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독수리의 제국』 혼자 읽기

D-29
로마제국은 한 번 꺾이고 나서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 정치세력은 부분적으로 강대한 경제계급과 의기투합해 있었지만 지주계급의 이익은 반드시 지역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지주의 단결에 의지한 드넓은 제국은 한 번은 요행으로 존재할 수 있었지만 다시 출현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독수리는 다시 날아오를 수 있었다. 로마의 무궁한 진취적 정신은 마치 상수리나무처럼 많은 씨앗을 뿌릴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것은 더욱 비옥한 토지를 선택하여 싹을 틔우고 성장할 수 있었으며, 또 더욱 강대한 계급인 자본가와 결합할 수 있었다. 로마인은 건전한 공화정의 이성적 사유와 실제적인 논리에 의지하여 다른 법률과 제도를 발전시켜 더욱 복잡한 신세계를 통합해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머리말: 용 모델, 독수리 모델,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예컨대 군대조직, 병역기한, 전쟁빈도, 군민의 사상(死傷), 엘리트여론 및 이른바 ‘칼이냐 우유냐’ 하는 정책적 선택 등 각종 세세한 실례를 비교하여 로마의 무력 남용이 진나라보다 심했음을 밝혔다. 이는 왜 동일한 장기전 끝에 만들어진 정부가 로마에서는 군사 독재로, 중국에서는 문치(文治) 전제로 귀결되었는지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것이 용과 독수리가 드러내는 차이의 일단이다. 이 차이는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인 것임에 주의해야 한다. 로마가 진나라에 비해 무력 남용이 심했다는 것이 진나라가 평화 숭상 국가였음을 나타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책의 모든 비교는 오직 ‘많고 적음’을 나타내며 ‘있고 없음’을 나타내지 않는다. 중국과 로마의 권모술수는 똑같이 민활해서 살상에서 선전에까지 사용하지 않는 영역이 없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머리말: 용 모델, 독수리 모델,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그러나 실크로드 양 끝을 왕래한 상인은 거의 없다. 거의 모든 교역 정보는 릴레이식으로 이루어졌고, 중간 상인은 쿠샨과 파르티아 초원 주변의 시장이나 낙타 대상(隊商)의 휴식처인 오아시스, 그리고 바다 선박이 정박하는 항구에 나눠 거주했다. 상품은 여러 차례 중계업자를 거쳐도 아무 탈이 없었지만, 소식은 구술과 소문을 여러 번 거치고 다른 언어로 번역되고 나면 진실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1장 민족들의 각축장,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한나라와 로마는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피차간에 아무런 인식도 없었다. 한쪽의 행동이 다른 쪽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해도 북방 초원의 유목민과 같은 중간자를 거쳐야만 했다. 만약 상대방에게서 반응이 있었다 해도 그건 여파에 그칠 뿐이었다. 로마가 변방 야만인의 소동에 대응할 때도 그 소동이 배후의 유목민에 의해 유도된 것인지 여부를 이해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므로 한나라의 압박을 받고 서쪽으로 이동한 유목민이 전하는 소식이야 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로마와 한나라는 간접적인 연관은 맺고 있었지만 직접적인 상호 교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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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북쪽은 틀림없이 추울 것이라 추측하지만 로마에 관한 한 그 추측은 정확하지 못하다. 지중해 일대는 사하라 기단의 영향을 받아서 여름에는 매우 덥고 건조하지만 겨울은 따뜻하며 비도 가을과 겨울에 많이 내린다. 이런 기후는 민회와 같은 옥외 활동에 적합하다. 화베이 일대는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을 받는 대륙성기후대에 속하지만 남동계절풍이 불어서 기후가 따뜻하다. 여름에는 매우 덥고 겨울에는 한풍이 세차게 분다. 비는 여름에 집중되지만 강수량은 겨우 마른 땅을 경작할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수리 관개 사업이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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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영토는 지중해를 둘러싸고 있으므로 그것을 ‘해외(海外)’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로마를 19세기 영국처럼 해양제국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의 해군은 창군 이후 오래지 않아 바로 천하무적이 되었지만 그들의 주력군은 여전히 육군이었다. 보병에 중점을 둔 것은 중국과 유사하지만, 기원전 5세기에 해군에 의지하여 지중해 동부의 패권을 차지한 아테네와는 다르다. 무슨 이유인가? 그 원인의 하나는 로마가 오랜 기간에 걸쳐 어렵게 이탈리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자기 군단의 특징과 육군 권력 중심이라는 특징을 빚어냈기 때문이다. 지리가 한 국가의 성격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와 민족도 그러하다. 수많은 요소가 영향을 주고받게 되면, 그 총합은 각 부분의 합보다 커진다. 제국의 가지와 잎을 분명하게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뿌리를 탐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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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하족과 로마인의 상대 종족 ‘포용량’을 인식하려면 이들과 다른 민족을 대조해보는 것이 가장 좋다. 이들과 동시대 그리스인이 바로 좋은 사례에 속한다. 로마인이 취락을 이루어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할 때 약 700개의 그리스 도시가 이미 지중해와 흑해 연안에 분포해 있었다. 철학자 플라톤은 그것을 연못가에서 노래하는 개구리에 비유했다. 그 도시 대부분은 미약해서 주민이 평균 수천 명에 불과했다. 거대도시인 아테네와 코린토스(Corinth)는 예외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스 도시국가의 공민은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큰 권익을 누렸다. 누가 공민의 자격을 가질 수 있는가? 당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전 384~전 322)는 이렇게 해석했다. “일반적인 실제 규율은 공민의 양친이 모두 공민이어야 했다. 부친이나 모친 한편만 공민이면 공민의 자격을 가질 수 없었다. 때로는 이 규율을 조부나 증조부 혹은 더 먼 선조에까지 소급해 적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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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들 범위 밖의 혼인이 발견되면 자손 몇 대까지 공민 자격을 박탈당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어떤 현대 학자는 민주적인 아테네가 어떻게 공민 내부의 혼인 규칙을 시행했는지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포위된 성과 같은 느낌이 든다. 공민이 성곽을 굳게 지키면서 끊임없이 외부의 압력에 저항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탈리아와 중국의 습속은 그리스와 달랐다. 두 곳에서는 외부 종족과의 통혼에 따른 불이익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로마에서는 자신들이 정복한 이탈리아인에게 점차 공민 호적 및 그 권익을 부여했다. 주나라 사람에게는 동성불혼(同姓不婚)의 금기가 있어서 제후 귀족의 통혼에 장애로 작용했다. 이들 대부분은 주나라 왕실의 친척인 ‘희(姬)’ 성 제후였기 때문이다. 이에 이들은 항상 서민이나 토착민 및 심지어 오랑캐 이민족에서 짝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황조 중국에는 공민제도가 없었지만 진나라 때부터 시작하여 일관되게 주민 대부분을 연원을 따지지 않고 모두 호적으로 편입하여 동등한 의무와 권익을 부여했고, 또 외부 종족과의 통혼도 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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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정부의 관직을 담당할 자격이 있었는가? 이것은 정치사회의 중요한 성질 중 하나다. 배타적인 그리스 사람 중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가장 독특한 사람이었다. 그리스 전기 작가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46?~120?)는 이렇게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그리스의 영수와 야만인의 주인이 되라고 가르쳤다. 전자는 사람을 친구나 친척처럼 사랑하고, 후자는 야수나 초목처럼 대하라고 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처럼 통이 컸지만 그의 후계자들은 전통을 회복하고, 그가 임용한 페르시아인 등 각 지역 토착민을 깡그리 정부에서 몰아냈다. 그리스식으로 변한 방대한 세계에서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우등 민족으로 자리 잡았다. 극소수의 지방 토착민만 그들의 폐쇄된 테두리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고, 성공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했으며, 또 어려운 세례 과정을 거쳐야 스스로 문화적인 그리스인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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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서술한 지리 개황은 간략하지만 한 가지 잘못된 이론을 반박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동아시아가 서구에서 달성할 수 없었던 정치적 통일을 이룬 것이 전적으로 그 지리적 형세에 의지했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사실은 중국도 서양과 마찬가지로 지형이 여러 갈래로 분산되어 있다. 화베이평원은 북유럽 평원에 비해 광대하지 않고, 친링과 다바산도 유럽 알프스산맥에 비해 교통이 불편하다. 학자들은 대개 중국 지형을 교통이 불편한 8대 통상구역으로 나눈다. 화베이평원·징웨이분지·쓰촨분지·창장 중류·창장삼각주·동남 해안지대·주장(珠江) 유역·서남 산악지역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동북·내몽골·신장(新疆)·시짱(西藏)은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이러한 지리 환경을 이용하여 중국은 통합이 오래되면 왜 반드시 분열하는지를 설명하기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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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왕실의 통치는 처음부터 강온 양면책을 함께 쓰며 각 지역의 풍속을 두루 포용하는 것이었다. 주나라에서는 채시관(采詩官)을 두어 민간으로 깊이 들어가 민요를 채집하게 했다. 이 일이 오래 지속되면서 나중에 『시경(詩經)』 안의 「국풍(國風)」이 편집되었다. 이것은 그리스의 서사시와 다르다. 『시경』의 「국풍」에서 노래하는 사람은 살육 현장의 전사가 아니라 논밭의 농부나 짝을 찾는 여인이었다. 「국풍」에는 백성의 심성과 사회의 면모가 반영되어 있다. 주 왕실의 일반 정책은 “교화를 베풀면서도 그 풍속은 바꾸지 않고, 정치는 하나로 통일하면서도 각지의 타당한 일은 바꾸지 않는(脩其敎, 不易其俗, 齊其政, 不易其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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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철학과 사상은 어렴풋이 정치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이탈한 순수 학술임을 말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또 집권자가 어떤 위대한 지도 사상을 고수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 대부분은 눈앞의 임무에 다급해하며 성과를 다퉜다. 그러나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것처럼 신중한 것이 결코 이상(理想)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전통 풍속, 선입견, 가용(可用) 개념, 보편적인 포폄(褒貶)이 모두 판단을 좌우하고 선택을 제약했다. 수많은 사회적 묵계는 뜻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지만 철학자들은 그것들을 시험하며 말로써 전하려고 했다. 분석하고 분별하여 잠재적 행동 아래 의향을 분명하게 말하면서 자기 행동이 가져올 후과를 직시하고 가치 취향의 이성을 높여서 마침내 정책을 개량할 수 있게 되었다. 정치사에 미치는 이데올로기의 영향은 중대하지만 미묘하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2장 건국과 제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자연물이든 인위적인 조직이든 규모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떤 복잡한 사물의 설계를 무한하게 확대할 수는 없다. 우리는 코끼리와 같은 큰 짐승의 몸에서는 곤충과 같은 가늘고 긴 다리를 절대 발견할 수 없다. 곤충의 체형 비례로 볼 때 곤충의 몸집이 너무 크거나 무거우면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리를 코끼리처럼 굵게 하거나 강철로 그 골격을 대신하지 않으면 몸을 지탱할 수 없게 된다. 어떻게 하든 우리는 그 설계를 바꿔야 한다. 소국은 곤충과 같아서 나라가 커졌는데도 정부 기구를 바꾸지 않으면 그 나라는 붕괴될 수 있다.
용과 독수리의 제국 - 나라는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진秦·한漢과 로마, 두 제국의 천년사 제2장 건국과 제도, 어우양잉즈 지음, 김영문 옮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이치를 깊이 깨닫고 있었다. 이 때문에 공민의 인구를 적절하게 조정해야 그 도시국가 체제가 효과적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규모와 체제에 대한 견해와 유사하게 중국에도 개혁에 종사한 법가가 있었다. 애석하게도 이를 분명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아직도 드문 형편이다. 로마인은 규모와 체제에 대해서 상관하지 않다가 내전의 참담한 교훈을 겪고 나서 깨닫게 되었다. 중국 유가에서 연연하는 선왕들의 세계는 인구가 많지 않았고 가(家)와 국(國)이 분리되지 않았으며, 정치도 종친과 친하고 연장자를 존중하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1,100년 후 인구가 천 배, 만 배나 증가했는데도, 유생은 규모의 거대한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루한 대가문식 체제를 견지하고도 방대하고 복잡한 대제국을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정치사상을 옥죄는 일이었을 뿐 아니라 나라와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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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하게 말해서 현대 사회의 이른바 ‘정치(political)’라는 개념은 대부분 제도와 법률을 가리키는데 이는 전적으로 인사와 관련된 권모(權謀, politics)의 개념과는 구별된다. 이를 근거로 엄격하게 정의해보면 유가의 정치는 권력을 다투기는 하지만 현대적 정치 개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것이 로마의 경우와 크게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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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마치 자식이 아버지에게 효도를 다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로마공화정 공민의 충성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원로원과 로마 백성(SPQR:Senatus Populus que Romanus)’이었다. 고대 중국에는 사회(society)의 개념이 없었다. 춘추시대에 쓰인 ‘공(公)’의 의미는 아직 공후(公侯)의 범위에 한정되어 있었다. 공전(公田)도 공후의 땅이었고, 공사(公事)도 공후의 가문과 관련된 일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로마공화정(res publica)이란 명칭에는 이미 참신한 공적 범주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즉, 그것은 개인생활(res private)과 구별되는 공공이란 범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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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들끓는 연병장, 민회, 원로원에서 공민들이 사회적 연대망 속에 참여하여 공공의 복지와 이익을 토론했다. 어떤 개인에게도 속하지 않는 법률과 공공기관이 공공 범주를 대표하여 공공의 대의를 신장하고 공중도덕을 육성하여 가(家)와 다른 국(國)이란 정치 개념을 빚어냈다. 이것은 철인의 심사숙고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동주 전기까지도 이런 개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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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이 관리의 핍박에 항거하는 일을 예로 들어보겠다. ‘길을 가다가 억울한 사람을 만나면 칼을 빼들고 도와준다(路見不平, 拔刀相助)’는 말이 있다. 이 중국 속담에는 대의를 보고 용기를 발휘하는 개인의 열렬한 의협심이 내포되어 있다. 로마의 공민은 이런 마음을 상설 법제로 만들었다. 평민은 학대를 당할 때 구조 요청을 하면 당연히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러한 제도가 계속해서 ‘공정함을 구할 권리(provocatio)’로 발전했다. 또 공민이 중형을 받아야 할 경우에도 시민에게 호소하여 공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요컨대 정부의 독단적인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무슨 성군과 현인의 어진 마음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 시민 스스로의 실천으로 쟁취했다. 이 때문에 공민은 왜 이러한 장치가 합리적인지 또 왜 그것이 시민이 응당 보유해야 할 권리로서 모든 사람이 단결해서 옹호할 가치가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이처럼 공적 원리를 추구하는 권리는 후세의 법률로 누차 강화되면서 로마의 공민이 누린 자유의 주춧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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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공화정은 안정된 정치체제를 갖고 있었지만 명문화된 헌법은 없었다. 이 정치체제에 딸린 것은 정식 절차로 통과된 법률을 제외하고도 성문화되지 않은 규율 및 전통적인 도덕관과 선조들의 규칙 등이었다. 그 주요 구조는 몇 세기를 거치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즉, 행정관·원로원·민회가 시종일관 솥발처럼 정립해 있었다. 폴리비오스와 키케로는 모두 로마는 혼합 정치제제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분석한 세 가지 정치제도, 즉 군주제·귀족제·민주제를 결합했다고 인식했다. 이에 대해 한 현대 정치학자는 새로운 진술을 했다. “세계의 각종 정부와 관련된 역사에서 로마는 첫 번째로 ‘견제와 균형’의 정치를 갖춘 나라였다. 현재 세계에서 이러한 제도를 가장 온전하게 갖추고 있는 정부는 미국 연방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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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자유 중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공평하게 공개된 보통선거를 정기적으로 실시한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법률로 인권을 보장하여 공민들이 정부의 탄압을 받지 않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겉으로 드러난 형식만 보면 로마공화정은 전체 민중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민주적 정치체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형식을 들춰서 내용을 들여다보면 로마의 대권이 원로원과 행정관을 장악한 귀족의 수중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근현대 학자들도 대부분 다음과 같이 동의한다. “로마의 정치체제는 민주 체제가 아니었다. 그건 전통적으로 공민을 존중한 것에 불과했다. 공민의 권리 배경에는 공민의 무장 역량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것은 민회의 투표와 입법 활동으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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