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13. 악인의 서사 @가가77페이지

D-29
앗 말씀드린 ‘첫 글’은 듀나 님의 글을 말씀드린 것이었는데, 머쓱타드입니다…😅 졸고에서나마 도움을 얻으셨다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모범적 악역'에 부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사랑한 빌런들을 소개하겠습니다. 1. <팅커,테일러,솔저,스파이> 의 악역 (스포가 되므로 이름은 언급하지 않을게요) 나른하면서 퇴폐적이고 매사 무관심한 듯한 말투와 행동거지가 매력적입니다. 동명의 영화도 있는데 과연 누가 이 캐릭터를 연기 할까 했는데 배우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내셔널리즘에서 커뮤니즘으로 이동하는 빌런의 이데올로기 변화도 매우 공감이 됩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스파이 스릴러의 대가, 존 르 카레의 전작 19편이 정식 판권 계약을 맺고 출간된다. 2005년 여름 가장 먼저 선보이는 소설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1960년대 미소 간 냉전 상황으로 스파이전이 심화되던 당시, 영국을 충격에 빠트린 케임브리지 출신 엘리트의 소련 이중간첩 사건을 소설로 재구성했다.
2. <악령> 의 스타브로긴 (스포가 전혀 되지 않아 이름을 밝혀요.) '무의미'라는 관념이 인간으로 형상화가 되면 이렇게 표현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끝까지 신을 믿지 않은 자. '구원 따위 개나 줘' 일까요? <악령>의 스타브로긴을 알고 나면 지구정복이나 금은보화를 노리는 악당은 귀여워 보일 거에요. 같은 소설에서 표트르 라는 이름의 악당도 나오는데 이 사람은 전형적이고 조금 교과서적인 악당 스타일입니다.
악령 - 상
공유 감사드립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은 (박혜진 님의 「악이 동굴에서 나올 때」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장강명 님의 『재수사』에서 언급되는 작품이기도 하지요. 다른 독자분들께서도 『악인의 서사』를 시작으로 『재수사』, 『악령』으로 독서를 확장해나가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은 책의 두 번째 글, 박혜진 님의 「악이 동굴에서 나올 때」에서 이야깃거리를 나눠볼까 합니다. 현실에서 벌어진 잔혹 범죄를 다큐멘터리가 아닌 형태로 극화한 작품을 보신 경험이 다들 있으실 텐데요. 1. 표지나 오프닝 시퀀스에 “Based on true story” 같은 문구가 등장하지만 궁극적으론 픽션에 해당하는 이런 작품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영화/드라마/소설 등이 있으신지요. 긍정적 의미에서건 부정적 의미에서건 말이죠. 박혜진 평론가는 글의 도입부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다머」를 재생했다가 끝내 ‘하차’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에 대해 고백합니다. 박혜진 평론가는 범죄 현장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장면 때문에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 같았다고 말합니다.(27쪽) 반면 마찬가지로 실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정유정 작가의 장편 소설 『완전한 행복』에 관해서는 사뭇 다른 평가를 내립니다. 박혜진 평론가는 피해자의 시각에서 악을 바라보는 『완전한 행복』이 ‘피해자 중심 서사’의 전범을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이렇듯 똑같이 현실의 잔혹 범죄에서 착상을 얻었다고 해도 각각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텐데요! 박혜진 평론가는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를 ‘시점’이라는 요소에서 찾습니다. 2. 그렇다면 여러분께서는 실화 범죄 기반의 픽션을 감상할 때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한편 공개 직후부터 많은 논란에 직면했던 「다머」는 최근 에미상 13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실제 피해자들의 유족을 대리한 변호사가 시상식 주최측의 결정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놓았는데요.(관련 기사: https://www.ytn.co.kr/_ln/0104_202307171040014896 ) 또 박혜진 평론가의 평가와 달리, 『완전한 행복』은 실제 살인자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이유로 현재도 인터넷 서점 곳곳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3. 이런 현실을 고려한다면 실제 범죄 사건을 창작의 소재로 다뤄도 괜찮은 걸까요? 다뤄야 할까요? 다룰 수 있을까요? 그 사건을 문학(서사)의 형식으로 파고들어야 할 필요성이나 가치가 존재할 수도 있고, 이런 소재를 선택했을 때 작가가 유념해야 할 지점들도 분명 존재할 텐데요. 실화 기반의 창작 서사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자유롭게 들려주세요.
저는 완전한 행복만 읽어서인지 유령이나 재수사를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재수사는 사놓고 아직 못 읽고 있...) 완전한 행복을 읽으면서 이렇게 써도 되나? 싶었었어요. 주변에 읽은 사람들의 반응이 다 안 좋았거든요. 왜 굳이 실화를 써야 했냐, 소재가 떨어지니까 그런 게 아니냐, 종의 기원은 사이코패스 시점에서 써서 불편하게 하더니 이번엔 고유정이냐 등등.... 저도 썩 좋다~ 싶게 읽은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다시 읽어봐야 겠더라고요. 피해자 시각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 싶었거든요. 지난 달에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으며 악의 평범성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그 책이 나오고 아렌트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긴 했지만, 그 재판 자체가 이스라엘이 일어나기 위한 정치적 쇼였고, 아렌트는 유대인임에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평가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에게 서사를 만들어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평범한 사람도 수백만명을 죽일 수 있는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요. 순수 창작물이 아닌 정치학 책으로도 어떻게 판단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헷갈리는데....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는 오죽하겠나 싶더라고요. 첫번째 듀나님의 글에 나온 것처럼 선과 악을 구분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준을 잡아주는 것이 창작물을 만드는 이들의 소임이 아닐까 싶어요. 판단은 독자에게~라고 넘기기에는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니까요.
1. “Based on true story” 이라 하여 실화에 기반했다는 문구 자체를 저는 그닥 개의치는 않는 편이에요.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요. 가끔은 그냥 그러한 문구가 일종의 마케팅 수사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실화를 생각하다 보니 제가 최근에 엄청 충격받은 한 사건이 떠오르네요.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8523554&code=61121111&cp=nv 두 남성이 서로의 허벅지를 돌로 죽을만큼 가격했다는 사실이 전 잘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이걸 극화하면 보는 이들이 다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할 것 같고요.
박혜진 평론가의 「악이 동굴에서 나올 때」를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실제 범죄를 기반한 픽션을 잘 보지 않는 편입니다. 특히 그 범죄를 픽션으로 보여줌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그걸 알리는 것 정도의 의의말고는, 범죄 자체가 '재미난 스토리'로 소비해버리는 픽션들을 꺼려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꼭 범죄가 아니어도, 우리 사회에 대해서 보여주는 이야기가 실화 기반인 영화라면 봅니다. 우리 사회에 대해서 보여준다는 걸 조금 더 쓰면.. 더 위에서 구조를 바라보게 해주는 픽션이랄까요. 지금 떠오르는 영화는 <다음 소희>(감독 정주리)입니다. 그런 편이기에 이 글도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악의 서사를 다루더라도, 어떻게 다루는지. 각각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셔서 더 잘 이해가 되고 좋았어요. 밑줄을 많이 그으면서 읽었는데, 그 중 일부 문장도 아래에 적어볼게요. 글에서 나온 '동굴 밖으로 나오는 악의 서사'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보게 됩니다.
저는 특히 작가/감독 등이 작품 속 악인에 대해서 어떤 시선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거 같아요. 무조건 악인을 다루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요, 악인에게 당연히 매혹될 수 있죠, 그런데 그 악인이 저지른 행위의 전후사정과 거기 연루된 다른 사람들에게는 눈을 돌리지 않고 오로지 그의 죄의 구체적 재현에만 집중하는 관점이 꽤 위험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감되는 말씀이에요. '범죄의 기술 : 선정주의를 넘어선 범죄 논픽션' 이라고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님이 쓰신 챕터가 이 책에 있는데 아직 읽지 못했지만 말씀하신 내용을 다룬 것이 아닐까 해서 궁금해지네요.
저도 @kye 님의 이야기에 공감합니다.
저는 이제막 ‘악인보다 선인의 이야기에 집중할 것’을 읽어보고 있어요. 읽으며 좋았던 문장을 공유해볼게요. 그리고 유독한 팬덤에 대한 1번, 2번 질문을 읽고, 문화 분야에서 유독한 팬덤이 바로 떠오르지 않아서 이에 대한 답을 쓰기가 어렵네요. 제가 크게 팬덤에 대한 관심이 없이 지내와서 이런 것 같아요. 이 질문을 계기로 좀더 생각을 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모범적 악역의 사례와 요건에 대해서도 책을 읽으며 답을 적어보겠습니다.
무엇보다 누가 악인인지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 우리가 그렇게 쉽게 다른 사람의 서사를 금지하거나 빼앗을 수 있을까?
악인의 서사 듀나, p.22, 듀나, 박혜진, 전승민, 김용언, 강덕구, 전자영
그 어느 것도 그냥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영화는 영화로만’, ‘코미디는 코미디로만’ 같은 말들은 비겁한 거짓말이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던진 모든 것은 세상에 영향을 끼친다. 서사 예술이라고 다를 이유가 없다. 아니, 서사 예술은 특히 더 그렇다.
악인의 서사 듀나, p.24, 듀나, 박혜진, 전승민, 김용언, 강덕구, 전자영
악에 대해 쓸 때 작가는 악인에 공감하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악인에 공감하지 않도록 써야 한다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 공감은 악을 미화한다거나 악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대상화한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든 탓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기본 속성이자 이야기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공감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 안쓰러움과 안타까움이 공감의 동의어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안쓰러움과 안타까움은 공감의 중요한 속성이자 공감으로 가는 입구이다.
악인의 서사 악이 동굴에서 나올 때: 오늘의 한국 소설 속 살인자들(박혜진), 듀나, 박혜진, 전승민, 김용언, 강덕구, 전자영
이 균형 감각은 앨런 릭맨과 시나리오 작가들이 만들어낸 화려한 개성과 캐릭터 자체의 평면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룬 결과이다. 영화는 그루버에게 탐욕과 사악함 외에 다른 동기를 주지 않는다. 그루버를 보다 이해할 수 있거나 공감할 수 있는 인물로 만드는 것은 불필요하기도 하지만 일단 부도덕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더 사실적이다. 대부분의 경우 악은 얄팍하다.
악인의 서사 듀나, 박혜진, 전승민, 김용언, 강덕구, 전자영
그럼에도 이 몇 겹의 레이어는 기본적으로 단순한 인물인 원상아를 훨씬 재밌게 만든다. 시청자를 매료시키는 악역을 만들기 위해 쓸데없이 감정을 이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악인의 서사 듀나, 박혜진, 전승민, 김용언, 강덕구, 전자영
'대부분의 경우 악은 얄팍하다' 이 문장이 인상 깊었어요. 그리고 그 이후에 드라마 <작은 아씨들>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웠습니다. (제가 본 작품이 드디어 등장..!) 드라마를 볼 때엔 우선 그 스토리를 따라가기만 했는데, 이렇게 글을 읽으며 '원상아'라는 인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어서 무척 좋았어요.
유독한 팬덤이라...저는 아무래도 정치적 편향성을 극화시키고 성별과 나이를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를 고양시키는 정치인 개개의 팬덤이 아닐 까 싶습니다. 좌우 할 것 없이 특정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받든다? 이 표현이 적절할 지 모르겠지만 이들 팬덤의 다툼과 과잉애정 형태의 모임으로 인해 사회적 피로감을 느끼게 하고, 정치색이 없거나 중립적인 이들에게 정치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하는듯 해요.
저는 저 자체로 창작을 꾸준히 소설과 시로 하고 있는데요, 특히나 소설을 쓸 때에는 모든 캐릭터에게 객관성을 유지하며 서사가 부여될 수록 내가 던지는 메시지를 받아주는 캐릭터에게 조금 더 애정이 가는 듯 한데요, 물론 악인의 역할에도 서사를 부여하며 많은 악인들의 기저에도 숱한 감정과 트라우마가 있을 수 있겠다, 싶으며 그들의 삶을 이해는 하지만 정당화는 되지 않는, 그런 형국인데요.마냥 픽션인 제 글에서도 그렇게 느껴지는데 실제를 다룬 창작물이라, 팩션을 다룰 때에는 조금 더 조심해야 할 부분들은 분명한 것 같아요, 우선 피해자, 희생자들의 아픔을 악인의 서사로 인해 어쩔 수 없었다, 라는 식의 패러다임을 씌우지 말아야 하며, 비록 영화'조커'처럼 누구에게나 선과 악은 존재한다, 라는 식의 인간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것은 괜찮지만, 실제 사회에서는 그것이 정당화 되지는 않는다, 라는 문구를 제시해야 하며, 팩션의 경우 악인에게 서사가 부여되었다,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지, 라는 판단을 내린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실제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나 글을 창작물 뒤에 실어야 할 듯 합니다. 숱한 악인의 서사를 프로파일링 단계에서 알아내는 것은 안전한 사회망을 구축하기 위한, 악인의 생성을 막기 위함이지 결코 그들에게 면죄부를 쥐어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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