결코 전투에서 기선을 제압하는 것과 같지 않다. 전자는 주관적이고, 후자는 객관적이다. 만약 상대가 적극적으로 전쟁 준비를 하며 수시로 진공해올 증거가 확실하다면 기선 제압은 선견지명이 있는 자위적 전투라 할 수 있다. 방어적 전쟁은 목전에 위협도 없고 객관적인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주관적인 추측에 의지하며 장래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헛소리를 하며 군사행동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그러하다. 국제법이나 의전(義戰) 이론을 막론하고 방어적 전쟁은 기실 침략 전쟁과 다르지 않다고 인식한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고대 역사를 연구하는 뛰어난 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주의할 만한 것은 제국의 강권에 대해서 아테네나 로마 내부에서 항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아테네에서 이에 반대하는 의견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로마에서는 희미한 한 가닥 호소만이 있었을 뿐이다.” 로마인은 위엄을 떨치려는 어떤 국가도 전쟁에 종사해야 한다고 인식했다. 전쟁은 고귀한 행동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로마가 끊임없이 해외 정벌에 나설 때의 문헌에도 평화를 갈망하는 생각이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 이와는 반대로 전국시대의 유가·도가·묵가는 이구동성으로 그들이 제지할 수 없는 전쟁을 질책했다. 로마인은 개선 행진을 벌이며 즐거워했지만 중국의 노자는 “전승한 이후에는 상례(喪禮)로 대처하자(戰勝以喪禮處之)”고 제안했다. 이것은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의 호소에 그치지 않는다. 극력 강병을 기르자고 한 법가와 병법서를 쓴 장군들은 모두 전쟁은 정치에 미치지 못하고, 가장 좋은 건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진나라 도성 함양 성문 위에서 공표한 『여씨춘추』에도 이에 관한 분명한 언급이 있다. “무릇 병기는 천하의 흉기다. 용기는 천하의 악덕이다. 흉기를 들어 악덕을 행하는 건 어쩔 수 없을 때 하는 일이다(凡兵, 天下之凶器也. 勇, 天下之凶德也. 擧凶器, 行凶德, 猶不得已也).” 서구 학자들은 전쟁을 바라보는 중국인의 이런 특징에 주목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이상이 어떻든 현실은 무정하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의 태도로 나무 몽둥이를 들고서도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를 든 적을 패퇴시킬 수 있다고 헛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이는 기실 백성의 생사에 진실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자세다. 군비와 국방은 정부가 내려놓을 수 없는 책임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책임을 능가하는지 여부는 각국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농사와 전쟁을 함께 중시한(農戰幷重) 진나라의 정책은 “군대가 움직이면 땅이 넓어지고, 군대가 휴전하면 나라가 부유해지는(兵動而地廣, 兵休而國富)” 결과를 가져왔다. 로마 본토의 공민 군단도 군사와 경제를 함께 중시했지만 로마 연맹 하의 이탈리아 종속국은 오로지 전쟁에만 집중했다. 로마가 부과한 유일한 ‘세금’은 군장을 자비로 꾸리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종속국을 이끌고 출정해야만 연맹의 이익을 누릴 수 있었다. 1년 동안 전쟁이 없다면 그건 종속국에 1년 세금을 감면해주는 것과 같았다. 따라서 학자들은 “전쟁은 이탈리아에 있는 로마 연맹의 운명이었다”라고 말한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처음 고전 문헌을 읽을 때 사람들은 동서 두 세계에 대해 서로 다른 인상을 받는다. 로마공화정에 관한 역사책에는 용맹한 전투와 영광스런 승리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끓는 피와 호방한 기상이 넘치는 이런 대장면에서 제국의 평화를 기록한 타키투스는 질투심을 드러냈다. “그들의 제재(題材)는 찬란한 대전투, 검투와 학살, 적국을 멸하고 국왕을 사로잡는 일 등이다. …… 나의 제재는 아! 정말 협소하여 빛이 나지 않는다. 평화는 참으로 얻기 어렵지만 어떤 때는 정말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와는 반대로 중국 역사가는 전쟁에 그리 큰 흥미가 없어서 겨우 몇 줄 기록으로 그치므로 무슨 전술로 싸웠는지 언급하기가 어렵다. 역사가가 선택하는 주제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로마인이 실제로 어떻게 전투하는지를 잘 알고 있고 이는 우리가 중국인이 어떻게 전투하는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자세하고 풍부하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전사는 검투사(gladiator)나 무술가와는 다르다. 후자는 각자 개인적으로 활동하므로 전사를 단결시키거나 기율을 기르는 공동 목표가 부족하다. 중국 역사에는 개인적인 영웅주의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형가와 예양(豫讓) 등의 자객은 늠름하게 몸을 바쳐 자신을 알아준 주군의 은혜에 보답했지만 이들도 그중 걸출한 소수에 불과했다. 동주시대 여러 제후국도 당시 무사의 기개를 이용하지 않은 나라가 없지만 각국에서 쓴 수단은 서로 달랐다. 제나라에서는 격투에 뛰어난 무사를 훈련시켜 전쟁의 승패는 따지지 않고 적의 수급을 많이 벤 사람에게 상을 줬다. 그것은 마치 날품팔이를 고용한 것 같아서 병졸 개인의 무예는 뛰어났지만 군대가 강적을 만나면 뿔뿔이 흩어지기 일쑤였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3장 정벌과 병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제국(empire)’이란 번역 명사에는 두 가지 견해가 동반된다. 첫째는 전제주의로 이른바 ‘제제(帝制) 중국’이란 말이 그것이다. 둘째, 통일 정부 아래의 지역 대국인데 지도에서 같은 색으로 칠해지는 광대한 지역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견해는 모두 정확하지 않다. 제국이라고 해서 반드시 황제가 통치하는 지역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아테네 제국은 민주 정체를 가졌고, 로마의 제국도 공화정에 의해 정초되었다. 이 밖에도 아테네와 로마공화정은 모두 자신이 통제하는 많은 강역을 겸병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을 ‘패권’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욱 적합할 것이다. 이런 학설이 제국이란 이름의 연원에 비교적 부합한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4장 처음 맞는 평화,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empire’란 말은 본래 로마어 ‘imperium’에서 나왔다. 로마인의 관점에서 ‘imperium’의 뜻은 주로 무한 권력을 가리킨다. ‘imperium populi Romani’는 로마인이 다른 사람의 권력을 지배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그 땅을 겸병하느냐 여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기원전 1세기 중엽 로마공화정 말기에 점차 속주가 설치되면서 영토 관념이 뚜렷해졌고, ‘imperium Romanum’이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로마제국’이란 의미를 갖게 되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4장 처음 맞는 평화,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로마공화정의 권력은 멀리까지 미쳤지만 관리 시스템은 졸렬했다. 광활한 영토를 통치하려면 그것을 관리하는 수많은 인재가 필요하다. 중국 진나라는 평민을 다량 기용했다. 이와는 반대로 로마 귀족은 첫째, 자신의 좁은 통치 권역을 유지하려 했고, 둘째, 통치 권역내의 어떤 사람이 너무 출중하여 정치권력을 독단하는 걸 방지하려 했다. 군사를 거느리는 지방의 고관은 권력을 농단하기가 매우 쉽다. 로마공화정은 향토 귀족, 매국노, 조세 전담 징수인을 이용하여 자신들 대신 착취하기를 좋아했다. 이런 사람은 사리사욕 채우기에만 급급했고, 또 정부의 감독이 없으면 백성을 아주 혹독하게 대했다. 따라서 이들이 국가에 기여하는 효율은 매우 낮은 편이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4장 처음 맞는 평화,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이와 같더라도 대부분의 귀족은 여전히 만족했고, 오직 폼페이우스나 카이사르 등 몇몇 대정치가만 이런 상황이 오래갈 수 없다는 걸 간파했지만 강경한 반항에 막혀 실각하고 말았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이르러서야 방법을 찾아 군주 집권의 제국 정체를 건립했다. 이로써 로마는 오랫동안 정복의 성과를 향유했지만 이를 위해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공화의 정신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4장 처음 맞는 평화,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샛별과도 같은 대제국, 예를 들면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이나 몽골 칸(汗)국과 같은 나라는 한때 찬란한 빛을 발하며 온 천지를 떨게 했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순식간에 소멸하여 후세에 미미한 영향만 끼쳤고, 또 몇몇 유적만 남겨서 수 세기 후 고고학자들에게 연구 자료만을 제공하고 있다. 진나라는 예외다. 그것은 짧은 제국이 아니라 이후 오래 지속될 제국의 비조(鼻祖)였다. 국운은 비록 짧았지만 영향은 심원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4장 처음 맞는 평화,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진나라는 중국에 마멸할 수 없는 통일 관념을 심어줬고, 원대한 안목의 국가 체제를 남겨서 장차 중국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진나라 이전의 ‘중국’이란 용어는 지리적·문화적 개념일 뿐이었지만 이후로 ‘중국’은 정치적 개념으로 발전하여 중앙정부가 있는 강대한 국가를 가리키게 되었다. 생물진화론의 비유를 빌리자면 진나라는 중국 정치의 유전자를 변화시켰다. 새로운 관념과 제도라는 유전자는 한나라로 계승되어 약간의 수정을 거친 후 환경에 적응하여 후대로 유전되었다. 진나라 유전자는 백대 동안 진화하면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4장 처음 맞는 평화,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김영사/책증정] 2025년 새해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센티브 이코노미>[책나눔][박소해의 장르살롱] 22. 한국추리문학상 대상 <타오>를 이야기하오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중간 참여할 수 있어요!
2025년에는 어떤 책을 읽을까요?
[그믐밤] 31. 새해 읽고 싶은 책 이야기해요.
이런 주제로도 독서모임이?
혹시 필사 좋아하세요?문학편식쟁이의 수학공부! 50일 수학(상) 함께 풀어요.스몰 색채 워크샵프리스타일 랩을 위한 북클럽 《운율,서재》
명품 추리소설이 연극무대로~ (돌아온 연뮤클럽)
[그믐연뮤클럽] 5. 의심, 균열, 파국 x 추리소설과 연극무대가 함께 하는 "붉은 낙엽"[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
🍷 애주가를 위한 큐레이션
[그믐밤] 30. 올해의 <술 맛 멋> 이야기해요. [그믐밤] 19. <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 부제: 애주가를 위한 밤[서강도서관 x 그믐] ④우리동네 초대석_김혼비 <아무튼, 술>
'하루키'라는 장르
[Re:Fresh] 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다시 읽어요.[그믐밤] 16. 하루키 읽는 밤 @수북강녕 하루키가 어렵다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함께 읽기에이츠발 독서모임 16회차: <기사단장 죽이기> / 무라카미 하루키 저
스토리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어요.
스토리 탐험단의 첫 번째 여정 [이야기의 탄생][작법서 읽기] Story :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함께 읽기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함께 읽으실래요?
김새섬의 북모닝, 굿모닝 ☕
[1월 북모닝도서] 넥서스 - 하라리다운 통찰로 인류의 미래를 묻다[1월 북모닝도서] 빌드(BUILD) 창조의 과정 - 또라이 대처법까지 알려주는 아이팟의 아버지[1월 북모닝도서] TSMC, 세계 1위의 비밀 - 클립 하나에 담긴 보안[1월 북모닝도서] 레드 헬리콥터 - 숫자 뒤에 사람 있어요.[1월 북모닝도서] 다시, 리더란 무엇인가 - 역사 속 리더들에게 배우다
<책방연희>의 다정한 책방지기와 함께~
[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번외편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읽기[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번외편 <내가 늙어버린 여름> 읽기[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겨울에는 러시아 문학이 제 맛
[문예세계문학선] #01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함께 읽기[그믐밤] 8. 도박사 1탄, 죄와 벌@수북강녕[브릭스 북클럽]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커다란 초록 천막》 1, 2권 함께 읽기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 채식이 궁금한 사람들은 이곳으로~
12주에 채식 관련 책 12권 읽기 ③ 고기는 절반만 먹겠습니다 (브라이언 케이트먼)12주에 채식 관련 책 12권 읽기 ② 채식의 배신 (리어 키스)12주에 채식 관련 책 12권 읽기 ① 채식의 철학 (토니 밀리건)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