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 여름방학 독서모임_<소설 보다: 여름 2023> 함께 읽기

D-29
나의 과거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엄마인 추자씨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과거에 대한 나의 감정으로 유추해 보건데 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엄마로부터 적절한 돌봄이나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엄마와 함께 살았던 울산이라는 곳은 안 좋은 기억만 가진 곳이지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힘들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아예 그곳이 재가 되어 사라지길 바라는 것 같아요. 그럼 찾을 수도 없으니까요. 서울에서도 이방인의 모습을 보였던 나는 다시 찾을 밖에 없는 그 곳이 사라져야 서울에서 안착할 용기를 낼 것 같습니다. 분위기로만 감을 잡으며 읽었습니다. 전.중반은 짙은 구름이 머문듯 어둡고 답답했지만 마지막은 가을이 오려는듯 다소 시원한 바람이 부는듯한 느낌이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
화제로 지정된 대화
@눈싸람 눈싸람님, 안녕하세요. ☺️ 저 또한 이렇게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 시절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는 표현에 공감해 주셨네요. 미래의 내가 언젠가 겪게 될 마음이라고 느끼면서 읽으셨다는 부분이 인상 깊어요. 그렇게 된다면 먼훗날 눈싸람님이 비슷한 상황을 겪으며 이 소설 속 화자를 다시 떠올려 주실까요? 눈싸람님의 삶에서 제 소설이 스며드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 이 소설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면, 작가로서 무척이나 기쁠 것 같습니다. 화자의 일상에서 변화의 기미를 섬세히 지켜봐주셨다는 말씀도 꼭 제 마음을 이해받은 것처럼 따듯하게 느껴지네요. 제목에서 ‘그들‘이라는 주어를 쓴 건 3인칭 대명사가 주는 모호함 때문이었어요. 사실 초고 단계에서 이 소설의 가제는 ‘재와 나의 하루’였는데요. 소설을 완성한 뒤에 이 이야기의 제목이 ‘나’에게만 초점이 향하기보다는, 추자 씨와 덕미 씨도 모두 포함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이라는 대명사는 2인 이상이기만 하면 몇 명이든 모두 지칭할 수 있잖아요. 읽기에 따라서 ‘그들의 밤‘을 추자씨와 덕미씨의 밤으로도, ‘나’까지 포함하여 세 사람 각자의 밤으로도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모호성이 주는 해석의 자유로움이 마음에 들어서 제목에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즐겁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싸람님! ☃️
책을 읽으면서 고향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저에게 고향이란, 안식처이기도 하면서도 벗어나고 싶은 곳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책 속에서 "한때 가장 벗어나고 싶은 도시였지만, 궁지에 몰릴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 이라는 서술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지금 저는 우연히 기회가 닿아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마음이 혼란스럽고 혼자서 버티지 못하게 되는 순간들에는 뒷일 생각 안하고 고향으로 도망쳐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거든요. 고향과 현재 거주지가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 공감할 것 같은 생각입니다. 주로 고향은 내가 살았던 곳, 혹은 (보통은) 가족들이 여전히 살고 있는 곳인데, 그 말에 담긴 힘은 더 큰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내 혼란과 고민을 모두 담아본 적 있는 장소, 그 무수한 시련들 속에서 성장한 '나'라는 사람이 담겨있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주인공에게 다시 돌아 온 고향의 모습은 상상과는 다른 곳이었고, 서울에서도 울산에서도 소속될 수 없는 마음에 더 헤메였을 거 같아요. 저도 가끔 본가에 내려가는데, 너무 오랜 시간동안 본가에 머물면 제가 상상하고 꿈 속에서나마 기대 온 장소와 다르다는 생각에 금방 그 곳을 다시 떠나고 싶어지더라고요 어제까지만해도 해가 쨍쨍 내리쬐는 여름이다가 오늘 다시 꿉꿉한 여름이 되었는데 참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스마일씨 스마일씨님, 안녕하세요. 😃 왠지 ‘님’을 떼고 스마일씨라고 불러야 할 것 같네요 ㅎㅎ 써주신 감상을 읽으며, 돌봄과 애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어요. 추자 씨가 딸을 대하는 방식에는 많은 어머니들이 그렇듯 분명 애정도 섞여 있겠지요? 화자를 차에 태우고 등하교를 함께 하거나, 딸의 식습관을 검열하는 태도 또한 다소 독단적인 부분이 있지만 추자 씨 입장에서는 딸을 위한 애정 어린 행동일 거예요. 하지만 상대방을 위해 행동했다고 하더라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은 사랑해서 했던 행동이 나에게는 강압적으로 다가오기도 하고요. 돌봄과 사랑이라는 건 언제나 내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의 초반부와 후반부를 날씨의 변화로 표현해주신 게 무척 재밌어요. 다정한 감상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마일씨! 🥰
작가님 인터뷰에서 ‘나’는 운전을 잘하지 못한다는 설정이 매력적이었요. 엄마인 추자를 포함해 타인에게 핸들을 맏긴 채, 수동적으로 살아온 인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어요. 불쑥 찾아오는 과거를 떨쳐내지 못하는 모습이 공감되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과거를 따라가다 보면 현재의 나를 잃어버릴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나쁜 기억을 지우는 것보단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드는 게 좋은 방법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현재 추자의 모습이 그래 보였어요. 고향에 내려왔지만 본가에 가지 못한 설정이 화자의 안식처가 없다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서울과 울산, 어느 곳에도 편하게 누울 곳이 없다는 게 화자를 잔잔한 심연으로 끌고가는 느낌이었어요. 물리적인 게 아닌 심리적인 고향이 없어서 항상 이방인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해봤습니다. 추자는 ‘나’의 어린시절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추자와 나는 같은 결핍을 나눠 가졌으며, 그로 인해 섭식장애을 겪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추자는 과거가 아닌 현재에 살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편하게 식사를 하고 어울리지 않는 타투를 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었죠. 화자는 엄마의 편안한 모습을 보면서 재가 되어 사라지는 집(과거)을 떠올렸을 것 같습니다! 내가 들고 온 앨범에는 추자의 사진이 가득했습니다. ‘이 사진을 여기까지 가지고 온 추자 씨는 오히려 그 시절을 빠져나온 사람처럼 보였다.’ 화자는 과거는 빠져나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요. 그래서 언제든 자신을 과거로 옮겨 놓는 울산을 오는 게 버거웠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화자가 이번 일을 통해 엄마처럼 나아질 수 있다는 안도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모든 트라우마와 결핍은 우리의 삶을 잠식시키기도 하지만, 전환점이 될 때도 있습니다. 나의 마음에서 뒤죽박죽 섞이고 왜곡된 과거를 힘껏 끌어안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길 바라봅니다. 더불어 엄마인 추자 시점에서의 글도 보고 싶어집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작가님! 오늘의 여름과 잘 어울리는 글이었어요.
울산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한때 가장 벗어나고 싶은 도시였지만, 궁지에 몰릴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
소설 보다 : 여름 2023 하가람, 「재와 그들의 밤」 (p.129),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택시를 예약한 사람처럼 여유 있게 차에 올라타면 어떨까. 그녀가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떠나줬으면 하고 바랐다. 어쩌면 우리는 도로 어딘가를 부유하고 있는 내 짐을 찾으러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잠시 푹신한 뒷자리에 몸을 기대는 상상을 해보았다.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타지 않겠다고 말했다. 택시가 로터리를 한 바퀴 돌고 돌고 돌아서 길을 빠져나갔다.
소설 보다 : 여름 2023 하가람, 「재와 그들의 밤」 (p.149),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그 시절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 둘 중 어느 쪽이든 이제는 내 두 발로 걸어갈 필요가 있었다.
소설 보다 : 여름 2023 하가람, 「재와 그들의 밤」 (p.149-150),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 고향. 한 곳에서 떠나지 않고 쭉 살고 있는 나에게는 몹시 낯선 단어다. 지금 사는 도시가 고향이긴 하지만, 나의 일상이기도 하니까. 🖋️ 울산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한때 가장 벗어나고 싶은 도시였지만, 궁지에 몰릴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 (p.129) 주인공에게 고향 울산은 애증이 담긴 곳인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한때 가장 벗어나고 싶었지만, 궁지에 몰릴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난’ 대상이 ‘추자 씨’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추자 씨도 아마 분명히 자신의 방식으로 주인공을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평생 추자 씨에게서 받아본 적 없는 다정한 눈빛’이라는 표현을 봤을 때 주인공은 추자 씨에게 큰 애정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살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힘들 때 생각나는 게 고향인 것처럼, 가장 먼저 기대고 싶은 사람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고향에 내려왔지만, 산불 때문에 원래 집이 아닌 ‘덕미 씨’의 집에 머무르게 된 것도 묘하다. 내가 모르는 나날들을 함께 한 두 사람을 지켜보는 주인공은 조금 외로워 보인다. 고향의 안락한 집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 머무르게 되었는데 춘자 씨는 오랜만에 만난 나와 함께 하기는커녕 덕미 씨와 둘만 아는 이야기를 나누고 밤이 되자 너무나 자연스럽게 안방으로 들어가는 상황. 겉으로 깨끗해 보인다고 해서 자주 닦아주지 않으면 식물의 숨구멍을 막는 물때와 먼지. 겉보기에 깨끗해 보였는데 막상 닦으니 새까만 먼지와 죽은 벌레들로 더러운 불투명한 형광등판. 어쩌면 주인공의 마음에도 들여다보지 않아 쌓인 지도 몰랐던 먼지가 부옇게 부유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추자 씨에게 받은 상처를 애써 무시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 추자 씨의 바깥에서 생각하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내가 알고 있는 선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었다. (p.145)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추자 씨가 그 시절을 빠져나온 사람처럼 보였다’는 주인공의 말처럼, 결국 ’울산의 추자 씨‘도 주인공이 ‘지나가야 할 한 시절’ 같은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 시절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 둘 중 어느 쪽이든 이제는 내 두 발로 걸어갈 필요가 있었다. (p.149-150) 택시를 타고 떠나가는 대신 택시를 떠나보낸 주인공은 자신의 두 발로 걷는 것을 택한다. 더 이상 도망가지 않고, 떠나보내야 할 한 시절을 마주하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 나는 바랐다. (...) 산에서 시작한 불길이 빠르게 번져 한울을 집어삼키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어떤 구호도 장비도 무용해지기를. 모든 것이 까맣게 재가 되어 사라지기를. (p.150-151)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인공은 모든 것을 불태워 재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없애버리는 것을 택하는 사람인 듯하다. 울산과 추자 씨라는 한 시절을 떠나보내고, 주인공은 어느 곳에서 시작하게 될까?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아주 새로운 시작을 꿈꿀까? 그의 미래가 어떻든, 후회 없이 두 발로 굳건히 걸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 언제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잔뜩 흐린 하늘의 오후에 이 글을 만났어요. 마음이 답답하고, 어쩐지 숨이 좀 막히는 습도와 기온. 날씨와 글이 잘 어우러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쓸쓸하지만 강렬한 마무리가 ‘재’라는 단어와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어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
갑자기 스쳐 지나간 그 한마디는 기분을 온통 흔들어놓았다. 다시금 울산에 올 때마다 큰 용기를 내야 했던 이유를 상기했다. 이 도시에서는 잠시라도 방심하면 건물 뒤편 혹은 골목길 모퉁이에서 시시때때로 감시자가 출몰했다. 나는 옛 시절을 지우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애쓰며 지난 몇 년을 살아왔으나, 그들은 과거의 내 모습만을 기억했고 그것을 바탕으 로 지금의 나를 평가했다. 몇 번 피우다 버린 담배를 발로 짓이겼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개운치 못한 냄새만 남겼다.
소설 보다 : 여름 2023 p126 ,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그 시절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 둘 중 어느 쪽이든 이제는 내 두 발로 걸어갈 필요가 있었다.
소설 보다 : 여름 2023 p.149-150,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추자씨’라는 호칭에서도 보면 ‘나’라는 인물은 엄마인 추자씨에게서도 도망가고 싶은 마음과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둘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추자씨와 본인을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나‘는 바뀐 추자씨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꿀 수 있게 된 것 같네요! 그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는 인물이 그걸 마지막에 깨달은 순간, 제 마음에도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재와 그들의 밤>! 저의 모습을 소설에서 본 느낌이라 기분이 이상하네요. 발가벗겨진 느낌이랄까요. 화자의 여러 모습에서 저를 보았어요. 그 덕분에 이 소설이 특별하게 느껴지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126쪽의 ‘나는 옛 시절을 지우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애쓰며 지난 몇 년을 살아왔으나, 그들은 과거의 내 모습만을 기억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의 나를 평가했다.’ 이 문장이 와닿았어요. 나만 이런 생각을 가진 게 아니라고 위로해 주는 느낌도 들었구요. 저는 과거에 얽매이게 하는 세상과 사람이 싫었고 여전히 그러해요. 과거와 저와 현재의 저는 분명히다르고,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과거로 판단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이유는 과거의 제가 강렬해서일까요, 아니면 과거의 본 시간이 더 길어서 그런 걸까요?) 저는 그래서 151쪽의 말처럼 ‘모든 것이 까맣게 재가 되어 사라지기를’처럼 바랐던 적도 있어요. 저는 제 과거가 재처럼 사라졌으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리고 재가 된 그 순간들을 새롭게 채우고 싶었어요. 과거의 제가 있기에 현재의 제가 있는 것일 거예요. 그래서 저는 재로 태우는 대신 일상에선과거 대신신 제 성장점을 봐주는 사람들을 두고, 더 큰 세상에선 과거를 안고 저의 길을 개척하려고 합니다. 또 세상이 증오스러워질 순간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세상이뭐라 하든든 과거의 저를 사랑하려고 합니다. (아, 그리고 저는주위 사람들을 과거로 매몰지 않기 위해노력하기로 했습니다!) 좋은 소설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굉장히 주저리주저리 했던 것 같네요 🥲 마음이 많이 울린소설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화분을 나르고 있으니 며칠 전 서울에서 짐을 정리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 나는 많은 것을 버려야 했다. 택배로 보낼 상자는 한정적이었고 가져갈 물건은 차고 넘쳤으니까. 덕미 씨의 화분을 하나씩 나르며 상자에 담은 것들을 곰곰 되짚어보았다. 당시에는 신중히 골랐던 물건들인데 왜인지 생각나는 게 별로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설 보다 : 여름 2023 p. 136-147, 재와 그들의 밤,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바람은 몇 시간 전보다는 잦아들었지만 방심하지 못하도록 간간이 매섭게 불어닥쳤다.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인지 모른 채 발걸음이 움직이는 대로 걸었다. 어느 도시든 큰길을 따라 걸으면 중심으로 향하게 되어 있었다. (···)
소설 보다 : 여름 2023 p. 146 - 147,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밤이라는 심상과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년 사이에 온 고향은 많은 게 달려졌었습니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까지 살았던 아파트는 재와 함께 타올랐고, 추자 씨에게서는 미처 발견할 수 없었던 낯선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떠오르는 일말의 혼란은 때때로 밤의 시간을 더욱 길게 늘어뜨립니다. 막상 걷고 또 걸어도 그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바쁘게 움직이게 되는 거 같아요.
(···) 그 시절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 둘 중 어느 쪽이든 이제는 내 두 발로 걸어갈 필요가 있었다. 사진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고개를 뒤로 젖혔다.
소설 보다 : 여름 2023 p. 149 - 150,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정은비 정은비님,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 소설 속 화자처럼 타지에서 생활 중이시군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고향이란 단순히 ‘태어나 자란 곳’이라는 사전적 의미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장 아프고 서툴렀던 시절을 환기시킨다는 면에서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곳인 것 같아요. 저는 지금의 ‘나’와 고향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의 ‘나’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그런 부분에서는 고향은 내가 잊고 살았던, 잊고 싶었던 ‘나’를 마주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겹쳐 흐르는 기묘한 공간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소설을 발표하면서 독자 분들에게는 고향이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는데, 소중한 감상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는 화자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여러 가지 '공존'의 키워드가 떠올랐습니다. 사람을 설명하는 이론들에서는 다양한 측면의 공존을 중요시하곤 하더라고요. 과거와 현재의 통합, 이상적인 자기상과 현실에 있는 자신 사이의 타협, 타인의 좋은 면과 부정적인 면을 공존하는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고들 합니다. 화자가 추자 씨와 자신의 과거, 현재의 모습을 통합시킴으로써 새로운 국면으로 걸어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 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벌써 초가을 바람이 부는 듯했습니다. + 저 또한 집을 떠나 대학원까지 다니고 있는 입장에서 고향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반복되는 소진에 지치면서 고향을 그리워 했으나, 막상 집에 가서 그동안 쌓아만 두고 미뤄왔던 기억들, 감정들과 마주하면 그것 또한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쩐지 화자의 어딘가 쓸쓸한 모습들이 더 측은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앞으로의 나날들이 화자에게 새로운 힘이 되기를 바라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 🙂✨
화제로 지정된 대화
@박혜원 박혜원님, 안녕하세요. 🌿 소설을 여러 방향에서 세심하게 들여다봐 주셨네요. 제가 신인이라 그런지 독자님들의 긴 감상을 읽으면 신기하기도 하고, 제 글과 인물을 이렇게 시간을 들여 찬찬히 보아주셨다는 점이 무척이나 감사하게 느껴져요. 오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혜원님의 감상을 읽으며 다시금 하였습니다. 맞아요. 아픈 기억이 전환점이 될 때도 있지요. 어떤 아픔은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할 때 비로소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소설 속의 화자도 로터리를 도는 택시처럼 돌고 돌아 다음으로 나아가기를 바라요. 소설보다 인터뷰에서도 얘기했지만, 저도 언젠가 울산을 배경으로 하여 중년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을 써보고 싶은데요. 아직은 막연히 구상만 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서가명강 북클럽ㅣ책증정] 『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를 편집자·마케터와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2025년 새해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센티브 이코노미>[책나눔][박소해의 장르살롱] 22. 한국추리문학상 대상 <타오>를 이야기하오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중간 참여할 수 있어요!
이런 주제로도 독서모임이?
혹시 필사 좋아하세요?문학편식쟁이의 수학공부! 50일 수학(상) 함께 풀어요.스몰 색채 워크샵프리스타일 랩을 위한 북클럽 《운율,서재》
명품 추리소설이 연극무대로~ (돌아온 연뮤클럽)
[그믐연뮤클럽] 5. 의심, 균열, 파국 x 추리소설과 연극무대가 함께 하는 "붉은 낙엽"[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
🍷 애주가를 위한 큐레이션
[그믐밤] 30. 올해의 <술 맛 멋> 이야기해요. [그믐밤] 19. <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 부제: 애주가를 위한 밤[서강도서관 x 그믐] ④우리동네 초대석_김혼비 <아무튼, 술>
'하루키'라는 장르
[Re:Fresh] 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다시 읽어요.[그믐밤] 16. 하루키 읽는 밤 @수북강녕 하루키가 어렵다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함께 읽기에이츠발 독서모임 16회차: <기사단장 죽이기> / 무라카미 하루키 저
스토리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어요.
스토리 탐험단의 첫 번째 여정 [이야기의 탄생][작법서 읽기] Story :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함께 읽기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함께 읽으실래요?
김새섬의 북모닝, 굿모닝 ☕
[1월 북모닝도서] 넥서스 - 하라리다운 통찰로 인류의 미래를 묻다[1월 북모닝도서] 빌드(BUILD) 창조의 과정 - 또라이 대처법까지 알려주는 아이팟의 아버지[1월 북모닝도서] TSMC, 세계 1위의 비밀 - 클립 하나에 담긴 보안[1월 북모닝도서] 레드 헬리콥터 - 숫자 뒤에 사람 있어요.[1월 북모닝도서] 다시, 리더란 무엇인가 - 역사 속 리더들에게 배우다
<책방연희>의 다정한 책방지기와 함께~
[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번외편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읽기[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번외편 <내가 늙어버린 여름> 읽기[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겨울에는 러시아 문학이 제 맛
[문예세계문학선] #01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함께 읽기[그믐밤] 8. 도박사 1탄, 죄와 벌@수북강녕[브릭스 북클럽]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커다란 초록 천막》 1, 2권 함께 읽기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 채식이 궁금한 사람들은 이곳으로~
12주에 채식 관련 책 12권 읽기 ③ 고기는 절반만 먹겠습니다 (브라이언 케이트먼)12주에 채식 관련 책 12권 읽기 ② 채식의 배신 (리어 키스)12주에 채식 관련 책 12권 읽기 ① 채식의 철학 (토니 밀리건)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