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모]이렌 네미롭스키 <6월의 폭풍> 출간 기념 함께 읽기

D-29
용기보다는 '무거운 짐'에 방점이 있는 것 같아요. 😅
시절이 하 수상할 때일수록 소설가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용기가 맞겠구나 생각합니다. 똑바로 직시할 용기, 쓰는 용기, 내보일 용기, 앞장설 용기 등등이 떠오르네요. p. 40 ”그토록 무거운 짐을 짊어지려면, 시시포스여, 너의 용기가 필요하리라.“
3장 지식인들이라고 해도 하는 짓은 '머리에 든 것이 없는 흰 사냥개'같군요. 피난 가는 사람이 블라우스니 화장품이니..현실감이 없어도 너무 없어요. 게다가 작가로서 자존심이 강한 가브리엘의 원고를 포기하고 화장품을 챙기다니요. 과연, 모자 상자에 잘 쑤셔 넣긴 할 건지. 저는 소설 초입엔 인물 묘사를 꼼꼼하게 보는데 아직까진 매력 있는 캐릭터가 없네요. 😅 그나저나 앞으로 이들은 페리캉 식구들과 만나게 되는건가요?
가브리엘은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 했다. 그는 한창 꿈을 꾸다 깨어난 사람처럼 겁에 질린 몸짓으로 현실을 밀쳐냈다. 너무 밝은 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6월의 폭풍 44p, 이렌 네미롭스키
전쟁을 증오하는 가브리엘, 현실 외면중..
필리프는 이 불쌍한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있는 선의를 그러모아 부드럽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들에게선 냉랭함과 반감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샘솟는 사랑도, 은총을 갈구하는 가장 비천한 죄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신실한 감동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6월의 폭풍 55p, 이렌 네미롭스키
4장 페리캉 부부의 큰아들, 필리프가 등장합니다. 결핵을 앓았고 선한 심성으로 부모의 반대가 있었지만 신부의 길을 걷네요. 프티 르팡티는 2장에서 '이 자선단체는 풍속 사건에 연루된 미성년자들을 도덕적으로 교화시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곳의 아이들에겐 '구원의 빛을 욕망할 수 있는 영적인 힘'조차 없네요. 이런 아이들을 데니고 필리프 신부는 피난을 떠납니다. 4장도 계속해서 피난길에 오르는 사람들을 이야기 하네요.
그들이 인사를 하자, 페리캉 신부는 미소로 답했다. 신부의 얼굴은 평온했다. 그의 표정은 엄하고 약간 슬퍼 보였지만, 미소는 더없이 부드러웠고 약간의 소심함과 애정 어린 힐책을 품고 있었다. 마치 '난 너희를 사랑한단다. 그런데 왜 너희는 날 사랑하지 않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이들은 그를 쳐다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6월의 폭풍 P51, 이렌 네미롭스키
장면이 그려지는 작가님의 묘사 및 서술방식, 문장들이 좋아요. 4장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여행하는 도중에 분명 주변의 불행을 보게 될 거고, 그러면 마음이 몹시 아플 거야. 모두의 불행은 수많은 개인적인 불행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6월의 폭풍 p.57, 이렌 네미롭스키
오오~ 이 문장도 좋네요!!
4장을 읽었습니다. 일이 생긴 프티 르팡티 원장을 대신해서 필리프 신부가 원생들을 철수시키는 일을 돕기로 합니다. 필리프 신부의 등장에도 냉랭하기만 한 원생들의 반응이 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신뢰를 쌓아 온 관계도 아니어서, 이미 프티 르팡티의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필리프 신부가 하는 말이 아이들에게 가 닿을 만큼 호소력이 있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오히려 그들로부터 샘솟는 사랑이나 신실한 감동을 기대하는 필리프 신부의 모습이 의아하게 느껴지네요.
5장은 전시상황에서 회사 같은 조직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여주네요. 시대가 시대인 만큼 전산화가 안 돼있어 서류들을 차로 일일이 싣고 떠나네요.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미쇼 부부와 인색하고 출세욕이 강한 은행장 코르뱅이 처음 등장합니다. 이 와중에 코르뱅의 내연녀가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ㅎ
6장은 페리캉 식구들이 파리를 떠나는 어수선한 상황을 보여주네요. 어린아이들, 특히 장애나 질병이 있는 환자나 노인들을 데리고 피난을 떠나는 걸 상상해 보니..ㅠ 전쟁이 터지면 돈이 무슨 소용인가요, 웃돈을 챙겨준다 해도 택시조차 빌리지 못하는걸요. 가장 소중한 건 조국도 아닌 목숨이죠. 저는 유모처럼 포기하는 마음도 생길 것 같아요.
내일이면 난 빈털터리가 될 거야. 아무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는데, 도대체 왜?' 하지만 곧 담담함의 파도가 그들의 영혼을 집어삼켰다. '저따위것들이 무슨 소용이야! 결국은 돌맹이야, 나무일 뿐이야, 생명 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아! 무엇보다 목숨을 구하는 게 중요하지!'
6월의 폭풍 68p, 이렌 네미롭스키
조국의 불행을 생각한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있었다고 해도 그들은 아니었다. 그날 밤 파리를 떠나는 사람 중에는 없었다. 걷잡을 수 없는 공포는 동물적인 본능이 아닌 모든 것, 피부로 느끼는 움직임이 아닌 모든 것을 마비시켜 버렸다.
6월의 폭풍 68p, 이렌 네미롭스키
도대체 하인들은 말귀를 알아듣질 못했다. 그들은 무서위 벌벌 떨었고,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타성이 공포보다 강했다. 그들은 시골로 휴가를 떠날 때 하던 것처럼 모든 것을 챙기려고 했다. 모든 것이 트렁크 속의 늘 있던 자리에 있어야만 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반은 현재, 반은 과거인 두 종류의 시간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최근의 사건들이 고요 속에 잠들어 있는 의식의 깊은 부분은 건드리지 않은 채 가장 피상적인 부분만 파고든 것처럼.
6월의 폭풍 69p, 이렌 네미롭스키
공포보다 타성이 강해 평소의 습관처럼 행동하는 하인들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5, 6장을 읽었습니다. 모자이크나 콜라쥬처럼 전쟁이라는 현실을 앞에 둔 사람들의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피난이라는 현실 앞에서도 이삿짐 싸듯 모든 것을 챙겨 가려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애인에게 전시 상황상 불가능한 요구를 하다가 싸우는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페리캉 노인이 출발 직전에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까지, 전쟁 상황이라면 우리의 삶에서도 보일 것만 같은 모습들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어리석기도 하고, 실수도 합니다. 아무리 긴장된 상황에도 그런 모습이 아예 사라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들쳐 업고 달아나는 일! 그날 밤에는 살아 있는 것, 숨 쉬고 울고 사랑하는 것만이 가치가 있었다! 재산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연인이나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 나머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머지는 화염에 휩싸여 사라져도 괜찮았다.
6월의 폭풍 P55-56, 이렌 네미롭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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